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혹을 넘긴 이연걸과 인터뷰하며 처음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내면과 자기수양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그에게 <황비홍> <동방불패>, 할리우드, 무술연기에 관해 묻는 것은 마치 스님에게 속인의 궁금증을 캐묻는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졌다. <무인 곽원갑> 이후 전같은 액션영화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속세의 삶에 거리를 두려는 심경 때문이리라. 정통파 무술배우 이연걸의 궤적을 새삼 훑어보는 이유는 이러한 결단이 평생 그를 지배한 일에 대한 성실함과 인간에 대한 겸손함의 산물처럼 보여서이다. 행동하는 액션스타에서 성찰하는 배우로 거듭나려는 이연걸을 말한다.
이소룡이 전설처럼 사라져간 ‘전신’이라면 이연걸은 살아 숨쉬는 우아한 ‘구도자’다. 과거 이소룡의 인기는 할리우드에 안착한 성룡의 몫이다. 하지만 무림고수 이소룡의 적통은 무술가 이연걸이다. 이연걸은 올해로 마흔세살이 됐고, 이소룡은 같은 나이였던 1974년 여름 세상을 등졌다. 신작 <무인
이연걸을 만나다 [1]
-
잡것이 작품상에 빠진 날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크래쉬>는 한국에서도 4월6일 개봉된다. 애초, 정식으로 개봉되지 않을 예정이었던 이 영화는 아카데미 수상에 힘입어 극장에 내걸리게 됐다. 하지만, 수입사 타이거픽쳐스에겐 이 영화와 관련해 나름의 아픔이 있었다. 조철현 대표가 <크래쉬> 개봉을 앞둔 심경을 직접 적어 보내왔다.
2005년 5월. 칸 영화시장에서 강우석 감독을 만났다. “조형, 외국영화 사지 마. 한국영화 만들라고.” 2005년 9월과 11월. 나는 <칠검>과 <퍼펙트 웨딩>을 수입해 개봉했다. 여지없이 쌍코피를 흘리고야 말았다. 수입한 이유는 많고 깨진 이유는 더 많다. 다시는 외국영화 수입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는데, 11월 말 아메리칸 필름마켓 일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도 장사꾼이 시장엔 가봐야 하지 않겠어?” 관성처럼 신용카드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이준익 감독이 제발 가지 말라고 쫓아다니며
제78회 오스카 가상 녹화중계 [3]
-
남우주연은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여우주연은 리즈 위더스푼
남우주연상 예측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골든글로브(드라마 부문), 전미비평가협회, 전미평론가위원회, LA비평가협회, 시카고비평가협회, 전미방송비평가협회,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 미국영화배우조합상,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타임>, 로저 에버트, 라스베이거스 도박사들, IMDb 이용자, <버라이어티> 독자, <씨네21> 인터넷 투표 히스 레저 뉴욕비평가협회, <할리우드 리포터> 와킨 피닉스 골든글로브(뮤지컬 코미디 부문)
에니스/ 남우주연상은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유력합니다. 호프먼은 거의 모든 시상식에서 주연상을 휩쓸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히스 레저에게 이상하게 마음이 가지만요. 그러고보니 둘 다 게이 캐릭터네요.
잭/ 저는 히스 레저에게 걸겠습니다. 아무래도 인공적인 냄새가 진한 호프먼의 연기에 오스카 위원들이 거북함을 느낄 가능성도 있거든요. 그리고
제78회 오스카 가상 녹화중계 [2]
-
슬픈 소식이 하나 있다면, 올해는 비욕이 오스카에 참가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스카 진행자인 존 스튜어트에 따르자면 “비욕은 오스카 참석을 위해 예전에 입었던 백조 드레스를 다시 꺼내서 걸치던 중, 오리사냥 나온 부통령 딕 체니가 쏜 총에 맞아” 부상당했다고. 확실히 (비욕의 불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올해의 레드 카펫은 예년에 비해 수수했고, 정치적인 이슈를 짊어진 작은 독립영화들은 각종 미디어의 예상과 별 어긋남없이 골고루 상을 나눠 가졌다. 작품상 수상이 예상되었던 <브로크백 마운틴>이 <크래쉬>에 무릎을 꿇은 반전이 작은 놀라움을 안겨주었지만, 사실 올해의 오스카는 거대한 승자와 처절한 패자없는 화기애애한 결말로 마무리한 것이다. 지난 3월6일 거행된 제78회 아카데미상의 가상 녹화 중계를 지면에 펼친다.
작품상은 <크래쉬> <브로크백 마운틴>의 대결 구도
각 부문 수상 예측에 참고한 각종 영화상과 미디어 예측
시상식 결
제78회 오스카 가상 녹화중계 [1]
-
-
가장 큰 고민은 외모, 가장 좋아하는 연기자는 최민식, 류승범
당신이 배우를 꿈꾼다면,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있다면, 당신과 같은 꿈을 꾸고 ‘준비생’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장 궁금하지 않을까 싶다. 현장에서 만난 준비생 53명에게 설문을 요청했다. 무기명 설문이며, 모든 질문은 주관식으로 이루어졌다. 당신보다 먼저 배우의 꿈에 다가선 사람들이 어떻게 배우의 꿈을 품게 되었고 현재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지 들어보자. 이들의 대답은 곧 당신에게 닥칠 미래인 동시에, 지금 활동 중인 배우들 중 누군가의 과거와 맞닿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1. 언제 처음 배우의 꿈을 품게 되었습니까?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고등학교 이전 (47%)
-고등학교 이후 (53%)
고등학생 시절이 자신의 미래를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시기라고 가정했을 때 배우 지망생 53명 가운데 고교 시절 이전과 이후 배우를 꿈꾸게 된 응답자의 수가 양쪽 비등하게
배우가 되는 길 [5] - 배우 지망생 설문조사
-
1986년생 동갑내기인 박지연, 김보람, 이주영은 효성고 연극반 동창이다. 대학로 연출가로 활동하는 연극반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기성무대에 설 기회를 얻게 된 운좋은 세 소녀는 대학로 한쪽의 소극장에서 <외로워도 슬퍼도>를 한달째 공연하고 있다. 공연시간은 7시30분. 극단 ‘느낌’의 막내인 세 사람은 오후 2시께가 되면 극장에 출근한다. 예닐곱명이 비비적거리기도 힘든 좁은 분장실에서 수다를 나누던 셋의 하루 일과가 시작됐다.
2시50분 낙산씨어터 안
쓸고, 닦고, 붙이고… 우리는 워밍업 중
세 사람 중 가장 조용한 성격의 이주영씨가 빗자루를 든다. 박지연씨는 쓰레받기를 찾아 나섰고, 김보람씨는 종이, 플라스틱, 쓰레기 등으로 분리수거된 쓰레기봉투 자루들을 들고 극장 밖으로 나간 터다. 매일 저녁 배우들이 폭풍처럼 쓸고 지나다니는 무대와 극장 내부는 늘 먼지투성이다. 쓰레기를 버리고 온 보람씨는 어느새 스테이플러를 들고 무대 장식이 떨어져나간 곳들을 손본다. 주영씨는
배우가 되는 길 [4] - 배우 준비생 따라잡기 ②
-
배우 준비생 윤주희(21)씨의 하루 일과는 오후 2시께 미용실에서 시작된다. 준비생치고 너무 호사스러운 일정인가? 윤주희씨는 케이블 채널의 데일리 생방송 프로그램 MC를 6개월째 맡고 있다. 방송용 분장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2시간인데 오늘은 좀 서둘러 끝내려는 눈치다. 영화사와의 미팅 때문이다. 이 미팅이 잘되면 그는 올 여름 개봉할 공포영화의 조역 오디션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파란 원피스 차림에 긴 생머리를 예쁘게 말아올리고 난 윤주희씨는 이윤성 매니저와 함께 영화사로 이동한다.
오후 3시20분 에그필름 사무실
“예쁘게 꾸몄네? 그거 반칙이에요”
“반칙한 거 아시죠? 원래 미팅할 때는 남자배우이고 여자배우이고 노메이크업으로 보는데.” 곱게 단장한 윤씨를 보고 프로듀서가 한마디한다. 당황한 내색을 감추는 윤씨 대신 매니저가 “오후 5시부터 생방송이 있어서”라고 설명한다. 감독이 윤씨에게 꼬치꼬치 묻는다. 시나리오를 어떻게 봤느냐, 어떤 캐릭터가 맘에 드느냐.
배우가 되는 길 [3] - 배우 준비생 따라잡기 ①
-
기획사, 배우의 얼굴을 가진 이를 찾는 사람들
어느 목요일 저녁, 싸이더스HQ 건물 3층 시사실에서 만난 준비생 및 신인배우들의 면면은 참으로 다양하다. SM엔터테인먼트의 12인조 프로젝트 남성그룹 슈퍼주니어 1기 멤버들마냥 새파란 꽃미남, 꽃미녀들만 모여서 누가 누군지 구분도 안 될 것이라는 짐작을 깨고, 1976년생에서 1990년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에 얼굴마다 지닌 개성이 뚜렷하다. 싸이더스HQ 박성혜 이사는 배우의 외모와 관련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얼굴이 좋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누가 봐도 예쁘고 잘생겼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일명 배우의 얼굴이란 건 좀 다르다. 조승우나 지진희 같은 경우를 들자면, 그들의 얼굴은 누가 봐도 돌아볼 만한 미남은 아니지만 뭔가 색깔을 입힐수록 그 색깔이 날 것 같고 눈이 깊어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많을 것 같은 얼굴이다. 여백이 있고 자기만의 정서를 풍겨야 할 것 같다. 최민수의 카리스마가 되었든, 박해일의 자연스러움과 당당함이 되었든
배우가 되는 길 [2]
-
충무로의 빅3로 통하는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는 연극배우 출신이다. 황정민도 그러하다. 배우가 되려면 연극을 먼저 해야 하는가보다. 김민정, 양동근, 문근영은 아역배우 출신이다. 아, 나는 성인이니 때가 너무 늦었구나. 배우의 꿈을 접자. 차승원은 모델 출신이다. 전도연은 TV 탤런트 출신이다. 연극영화과 출신이 있는가 하면 국문과를 전공한 정진영, 미대를 졸업한 감우성도 있다. 배우가 되려면 모델을 해야 하나? TV 탤런트를 거쳐야 하나? 길거리 캐스팅될 가능성이 있으니 매니저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만 골라 누벼볼까?
배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제아무리 유능하기로 소문난 매니저들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쾌하게 해주지 못한다. 어떤 여배우는 질문을 듣더니 “일단 해주고 싶은 말, 꼭 해야겠니?”라고 농담처럼 되물었다. 갈수록 힘이 커지는 한국영화를 동경하며 배우의 꿈을 품는 사람들은 늘어가는데, 배우가 되는 법에 관한 정답은 배우조차 갖고 있
배우가 되는 길 [1]
-
재능이란 기생충에 관한 반문
이인의 감독의 <Gift>
2002년, 이인의(30) 감독은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접었다. 장편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에 인터넷, 케이블 방송 일을 했던 그는 이후 입산수행을 맘먹은 승려처럼 고향인 경기도 오산으로 내려가 ‘나 홀로 창작’에만 몰두했다. 건축업을 하는 친척이 내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컨테이너를 작업실 삼아 그가 밤낮으로 써낸 장편 시나리오만 벌써 10편. 그러다 지난해 “혼자서 끙끙거리다가는 외로움에 골병든다”는 지인들의 충고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알음알음 동병상련 동료들을 알게 됐고, 그들과의 공동작업이 없었다면, 독특한 여고생 성장기를 다룬 <Gift>는 대학 시절 그의 작품들(<불발된> <물은 물에 젖지 않는다>)처럼 무겁고 난해한 실험영화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1995년에 만든 <회태> <양수>를 보지
제9회 코닥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4]
-
인생의 끝을 준비하는 노인들과의 동행
강원석 감독의 <준비된 인생>
강원석(30) 감독은 태어나서 28살 때까지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다. 작고한 할머니를 “평생의 룸메이트”라고 부르는 그는 “<준비된 인생> 또한 할머니가 하늘에서 내려주신 선물”이라고 여긴다. 2004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동행> 역시 할머니에 대한 그의 애정이 물씬 묻어나는 16mm 단편. 숨이 다한 할머니를 돌보다 죽음의 길도 함께하는 손자의 이야기다. 그러나 <동행>은 할머니에 대한 애정 고백인 동시에 그의 전환점이기도 했다. “대학 시절 만들었던 단편영화들은 어떻게 하면 상상력을 부릴까 고민한 것들이었다. 몇번 상을 받긴 했지만, 현실에서 공감을 얻는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 방황하던 차에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이후 <동행>과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대진대학교 영화학과 출신인
제9회 코닥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3]
-
그 소년의 무표정 대화법
민용근 감독의 <도둑소년>
어머니의 시신과 6개월간 동거를 해온 소년에 관한 뉴스가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민용근(30) 감독은 누구나 아는 그 이야기를 소재로 <도둑소년>의 시나리오를 썼다. 기묘하게도, 이야기는 수수께끼처럼 흘러간다. 소년의 집 안방에 무엇이 있는지, 영화는 표현을 아낀다. 민용근 감독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와니와 준하> 메이킹 필름을 찍고, KBS 휴먼다큐 프로인 <현장르포 제3지대> PD로 일했다. 현재 케이블TV의 영화정보 프로그램 PD로 일하는 그는, 영화로 돌아올 작품으로 <도둑소년>을 선택했다. 영화연출은 대학 4학년 때 찍은 단편영화 <봄>을 마지막으로 7년을 쉰 셈이지만 <도둑소년>의 시나리오도, <봄>도 공백을 잊게 만드는 힘이 있다. 민용근 감독은 <도둑소년>을 무표정으로 표정을 드러내는, 짧
제9회 코닥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2]
-
<씨네21>과 한국 코닥, 부산국제영화제가 주최하는 ‘코닥 단편영화 제작지원 프로그램’이 9번째 당선작을 발표했다. 46편의 응모작 중 선정된 세편은 민용근 감독의 <도둑소년>, 강원석 감독의 <준비된 인생>, 그리고 이인의 감독의 <Gift>로, 예년에 비해 응모작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전언이다. 심사위원으로는 정지우(영화감독), 박도신(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실 실장), 김조광수(청년필름 대표), 문석(<씨네21> 기자) 등 네명이 참여했다. 심사는 30분 이내의 단편 시나리오들을 제작기획서와 일정표, 포트폴리오와 함께 검토하는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진행됐다. 한국코닥으로부터 35mm필름 1만 피트를 제공받고, 무료 현상 및 인화, 카메라 장비 대여, 편집 작업료 할인 등의 지원을 받게 될 이 작품들은 올해 8월31일까지 완성할 경우 부산국제영화제의 심사를 받아 와이드앵글 부문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얻
제9회 코닥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1]
-
국경을 넘는 범아시아 프로젝트 <보이지 않는 물결>
푸미콘 국왕이 재위 60년 다이아몬드 희년을 맞는 2006년은 타이 곳곳에서 축제가 꼬리를 무는 ‘타이 대초청’(Thailand Grand Invitation)의 해다. 타이 정부는 영화제 개막 전야인 16일 정부청사 앞마당에서 파티를 열고 ‘타이 대초청’의 축포를 울렸다. 권력 남용과 탈세로 제기된 위헌 심판 탄원이 그날 아침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돼 한숨을 돌린 탁신 친나왓 총리가 잔뜩 잠긴 목소리로 축제의 개막을 선언했다.
왕의 그림자는 영화제 어디에나 일렁였다. 엄밀히 말해 영화제 관객이 맨 처음 본 타이 필름은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의 개막작 <보이지 않는 물결>이 아니라 모든 출품작 앞머리에 꼬박꼬박 상영된 150억원 예산의 시대극 블록버스터 <나레수완>의 예고편이었다. 차트리찰레름 유콜 왕자가 감독한 <나레수완>은 미얀마에 대항해 아유타야 왕국의 독립을 지킨 왕의 전
제4회 방콕국제영화제 견문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