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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해적판에 갇힌 한류
“내가 보기에 한류는 여전하다. 한국 영화산업은 여전히 훌륭한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스타들을 만들고 있다. 일종의 사이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홍콩에서 일본 문화는 한때 인기가 나빴지만 최근 들어 다시 좋아지고 있다. 한류가 예전만 못한 것도 그런 차원이다.”(베니 라우/ 홍콩서 한국 음악 전문 프로그램 <코리안 스톰> 진행, 한국 대중문화 웹사이트 ‘코리안 스톰’(www.koreanstorm.com) 운영)
“중국 같은 경우 스타라든가 볼거리를 상당히 중시하는 편이다. 중국 관객은 연기도 좋고, 내용도 좋고, 기술적으로 훌륭한 영화라 해도 스타가 나오지 않으면 잘 알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중국 영화시장은 한국에 비해 덜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다.”(자오하이쳉 워너차이나필름헝디엔그룹 부총재)
지난 3월 홍콩필름마트에서 만난 한국영화 관계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시아 곳곳에서 찾아온 바이어들을 상대하느라 분주한 듯 보이는데도
한국영화 중국 진출 원년 [3] - 한국영화 수출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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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 성공신화를 향하여
“현재 중국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극장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나는 베이징 동부에 사는데 멀티플렉스는 한곳뿐이다.”(크리스틴 페르냉 유니프랑스 중국 사무소 대표)
“우리는 물론 콘텐츠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런데 중국 영화업계를 놓고 보면 제작분야는 고작 200억원대 규모지만 극장사업은 2천억원대다. 물론 극장분야에서 경쟁은 치열하다. 한국 등 외국업체, 홍콩업체, 그리고 중국업체 등이 멀티플렉스를 건설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경쟁은 전체적인 중국시장의 파이를 키울 것이므로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이은 MK픽처스 대표)
지난 2월14일 CJ CGV는 중국 상하이필름그룹(SFG)과 멀티플렉스 영화관 사업을 위한 합작회사 설립에 관한 조인식을 가졌다. 한국 최대의 멀티플렉스 체인이 중국 대륙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CGV는 9월말 쯤 상하이 다닝에 6개관 905석 규모의 ‘상영(上影) CGV’를 오픈하면서 중국 극장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쳐나갈
한국영화 중국 진출 원년 [2] - 극장사업 진출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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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지 취재 - 한국영화의 중국 진출 현황과 과제
지상 최대의 시장을 향한 충무로의 모험이 시작됐다. 2006년은 한국 영화산업이 중국에 진출하는 원년이라 부를 만하다. 꽤 오래전부터 한국 배우와 가수들은 한류라는 물결을 만들어냈지만, 한국영화는 그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중국시장 외곽을 맴돌고 있었다. 그러던 한국 영화계가 올해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하나씩 만들어내고 있다. MK픽처스가 지난해 말 중국 영화사 동방신룡과 중국 안에 멀티플렉스 사업 등을 함께 펼치기로 합의를 본 데 이어 여름쯤이면 허난성 정저우시에 극장을 열 계획이며, CJ CGV는 9월 말 상하이에, 메가박스는 연말 베이징에 각각 중국 내 첫 멀티플렉스를 오픈하게 된다. 또 보람영화사는 현재 합작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는 <묵공> 외에 <만추>(이만희 감독의 원작을 리메이크하는 작품)를 중국에서 한·중 합작으로 제작하게 되며, 나비픽처스의 중국 자회사인 베이징나비픽처스는 <
한국영화 중국 진출 원년 [1] - 합작과 제작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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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를 중요하게 인식해준 건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부담이다”
“프로듀서가 집착해야 할 건 결국 시나리오 아닌가.” 싸이더스FNH 차승재 대표 방에는 흔한 트로피 하나 없다. 대신 책과 수백권의 시나리오가 무슨 보물처럼 차곡차곡 쌓여져 있을 뿐이다. 기초체력을 끊임없이 체크하는 이 근심 많은 14년차 프로듀서가, 드디어 충무로 파워 1위에 올랐다.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나.
=올해가 열한 번째인가? 딱 열번만 하고 말았으면 좋았을 텐데. 부담이 확 생긴다. 투자나 배급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1천만 영화를 해본 적도 없고. 내 평생 1등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충무로에서 몸무게는 1등이었을지 모르지만. 근데 1위 했다고 뭐 주는 건 없네. (웃음)
-만년 ‘넘버3’였을 때 마음은 편했나.
=산업에 있어 자본의 힘이 가장 좋은 법 아닌가. 영화산업 안에서 프로듀서 위치가 그만큼 올라갔고, 다른 분들이 그걸 중요하게 인식해준 건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 영화산업 파워 50 [7] - 차승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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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최민식/ 배우
<친절한 금자씨>와 <주먹이 운다> 등 두편의 출연작이 개봉했고, 순위는 지난해에 비해 하락했다. 최민식은 지난해와 올해 대외적인 활동에 두드러졌다. 지난해 7월에는 ‘배우 개런티 거품’과 관련한 강우석 감독 발언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하라”는 공식 입장을 표명했고 올해 초에는 스크린쿼터 투쟁의 네 번째 1인 시위자로 참여했다. ‘한-미 FTA 저지를 위한 농민투쟁 선포대회’에서 “농민과 함께하지 못한 것을 영화인을 대표해 사죄한다”며 큰절을 올리기도 했다.
42. 노무현/ 대통령
주목받으려면 역시 선행보다는 악행이 효과있다. 영화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대선 후보 시절이나 이창동 감독을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임명했던 임기 초반에도 순위에 끼지 못했던 그가 ‘말년’에 처음으로 순위에 진입했다. 알다시피 “스크린쿼터는 문화다양성 보호를 위한 최소 안전판”이라는 공약을 꿀꺽 삼켰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 결정, 스크린쿼터 축소,
한국 영화산업 파워 50 [6] - 41위~5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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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황정민/ 배우
지난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너는 내 운명> <달콤한 인생> <천군> <여자, 정혜>까지 다섯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앞서 세편의 흥행으로 인지도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너는 내 운명>), 대종상 남우조연상(<달콤한 인생>)으로 상복마저 누렸다. “국내 최고의 성격파 배우 반열에 들었다”, “현재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등의 언급은 황정민이 현재 충무로의 가장 뜨거운 기대주임을 시사하고 있다. 류승범과 공연한 <사생결단> 개봉을 앞두고 있다.
32.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
3월27일 문화정책을 결정하는 수장 자리에 전격 발탁됐다. <서편제>에 이어 임권택 감독의 신작 <천년학>에 출연키로 했던 그로서는 오랜만에 넥타이 풀고 스크린 나들이를 할 기회를 잃은 셈. 광대 정신으로 무장해 “현장 중심 문화행정 원년을
한국 영화산업 파워 50 [5] - 31위~4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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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안정숙/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젊어지고, 빨라지고, 부지런해졌다.” 3기 영진위가 구성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 그가 이끌고 있는 영진위를 향한 영화계 안팎의 중간 평가는 합격점 이상이다. 지난해 체질 개선 다이어트에 돌입해 실무와 현장 중심으로 부서를 통폐합했다. 아시아네트워크 결성, 한국영화 전문 상영관 마련 등 한국영화의 대외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도 눈에 띈다. 이례적으로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에 반대 의견을 냈던 영진위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취할지 주목된다.
22. 정태성/ 쇼박스 영화사업본부장
“쇼박스 대약진의 견인차. 공격적인 투자와 마케팅으로 8할 넘는 성공률을 기록했다.” 쇼박스가 놀라운 흥행 성공률을 기록한 2005년 충무로가 지목한 주역은 정태성 상무다. 4개 국어에 능통한 국제적인 감각의 영화 비즈니스맨. 남들이 거절한 프로젝트 두편을 받아들여 편당 50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은 영화적 센스. 심형래 감
한국 영화산업 파워 50 [4] - 21위~3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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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준익/ 감독
2006년 상반기는 <왕의 남자> 열풍의 연속이었다. 매주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더니 누구도 예상 못했던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우뚝 섰다. 신명나는 줄타기로 단박에 11위에 들어선 이준익 감독. 충무로에선 “감독으로서 그의 재능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개봉 전 “<왕의 남자>가 안 되면 빨리 다른 영화 찍어서 빚 갚아야 한다”고 웃었으니, 아찔한 고공 비행 앞에서 그 또한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스타급 배우들을 기용하지 않은 비선호 장르영화로 전 국민을 웃고 울린 기막힌 재주에 대해 한 추천인은 “한국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뒤집었다”고 썼다. 현재 안성기, 박중훈 주연의 <라디오 스타>를 촬영 중이다.
12. 장동건/ 배우
“가장 글로벌한 배우.” 배우 중 최고 순위에 든 장동건에 대한 압도적인 평가다.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현재 한류의 중심에 서 있으며 최근 한·중 합작 <무극&g
한국 영화산업 파워 50 [3] - 11위~2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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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승재/ 싸이더스FNH 대표
만년 ‘넘버3’였던 차승재 싸이더스FNH 대표가 기대 이상의 지지를 끌어모으며 1위에 올랐다. 대기업 자본을 등에 업은 투자·배급사 사령탑이 올해도 수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지난해 통신자본 KT를 충무로에 끌어들이고, 시너지 창출을 위해 “기획력과 마케팅이 앞선” 좋은영화와 손잡은 것이 뜻밖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파트너를 영입하면서 날개를 단 ‘영화공장 공장장’을 두고, 한 영화인은 “이젠 1등 할 때가 됐다”며 그를 첫손에 꼽았다. 억지나 과장은 아니다. 콘텐츠를 향한 자본의 구애가 갈수록 높아지는 국면에서 “안정된 제작시스템을 바탕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들을 쏟아내는” 싸이더스FNH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싸이더스FNH가 제작하는 영화 중 개봉작은 무려 11편에 달한다. 현재 상영 중인 <달콤, 살벌한 연인>을 시작으로 <국경의 남쪽> <호로비츠를 위하여&g
한국 영화산업 파워 50 [2] - 1위~1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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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희일비하지 않기. 그리고 멀리, 오래, 넓게 내다보기. ‘누가 한국 영화산업을 이끄는가’에 관한 <씨네21>의 12번째 질문에 대해 충무로는 그렇게 답하는 듯하다. 단발적 흥행 성과로 순위가 적잖이 오르락내리락했던 과거에 비해 올해는 그 낙폭이 덜하다. 이 정도면 한국 영화산업이 어느 정도 시스템 꼴을 갖췄다는 평가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자본의 측면이든, 인력의 측면이든 말이다. 극장 자본을 바탕으로 넉넉한 자본을 확보하고 있는 투자·배급사는 건재하고, 수익률 악화로 지난해 위기에 몰렸던 제작사들 또한 새로운 전주(錢主)와 만나 주식시장에 등장하고, 쉽사리 꺼질 것 같던 배우들의 한류 열풍은 잦아들지 않았고, 스타 감독들의 위세 또한 여전히 등등하다. 연초 스크린쿼터 축소라는 예기치 않았던 암초를 만난 탓에 충무로의 대표적인 ‘싸움꾼’들이 대거 순위에 올랐지만, 올해 순위에 오른 인사들의 계획과 포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금 현재 한국 영화산업의 시선은 단연 ‘해
한국 영화산업 파워 5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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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조립과 공간의 은유와 소리의 불일치
<엘리펀트>에서 인물들은 여러 번 같은 순간을 다시 지나친 뒤에야 최종에 도달한다. <라스트 데이즈>에서 주인공 블레이크의 시간은 더 현란한 방식으로 재조립된다. 시간적으로 어떤 한 장면이 앞에 있는 것인지 혹은 뒤에 오는 것인지는 반드시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나서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그것도 분명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 시간은 왜 뒤섞여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구스 반 산트는 그걸 통해 블레이크의 몸에 관객의 감각을 입히려고 한다. 뒤죽박죽으로 시간을 느끼도록 하는 이 장치는 관객이 망가진 블레이크의 몸의 상태로 들어가 그 시간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과도 같다. 혼몽의 어지럼증은 그렇게 생긴다. 시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순간을 어떻게 연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엘리펀트>와 <라스트 데이즈>는 <게리>와 비교하여 더 정교하게 진전된 미학적 차원을 갖고 있
구스 반 산트의 걸작 <라스트 데이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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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코베인이 죽은 지 12년이 지났다. 그의 죽음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시대의 상처로 남아 있다. 94년 같은 해에 절친한 친구이자 배우인 리버 피닉스를 이미 죽음의 신에게 빼앗긴 적이 있던 구스 반 산트는 <게리> <엘리펀트>에 이어지는 삼부작 마지막 작품으로 커트 코베인을 다룬 <라스트 데이즈>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존했던 커트 코베인에 관한 전기가 아니다. 구스 반 산트는 지금 누구도 하지 않은 방식으로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포착하려 한다. <라스트 데이즈>는 놀라운 영화다.
이렇게 시작해보자. 만약 누군가 김광석의 죽음과 그 직전의 며칠간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한다면, 그는 무엇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일견 제기되었던 타살 의혹에 기대어 김광석이 죽음에 이른 과정을 치밀하게 재구성할 것인가 아니면 그의 서른세해 동안의 일생을 숭고하게 기억할 것인가 또는 다른 무엇을 담을 것인가. 구스 반 산트가 커트
구스 반 산트의 걸작 <라스트 데이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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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한 기세가 대단했지”
4월14일 금요일, 빈소 셋쨋날
원로영화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빈소에서, 현재 활동 중인 영화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신세대 배우 중 이병헌이 유일하게 조문하여 잠시 술렁였고, 배우 안성기, 박중훈을 비롯하여 이창동 감독 등이 다녀갔다고 누군가가 귀띔한다. 납북 이후 충무로에서 활동하지 못했던 공백기 때문일 것이다. 제아무리 명실상부한 한국 영화계의 큰형이라도, 젊은이들에게 그는 아득한 전설일 뿐이다.
김수용 감독은 자신의 회고록에 “신상옥은 현장에서 자신을 연출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썼다. 60, 70년대 그와 함께 충무로를 지켰던 후배며 동료 영화인들의 증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경태 감독은 그의 조감독들이 저마다 자신도 모르게 선배의 독특한 스타일의 일부를 따라하곤 했다며 희미하게 웃는다. 언제나 와이셔츠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이고, 멋진 필체와 품새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휘갈기는 그의 버릇, 머리를 뒤로 넘기는
거장의 떠나는 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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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1일 밤. 신상옥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멜로와 사극, 코미디와 무협, 전쟁물과 심지어 서부극과 뮤지컬까지 섭렵하며 오로지 관객만을 생각했던 그는 한국의 하워드 혹스라 불려 마땅한 장인이었지만, 기자가 직접 보았던 그의 영화는 <성춘향>과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두편뿐이었다. 생전의 고인을 인터뷰하는 영광 또한 누린 바 없다. 70년대생 영화기자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이는 신상옥 감독이 주름잡았던 한국영화의 전성기와 그 시절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너무 늦은 취재로 가능한 방식은 그리 많지 않다. 빈소와 장지를 찾은 지인들에게,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청했다. 지나친 무지와 게으름이 못내 부끄럽지만 이를 만회할 수 있는 것은 진심어린 관심뿐이었다.
장지에서 돌아와 신상옥 감독의 일대기가 한·미 합작으로 스크린에 옮겨진다는 뉴스를 접했다. 한국영화·현대사의 축소판과도 같았던 고인의 인생이었으니 어떤 상업영화
거장의 떠나는 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