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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때 그 시절 추억도 다시 먹고
잡지를 보다 누군가 계속 실실거려서 뒤돌아봤더니, 한 젊은이가 <서울의 지붕밑> DVD를 보며 세 할아비들이 ‘이놈 저놈’하며 아옹다옹하는 것에 폭소를 터트리고 있다. 나도 하나 꺼내 봐. 300여편에 달하는 한국 고전영화 DVD를 둘러보다, 결국 택한 건 김기영 감독의 <하녀>. 창피한 이야기지만, 수차례 기회를 놓쳤고, 지금껏 보지 못했다. 편당 5천원. 비싸긴 하지만 고스란히 DVD 제작에 쓰여지는 돈이라고 한다. 한때 <씨네21>도 DVD 이용료가 너무 비싼 것 아니냐고 영상자료원을 공격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지만,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정부를 상대로 예산을 책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면 모르겠지만.
DVD도 봤겠다, 김기영 감독 시나리오 선집 1권을 봤더니 재밌는 일화가 있다. 1960년 11월. <하녀>가 서울 명보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당시 여자관객
한국영상자료원의 모든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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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을 아십니까. 유현목을 아십니까. 이만희를 아십니까. 김기영을 아십니까. 김수용을 아십니까. 도를 아십니까, 라는 물음만큼 두려운 질문이다. 다섯번 물으면 다섯번 고개를 저어야 하는 상황, <씨네21> 기자라고 해서 일반인보다 나을 게 없다. 한번 따져보자. 우리가 보았던 한국 고전영화는 도대체 몇편인가. 우리가 기억하는 한국 고전영화는 도대체 몇편인가. 클래식이라는 근사하고 우아한 명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단절의 역사가 메워지고, 망각의 역사가 복구되고, 침잠의 역사가 부상하진 않을 것이다. 불구와 기형의 몸을 지니게 된 한국영화. 우리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삼류 뽕짝도 불러야 맛이고, 불러야 산다. 그러니 왜 뜬금없이 옛날영화를 보러 갔느냐고 묻지 말고, 거기 가서 뭘 봤느냐고 물어달라. 뭘 보고 뭘 느꼈느냐고 물어달라. 무작정 떠난 길이라 놓친 것도 많고, 흘린 것도 많고, 다시 주워야 할 것도 많다.
쉼없이 뛰는 이들에겐 박수만한 격려도
한국영상자료원의 모든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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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좋은 개살구: 화려하지만 실속없는 직종, 스파이
이던: 사실 스파이가 빛좋은 개살구야. 몇 천억원대 사기를 벌이는 악당을 쫓아다녀도 인센티브가 있길 하나. 위험수당이 있길 하나. “대원들이 체포되거나 살해당할 시엔 언제나처럼 정부는 자네의 모든 활동을 부인할 것”이라고 매번 협박이나 하지. 비정규직도 이렇게 천대받는 비정규직이 없어.
오스틴: 이던 팀은 메시지 보내고 5초 만에 불태우는 테이프만 재활용해도 노후는 걱정없을 텐데. 어허허허허허허.
존: 그렇게 힘들다면서 불가능한 두 번째 임무에서 오토바이는 왜 허공에서 터트리고 난리야. 하긴 처음엔 헬기도 폭파했지. 완전 오버액션맨이야.
이던: 다들 알다시피 그거 국방부 협찬이잖아. 처음 작전 나갈 때만 해도 흠집이라도 날까봐 조심스럽게 몰다가 내가 죽을 뻔한 적도 많아.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열받더라. 작전 끝나면 냉큼 뺏어가는 협찬사도 얄밉고 해서 오토바이는 일부러 터트렸어. 왜 떫어? (느닷없이) 그리고 제이슨
21세기 스파이들의 신세한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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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은 끝났다. 좌우를 넘나들며 신바람을 내던 스파이들의 넓은 놀이터는 부조리한 기업이나 내부 배신자의 응징 같은 심부름센터 수준으로 오그라들었다. 그들이 <순풍산부인과>의 가족들처럼 한 집에 살면 어떨까. <미션 임파서블>의 클래식한 첩보원 이던 헌트, <본 아이덴티티>의 기억상실증에 걸린 음울한 킬러 제이슨 본, <오스틴 파워>의 야누스 오스틴 파워, <미스터& 미세스 스미스>의 섹시하고 살벌한 스미스 부부가 한지붕 아래 모였다. 007를 ‘냉전의 화석’이라 비웃던 M이 그들을 초대한 호스트다. 총을 내려놓은 스파이들의 신세한탄. 바야흐로 개봉박두!
알프스 산기슭 외롭게 자리잡은 중세풍의 허름한 성. ‘M하우스-Top Secret’이라는 간판이 바람에 덜컹거린다. 창문 사이로 보이는 거실 가운데에는 커다란 원탁이 놓여 있다. 레이밴 선글라스를 쓰고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이던 헌트(톰 크루즈). 그 옆에는 우울한 표
21세기 스파이들의 신세한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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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시청각적 융합물
인도영화의 대표적인 거장으로 손꼽히는 샤티야지트 레이는 리트윅 가탁이 생전에 남긴 글과 인터뷰를 모은 소책자 <영화와 나>의 서문에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존경어린 찬사를 바친 바 있다. “리트윅 가탁은 이 나라가 배출한 소수의 진정 독창적인 재능의 소유자 가운데 하나였다… 서사시적 스타일 속에서 그가 창조해낸 강력한 이미지들은 사실상 인도영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올해로 작고한 지 꼭 30주년이 되는 인도 영화감독 리트윅 가탁은 우리에겐 여전히 미지의 작가로 남아 있는 듯하다. 심지어 영화광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그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영화의 정치학과 시학을 동시에 고민한 위대한 작가들- 예컨대 로베르토 로셀리니, 장 뤽 고다르,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글라우버 로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오시마 나기사 등- 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화사의 거목이 이런 식으로 잊혀져가고 있다는 건 진정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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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김순명, 김학성을 소개합니다
1945년 이전 한국 영화사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일제 식민지라는 정치·사회적 상황이 절대적 이유다. 필름과 관련 자료 등이 해방과 함께 일본으로 대량 유출됐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이후 발굴이나 복원 또한 미진했다. 그 시기에 나온 창작물에는 어김없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폄하가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영화의 발견’이라는 주제로 해방 이전 4편의 한국영화를 발굴, 상영했던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도 무지와 편견을 부수기 위한 섹션을 마련했다. ‘특별상영: 재일한국영화인의 발견’에서 상영되는 5편의 작품들은 이병우(이노우에 간), 김순명(우베 다카시) 같은 한국 영화사에서 누락된 인물들을 다시 불러내려는 안간힘이다.
이병우 감독은 전주 출신으로 1928년 소비에트영화에 영향을 받아 프롤레타리아 집단인 프로키노에 참여하고, 이후 일본 유성영화예술연구소, 아트프로덕션 등에서 활동하면서 일본에서 촬영감독으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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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 신나게 놀아볼깝쇼?
육갑이 형님, 대체 방금 본 영화 줄거리는 뭐람유? 졸음만 쏟아지는 게 이젠 머리까지 아프당께. 뭔 놈의 영화가 논어, 맹자보다 어렵댜? 놀려고 왔건만 지쳐서 가겠네. 칠득이 형님은 볼려고 노력이라도 했소? 지는 그냥 자빠져 잤당께요. 야들아, 그래서 이제 재미난 거 보러 가지 않냐. 우리 노는 거 마냥 웃기기도 하고 감동도 있다니까, 한번 믿어보자고. 왕을 갖고 노는 것만큼 재밌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판 놀아볼깝쇼?
오프사이드 Offside
자파르 파나히/ 이란/ 2006년/ 88분/ 개막작
여성들의 축구장 입장이 관습법에 의해 금지된 이란. 남장을 한 소녀가 광적인 축구팬으로 가득한 버스를 타고 국립 경기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축구장 진입을 시도하던 소녀는 군인한테 발각되어 다른 소녀들과 함께 경기장 주위의 임시 울타리 속에 갇히고 만다. 경기장에서는 흥분한 관중의 열광이 들려오고, 동참하고픈 소녀들은 군인들의 눈을 피해 어떻게든 울타리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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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게 질러보아요~
인터넷이 안 돼서 심심하지 않냐고요? 친구가 없다고 외롭지 않냐고요?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영화보기의 진수라면 혼자놀기가 아닐까요? 전주까지 내려와서 남들 다 보는 영화나 본다면 기차표가 아깝죠. 어깨를 넓게 펴고 조금은 과감하게 질러보세요. 10여분간 롱테이크가 지속되거나, 황당한 사건에 입이 떡∼ 벌어져도 영화관을 나설 때는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할 겁니다.
폴리스 비트 Police Beat
로빈슨 드버/ 미국/ 2005년/ 81분/ 시네마스케이프
범죄를 다룬 동명의 칼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폴리스 비트>는 이질적인 것들이 빚어내는 매력으로 가득한 영화다. 백인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캠핑을 떠난 뒤, 세네갈 출신의 흑인 경찰 Z는 익사체와 죽은 새, 살해당한 누군가의 시체를 처리하고, 정신나간 노인을 바다에서 끌어내는 등의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강박적으로 여자친구의 배신을 상상한다. 연락이 두절된 여자친구는 며칠 만에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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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시선 따윈 상관없어!
헤이, 맨∼! 무엇보다 인생에는 록 스피릿이 필요하다고. 응? 알아? 음악, 음악 말야. 그리고! 남들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 건 하는 정신이지. 우리가 이상한 영화를 좋아한다고? 보고 싶은 건 보는 거야. 식충이, 게으름뱅이, 미친놈, 괴짜, 변태…. 저놈들이 뭐라 해도 신경쓰지마. 그런 소린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려. 우리는 속박받으려고 태어난 게 아냐. 즐기고 놀려고 태어난 거라곳!
어둠 속의 심장박동 Heart, Beating in the Dark
나가사키 슌이치/ 일본/ 2005년/ 104분
두근거리는 죄의식에 사로잡힌 세 커플의 기이한 고백록. 한때 연인이었던 링고와 이나코는 23년 만에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난다. 잊고 살았다지만, 두 사람에겐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악몽이 있다. 그리고 젊은 부부 토루와 유키. 두 사람 또한 과거의 링고와 이나코가 그러했듯이, 똑같은 이유로 경찰의 수배를 피해 도주 중이다. 갑자기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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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을 걷는 이들을 위하여
제아무리 새로운 영화를 찾아 혈안이 된 세상이라지만, 여전히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가는 그분들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와 스와 노부히로와 제제 다카히사… .10년 동안 변함없는 사랑을 바쳐왔던 분들입니다. 성격도 배경도 천차만별이지만, 꾸준하다는 면에서는 저와 통하는 구석이 있죠. 여기에 앤드루 부잘스키, 김영남 등 이름은 생소해도 기질은 다르지 않기에 낯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화든 여자든 그저 속으로 좋아해선 아무 소용없더군요. 선수들의 충고, 그럴듯하기만 할 뿐 믿을 거 하나 없습니다. 부딪쳐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마법의 거울 Magical Mirror
마뇰 드 올리베이라/ 포르투갈/ 2005년/ 137분/ 시네마스케이프
어거스티나 베사 루이자의 3부작 <불확실성의 원리> 중 두 번째 소설인 <소울 오브 더 리치>를 각색한 작품. 감옥에서 갓 출소한 루치아노는 형 플로리다의 도움으로 알프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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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볼까. 고민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4월27일 개막하는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42개국에서 날아든 194편의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다. 알려진 대로 올해 영화제 출품작 수는 지난해보다 300편 이상 많았다. 상영작을 선택하기 위한 프로그래머들의 수고 또한 갑절로 늘었다. 이제, 그 수고의 결과가 관객에게 돌아온다. 다행인 건, 관객에겐 언제나 ‘즐거운’ 고민이라는 것이다. <씨네21>은 다만 즐거운 고민을 만끽할 여유가 없는 이들을 위해 50편의 상영작을 점찍었고, 관객의 성향을 제멋대로 분류해 유형별 관람 가이드를 만들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절대기준이라고 여기진 말 것. 반항아 섹션의 영화들을 둘러보다가도 팔다리가 흥청거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고, 모험가 섹션의 영화들을 뒤쫓다가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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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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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과 망명, 그러나 쉴새 없는 영화열정
그러나 늘어난 제작비와 다수의 영화를 제작하는 데서 오는 경제적 압박감은 신필름 역시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 신상옥은 간절히 새로운 시장을 필요로 했고, 홍콩과의 합작을 시도한 직접적인 이유가 된다. 1964년 <달기>로 시작한 신필름과 홍콩 쇼브러더스와의 합작은 성공적이었지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합작을 통해 신상옥은 한국과 홍콩은 물론 아시아 시장까지 겨눌 수 있는 장르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만주활극에 서부영화의 플롯을 접목시킨 일명 ‘만주웨스턴’은 이 과정에서 생겨난 장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합작영화로 제작한 <마적>(1967)은 국내보다 홍콩에서 크게 성공했고, 최근 재해석되고 있는 <무숙자>(1968)는 이 영향권에서 제작됐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장르 개발도 신필름을 심각한 재정난에서 구해주지는 못했다. 영화의 완성도는 점점 더 떨어져갔고,
추모, 신상옥 감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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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은 1960, 7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그가 얼마 전 펴낸 회고록 <나의 사랑 씨네마>는 신상옥과의 첫 만남으로부터 시작한다. “수용이, 네 영화 좀 봤는데 몽타주가 재밌더라.” 첫 대면에 반말하는 신상옥이었지만, 김수용은 그의 무례와 오만을 쉽사리 물리칠 수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회고록의 맨머리에 메가폰을 들었던 데뷔 시절의 김수용 대신 왜 신상옥을 만난 김수용(이미 5편이나 만들었던)을 떠올렸을까. 1970년대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이장호의 회고는 또 어떠한가. 신필름에 입사했을 당시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했던 거인 신상옥에 대한 묘사는 그의 영화인생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녹아 있다. 이러할진대 신상옥을 해방 이후 한국영화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과장이고 무리일까. 나의 영화적 아버지는 “나운규와 찰리 채플린(뿐)이었다”는 술회에서도 엿보이듯, 신상옥은 스스로 한국영화의 아버지여야 한다는 끊임없는 강박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그 강
추모, 신상옥 감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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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린다 린다> 촬영 중간중간, 배우들이 맥주를 몇 박스씩 기증했다. 그러면 촬영버스에 종이를 써붙였다. “마에다 아키가 맥주 두 박스를 기증했습니다.” 배두나도 몇 박스 기증했다. 촬영이 끝나고 나니 배우의 이름과 맥주 박스 숫자가 적힌 종이들은 늘어났고, 맥주도 그만큼 쌓였다. 그 맥주를 촬영이 끝나는 날 풀어놓았다. 배두나를 제외한 학생 배우들은 나이가 어려 맥주를 마실 수 없긴 했지만. 일본에서 일하는 방식은 실리적인 동시에 살인적이기도 했다. 배두나는 <린다 린다 린다>의 일본 개봉 행사에 참여했을 때, 시사회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영화는 절대 보여주지 않고 무대인사를 시킨 뒤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해 인터뷰를 하는 식이었다. 배두나는 “미친 듯이 일하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린다 린다 린다>를 극장에서 보기 위해 배두나는 따로 비행기표를 사서 일본에 가야 했다. 그리고 이제야, 배두나는 한글자막으로 된 <린다 린다 린다>
배두나의 <린다 린다 린다> 포토코멘터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