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
내시들이 사용하는 검은 조근현 미술감독이 가장 기특하게 여기는 소품이다. 내시란 사내가 아니지만 여인도 아닌 존재. 그때문에 이중적인 느낌이 있어야 하지만, 검날의 폭을 좁혔더니 지나치게 여성적인 느낌이 묻어났다. 밤새 고민하던 그는 ‘민첩하다’는 한단어를 떠올렸고 검날의 가운데를 도려내는 모험을 했다. 날렵한 인상을 주면서도 베고 찌르기가 쉬운 이 검은 근육이 물리지 않도록 식칼에 구멍을 뚫는 이치를 차용한 것. 내시는 관련기록이 미미해 창작의 여지가 많았는데 거세된 남근을 이름써서 보관하는 대나무통이나 거세도구들이 새로 고안된 소품들이다.
정빈 회화
어릴 적부터 골동품을 좋아했던 정빈은 처소 한쪽 벽을 터서 일종의 갤러리를 만들어 두고 있다. 이방에 걸린 당·송대와 한국고대회화는 진짜 그림을 약간 변형하여 아마추어 동양화가가 모사한 것이다. 수천년된 작품이지만 행여 저작권에 문제가 생길까 염려한 처사.
쇠좆매
의금부 도사 광헌(이범수)이 애지중지하는 무
미술로 미리 보는 <음란서생> [5] - 소품
-
김대우 감독은 황가(오달수)의 ① 유기전에 유독 애착을 가지고 있다. 유기전은 음란소설을 필사하고 제본하여 대여까지 하는 장소이고,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나며, 모든 사건의 접점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여인들이 부담없이 찾아올 만한 가게가 필요했다. 포목전도 있었지만 뭔가 반짝거렸으면 해서 유기전을 떠올리게 됐다.” 평민의 가게가 상세한 모양새를 전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무로 짠 선반마다 세월이 느껴지는 유기전은, 방을 지나 또 다른 방이 나타나는 깊이있는 공간이다. 가장 안쪽엔 황가의 본업인 음란서적 제작소가 자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에 도서관 지하에 어떤 공간이 있고 그 안에서 열쇠 만드는 노인을 만나게 되는 작품이 있었다. 그렇게 낯선 공간으로 들어가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다 보여주자니 상영시간이 길어질 것 같았고, 느낌을 살리지 못해 아쉽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유기들은 대부분 손으로 두드린 방짜유기인데, 3t 분량을 선반에 쌓다보니 아무리 쌓아
미술로 미리 보는 <음란서생> [4] - 저잣거리
-
조선시대 한옥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말 한옥에 들어가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근현 미술감독은 그것이 20세기 초반 함부로 지은 한옥 탓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하여 <음란서생>이 수백년 전 한옥을 다시 지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근현 미술감독은 한옥 답사를 다니던 시절 눈여겨보았던 경주 양동마을로 내려가 150여채가 넘는 양반 가옥과 초옥을 살피고 ① 윤서의 집을 찾아냈다. 김대우 감독 눈에 들어온 집은 대청마루가 시원하고 족자 한점이 걸려 있는 어느 한옥이었다. 그 집을 기본으로 하여 실내는 흥선대원군의 사택이었던 운현궁에서 골라냈다. 중요한 공간 중 하나이기에 자극적이기보다 담담한 정서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이 집에서 조근현 미술감독은 <형사 Duelist>를 찍으면서부터 고심하던 문제 하나를 해결했다. “창호지를 사이에 두고 조명을 비추면 빛이 퍼져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창문을 뜯어내는 수밖에 없는데, 한
미술로 미리 보는 <음란서생> [3] - 반가
-
조근현 미술감독은 <장화, 홍련>을 하며 집에도 이야기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집엔 누가 처음 살았고 이 방은 언제 어떤 이유로 새로 지었는지 사연을 만들었다. <음란서생>에선 왕이 비와 더불어 노니는 ① 숲속의 정자가 그랬다.” 정자는 여가를 위한 공간이어서 지은 이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왕의 정자는 불에 타다 남은 처량한 자태다. 지고의 권력을 지닌 그가 어찌하여 번듯한 정자를 올리지 않았을까. “왕은 불쌍한 남자다. 나는 그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었고 그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정자를 내버려두었다고 가정했다.” 정을 모르는 채 내시와 어울려 혼자 자란 아이. 왕은 그저 비어 있으나 상처보다 아린 정자의 폐허로 윤서를 불러들이고 그 순간 사랑하는 여인을 잃게 된다.
그 여인 또한 정자에 머문다. 거처하는 방과 놀이터 비슷한 공간으로 이루어진 ② 정빈(김민정)의 처소는 팔각정 안에 사각정이 들어앉은 독특한 구조다. 어머니가 쓰던 정자를 정빈
미술로 미리 보는 <음란서생> [2] - 궁중
-
-
<아라비안나이트>는 성기를 묘사하는 단어만으로 몇 페이지를 채우고야 체위로 넘어가는 성(性)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 책에서 여인의 성기는 향기로운 허브고 거친 동물이며 천국의 문이기도 하지만, 문장이 은유의 일가를 이루었기에, 부끄러운 짓이라 욕하는 이가 없다. 그렇다면 수백년 전 조선의 선비는 어떠했을까. 음란서적을 제조하고 배포하는 <음란서생>의 황가의 말에 따르자면 “이쪽 관례가 제목은 점잖게 짓는 거라서…”라고 전해진다. 그 말은 <음란서생>의 점잖은 태도와도 통하지 않을까 싶다. 권세에 몸을 팔지 않는 꼿꼿한 사대부가 어쩌다 난잡한 소설에 혹하여 밤마다 자세를 연구하나, 그것이 가능한 자세인지 혹여 해보셨는지 물으면, 문득 화를 낸다. “우리 집안을 어찌 보고 그런 질문을 하시오.” 그러므로 <음란서생>은 그림 또한 점잖고 우아해야만 할 것이다. <반칙왕>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작가이기도 했던 김대우 감
미술로 미리 보는 <음란서생> [1]
-
“시대의 비극을 다른 형태로 다뤄보고 싶었다”
<청연> 기자시사를 마친 뒤 간담회에서 윤종찬 감독이 받은 첫 질문은,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박경원의 친일 논쟁에 관한 것이었다. 윤종찬 감독은 담담했다. 일본에 가서 직접 취재한 박경원에 대한 사료로 얻은 사실 설명으로, 무엇보다 영화 <청연>으로 그는 애국자의 영웅담을 그리려고 했던 게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앉은 자리에서 윤종찬 감독은 제작비 초과와 무한정 길어질 것 같았던 제작기간 때문에 괴로웠던 심경을 “백척간두”에 선 기분이었다고 표현했다. 감독의 사상검증이 필요한 소재를 다룬다는 사실은 괴로움을 덜해주지는 않았지만, 또한 감독으로서 의미있는 모험이었다고도.
-<청연>을 통해 ‘꿈을 좇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경원은 역사적 인물이고 이미 그녀의 죽음도 알려져 있다. 비극적 결말을 맞은 인물을 그리면서 그리고자 했던 꿈은 어떤 것이었나.
=
자유를 꿈꾼 여인의 초상, <청연> [2]
-
‘마침내, <청연>이 날아오르는구나’라는 소회만큼 작품의 운명에 걸맞은 표현이 또 있을까. 윤종찬 감독이 일본, 중국, 미국 등으로 동분서주하며 유례가 없는 항공 촬영을 시도하고, 민간인 최초의 여성비행사 박경원의 삶이란 실존인물을 그린다는 소식은 그의 비상한 데뷔작 <소름>을 생각하면 낯설었다. 곧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한없이 늘어나는 제작비에 영화가 엎어진다더니 제작사가 바뀌는 곡절을 겪었고, 제작 기한은 늘어났다. 데뷔작에 짙게 드리운 감독의 매서운 집념을 생각하면 ‘필연’으로 보이기도 했다. 예컨대 복엽기 사운드를 채취하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아슬아슬한 저공비행을 시켜가며 소리를 따게 만들었다는 예가 그런 증거다. 후반작업에선 전체 2천컷 가운데 절반가량을 CG로 처리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어쨌든 궁금증은 블록버스터의 외형이 아니라 도대체 그가 블록버스터로 다루려는 게 무엇인지에 있었다. 기획의 리뷰와 인터뷰는 거기에 맞춰져 있다.
미뤄지고
자유를 꿈꾼 여인의 초상, <청연> [1]
-
“나의 무의식 속에는 서부극이 살고 있다”
우리는 아직 그를 잘 모른다. <유레카>로 2000년 칸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았지만 그의 영화는 한국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기 힘들었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있었던 특별전 상영을 위해 방한한 아오야마 신지 감독을 만난 자리에서 묻고 싶은 게 많았던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영화 만들기를 시작한 지도 10여년, 여전히 감독이라는 말이 낯설다는 그는 영화를 만드는 작업에 대해 “그저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영화라는 덫에 빠진 것은 아닐까”라고 탄식한다. 그가 영화에 묶인 수인이기를 바라는 것은 관객으로서 버릴 수 없는 열망이 되어버린다. <헬프리스>나 <유레카>를 당신이 보았다면 더더욱.
-고등학교 때 록밴드 활동을 했다고 들었다. 음악이 아닌 영화를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등학교 때 음악을 함께했던 친구들은
아오야마 신지를 만나다 [2]
-
아오야마 신지의 시선은 담담하고 고요하지만, 화면 속 사람들은 죽을 힘을 다해 “왜 살아야 하는가” “사랑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에 매달린다. <와일드 라이프>에서 느닷없는 리듬으로 보는 이를 웃기는가 하면, <호숫가 살인사건>에서는 스릴러보다 공포영화에 가까운 장면들로 혼을 쏙 빼놓고, <헬프리스>를 통해 폭주할 수 밖에 없었던 어느 오후를 담담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각본, 편집, 연출을 동시에 할 뿐 아니라 음악을 직접 작곡하고 연주하는 그의 영화에서 느릿하지만 유려하기 그지없는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의 영화를 몇 페이지로 요약해 전달하는 것은 그래서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호흡과 리듬, 대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 풍부한 세계를 그는 체험적으로 느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서울독립영화제 특별전을 위해 서울을 찾은 그를 만나, 그의 영화들에 대해, 그의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머지
아오야마 신지를 만나다 [1]
-
7. 한국영화, 아시아의 문을 열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 수출·흥행 호조, <데이지> <묵공> 등 합작 투자·제작 등도 활발
<외출>은 27억2천만엔을 기록했고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30억엔을 넘어섰다. 2005년 한국영화 두편이 일본 극장가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며 드라마에 편중됐던 한류가 영화로 확산되는 조짐이다. 12월29일 일본에서 DVD 출시를 앞둔 <외출>의 강봉래 PD는 “과거와는 달리 한국영화를 보는 저변이 넓어지면서 <외출>과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흥행했다고 생각한다. 일본 관객이 한국영화의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 전개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이는 향후 다양한 한국영화, 감독, 배우들이 관객에게 어필하리라는 개인적인 기대를 갖게 한다”고 전했다.
한편 중국에서는 지진희가 출연한 <퍼햅스 러브>에 이어 쇼이스트가 투자했고 장동건이 출연한 <
2005년 한국영화 10대 이슈 [3]
-
3. 새로운 큰손 나타나다
KT, KTF 등 통신회사 충무로 진입
충무로를 주도할 새로운 자본의 출현인가, 콘텐츠 확보를 위한 일시적인 투자인가. 통신사들의 충무로 진출은 2005년 산업계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연초 SK텔레콤이 국내 최대의 매니지먼트 업체인 싸이더스HQ와 영화제작사 아이필름 등의 지주회사격인 IHQ에 144억원을 투자해 2대 주주가 된 데 이어 KT와 KTF는 싸이더스FNH에 230억원을 출자해 최대 주주가 됐다. 이후 SK텔레콤은 300억원 규모의 영상펀드를 구성하고 있으며, IHQ를 통해 YTN미디어를 인수하는 등 영화-미디어계로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KT 또한 콘텐츠 확보를 위해 770억원을 투자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최근 남중수 KT 대표는 “(싸이더스FNH처럼) 인수도 고려한다. 그러나 투자와 제휴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통신 관련 초대형 기업들의 충무로 진입은 DMB, 와이브로, IP-TV 등 새로운 통신 미디
2005년 한국영화 10대 이슈 [2]
-
한국영화는 아직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성장기 청소년처럼 2005년의 한국 영화계는 여러 가지 고민을 드러냈고, 사고를 치기도 했으며, 자랑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부천영화제 사태와 <그때 그사람들>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암울하게 시작된 2005년은 한국영화의 도전의 해이자 역경의 해였다. 한류 덕분에 해외 진출이 활발해졌고, 통신회사들이 충무로에 입성했으며, 하반기부터는 한국영화가 활황세를 지속했지만, 예술영화 시장은 잠적했고, DVD 시장은 더욱 악화됐으며, 대기업의 체제는 공고해졌다. 전문스탭 조합, 조수급 스탭 노동조합의 잇단 결성과 활발해진 독립 장편영화의 극장 진출은 한국영화의 건강한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기도 했다. 2005년 한국 영화계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 10개를 돌아본다.
1. 배우가 힘이다
매니지먼트사 파워 업그레이드
영화의 캐스팅을 좌지우지하면서 영향력을 키워온 매니지먼트사들은 2005년 들어 한국 영화계의 중심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싸
2005년 한국영화 10대 이슈 [1]
-
이준익 감독의 책상 위에는 <실증 한단고기>가 놓여 있었다. 평가가 엇갈리고 실제 역사인지도 불분명한 이 책이며 예전에 읽었다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가 재미있는지 묻자 대뜸 “재미없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재미없기 때문에 자신이 영화로 재미있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어느 날엔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얻었더니 바랄 것이 없더라는 이준익 감독. 역사적 사실을 영화로 재구성함에 있어 확고한 기준을 가진 그는 인터뷰 내내 열을 띠며 역사와 사회를 논했고 가끔은 영화 이야기도 했다.
-<황산벌> 이후 또다시 사극이다. 동성애의 감정을 가진 광대 이야기라는 점에서 <패왕별희>와 비슷하다는 오해를 살 법도 한데 부담을 갖진 않았는가.
=영화를 보고 나서도 <왕의 남자>가 <패왕별희>와 비슷했나? (부정하는 답을 듣고) <패왕별희>와는 출발점이 다른 영화다. <패왕별희>는 광대 이야기이긴 해도 문화혁명을 전후한
호쾌한 정치사극 <왕의 남자> [3] - 이준익 감독 인터뷰
-
가장 귀하고 가장 천한 자의 만남
남사당패의 줄타기 광대 장생(감우성)은 예쁘장한 공길(이준기)을 남창으로 팔아먹는 꼭두쇠에게 반항하여 함께 도망쳐나온다. 한양에 온 두 광대는 장터에서 판을 벌이던 육갑(유해진) 패거리를 만나고, 한양 바닥에 자자한 소문을 이용해, 연산군(정진영)과 녹수(강성연)를 조롱하는 마당극을 하게 된다. 겁없는 조롱을 목격한 연산의 심복 처선(장항선). 그는 중신들을 쳐내기 위해 장생 패거리를 궁에 불러 형조판서 윤지상의 매관매직을 풍자하는 소극을 하도록 사주한다. 그러나 연산의 눈길이 공길에게 머무는 순간 정치적 음모는 세 남자의 마음과 영혼이 다치는 비극으로 선회한다. 꼭두각시로 불려왔다는 사실을 눈치챈 장생은 공길을 붙들고 궁을 나가자 하지만, 공길은 연산을 향한 연민의 정을 놓지 못해 머뭇거린다.
이준익 감독은 장님 놀이에 능숙했던 장생을 줄타기의 달인으로 만들었다. 그는 말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줄을 타기 위해 이빨을 까는가, 이빨을 까
호쾌한 정치사극 <왕의 남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