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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진짜로 안다는게 뭐야
<단속평형>의 손광주 감독은 연세대를 나와, 다시 부전공이었던 전산학으로 옮겨 포항공대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하여 5년이라는 시간을 영화와 등지고 버텼다. 그 사이에도 “많은 일을 했다”고 한다. 그 모든 일을 덮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다시 이번 설 직전에 귀국했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개념을 영화의 제목으로 정할 만큼 이론적 욕심이 있어 보이는 그녀가 꿈꾸는 상은 고다르처럼 되는 것인 듯싶다. 분석하는 투로 쓰여진 <단속평형>의 기획의도는 내러티브와 거리를 두면서 실험적인 형식에 집중하겠다는 야심을 보인다. “어느 여피족의 문화적 취향에 대한 우화. 현실, 영화 그리고 관객에 대한 진화론적 독해. 상호텍스트성에 기반한 형식실험”이 그것이다.
-언제부터 영화감독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나.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충무로에 나가겠다는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즈음에 배용균 감독의 &l
제7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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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손에 바치는 애가
<빨간 메니큐어>는 도시에 살고 있는 딸이 시골에서 죽어간 어머니에게 바치는 마지막 애가이다. 러시아 국립영화학교의 출신답게 권지연 감독은 “산문적이기보다는 시적인” 방식으로 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타국에서의 오랜 유학생활 중에 이야기가 떠올랐고, 한국에 돌아와서 제작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과 <얼굴값>에서도 연출부를 한 경험이 있는 권지연 감독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것, 바로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매력” 때문에 영화에 빠져든 것 같다고 고백한다. “항상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또 잘 알고 있는 사람들로 캐릭터를 잡으려고 한다”는 그녀의 첫 번째 한국에서의 출발이 바로 어머니와 딸에 관한 영화 <빨간 메니큐어>이다.
-러시아 국립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22살 때, 3학년을 마친 1997년에 러시아에 가서 2002년에 졸업했다.
제7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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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그리고 새로운 내일의 작가들
<씨네 21>, 한국코닥 주식회사, 부산국제영화제가 공동주최하는 코닥 이스트만 단편영화제작지원제도가 제 7회째를 맞아 당선작을 배출했다. 당선작은 권지연 감독의 <빨간 메니큐어>, 유은정 감독의 <흡연모녀>, 손광주 감독의 <단속평형>이다. 응모한 총 61편의 작품 중 시나리오 및 제작계획서를 바탕으로 심사가 이뤄졌고, 오윤홍 감독의 <감독님, 저 윤희예요>,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 이원식 감독의 <생장점>이 당선작들과 함께 최종 심의까지 올랐다. 올해의 심사는 이현승(영화감독), 정재은(영화감독), 남동철(씨네 21 기자), 박도신(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램 팀장)이 맡았다. 당선작 세편은 35mm 필름 1만 피트 제공, 필름의 무료 현상과 인화, 35mm 카메라 장비 대여, 편집 작업료 할인, 텔레시네 작업료 할인, 사운드 작업료 할인 등의
제7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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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경 감독은 <령> 이전에 <최면>이라는 단편을 찍었다. <령>의 오프닝신은 <최면>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기억을 소재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게 이번이 두 번째다. 비슷해 보이는 두 작품 중 이미 완성된 <최면>은 호평을 받았다. 신인 감독의 호러물 도전에 지원의 손길을 뻗은 대부분은 <최면>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 최면술사를 찾아간 주인공이 현재에서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한 영화는, 역순으로 배치된 사건들로 하여금 현재의 구성요소가 과거라는 평범한 진리를 전달한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령>에는 기억이라는 소재 외에도 빙의라는 초자연 현상을 개입시켜 “내가 나인가?” 하는 질문을 완성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기억 찾기를 포기한 채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중이다. 그러나 어느 날인가 잊혀진 과거로부터 불온한 호출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존재 자체를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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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진미 감독의 <그대와 함께>는 무엇보다 작가의 이름 때문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다. <그대와 함께>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은 인정옥. 열혈시청자를 낳았던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를 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렇다면 <네멋대로 해라>처럼 신선한 감각의 멜로드라마를 연상하면 곤란하다. <그대와 함께>는 놀랍게도 호러영화다. 인정옥 작가가 쓴 호러영화는 대체 어떤 내용일까? 아직 완성된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는 지금, 줄거리를 요약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기본적인 설정을 말하자면 이렇다. 주인공은 엘리베이터걸로 일하는 임청하와 교통경찰을 하는 공수창이다. 임청하는 동네에서 사이드카를 몰고 다니는 공수창이 마음에 들지만 쉽게 내색을 못하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외롭게 홀로 지내는 임청하의 집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노란색 후드티를 입은 인물이 귀신처럼 나타나 그녀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이다. 과연 노란색 후드티를 입은 남자의 정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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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나타나는 실존 인물과의 관련은 순전히 우연이 아님을 밝힙니다.”
신인감독 남선호의 입봉작 <영화감독이 되는 법>의 서두에는 이런 자막이 흘러야 할 판국이다. 1990년대 초까지 극단 한강에 몸담았다가, 러시아 모스크바 영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남선호 감독은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또 지웠다. 지난해 심리스릴러의 시나리오를 들고 다니던 그에게 “네가 살아온 이야기를 써보는 것이 제일 재미있지 않겠냐?”고 제안한 사람은 민문연 시절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영화사 마술피리의 오기민 PD였다.
자기 경험에 밀착한 영화가 남선호 감독에게 처음은 아니다. 영화학교 졸업 작품으로 그가 제출한 단편 <기억>은 민중운동을 하다가 먼 나라로 떠나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옮김으로써 기억의 멍에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남자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영화감독으로 입봉하기까지의 울적한 체험을 장편 시나리오로 써보라는 오 PD의 제안에 남선호 감독은 반신반의했다. 내가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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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타이틀 따라하기가 아니라 워킹 타이틀 따라잡기.” 박제현 감독은 <내 남자의 로맨스>와 워킹 타이틀 로맨틱코미디의 유사성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과연 이 영화는 모든 면에서 워킹 타이틀의 두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노팅 힐>을 과감히 끌어왔다. 이야기는 이렇다. 29살 여자 현주는 7년간 사귄 남자친구가 있다. 자기 일에 열정을 가진 유머러스한 소훈이 그 남자로, 현주는 올해는 꼭 소훈의 프로포즈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엄청난 사건이 생긴다. 스타인 여배우 은다영이 우연히 소훈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다. 현주는 불안해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친구를 동원해 은다영과 소훈의 만남을 방해하지만 그게 거꾸로 둘을 가깝게 만든다. 설상가상 현주는 회사에서 잘리고 구직에도 애를 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은다영은 소훈에게 함께 하와이로 가자는 제안을 한다. 궁지에 몰린 현주는 은다영이 하와이로 간다는 그날,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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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형 감독은 <라이어>를 진정한 데뷔작처럼 만들고 있다. 그의 첫 번째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지만, 원래 마음속에 품었던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도 팔린 레이 쿠니의 희곡이 원작이고, 국내에서도 연극으로 크게 성공한 <라이어>는, 그가 99년 무렵부터 염두에 두었던 작품이다. 김경형 감독은 아내의 권유로 본 연극 <라이어>가 매우 재미있고 탄탄한데다 여러 각도로 해석될 수 있는 메타포를 숨기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평범한 택시기사의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로 이어지면서 벌어지는 이 코미디는 결국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탓이다. 김경형 감독은 “직접 쓴 시나리오는 내미는 족족 퇴짜맞고, 집에서 놀면 뭐하나”라는 심정으로 각색을 시작했고, 4년이 지난 지금 막연했던 꿈을 실현하게 됐다.
원작을 한국적인 상황에 맞게 조금 고친 <라이어>는 택시기사 만철의 생일 하루 동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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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 감독이 <달마야 놀자>의 속편을 연출하게 됐다는 건 의외의 전갈이었다. 수락을 결정하기 직전까지, 이는 육상효 감독 본인에게도 “의외의 제안”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축제> <장미빛 인생>의 시나리오 작가로 출발, 역시 자신의 시나리오 <아이언 팜>으로 연출 데뷔한 그에게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는 포기하기 힘든 부분이었기 때문. 이미 남의 손을 타고 세상에 나온 어떤 영화의 속편을 연출하게 될 거라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던 그가 마음을 고쳐먹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결국 “사람”과 “작품”이었다. 조철현씨를 비롯한 제작진과의 호흡이 좋은 예감을 전해주었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방향의 코미디, 심각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삶에 대해 얘기할 여지가 있는 코미디”로서의 가능성을 <달마야, 서울 가자>를 통해 발견하게 됐다는 것이다.
<달마야, 서울 가자>는 전편에 비해 인물과 사건이 불어났고, 사건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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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봄이 오면>의 신인 류장하 감독은 영화 <파이란>을 볼 때마다 차마 견디지 못해 지나치는 장면이 있다. 하나는 중병을 얻은 파이란이 월급을 떼어가는 사내에게 자비를 구하다 거절당하는 대목이고, 또 하나는 강재가 기어이 목 졸려 숨지는 순간이다. <봄날은 간다>의 조감독으로 각본에 참여했던 그가 쓴 초벌 시나리오에서, 상우와 은수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같은 돌이킬 수 없는 결별의 눈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류장하 감독 버전의 <봄날은 간다> 초안에서는 소리를 채집하러 떠난 상우가, 그의 부재를 모르고 찾아온 은수의 전화를 받는 데에서 영화의 시계가 멈춘다. 말하자면 류장하 감독은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그려 보이는 입봉작 <꽃 피는 봄이 오면>도 얼마쯤 닮은 영화다. 봄날은 언젠가 간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끝내 “그리고는, 다시 온다”고 들릴락 말락 덧붙이는.
<꽃 피는 봄이 오면>의 주인공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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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교습소’는 그림 같은 제목이다. 듣자마자 선명한 심상이 피어난다. 소녀들이 흰 새처럼 스커트를 퍼덕거리는 드가의 스케치도 스쳐간다. 하지만 변영주 감독은 신작 <발레 교습소>가 그런 만만한 상상에 맞아떨어지는 영화가 아닐 뿐만 아니라 나아가 “<빌리 엘리어트>를 예상하면 뒤통수를, <워터보이즈>를 생각하면 앞통수를 얻어맞는 영화”가 될 거라고 유쾌하게 예고한다.
만약 우리에게 ‘내가 어른이 된 날’이라고 동그라미를 칠 수 있는 하루가 있다면 <발레 교습소>는 그 특별한 하루에 관한 영화라고 감독은 말한다. 그 잊을 수 없는 하루는, 세상에서 당한 그릇된 폭력을 처음 엄마에게 말하지 않은 날일 수도 있고 담배를 처음 피운 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튿날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여전히 미숙하고 우유부단하며 바람의 방향도 공기의 냄새도 그대로다. 그렇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쩐지 알게 된다. 나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영화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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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인터뷰> 이후 3년 만에 연출하는 변혁 감독의 신작은 <주홍글씨>다. <주홍글씨> 하면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이 우선 떠오르지만 이 영화는 호손의 소설이 원작인 작품은 아니다. 엉뚱하게도 변혁의 영화 <주홍글씨>의 원작은 김영하의 단편소설들이다. <사진관 살인사건> <바람이 분다> <거울에 대한 명상> 등 단편소설 세 작품에서 이야기와 캐릭터와 설정을 빌려 만들 예정. 이들 세편 소설의 공통점은 뚜렷하다. 모두 불륜을 다루고 있으며 낭만적 상상 뒤에 숨어 있는 시커먼 욕망과 구차한 현실을 냉정히 고발하는 작품이다.
<사진관 살인사건>은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살해된 사진관 주인의 아내에게 숨어 있는 비밀을 알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 아내의 외도에 상처받았던 형사는 사진관 살인사건에서도 불륜의 드라마를 발견하게 된다. <바람이 분다>는 불법 CD를 판매하는 남자가 직원으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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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시장점유율 50%를 넘는 시대를 맞았지만 국내에서 1년에 제작하는 영화 편수는 지난 10여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 흥행작이 많았고 <실미도>가 <친구>의 흥행기록을 깰 것으로 보이는 지금도 이는 마찬가지다. 때문에 영화를 제작하고 연출하는 입장에선 새 영화를 준비하는 게 예나 지금이나 힘들다.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를 캐스팅하는 준비과정에 들어간 감독의 땀과 정성은 정작 촬영을 시작한 뒤보다 더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산고’라는 표현이 과장된 게 아니다. 여기 소개하는 영화 10편은 그런 통증을 통해 이제 막 나오려는 신생아들이다. 더러 전작의 실패를 만회하는 재기작이기도 하고 일부는 신인감독의 패기만만한 데뷔작이기도 하며 또 어떤 영화는 데뷔작의 성공으로 인한 부담감과 싸워야 할 작품이다. 다양한 장르에서 선보일 올해의 신작 10편, 각각 감독의 말을 통해 이들 영화의 전모를 들여다보자.
“호러, 아닙니다. 심리드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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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그 다음이 필요하다
자, 이제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일까? 한국영화의 2003년의 경향에 대해 패배주의적 진단을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전 지구적 동시적 사유, 포스트 휴먼적 경향에 대해 말하려는 것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니, 아닌 것에 더 가깝게 쓰려고 한다. 한국영화의 경향은 분명 그 특수성을 가지고 있지만, 세계 영화사가 축적해온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펼치고 있는 관행, 장르, 양식, 그리고 사고의 진행방향과 비동시적 동시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50%가 넘었다고 해서 우리가 사실은 “순수한” 한국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국적”으로 사고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피식민은 탈식민적 전화의 과정으로 틈입하지 않고서는 식민을 복제하고 재생산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것, 자신의 성취라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세계사적으로 비서구, 비헤게모니 국가로서의 “한국적”인 영화 사유란 바로 이 사슬, 이 매듭을 단절시킬 때 혹은 왜
해체에 나선 남성감독들, 장도에 오른 여성감독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