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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수 주변으로 90년대 한국인의 단면을 펼치다
<송환>에 등장하는 장기수 선생의 주변 인물들은 몇 가지 갈래로 나뉜다. 장기수 선생의 존재로부터 어떤 정화를 받으려는 386세대처럼 그들의 존재에 대해 막연한 존경과 연대감을 품고 있는 이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선 그들을 돕고자 하나 철저히 자기중심적 방법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있다(<송환>에선 반신불수의 류한옥 선생을 보호하고 있는 꽃마을이 그를 ‘가둬놓는다’는 인상으로 묘사된다. 오웅진 신부는 성경의 잠언을 읽게 해달라는 류 선생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맺고 있으나 그 관계를 애써 부정하려는 장기수 선생의 가족과 친인척의 피해의식이 비중있게 등장한다. 김선명 선생의 누이동생은 어머니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끝내 알려주지 않는다. 또 장기수 선생들과 작은 충돌을 빚는 납북자 가족들. 이런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90년대 한국인의 단면’을 다채롭게 펼쳐간다.
김동원 |
배우 문소리, <송환>의 김동원 감독에게 묻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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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의 미세한 굴곡과 역설, 그리고 유머
‘절제했다’는 표현은 틀리지 않는다. 애초 김 감독이 작품의 중심에 놓으려 했던 건 조창손 선생이 아니라 김석형 선생이었다. 촬영을 해가면서 고위급 간부 출신에 사명감과 사상이 아주 투철한 김 선생보다는 조 선생에게 화자의 시선이 옮겨갔다. 편집단계에서 ‘주인공’은 완전히 조 선생으로 교체됐고, 인터뷰와 촬영을 통해 두 선생 사이의 괴리감이나 모순이 자연스레 포착됐으나 작품에서 모두 빠졌다. 예컨대 빨래와 청소, 설거지 등은 온전히 조 선생의 몫으로 돌아가면서 생기는 작은 갈등들, 김 선생에게 가졌던 동네 사람들의 경계심 등. 역시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선명 선생의 연애 이야기가 있다. 이 연애는 자못 심각해서 송환문제와 얽혀 복잡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 속내를 속속들이 알지만 김 감독은 이를 작품에 넣지 않았다. 김 감독은 “카메라는 왜곡이나 미화는 피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선생들이 예쁜 척하거나 잘난 척하는
배우 문소리, <송환>의 김동원 감독에게 묻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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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이 12년간의 긴 제작 여정을 마침내 끝냈다. 3월19일 예술영화전용관 네트워크 ‘아트플러스’를 타고 일반에 공개되는 <송환>의 주인공은 비전향 장기수다. 촬영 테이프 500여개, 촬영시간 800여 시간 가운데 고작 2시간을 추려낸 <송환>은 선동과 계몽의 욕구가 앞서는 정치 다큐멘터리가 될 수 없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스펙터클 비극이 도저히 담아내지 못하는 인간사의 미세한 굴곡과 역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눈물을 뽑아낼 수는 있어도, 단단하고 현란한 논리가 구호와 행동을 자극할 수는 있어도, 삶의 고단한 역정이 동반하는 그 넓은 느낌까지 끌어안기란 쉽지 않다. <송환>은 섣부른 욕심이나 속단없이 그 모든 걸 하나씩 끌어내 보여준다.
배우 문소리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작업을 마친 김동원 감독을 만났다. 문소리는 “자격도 능력도 없지만 <송환>의 개봉에 조금의 보탬이라도 된다
배우 문소리, <송환>의 김동원 감독에게 묻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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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사하몽콜필름의 세일저 매니저 위 촘사지와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 (위부터)
최근 등장하고 있는 신인감독군은 논지 세대와는 또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 논지 세대가 주로 광고업계에서 건너온 인재들인 반면 최근의 신인감독들은 영화아카데미 출신이나 평론가, TV 연출, 연극연출가 등 다양한 주변의 영상 관련 인력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시외버스 안의 뒷좌석을 연속극의 배경으로 설정하여 두 가지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는 독창적 형식의 <아이산 특급>(2002)의 밍몽콜 소나쿤(그녀의 작업은 아핏차퐁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그녀의 차기작은 아마도 아핏차퐁과 함께 하게 될 것이다)과 PPP 프로젝트였으며 남성중심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해낸 <원 나잇 허즈번드>(2003)의 핌파카 토위라(제작은 다름 아닌 밍몽콜 소나쿤이다)는 모두 평론가 출신이다. 지난 연말 개봉되어 흥행돌풍을 일으켰던 <마이 걸>(My Girl)은 감독이 무려 6
아시아 신흥 영화강국, 타이 영화산업 현지취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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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는 게이나 트랜스젠더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다. 그 때문인지 트랜스젠더영화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해외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장르영화이기도 하다. 용유스 통큰턴의 <철의 여인들>(2000)로부터 촉발된 트랜스젠더영화의 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지난해만 해도 용유스 통큰턴의 <철의 여인들2>(2003)를 비롯, 포이 아농의 <치어리더 퀸>(2003), 레오 키티코른의 <투씨 이병 구하기> 등 여러 편의 트랜스젠더영화가 만들어졌다. 이들 작품들이 대부분 코미디영화의 범주에 속하는 반면, 올해 공개될 에카차이 우에크롱담의 <아름다운 복서>는 유명한 타이복서였다가 여성으로 성전환한 실존인물 농뚬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처음으로 트랜스젠더의 성 정체성을 진지하게 묻고 있는 작품이다. 액션영화는 타이 상업영화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가능성은 <옹박>(2003)으로 인해 촉발되었다. 감독
아시아 신흥 영화강국, 타이 영화산업 현지취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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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2004 태국의 작가와 장르영화 개괄
퀘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의 <낭낙>과 지리 말리굴 감독의 <메콩강의 보름달 파티>(위부터).
1997년, 타이영화는 갑자기 부활하였다. 80년대 초반까지 한때 200여편에 달했던 연간 제작편수가 경제침체와 맞물려 10여편 내외로 추락한 것이 90년대 중반까지의 타이영화의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90년대 중반 타이의 영화산업은 거의 붕괴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997년 논지 니미부트르, 펜엑 라타나루앙, 옥사이드 팡이 한꺼번에 데뷔하면서 타이영화는 기적처럼 부활하기 시작하였다(놀랍게도 당시는 타이의 바트화가 폭락하여 외환위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시점이었다). 2001년, 논지 니미부트르의 <낭낙>은 이러한 부활의 조짐에 불을 질렀다. <낭낙>이 역대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우자 그동안 영화제작을 등한시했던 메이저 제작사들도 제작을 늘리기 시작하였고, 타 분야에서 제작자본이 물밀듯이 밀
아시아 신흥 영화강국, 타이 영화산업 현지취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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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중심의 비교적 탄탄한 산업 구조
이런 상황에서 올해를 내다보는 타이의 영화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제작편수 감소를 이야기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어쩌면 그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호황기를 충분히 누린 메이저들은 그 반대를 상상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영화에서 손해를 봤어도 “대부분의 큰 이익은 자국영화에서 나온” 사실을 잊지 않는다. 최대 메이저인 사하몽콜필름만 해도 그렇다. 지난해 11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외화를 포함해 총 80편을 배급한 사하몽콜은 올해도 자체제작으로 14편을 개봉할 예정이다. 외화 배급규모도 그대로 유지한다. 한해 평균 250여편의 영화가 개봉하는 타이에서 사하몽콜이 차지하는 30%의 점유율은, 전체 개봉편수가 줄어든다면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사하몽콜의 관계자는 RS나 GMM도 올해 편수를 더 늘릴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스크린 수도 더욱 확대될 예정이다. 방콕은 이미 스크린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멀티플렉스들의 목표는 지방에 있다. S
아시아 신흥 영화강국, 타이 영화산업 현지취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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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자국 내 시장점유율 40%를 확보하고 동시에 산업적 시스템을 갖춰가면서 아시아에서 홍콩의 빈자리를 채워가기 시작한 것이 90년대 말이다. 바로 그 시기에, 또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영화산업이 부흥기를 맞고 자국영화를 해외에 알리기 시작했다. 3년 전 <씨네21>이 특집기사로도 다루었던 타이의 영화산업은, 그러나 현재 빠른 성장의 부작용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곳 영화인들에 따르면 올해는 타이 영화계에 매우 중요한 해다. 거품을 빼기 위해 구조조정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는 타이. 위기 혹은 기회를 내포한 이곳 영화산업의 스케치를 담고,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짚어준 타이 시네마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지난 1월14일치 <뉴스위크> 한국판은 현 타이 총리 탁신 시나와트라를 커버스토리로 내세웠다. 7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 때 바닥으로 추락한 타이 경제를 빠른 속도로 회복시키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다. 재벌 출신의 탁신 총리는 공공지출의 비중을 늘
아시아 신흥 영화강국, 타이 영화산업 현지취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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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스톱>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다"
권익준 PD는 4년 동안 <논스톱> 시리즈를 연출해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초창기의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뉴 논스톱>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뒤 이제 그는 ‘청춘 시트콤’의 역할과 가능성을 정확히 파악했다고 한다. 한국식 변종 시리즈 시트콤으로서 <논스톱>의 정체성, 그리고 그 속에서 <논스톱4>만이 노리고 있던 회심의 카드는 무엇이었을까.
-한국 최초의 시트콤 시리즈를 해온 PD로서 자부심이 있을 것 같다.
=시작할 때 농담처럼 시리즈로 가자고 얘기한 적은 있지만 작정하고 시리즈로 만든 건 아니다. MBC가 7시를 청춘 시트콤 시간대로 선점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 사실 아무리 재미있는 아이템도 최소 6개월은 있어야 자리를 잡는다. <논스톱>이라는 이름을 계속 유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좋은 제목이라서가 아니라 브랜드로서 지명도가 있기 때문이다.
-<논스톱&
<논스톱> 시리즈, 그 얄팍한 매력에 대하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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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메인 캐릭터들을 설정하고, 사이사이 후보선수 격으로 배치되는 조연들이 다음 시리즈까지 등장하는 것은 <뉴 논스톱>과 <논스톱3>를 연결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논스톱4>는 배경을 기숙사에서 논스톱 밴드로 바꾸고, 전 시리즈의 멤버들을 전원 교체했다. 따라서 유독 <논스톱4>에서, 그간 익숙하게 변주되지 았았던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 <논스톱4>만이 내세우는 회심의 인물들은 누구인가.
트러블 메이커라고? 난 뭐 그렇다∼ /몽봉 콤비
한국 시트콤 사상 최초의 콤비 트러블 메이커. <뉴 논스톱>의 양동근, <논스톱3>의 하하로부터 이어지는 계보를 양분하고 있는 셈. 유사한 엽기 외모를 내세우면서 항상 붙어다니기 때문에 한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다른 영역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테면 잔꾀 박사 봉이 브레인이면, 몽은 행동대장이다. 지지리 궁상이어도 ‘시리어스’한 동정을
<논스톱> 시리즈, 그 얄팍한 매력에 대하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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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논스톱>이라는 장르가 해낸 것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시리즈가 아직 능력과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은 반반한 외모의 젊은 신인들을 위한 신병훈련소라는 것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인정받는 스타가 된 장나라, 조인성, 정다빈, 양동근, 김정화와 같은 배우들은 모두 본격적인 스타로 진입하기 전에 <논스톱>을 거쳤다. 그들에게 처음으로 맞는 이미지를 찾아준 것도 <논스톱>이었고 일주일에 5일 방영되는 일일 시트콤의 강행군을 통해 배우로서 어느 정도 수준으로 기능할 수 있게 도와준 것도 <논스톱>이었다. 이런 신병훈련식 접근법은 시리즈의 이야기와 캐릭터들에 예측 못할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논스톱>에서 캐릭터는 계획대로 만들어지는 대신 시리즈가 흐르는 동안 배우들과 함께 성장과 탐색을 거듭했다. 캐릭터들의 발전은 종종 예측불허였으며 덕택에 설정만 따진다면 무개성적이기 짝이 없는 로맨스들의 성과도 높아졌다.
<논스톱> 시리즈, 그 얄팍한 매력에 대하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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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아리랑〉에서 시작하여, <순풍산부인과>에서 만개한 홈시트콤의 역사는 찬란했다. <남자셋 여자셋>을 비롯하여 <논스톱>과 같은 청춘시트콤은, 일상의 애환과 해학을 담는 홈시트콤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시리즈로서의 <논스톱>은 각각의 시즌들에 부침이 있긴 했지만 막강한 브랜드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어오는 <논스톱4>는 현재, 다른 시즌에 비해 비교적 빠른 시기에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의미해보이는 일화, 비현실적인 공간 속에서 좌충우돌 하는 캐릭터들이 모여 성취한 한국적 소장르, 그 자잘한 재미를 짚어보았다. 편집자
시작 이후 한동안 덜컹거렸던 <논스톱4>가 드디어 자기 궤도에 오른 듯하다. 시리즈의 밝은 분위기를 잡아먹었던 윤지-전진-승은의 지루한 삼각관계는 끝났고, 한동안 방황했던 캐릭터들은 서서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논스톱> 시리즈, 그 얄팍한 매력에 대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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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 특유의 스케치가 비쳐나는 조연 캐릭터들에도 불구하고 <빅 피쉬>가 달라 보인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어느 때보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미학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팀 버튼은 언제나 대사보다 동작을 중시했고 움직임이 곧 캐릭터라고 믿었다. 하지만 카툰 캐릭터도 슈퍼 히어로도, 유인원도, 설화 속 인물도 아닌 <빅 피쉬>의 주인공들에게는 양식화된 연기를 펼칠 여지가 적다. <빅 피쉬>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이미지보다 호흡이 긴 내러티브, 판타지와 교대하는 가족 멜로드라마의 감상주의다. “나중에 만든 영화일수록 스토리보드 작업을 덜한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내 예전 영화의 이야기들을 잠깐 돌아볼까요? 하나같이 엄청나게 센티멘털하고, 단순하고 강력한 갈등이 깔린 강한 내러티브를 갖고 있지 않은가요? 내 영화가 보기 좋다고 칭찬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냐고 쏘아붙이고 싶을 때가 있어요.”
잠깐 사이를 두고 그는 말
<빅 피쉬>의 감독 팀 버튼과 나눈 가상대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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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당신의 표정이 낯설어요
영화를 낙으로 삼은 1990년대 젊은이들에게 다정한 영웅이었던 쿠엔틴 타란티노, 리처드 링클레이터, 구스 반 산트, 팀 버튼 같은 감독들의 최근 사진은 우리를 흠칫 놀라게 한다. 기억 속 재기발랄한 영화 청년들의 얼굴에 어느덧 내려앉은 희미한 주름과 나잇살은 묘한 충격이다. 때로는 용모뿐 아니라 영화도 세월을 헤아리게 만든다. 팀 버튼(45)의 신작 <빅 피쉬>는 20여년 동안 하나의 브랜드를 이룬 팀 버튼 영화의 비주얼을 이어받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태도가 이질적인 영화다. 타지에서 알 수 없는 경험을 하고 돌아온 친구처럼 생김새는 그대로인데 표정이 낯설다. “왜 이렇게 변했죠?”라는 질문에 감독들은 종종 “당신의 선입견일 뿐 나는 그대로다”라고 대꾸해 우리를 머쓱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가 진실로 그를 알았는지 찬찬히 돌아보게 한다.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가? 만약 <빅 피쉬>가 버튼의 트레이드 마크와 동떨어진 프
<빅 피쉬>의 감독 팀 버튼과 나눈 가상대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