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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스펙터클과 감성드라마의 조화
일찌감치 “영화사상 최고의 전쟁 스펙터클”을 예고했던 <왕의 귀환>은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과 에너지와 스피드로 펠렌노르 전투를 연출해냈다. 중간계 최후의 보루 미나스티리스와 사우론의 검은 요새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전투에선 20만의 오르크와 6천의 로한 군사가 격돌한다. 2부 헬름 전투에 동원됐던 오르크 군대는 1만에 불과(?)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중요한 것이 ‘사이즈’는 아니다. 피터 잭슨과 웨타 워크숍 팀은 1부와 2부에서 ‘맛보기’로 등장한 사우론의 괴물들을 단체로 펠렌노르에 소환해냈다. 8층 빌딩 크기의 코끼리괴물(호빗들은 이들을 올리펀트라고 불렀다)이 조심성 없는 발을 쳐들어 닥치는 대로 밟아 뭉개고, 뱀의 머리와 박쥐의 날개를 가진 나즈굴의 검은 익룡이 병사와 말을 낚아채 공중에 내던지는 광경에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아군쪽에도 히든 카드가 있으니, 바로 아라곤이 깨워낸 망자들의 군대다. 이실두르와의 맹약을 저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월드 프리미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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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케이션 부문이 있다면!
월드 프리미어가 열리는 앰버시 시어터는 시민들의 모금과 시의 기금으로 새 단장을 마쳤다. 3부에 등장하는 나즈굴의 대장과 그의 애마(?)가 레드 카펫을 굽어보고 있다.
절대반지를 찾아 중간계를 헤맸다. 남태평양의 이국적인 풍광을 기대하며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돌아보면, 웃음이 헤프고 맨발 산책을 즐기는 아담한 체구의 키위들이 “중간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인사하는 순간, 그 말이 강력한 최면으로 감겨왔던 것 같다. 여기는 중간계다, 그러니 반지의 행방을 찾으라는.
사실상 ‘메이드 인 뉴질랜드’ 제품이나 다름없는 <반지의 제왕>의 흔적을 찾는 것은 가까운 로케이션 탐사로부터 시작됐다. 개인 농장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호빗들의 고향 호비튼을 들러보리라 계획했지만, 그곳은 웰링턴에서 차로 6시간을 달려야 다다를 수 있는 아주 먼 곳이다. 안타깝지만 일정상 미션 임파서블이다. 현지인들에게 물으니, 한결같이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월드 프리미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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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반지의 대장정에 위대한 마침표를 찍다
“피터 잭슨을 총리로!” 이건 농담이 아니다. 12월1일 웰링턴 시내에 운집한 10만명의 군중 속에 선거 캠페인을 연상시키는 피켓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남국의 붉은 꽃송이로 엮은 화환을 목에 걸고 나타난 피터 잭슨에게 쏟아진 환호와 갈채는 머리를 멍하게 할 만큼 우렁찼다. 그는 뉴질랜드의 영웅이고 스타이고 제왕이었다. 실사 영화화 불가 판정을 받은 판타지의 고전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노하우도 인프라도 빈약한 고국 뉴질랜드로 들고 온 지 5년 만에, 그는 뉴질랜드의 존재감과 가능성을 만방에 알리는 데 성공했다. 그런 피터 잭슨을 배우 존 라이스 메이어스는 “캡틴 쿡 이래 뉴질랜드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위인”이라고 추어올렸다. 그럴 만했다.
이틀 전,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월드 프리미어를 위해 말끔히 새 단장을 했다는 앰버시 시어터에 전세계 170여명의 기자들이 모여 이 작품을 비공식적으로 그러나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월드 프리미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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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액츄얼리>로 감독 데뷔한 워킹 타이틀 대표작가 리처드 커티스
세상에는 두 사람의 리처드 커티스가 있다. 한명은 <블랙애더> <미스터 빈> <디블리의 교구 목사>를 쓴 시트콤 전문작가이고 다른 한명은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의 각본을 쓴 로맨틱코미디 작가이다.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은 어색하고 이상하다. 한 작가가 텔레비전과 영화 모두를 넘나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명의 작가가 쓴 각본들이 장르와 매체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르다면 그건 신기하고 불편하다.
무자비한 블랙유머의 대명사
시트콤 작가 리처드 커티스는 냉정하고 무자비하며 영국적인 블랙유머에 강하다. 그의 대표적인 걸작 <블랙애더>를 보자. 그와 로완 앳킨슨, 벤 엘튼은 블랙애더라는 성을 가진 일련의 주인공들을 난처한 곤경 속에 밀어넣으며 (가상의) 리처드 4세 시절부터 제1차 세
워킹 타이틀 대표작가 리처드 커티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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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의 영국, 환상 속의 미국
이유야 무엇이건, 영화작가 리처드 커티스는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이후 좀더 이해하기 쉽고 일관성 있는 세계를 우리에게 선보여왔다. 그 세계는 너무나도 영국식으로 괴팍한 친구들에 둘러싸인, 휴 그랜트처럼 조금 어벙한 중상층 영국인이 이국에서 온 화려한 여인에게 더듬더듬 사랑을 고백하는 곳이다. 이 세계는 몇 가지 면에서 놀림받기 딱 좋은 곳이다. 특히 동료 영국인들에게는.
커티스가 그리는 세계는 징그러울 정도로 영국적이어서 거의 영국 같아 보이지 않는 곳이다. 실제로 수많은 영국인들은 리처드 커티스가 그리는 영국에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는 예의바른 중산 계급만으로 구성된 그 비폭력적이고 깔끔한 세계는 너무나도 스테레오 타입화해 있어서 영국을 어느 정도 잘 아는 미국인이 썼다고 해도 믿을 만하다. 그곳은 살아 숨쉬는 영국이라기보다 관광 명소로서의 영국이다. 커티스가 본격적으로 작업한 세편의 워킹타이틀
워킹 타이틀 대표작가 리처드 커티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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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투자자 10인이 말하는 올해의 한국영화 7문7답
지난해 이무렵 한국 영화계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금융자본의 철수가 기정사실화되면서 2003년을 시련의 계절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위기는 기회였다. 2003년 한국영화는 질적, 양적 성장을 거듭했고 대다수 제작자들은 지금 한국영화의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과연 그들은 올해 어떤 사건을 겪었고 어떤 영화를 인상깊게 봤으며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강우석, 박동호, 차승재, 최완, 심재명, 오정완, 김미희, 이춘연, 정태원, 김동주 등 대표적 제작, 투자자 10인에게 7개의 질문을 던져 그 답을 들어봤다.
이강복 대표 퇴진 뜻밖의 사건 - 강우석_감독
1.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CJ엔터테인먼트의 이강복 대표가 그만둔 게 가장 큰 사건이 아닐까. CJ를 대표하는 인물로 오랫동안 영화 일을 했는데 승진한 거 같지도 않고 갑자기 바뀌어서 놀
2003 한국영화계를 돌아본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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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시장점유율 50%대 - 정태원_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
1.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50%를 넘을 것 같다. 과거 음반시장에서 가요보다 팝이 우위에 있다가 가요 시장 위주로 재편된 것처럼 한국영화가 시장을 장악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2.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무엇인가? 장르가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과거에 특정장르의 영화만 선호했다면 이제는 장르에 상관없이 잘 만든 영화를 찾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공포영화가 잘되는가 하면 사극도 인기를 끄는 등 소재가 무척 다양해졌다.
3. 올해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인상깊은 작품은 무엇인가? <올드보이>와 <살인의 추억>. 두 영화 모두 극장에서 2번씩 봤는데 처음엔 궁금해서 봤고 두 번째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봤다. 장소헌팅, 촬영, 미술, 음악, 연출 등 모든 면에서 굉장히 많이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영화다.
4. 올해
2003 한국영화계를 돌아본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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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 전선(戰線)을 따라 미리 보는 <태극기 휘날리며>
<태극기 휘날리며>는 여전히 미궁이다. 게다가 개봉은 2004년 2월6일로, 애초 일정보다 20일가량 밀리면서 궁금증은 더 커졌다. 내년 상반기 한국영화 최대 화제작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이 거대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1950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두 형제의 비극이라는 짤막한 문장 이외에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순제작비 146억원을 들인 스펙터클과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스탭들의 팀워크가 만들어낸 자장이 강제규 감독의 전작 <쉬리>의 여진만큼 강력할지 또한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실마리가 없진 않다. 강 감독은 수차례 이번 영화에서 ‘전투가 아닌 전쟁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말해왔다. 볼거리에 앞서 역사적 개연성과 감정의 드라마가 중요한 영화라는 것이다. 한국전쟁은 그 전개과정 자체가 드라마틱한 구조를 갖고 있다. 남하와 북진, 그리고 다시 교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을 떠올려보라. 어쩌
<태극기 휘날리며> 미리 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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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으로 북진하다
역사 속으로 인천상륙작전 당시 지도를 보면, 서울 일대 지역은 ‘Mud’라는 암호로 표시되어 있다. 도시연구가 손정목씨는 “인민군에 의해 진흙탕이 된 곳”이거나 “하찮은 지역이니 싹쓸이해버리자”라는 뜻이 아닐까 추정한다. 어쨌건 대규모의 공중 폭격과 함께 인천에 상륙한 뒤, 연합군은 북상을 시작했고 낙동강 일대의 인민군은 퇴로를 차단당한 채 투항 또는 죽음을 택해야 했다.
스토리 수차례 기습작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진태는 상관으로부터 신임을 얻는다. 한편, 진석은 욕심없던 형이 전쟁에 빠져드는 것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진석은 형에게 앞으로 위험한 일에 나서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도대체 먹히지 않는다. 마침,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이들 두 형제의 갈등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북진의 행로를 따른다.
촬영장에서는 경상남도 합천의 2만평 부지에 세운 평양 세트는 무려 17억원이 들어간 대형 구조물. 지반이 단단한 암석이라 1채당 2t이나 되
<태극기 휘날리며> 미리 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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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영상세대를 위한 제언
현재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진통을 겪으며 양극화의 위험에 처해 있다. 홈시어터와 인텔리전트 주방체제를 갖춘 첨단하이테크 고층아파트가 하늘을 치솟는 새로운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 농민들의 분신이 잇따르고 있다. 이렇게 양극화된 사회적 풍경은 지상과 지하의 삶으로 양분된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묵시록적 풍경을 연상시킨다.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 위에서 사는 극소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사이보그의 탄생은 테크노피아의 실현이겠지만, 사이보그에 쫓기는 다수의 지하생활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지옥의 묵시록에 다름아닐 것이다.
이 양극화된 풍경이 더욱 묵시록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위로 ‘위험사회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참사’와 같은 위험이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예측돼온 물리적 위험이라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정보화가 가져오는 문화적 위험은 아
영화의 힘을 다시 묻는다 - 한국영화의 미래를 찾아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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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한국밖에는 없소!” 드디어 의문이 풀리다
그가 젊은 여성 감독과 함께 68혁명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 영화 <코드 68>을 준비 중이라는 건 집으로 찾아가 만난 뒤에야 알았다. 판권담보융자로 제작비도 마련해 카날 플뤼가 제작사로 나섰으며, 촬영은 그때 그 시기에 맞춰 내년 5월에 시작할 예정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다니. 그런데 행운은 잇따랐다. 궁금증을 속시원히 풀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 게 아닐까 하던 우려는 장 앙리 로제를 만나면서 풀렸다. 물론 혹자는 이걸로 해답이 되겠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68세대의 자유로움을 35년 동안 그대로 간직해온 듯한 느낌을 물씬 풍기며 어떤 질문에도 명쾌한 답을 일러줬다. 최소한의 살림살이로 아파트를 텅빈 듯 꾸며놓은 그의 소탈하고 소박한 태도가 더욱 신뢰감을 줬다(이건 어쩔 수 없는 편견이다. 그는 드브레의 인상과 드브레의 집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장 앙리 로제는 1969년 고다르와 함께 정치적이고 표
영화의 힘을 다시 묻는다 - 한국영화의 미래를 찾아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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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혁명의 무기로 삼은 지 35년, 그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11월20일 Arcueil Cachan의 에스파스 장 빌라 극장. 시간은 밤 11시를 넘기고 있다. 밀레탕트(투쟁참여적) 시네마의 살아 있는 거장 장 루이 코몰리가 1시간 넘게 꼬박 선 채로 관객의 쏟아지는 질문에 응한다. 60년대부터 정치적 다큐멘터리 작업을 왕성히 벌이는 동시에 고다르와 함께 논쟁적인 글들을 생산했던 그의 에너지는 지칠 줄 모른다. 올해 퐁피두센터에선 코몰리 회고전을 열었고(마치 예술의전당에서 김동원 감독 회고전을 연 셈이랄까. 이때 코몰리는 10년에 걸쳐 완성시킨 다큐멘터리를 통해 지난해 대선에서 2위를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켰던 극우파 장 마리 르펭에 대해 날카로운 분석을 가했다), 최근에는 방송자본이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는 프랑스 영화현실에 반발해 “차라리 가난한 영화를 만들자”며 <카이에 뒤 시네마>에 또 한번 논쟁적인 글을 실었다.
이날 코몰리는 ‘다큐멘터리 스크린’이란 제
영화의 힘을 다시 묻는다 - 한국영화의 미래를 찾아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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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반동’을 만나다
파리의 겨울은 지독하게 우울하다. 늘 흐린 하늘에 툭하면 차가운 비를 뿌리고 냉기는 집요하게 옷 속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그에 비할 수 없이 힘들었던 건 레지스 드브레를 만나는 일이었다. 3주 전부터 섭외를 시작했으나 가타부타 답은 좀체 오지 않았고, 기획을 개편 특집이 아니라 신년 특집으로 미뤄야겠다고 내부 조율을 마치려는 찰나 약속시간을 통보받았다. 파리에서 취소 위기를 겪었고 시간은 한번 더 바뀌었다. 소르본 부근에 있는, 파리의 전형적인 고급 주택에서 만난 그는 파리의 겨울 하늘 못지않게 냉철하고 까다로웠다. 건네준 <씨네21>을 뒤적거리며 던진 그의 첫 일성은 “68년 5월이라면 잘못 선택했다”였다. “난 그때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 당시 난 남미 감옥에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나는 철학자였으며, 정치적 혁명운동에 전념했고, 최근에는 종교를 연구하고 있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갖는 바는 ‘영향’(influence)이다. 설득하고 매혹하는
영화의 힘을 다시 묻는다 - 한국영화의 미래를 찾아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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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은 살아있다 - 상상력에게 권력을!
“상상력에게 권력을!” 68년 5월 파리를 뒤덮었던 구호다. 68혁명의 슬로건과 2003년의 한국, 아니 한국영화는 과연 어울릴까? 35년 전과 현재에 대해 동시에 묻는 이 낯선 작업이 엉뚱한 것만은 아니다. 68년과 지금은 다르면서도 닮았으니까.
유럽과 미국을 들끓게 한 68혁명의 배경은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 움직임이었다. 거짓으로 드러날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시작하고, 호언장담과 달리 전쟁은 자꾸 이상하게 흘러간다. 베트남전이 그랬고, 지금의 이라크전이 마치 그때를 되풀이하는 듯하다. “윌슨은 어디로 갔나, 펜타곤으로 기어가고 있다!” 1965년 윌슨 총리가 이끄는 영국 노동당 정부를 향해 런던 시민들은 이렇게 외치며 반전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2003년 11월21일 런던에선 20여만명이 반전 시위를 벌였다. 이날 토니 블레어 노동당 총리는 자신을 찾아온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한치도 겁내거나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영화의 힘을 다시 묻는다 - 한국영화의 미래를 찾아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