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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갈라지고, 다리가 무너진…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을 올해 보게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준비작업부터 후반작업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겨울엔 영화아카데미 졸업생들이 모여 만든 옴니버스영화 <이공>에 들어갈 단편영화 한편(<씽크 앤드 라이즈>)을 찍었고, 올해 전주영화제에 삼인삼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디지털영화(<모자이크 다큐멘터리: 인간 조혁래)도 한편 찍을 예정이다. <살인의 추억> 일본 개봉 때문에 일본 방문 일정도 잡혀 있고 최근엔 뉴질랜드의 웨타 스튜디오(<반지의 제왕> 삼부작을 만든 곳)에 가서 신작에 들어갈 특수효과에 관해 논의했다. 봉준호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골룸처럼 정신분열에 걸릴 상황”인 셈이다. 어쨌든 무엇보다 궁금한 건 세 번째 장편영화다. 영화사에서 정한 가제가 <더 리버>라는 이 영화는 도시재난영화라는 사실
흥행작가 3인의 신작 [4] -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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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강요당하는 영화감독의 파국
아시아 3개국 공동 제작 프로젝트인 옴니버스 공포영화 <쓰리>의 첫 번째 주자들은 논지 니미부트르, 진가신, 김지운이었다. 그뒤를 이어 만들어지는 <쓰리, 몬스터>의 바통을 미이케 다카시, 유휘강, 박찬욱이 맡게 됐다. 명단에서 감지되는 것은 강렬함이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이 ‘선택’한 몬스터는 평화로운 가정으로 들어온 침입자이다. <올드보이>에 이어 박찬욱 감독은 이번 단편영화 <컷>에서 다시 한번 인물들 사이의 강요와 선택과 긴장과 대결, 그리고 그 대가 어딘가에 카메라를 세운다. 7억∼8억여원의 예산으로 30분에서 45분가량의 러닝타임으로 만들어질 이 영화는 거의 극중 시간과 러닝타임이 같을 예정이고, 공간이 만드는 비현실적 이미지는 풍족한 부유층의 가정을 인질극의 난투장으로 만들어낼 계획이다. <올드보이>의‘학습, 자료용’ DVD 출시에 매진하는 한편, 생애 최초의 뮤직비디오를 이제
흥행작가 3인의 신작 [3] - 박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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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잡을 수 없는 느낌의 액션 누아르
돌이켜보면, 언제나 누아르였다. 그들의 웃음에는 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그들은 살인을 하거나 살인의 욕망으로 뒤척이고 있었다. 억압의 고통이 감독에게까지 전이된 <장화, 홍련> 이후 김지운 감독이 누아르로 돌아간 것은, 누군가 <조용한 가족>을 코믹누아르라고 부른 것처럼 일종의 회귀본능 같은 것이 아닐까. 아직 가제조차 정하지 못한 김지운 감독의 신작은 <장화, 홍련> 이전의 영화들처럼 말도 많고, 사건도 많고, 인물도 많은 누아르다. 한 남자의 인도적인 선택이, 눈사태처럼 전혀 의도하지도 않았고, 상상할 수도 없었던 비극을 몰아오는 이야기. 빛과 어둠의 난무가 관건인 누아르에서, <장화, 홍련>의 서늘하고도 화사한 스타일이 어떻게 변태(變態)할 것인가. 1고가 막 나온 지금,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영화에 대해 물어보았다.
-어떤 이야기인가.
=주인공 S는 중급 호텔의 영업권을 가
흥행작가 3인의 신작 [2] - 김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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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은 머냐, 어서 밝혀라
관객의 열광적인 호응과 평단의 긍정적인 지지 둘 모두를 균형있게 성취해내기란 쉽지 않다. <씨네21>은 그 교묘한 줄타기 명수들의 현재가 궁금해졌다. 그들의 차기작에 대한 밑그림을 훔쳐보면서 또 어떤 흥행성과 미학이 손을 잡을지 예측해보기로 했다. 그중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를 만났다. 김지운은 <장화, 홍련>으로,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으로, 박찬욱은 <올드보이>로 지난 한해 한국영화의 흥행 깃발을 날렸다. 더불어 자신들의 표식으로 넘치는 영역도 구축했다. 지금 이 세 사람 모두가 차기작 준비에 여념이 없다.
김지운은 다음 영화 <모두 다 그녀를 좋아한다>(가제)에서 “액션누아르에 관한 호기심”을 스크린 위에 발동시킨다. 여전히 장르 사이를 유유히 돌아다니며 진지전을 펼칠 계획이다. 장편과 단편을 번갈아 만드는 박찬욱의 행보는 <쓰리, 몬스터>의 옴니버스 작품 중 하나인 <
흥행작가 3인의 신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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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혹스런 첫 대면
2004년 베를린, 북한영화 <푸른 주단 위에서> 특별상영
제54회 베를리날레의 12일간 대장정이 중반으로 접어든 2월9일 저녁, 영화제 인파로 불철주야 북적거리는 포츠담 광장의 다른 극장들과 달리 시네막스 6관은 사뭇 정적이 감돌았다. 100여명 관객도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으니, 역사적(?) 순간의 증인이 될 마음의 채비라도 하는 중이었을까? 자막은 없으니 통역이 읊조리는 대사를 들으려면 헤드폰을 이용하라는 멘트 속에 극장으로 진입한 VIP 열댓명 중 조선영화수출입사의 장원준 부총사장, 국제관계담당 윤미화와 북한 여배우 김련화가 무대인사를 했다. 북한영화가 베를린영화제에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조우한 북한영화가 림창범, 전광일 감독의 2001년작 <푸른 주단 위에서>다.
전형적인 선전영화, 관객은 당황
조선노동당 창당 50주년을 앞두고 집단체조 창작단은 아리랑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아동장(어린이 집단체조)을 지도하는 은규는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8] - 북한영화 특별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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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치거나 혹은 야유하거나
베를린을 열광시킨 화제작들과 기대 못미친 ‘기대작’들
2월8일 베를린 시네맥스 극장 앞에선 비명이 터져나왔다. <몬스터>를 보기 위해 30분 전부터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좁은 입구로 한꺼번에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제는 예술영화가 유일하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겠지만, 그 힘도 스타가 출연하는 할리우드영화를 누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몬스터>는 모든 이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미국 최초의 여성연쇄살인범’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간 이 영화는 아름다운 외모를 늘어진 살과 빽빽한 주근깨로 가리고 출연한 샤를리즈 테론 덕분에 기대를 모았던 영화. 그 호연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단이 여우주연상 공동수상을 결정한 <마리아의 은총> 역시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해 소문이 먼저 도착한 영화였다. <마리아의 은총>은 마약 캡슐을 위장 안에 넣고 운반하는 소녀들의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7] - 열광의 화제작들과 기대에 못미친 기대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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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 욕망 그리고 사랑의 스릴
파트리스 르콩트는 2001년 <펠릭스와 롤라>를 들고 베를린영화제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영화를 좋아한 사람을 딱 다섯명 만나봤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홀대받았지만, 올해의 기억은 그 상처를 충분히 달래줄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제 공식일정 첫날 상영된 <친밀한 이방인>(Confidences Trop Intimes)은 은밀한 욕망이 사랑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우아하고도 유머있게 그려내 이견없는 갈채를 받았다. 윌리엄은 단 하루도 넥타이를 매지 않고 출근해본 적이 없는 고지식한 세무사다. 어느 날 그의 사무실에 안나라는 낯선 여자가 찾아온다. 그녀는 같은 층에 있는 정신병원 대신 윌리엄의 사무실로 들어온 것이다. 뒤늦게 진상을 파악한 윌리엄은 오해를 바로잡으려고 하지만, 부부생활의 가장 깊숙한 비밀까지 들어버리고 난 뒤라 어찌할 수가 없다. 윌리엄은 차츰 일주일에 한번 있는 안나와의 상담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르콩트는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6] -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의 <친밀한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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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를 통해 서구의 신념을 의심하다
<애 폰드 키스>는 켄 로치와 작가 폴 래버티가 함께해온 ‘글래스고 3부작’의 마지막 영화다. 켄 로치는 “글래스고는 오랜 투쟁의 역사가 있고 강한 문화를 소유한 도시이기 때문에 런던보다도 드라마틱하다”고 말하면서 그곳에서 <내 이름은 조> <스위트 식스틴>을 촬영했다. 그러나 <애 폰드 키스>는 그 영화들과도, 켄 로치의 다른 어떤 영화들과도 다르다. <애 폰드 키스>(Ae Fond Kiss)는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공동체 때문에 사랑의 고통을 겪는 젊은 연인의 이야기이고, 그 어느 때보다도 대중적인 재미가 있는 영화다. 카심은 글래스고에 살고 있는 파키스탄 가족의 외아들이다. 그 부모는 카심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카심이 여동생이 다니는 학교의 음악교사 로이신과 사랑에 빠지면서 그 단단한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카심의 부모는 이미 사촌 여동생을 결혼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5] - 켄 로치 감독의<애 폰드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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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영상으로 그리는 눈물의 그리스사(史)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20세기를 눈물의 시대라고 기억한다. “초원에 떨어진 이슬은 대지가 흘리는 눈물과도 같다”고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그는 전쟁과 내전, 또 다른 전쟁이 오고가던 20세기 한복판의 그리스를 한 여인의 생 안에 담아넣었다. 그가 두손을 모아 눈물을 받아주는 여인의 이름은 엘레니. 사랑 때문에 쫓겨다녔던 그리스 신화의 헬레나지만, 앙겔로풀로스는 그녀가 피를 나눈 두 오빠가 서로 죽이는 모습을 목격한 안티고네고, 눈앞에서 살해당한 아들을 위해 통곡하는 안드로마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1919년, 러시아 적군(赤軍)이 오데사를 점령하자 그리스인들은 국경지방의 공백으로 남아 있는 호수 근처 빈터로 탈출한다. 그 여정의 도중에서 알렉시스의 가족은 죽은 엄마 곁에서 울고 있던 아기 엘레니를 데려온다. 두 아이는 자라면서 연인이 되고, 가족의 반대를 피해 달아나 쌍둥이 아들을 낳는다. 그러나 전쟁은 알렉시스와 엘레니, 그들의 두 아들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4] -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눈물 흘리는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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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스며든 터키계 영화의 힘
<헤드-온>(Gegen die Wand)은 1986년 <슈탐하임> 이후 처음으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독일영화다. 경쟁부문에서 한번 탈락한 전적이 있는 <헤드-온>은 감독 파티 아킨조차도 수상을 기대하지 못했지만, 내레이션 역할을 하는 터키 노래와 파괴적인 유머감각, 성숙한 성찰 덕분에 진심어린 호의를 얻은 영화였다. 터키계 감독과 배우가 만든 <헤드-온>은 코미디로 시작해서 비극적인 사랑으로 치닫는 독특한 행로를 밟아간다. 보수적인 가족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하는 스무살 터키 처녀 시벨은 우연히 만난 중년남자 카힛에게 결혼해달라고 조른다. 카힛은 아내가 죽은 뒤에 알코올과 마약에 젖어 살고 있다. 좋은 일 한번 하자는 심정으로 마지못해 시벨과 결혼한 카힛은 천진하고 생기있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시벨도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카힛은 말다툼 끝에 실수로 시벨의 남자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3] - 파티 아킨 감독의 <헤드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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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 가장 잘 알려진 한국감독"이 몰고온 새로운 논란
<사마리아>는 수상작을 발표하는 베를린 그랜드 하이야트 호텔 컨퍼런스 룸에 작은 소동을 불렀다. ‘김기덕’이라는 이름을 알아들은 기자들은 수상 결과가 영어로 옮겨지기도 전에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뒤이은 야유에 파묻혔다. 새로운 영화를 내놓을 때마다 찬반의 논쟁을 부르는 김기덕 감독. 그는 평가에 관계없이 화제가 될 만한 감독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독일 언론 역시 <사마리아>에 이례적으로 큰 지면을 할애했다. 지난주에 간략하게 소개했던 외신들의 평가를 좀더 자세하게 싣는다.
2월11일 <도이체 차이퉁> 토비아스 크니베
폭력의 사마리아 여인들
우리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순간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분류하고, 저속한 판단에 도달하곤 한다. 보는 즉시 검열의 틀 안에 가두어버리는 대신 한동안 지켜보는 일이 필요한 데도 말이다. 예를 들면 김기덕 감독의 <사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2] -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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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 혁신성에 중점둔 평가
금곰상은 터키계 독일 감독 파티 아킨의 <헤드-온>
>> 장편영화 본상
황금곰상(최우수 영화상) 파티 아킨의 <헤드-온>(Gegen die Wand)
은곰상(심사위원 그랑프리) 데이비드 부르만의 <잊혀진 포옹>(El Abrazo Partido)
은곰상(최우수 감독상) <사마리아>의 김기덕
은곰상(최우수 여우주연상) <몬스터>(Monster)의 샤를리즈 테론, <마리아의 은총>(Maria, llena de gracia)의 카타리나 산디노 모레노
은곰상(최우수 남우주연상) <잊혀진 포옹>(El Abrazo Partido)의 다니엘 엔들러
은곰상(예술공헌상) 비요른 룽에의 <데이브레이크>(Om Jag Vander Mig Om)
은곰상(최우수 영화음악상) <첫사랑>(Primo Amore)(감독 마테오 가로네)의 반다 오시리스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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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개의 눈을 가진 한사람
영화 <아들>은 다르덴 형제의 영화형식과 주제의 집적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속>에서 <로제타>로, 다시 <아들>로 그들은 점점 더 발전한다. 따라서 <약속>과 <로제타>가 어떤 영화인지를 함께 짚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약속>. 이 영화는 처음으로 다르덴 형제의 이름을 공공연히 알렸다.
<약속>은 불법으로 이민자들을 밀입국시켜 자신의 건축 작업에 부려먹는 악덕 알선업자 아버지와 그것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악행에 동참하게 된 14살짜리 소년 이고르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경찰들이 들이닥치자, 도망치던 아프리카 이민자 남자는 건물에서 떨어지고 만다. 정신을 잃어가던 남자는 이고르에게 남겨진 부인과 아기를 돌봐줄 것을 ‘약속’해달라고 한다. 이고르는 약속한다. 하지만 남자를 발견한 아버지는 일이 커질 것을 염려하려 아직 죽지도 않
<아들>의 다르덴 형제를 주목해야 하는 까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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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를 쫓아다니며 모든 것을 보는 방법
페드로 알모도바르, 첸카이거, 짐 자무시, 기타노 다케시, 마뇰 드 올리베이라, 알렉산더 소쿠로프, 그리고 데이비드 린치. 1999년 칸을 찾은 거장들의 이름은 수두룩했다. 그러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를 수장으로 한 심사위원단은 장 피에르 다르덴, 장 뤽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1999)에 상을 선사했다. 여주인공 에밀리 드켄은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다. 사람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미 <약속>(1996)으로 작은 유럽 영화제들을 순회한 경험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다르덴 형제는 그저 갑자기 떨어진 별똥별일 뿐이었다. 2002년 다르덴 형제는 <아들>(2002)로 다시 칸을 찾았다. 그러나 황금종려상은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에 돌아갔다. <아들>의 배우 올리비에 구르메가 남우 주연상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3년 전 황금종려상을 빼앗겼던(?) 데이비
<아들>의 다르덴 형제를 주목해야 하는 까닭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