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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진 틈새 위에 존재하는 김기덕의 작품세계
“김기덕 시스템”은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김기덕은 이렇게 대답한다. “시스템 같은 것은 없다. 나는 물이다… 나는 단지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김기덕 영화의 힘은 특유의 내러티브와 그것을 이미지화하는 회화적 “물방울”에 있다. 그 안에서 인물들은 이름과 얼굴은 바뀌지만, 동일한 정체성을 갖는다. ‘김기덕 워터 시스템’(김기덕이 “나는 물”이라고 말한 것에 빗대어 “물방울”과 “water system”이라는 표현을 썼다)은 테마적인, 그리고 시각적인 두개의 층으로 짜여진 조직이다. 첫 번째 층은 김기덕 영화의 이야기와 인물을 형상화하는 혼돈스러운 배경을 의미한다.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몇개의 강력한 핵심들은 언제나 변증법적이고 상호 대립하는 두 요소들간의 관계로 쪼개어진다. 그의 영화세계는 많은 방들- 수많은 프레임들이 영화를 채우듯 각각 수많은 그림들로 가득 찬-로 구성된 하나의 회화적 집합체이다.
성적 행위와 폭력으로
김기덕과 <시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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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의 열세 번째 영화 <시간>의 최초 시사회가 지난 5월25일 <씨네21>과 KT&G 공동 주최로 열렸다. <시간>의 개봉은 아직 불투명하지만, 영화를 개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씨네21>은 개봉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시간>에 대해 궁금해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미리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여기에는 김기덕 영화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해외 필자들의 소중한 글을 같이 실었다. 한국영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피력하고 있는 프랑스 영화잡지 <포지티프> 기자인 아드리앙 공보의 글과 이탈리아의 영화평론가 안드레아 벨라비타의 글이 그것이다. 두 필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각각 자국어로 김기덕 감독에 관한 책을 낸 저자들이다(유럽에서 한 한국감독에 관한 책이 두 권씩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검은 화면에 두번 연거푸 쓰인 <시간>이라는 제목이 뜬다. 마치 찌그러진 데칼코마니인 양 양편으
김기덕과 <시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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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가 끝난 것을 알았던 것일까.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두번 받았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80)이, 지난 5월30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간암으로 별세했다. 이번 칸영화제에서는 켄 로치 감독이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거장의 건재함을 알렸지만,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죽음은 일본영화의 한 시대가 막이 내렸음을 알린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 이후 일본영화의 거장을 꼽는다면 가장 먼저 오시마 나기사와 이마무라 쇼헤이가 떠오른다. 오시마 나기사는 성과 정치의 최전선에서 투쟁했고, 이마무라 쇼헤이는 인간의 생명력 그 자체를 탐구하며, 일본영화의 거친 60년대를 대표했다. 서로 다른 길이었지만, 이마무라 쇼헤이와 오시마 나기사는 각자 일본이라고 하는 사회 혹은 세계의 근원을 치열하게 파고들었던 문제적 감독이었다. 두 감독은 90년대까지 꾸준히 작품을 내놓았지만, 오시마 나기사는 1999년 <고하토>를 연출한 뒤 건강문제로 활동중단 상태였다. 21세기
추모, 이마무라 쇼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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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코폴라의 <마리 앙투아네트>
혁명은 부족하나 너무 화사한
5월24일에 있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상영은 야유와 박수소리의 불협화음으로 요란했다. 한편 5월26일자 <필름 프랑세>와 <스크린 인터내셔널>에는 그때까지 상영된 그 어떤 영화들에 주어진 것보다(게다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의 영화에 쏟아진 것보다) 많은 최고점이 <마리 앙투아네트>에 쏟아졌다. 평점은 최고가 아니었지만 최고점을 준 사람은 가장 많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바닥난 국고, 무의미한 해외에서의 전쟁, 극심한 가난 등으로 성난 군중에게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지”(한국에는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로 알려진 바로 그 말)를 했다는 일화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진 사치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이었던 민중 봉기의 합당한 대의명분하에서 참수형을 당한 프랑스의 왕비였다. 영화는 프랑스 역
제59회 칸영화제 총결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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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요정이 함께하는 슬픈 연민의 영화
아이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부모가 살해당하고 집이 무너지고 친구가 사라지는데도 이유를 묻지 못한 채 그저 살아남아야만 한다. 옛날이야기로 시작되는 <판의 미로>는 잔인하고 거대한 세상의 한복판에 던져진 그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전쟁을 견디었는지 기억해주는 영화다. 겁먹지 않고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어린아이. 2001년 <악마의 등뼈>에서 죄없이 죽은 소년과 보호받지 못하는 고아들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그 영화의 “거울 이미지이자 쌍동이 같은” <판의 미로>에서도 차가운 돌바닥에 누운 소녀를 위해 서글픈 자장가를 불러준다.
<판의 미로>는 스페인 내전이 끝난 1939년이 배경이었던 <악마의 등뼈>와 비슷한 시대의 이야기다. 1944년 스페인, 몇몇 게릴라들은 내전이 끝났는데도 산속에 숨어 독재자 프랑코 정권에 저항하고 있다. 오펠리아는 어머니와
제59회 칸영화제 총결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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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회 칸영화제가 5월28일 막을 내렸다. 개막작 <다빈치 코드>로 불길하게 시작했던 칸영화제는 유럽의 거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켄 로치, 아키 카우리스마키, 난니 모레티의 영화를 중반 이전에 공개하고도 약세를 만회하지 못했다. 고른 호평을 받았던 켄 로치의 <보리를 흔드는 바람>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많은 이들이 그럴 바엔 켄 로치의 이전 영화들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불평하고 있다. 눈에 띄는 걸작이 없는 가운데 최대한 공감을 얻으려 애쓴 것처럼 보이는 칸영화제를 되돌아보고,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칸영화제의 취향을 넓혀주었다고 할 만한 수작 세편을 소개한다. 어둡고 아름다운 지하 미궁을 창조한 판타지영화 <판의 미로>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떼어놓고 탐구하여 찬반 격론에 휩싸인 <마리 앙투아네트>, 정치영화의 선동성과 탈옥영화의 긴장감을 함께 지닌 <부에노스아이레스 1977>이 그것이다. 축제는
제59회 칸영화제 총결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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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은 일을 하려면 철저히 한다는 주의다. 다른 존재로 둔갑할라치면 아예 성문, 지문, 망막까지 복사하고 무술, 총검술, 컴퓨터 정보처리 기술도 완벽하다. 요컨대 007보다 유능하고 본드걸보다 섹시하니 인간 스파이들이 비공개 팬카페를 결성했다는 소문이 돌 만도 하다. 그러나 누구의 모습을 훔치더라도 미스틱은 미스틱이다. 미스틱은 타인의 외모는 그대로 베껴내지만 능력은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미스틱을 정의하는 것은 오직 변신 능력 자체다. 미스틱도 매그니토처럼 오래전 인간들에게 혹독한 짓을 당한 모양이지만 과거에 대해 입을 여는 법이 없다. 과거를 꽤나 찾아해매는 울버린을 상당히 비웃는 눈치다. (※비록 냉소의 형식으로라도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 그녀로서는 특기할 만하다.)
솔직히 미스틱은 내 도움이 필요없다. 그녀만큼 자아정체감이 확실한 돌연변이는 본 적이 없으니까. 오래전,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나이트크롤러가 미스틱에게 “누구든지 다른 사람 모습이 될 수 있다면 왜
<엑스맨> 카운슬러의 임상 노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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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프시케. 슈퍼히어로들의 정신적 문제를 상담한다. 원래는 뉴욕에서 개업하여 일반인을 치료했지만 찜질방 드나들듯 뻔질나게 드나들던 우디 앨런이라는 환자한테 거꾸로 불안장애를 얻은 뒤 심각한 회의를 느껴 좀 더 한가하고 흥미로운 일을 궁리하게 됐다. 나는 운이 좋았다. 마침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는 심사가 뒤틀려 며칠씩 호출에 답하지 않는 슈퍼히어로들 때문에 고심 중이었고 나는 비밀 엄수를 조건으로 특별한 고객들에게 명함을 돌릴 수 있었다.
예상대로 1980년대는 내내 한가했다. 이따금 슈퍼맨/클라크 켄트 기자가 마감 스트레스를 호소해왔지만, 그쯤이야. 하지만 1989년 팀 버튼이라는 감독이 고객들의 클럽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계기로 내 일은 급증했다. 주인공 브루스 웨인의 다중인격장애만 해도 일이 한 보따리였는데 그의 적수인 노출광 조커(잭 니콜슨)와 부모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펭귄(대니 드 비토)에다가, 열등감과 사도마조히즘 사이를 왕복하는 캣우먼까지 대기
<엑스맨> 카운슬러의 임상 노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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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죽거리에서 자란 그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유하 감독의 2003년 작 <말죽거리 잔혹사>는 지식은 주입식으로, 폭력은 산교육으로 가르치던 ‘대한민국 학교’를 보여주었다. 힘으로 모든 걸 제압하려던 선도부장과 정정당당함을 잃고 비겁하게 상대의 뒤통수를 날리던 현수는 모두 프랑켄슈타인의 연구실에서 탄생한 괴물이었던 것이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신작인 <비열한 거리>는 “쌍절곤을 비겁하게 휘두르며 탄생한 조폭이 결국 어떻게 소비되고 기능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말죽거리’에서 잔혹하게 자란 괴물은 결국 ‘비열한 거리’로 흘러갔다.
서른이 코앞에 다가온 병두(조인성)는 조직의 보스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틈에서 기회 한번 제대로 잡지 못한 조직의 2인자다. 하는 일이라곤 고함치고 난장판을 벌여가며 떼인 돈을 받아주는 게 전부. 하지만 병든 어머니와 두 동생까지 책임져야 하는 그에게 남은 것은 쓰러져가는 철거촌 집 한채뿐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살아남을 수
비열한 남자에 대한 거친 동정, 조인성 주연의 <비열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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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ME>와 천국의 시사 프로그램 <웰컴 투 시사 헤븐>의 논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비슷할 이유도 없음을 미리 밝힌다.
앵커하리: 천국행 비자 얻으려 애쓰시는 시청자 여러분, 이미 천국행 비자 얻어 기쁜 시청자 여러분 가끔 안녕하시죠. <웰컴 투 시사 헤븐>의 앵커, 앵커하리입니다. 오늘도 첫 소식은 꽃미남 마초무 기자가 준비했습니다.
마초무: 최근 급증하고 있는 나쁜 여자들의 천국행 러시 소식인데요.
앵커하리: 듣는 나쁜 여자 기분 나쁘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요. 쿨한 여자로 통일하죠. 쿨한 여자들이 천국도 접수한다는 풍문이 증권가에 도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닌데 말이죠.
마초무: 천국의 문호 개방이라는 측면에서 환영하는 게 대세지만 이로 인해 천국 쿼터가 상대적으로 더욱 좁아진 마초들 반발이 거셉니다. 한편 원조급 ‘쿨녀’인 ‘마녀’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최근의 천국 문호 개방을 소급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항의하고 나섰습니다.
쿨한 여자가 천국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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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3: 지축을 뒤흔드는 아찔한 혜성 충돌 견디기
6월24일 토요일 오전 4시33분
G조 예선 6차전 스위스 VS 한국
토네이도가 서울 시내를 휩쓸고 간 며칠 뒤,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것이라는 뉴스가 터져나왔다. “1년 전 발견된 이 혜성은 현재 지구와 충돌궤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직경 1.5마일, 길이 6마일로 뉴욕시 크기에 무게는 5천억톤입니다. 충돌 예상일은 6월26일, 지점은 대서양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나사에서 발표한 이 뉴스는 전세계 유수 언론을 통해 “독일월드컵 중단 위기”라는 헤드카피로 연일 보도됐다.
광화문 앞 광장이 개박살난 까닭에 붉은 악마의 집결지는 양재동 시민의 숲으로 정해졌다. 야외음악당 주변의 나무를 100여그루 잘라내고 전광판을 세우는 대형 공사가 4일 만에 끝났다. 월드컵 응원에 대한 집착은 광기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P씨에게는 자신이 속한 붉은 악마의 파시즘이 혜성 충돌 뉴스보다 소름끼쳤다.
참, 프랑스전은 1 대 1로 비겼다. 프랑
붉은 악마, 가공할 재난에서 생존하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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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에 만들어진 재난영화의 걸작 <포세이돈 어드벤쳐>가 볼프강 페터슨에 의해 리메이크됐다. 호화 여객선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뒤집어진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 <포세이돈 어드벤쳐>는 위기가 가중되고 인물들의 심리가 격해지는 과정을 치밀하게 엮어낸 재난드라마다. 이 영화를 제작한 어윈 앨런은 영화의 엄청난 흥행에 힘입어 2년 뒤 또 다른 재난영화 <타워링>을 제작했다. 그가 제작한 두편의 영화는 1970년대 최고의 재난영화가 되었으며, 이견의 여지없이 영화사에도 길이 남을 작품들이 됐다.
페터슨의 리메이크작 <포세이돈>의 개봉을 계기로 가상 시나리오를 구상해보았다. 2006년 독일월드컵이 한창인 6월, 할리우드영화들에 등장했던 각종 재난의 소재들이 대한민국에 한데 덮쳤다는 가상 재난기이다. 엄청난 재난들 속에서 붉은 악마 회원인 P씨가 용케 살아남았다는 믿을 수 없는 생존기이기도 하다. 재난영화가 그렇다. 살아남아서 햇빛을 보는 자가 있
붉은 악마, 가공할 재난에서 생존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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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집 앞 튀김가게 벽에 동네 극장의 영화 포스터가 걸렸다. 하얀 모자에 하얀 양복, 그리고 하얀 백 구두를 신은 사나이가 검은 가죽장갑을 끼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고, 사나이의 백 구두 아래에는 피처럼 붉은 글씨로 <실록 김두한>이라고 써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나는 버스 정류장의 가판대에 진열되어 있던 ‘나는 참회한다. 주먹 천하 유지광’이나 ‘주먹 황제 시라소니’ 같은 성인 극화들을 통해 일제시대의 조선 주먹사를 어느 정도 꽤 뚫고 있었고, 외로운 늑대, 시라소니의 팬이 되어 있었던 터라 일주일간 그 포스터 앞을 오가면서도 영화를 꼭 보리라는 생각은 안 하고 있었다. 영화가 상영되고 며칠이 지나자,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 <실록 김두한>을 보고 골목길에서 주먹질 흉내를 내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 나쁜 놈들이 허장강을 죽이는데 펜치로 살을 뜯어서 죽인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펜치로 뜯어서 죽이다니!
컴백 이대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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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이 돌아왔다. 한국 영화사 속에서 걸출한 액션 스타로, 그리고 고전 해학극의 달인으로 남아 있는 그가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쓰기 위해 영화 현장으로 컴백한 것이다. 현재 <이대근, 이 댁은> <무림 여대생> <아내의 편지> 등 세편의 영화를 찍거나 찍을 예정인 이대근을 만나 신작과 화려한 과거에 대해 들어봤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이대근의 액션영화에 심취했던 영화감독 오승욱이 그에 관한 아주 개인적인 글을 보내왔다.
1. “나 이대로 끝나지 않아∼!”
모두 깜짝 놀랐다. 이제 호호할아버지가 됐을 ‘왕년의 스타’를 기다리던 기자들과 영화사 직원들 앞에 나타난 건 팽팽한 얼굴과 단단한 근육의 사나이였다. 호적 나이로 예순넷, 그리고 본인에 따르면 “그보다 꽤 더 먹은” 이대근은 많아야 5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6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한국 마초의 아이콘’으로 불릴 정도로 진한 남성성을 뚜렷하게 각인시켜왔던 인물답게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컴백 이대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