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촬영 - 찍어보기는 했지만
한강변에서의 첫 촬영날.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강풍에 장성미 조감독은 눈물을 질질 흘리며 딱딱이를 친다. 황대진 촬영감독의 손은 얼어붙어 있다. 강도높은 리허설 덕인지 ‘새가슴’(이종도)과 여자친구인 ‘얼굴값’(홍하얀)의 주거니받거니가 나름 괜찮다. 일정이 빠듯해서 모니터를 켤 시간도 없다. 부리나케 한신을 해치우고 현장에 공수된 뜨거운 국물과 김밥과 홈메이드 유부초밥을 스탭들과 나누어 먹다. 와이프와 장모와 처형의 정성이다. 유일하게 스탭들 모두를 만족시킨 건 감독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과단성 따위가 아니었다. 아내의 손맛이었다. 꽥!
한강변 신을 다 해치우고 주유소 옆길에서 한신을 찍다. 전기 끌어오는 일을 김효창이 능란하게 해낸다. 역시 관록이 중요하다. 지옥에서 헤매던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 비하면 촬영은 소풍 같았다. 준비한 대로 찍으면 되니까. 영화사 봄의 김민정과 그의 친구 이은하가 핫팩과 도넛을 싸들고 왔고 내친김에 행인과 잡상인 연기
왕초보의 영화 만들기 [2]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나도 정재영처럼 ‘원정’을 떠나기 전에, 내 첫 ‘영화원정’을 떠나기 전에, <욥기>의 구절이라도 외웠어야 옳았다, 돌이켜보니. 그냥 나는 김기덕의 영화와 경쟁하겠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초저예산과 초긴박 촬영일정을 김기덕적인 의지로 다 맞추겠다, 그것 말고는 아무런 욕심이 없었다. 카메라 시점은 어떻게 만드는지, 180도 가상선은 어떻게 지키는지 또는 창의적으로 어기는지, 대화신에서 카메라는 어떻게 이동해야 긴장감이 생기는지, 거울과 유리창에 끈질기게 달라붙는 붐마이크는 어떻게 치울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도대체 내가 욕심을 낼 수 있는 게 뭐가 있으랴. 겨우 2회차 촬영에 뭘 할 수 있었으랴.
그러나 설령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더라도 욕심은 다부졌어야 옳았다는 생각이, 상영회를 하는 청평산장에서 퍼뜩 들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연쇄살인극이 일어나면 딱 어울릴 으스스하고 휑하니 넓은 산장
왕초보의 영화 만들기 [1]
-
적정 가격의 유료화가 필요하다
씨네21/ 유료화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다.
조성규/ 올해 베를린에 갔는데 모바일 판권을 계약서에 넣어달라고 했더니 상대가 좀처럼 이해를 못하더라. 그들 입장에선 그게 수익모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반면, 우리 입장에선 거대 통신회사들의 요구가 있는 거고. 인터넷 판권만 하더라도 지금은 다 계약서에 명시하는데, 실은 한국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다.
조광희/ 초고속 인터넷이 발전한 한국 같은 멋진 신세계에서 발생하는 곤란한 문제인데. (웃음) 개인적으로는 결국엔 극장, DVD와 비디오 그리고 인터넷 정도로 윈도가 압축될 것이라고 보는데. 현재는 이용하고 싶고, 이용하기 쉬운데, 자꾸만 묶어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인간행동 차원에서 볼 때 법이 있고 그 법을 사람들이 얼마나 잘 지키느냐 하는 문제는 얼마나 법을 쉽게 어길 수 있느냐, 법을 어겼을 때 리스크는 어느 정도냐, 합법적 대안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그런데
영파라치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2]
-
불법 영화파일을 신고하면 포상한다는 영파라치 제도가 시작된 지 한달이 넘었다. 2월1일부터 시작된 이 제도는 적지 않은 효과를 거둔 듯하다. 3월9일 현재 10개 영화사들의 위임을 받아 영파라치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온라인 업체 씨네티즌의 사이트에는 7만6천여건에 달하는 신고 건수가 접수된 상태다. 그동안 복제 파일이 무성했던 이름난 공유 사이트들은 초토화됐다. 뒤져봤자 별 볼일 없는 ‘야동’투성이다. 반면, 영파라치 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3월부터서는 씨네티즌쪽에서 법무법인 일송과 함께 불법 영화파일을 인터넷에 올린 이들이 합의에 응하지 않을 경우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씨네21>이 긴급좌담을 마련한 것도 그 때문이다. 김혜준(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 이원재(문화연대 사무처장), 조광희(변호사·법무법인 한결), 조성규(영화사 스폰지 이사) 등 관련 업계 종사자와 저작권 관련 전문가들이 3월7일 좌담에 참석했
영파라치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1]
-
-
제4강. 진심 전하기
후끈녀: 리즈(<오만>)는 바보같이 기다리기만 하고, 마리안(<센스>)은 얼굴에 좋아한다는 게 벌써 다 써 있고, 어디 ‘센쑤’있게 진심을 전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오스틴: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되지 않겠어요? 게다가 리즈는 마음을 열어놓고 기다리잖아요. 리즈는 다시가 슬며시 마차에 올라탈 때 손을 잡아주는 걸 눈여겨보고, 춤출 때 좋아하는 음악이 같은 걸 확인하잖아요(<오만>). 마리안처럼 솔직한 것도 좋죠. 남자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6번을 함께 외울 수 있는 것에 감격해 하잖아요. 자기 자신을 다 보여줬다고 창피해하지 마세요. 진심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솔직한 태도를 더 사랑스러워 할 겁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야지, 후회도 덜 하고 다치기도 덜 다치겠죠. 어설프게 남 흉내내다가 상처받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을까 해요. 다만 먼저 유혹하기보다는 유혹하게끔 만드는 게 더 현명한 건 사실인 것 같
제인 오스틴의 연애특강 [2]
-
<오만과 편견> <엠마> <클루리스>(<엠마>가 원작), <센스, 센서빌리티> <설득>…. 할리우드와 영국에서 쉬지 않고 TV 미니시리즈와 영화를 만드는 이 작가는 연애소설, 로맨틱드라마의 원조 소리를 듣는다. 오늘도 밤잠 설치며 백마 탄 남자의 노크 소리를 기다리는 이라면 이 언니를 만나야 한다. 아직도 결혼할 생각이 없지만, 연애와 결혼에 관해서는 척척박사요, 뭇 관객을 울렸다 웃겼다 로맨틱한 결혼의 판타지로 관객을 집단 익사시키는 데 귀재인 이분을 특별히 모셨다. 230년 전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여전히 연애와 결혼의 비밀에 관해 목말라 하는 전 세계 언니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안겨주는 제인 오스틴 언니를 소개한다. 평소 궁금한 것, 사정없이 질문 던지시라. 제인 오스틴 언니, 준비되셨나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제인 오스틴의 연애 방향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담자로 ME의 골수 애독자 언니들을 모셨
제인 오스틴의 연애특강 [1]
-
일상 속에서 ‘문득’을 찾다
그가 논리 대신 황당한 사건을 통해 영화를 전개해가기 때문에 관객도 쉽게 일탈에 동참한다. “사람들은 보통, 내가 보는 것이 이만큼이면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 안에 재즈나 수중발레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좁은 공간 안에 황당한 것들이 끼어들고, 정말 그 일을 하게 된다. 주인공들이 이후에도 밴드를 계속할 것인가까지는 모른다 해도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아,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의 가능성이라도 열게 된다면, 나는 충분하다.”
황당하고 유쾌한 전개 때문에 그의 영화는 만화처럼 느껴진다. 밴드부가 상한 도시락을 먹고 단체로 식중독에 걸리고, 소녀들은 보충수업을 빼먹으려고 대신 밴드를 하게 된다. 소년들을 수중발레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여선생님은, 임신 8개월이라는 폭탄선언을 던지고 신나게 휴가를 떠나버린다. 지도자도 없는 아이들은 건널목에서 투포(2·4)리듬의 본질을 깨닫고, 펌프를 하면서
야구치 시노부를 만나다 [2]
-
2002년. 심상치 않은 다섯명의 꽃총각들이 한국에 상륙했다. 섹시하기보단 어딘지 안쓰러운 몸을 흔들어대며, 수중발레를 하겠다고 고집하던 그들은, 야구치 시노부라는 한 감독의 이름을 한국에 알리고 돌아갔다. 야구치 시노부는 첫 장편 <맨발의 피크닉>으로 데뷔한 뒤 일련의 짝패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스즈키 다쿠지와 공동 작업한 <원피스 프로젝트>와 <파르코 픽션>, 소심한 남녀와 돈가방을 둘러싼 사건을 그린 <비밀의 화원>과 <아드레날린 드라이브>, 그리고 코믹 학원 청춘물이라 할 <워터 보이즈>와 <스윙걸즈>다. <워터 보이즈>를 재미있게 보았던 이에겐 그 소녀 버전이라는 <스윙걸즈>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스윙걸즈> 국내 개봉은 일본 현지보다 2년이나 늦었지만, 한국 시사회장은 단박에 웃음의 도가니로 변했다. 이번엔 꽃처녀들이, 야구치 시노
야구치 시노부를 만나다 [1]
-
“애정이 30%는 맞지만 조롱이 70%는 아니다”
-보조출연자는 물론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자동차 한대도 눈에 띄지 않는다. 설마 제작비 때문은 아니었을 테고.
=일종의 취향의 문제였다. 쓸데없는 소리나 인물이 단지 화면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는 이유만으로 개입되는 게 싫었다. 주인공들의 얘기가 결국은 뒤에 지나가는 평범한 이들의 얘기기 때문에 굳이 또 다른 사람을 화면 안에 세울 필요가 없었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썰렁한 느낌이 들 거라는 예상은 했고, 실제로 기대 이상으로 썰렁하지만(웃음), 그렇다고 더 재밌고 흥미진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많은 인물이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영화이고, 그 인물들 모두 독특한 개성을 지닌 쉽지 않은 캐릭터들이다.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땠나.
=어떤 배우들은 촬영 전에 감독과 교감을 나누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촬영 전에 너무 친해졌다가 정작 촬영 중에 틀어지고 갈등하는 게 싫었다. 어느 정도 관계와 긴장감을 유지하고, 현장에서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미리 보기 [2]
-
3월16일 개봉하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놀라운 패기의 영화다. 지방도시의 한 섹시한 여성 교수와 그를 둘러싼 뭇 남성의 이야기를 그리는 이 영화는 주류영화의 화법과 거리를 두는 가운데, 일관된 스타일을 고집스럽게 추구한다. 초반부터 기묘한 앵글과 독특한 리듬감이 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그리고 긴장하게 만드는 <여교수…>는 끝날 때까지 그 범상하지 않은 형식미를 고수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사변적이나 관념을 앞세우는 ‘아트영화’는 아니다. 몸과 마음의 나사가 몇개쯤은 풀린 듯한 캐릭터들이 종횡무진 좌충우돌하는 이 영화는 소극(笑劇)에 가깝다. 물론, 웃음 그 자체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코미디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추구하지만, 저열한 인간 군상이 빚어내는 희한한 호흡의 코미디는 심상치 않은 재미를 전해준다. 이 집요하면서도 능청스러운 영화는 ‘단편 영화계의 스타’ 이하 감독의 데뷔작이다. 포기와 타협을 통해 통과하기 십상인 상업 영화계의 문턱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미리 보기 [1]
-
<청혼>
이제 우리 결혼해요~
도심 한복판에 웨딩 드레스를 입은 수백명의 여인이 서 있다. 신랑인 듯 턱시도를 차려입은 남자가 나타나자, 그녀들 한꺼번에 그를 뒤쫓기 시작한다. “저놈 잡아라” 괴성을 지르는 여자들과 죽어라 내달리는 남자.
글로리아/ 어머어머어머어머, 저 여자들 좀 봐~~~~~~. 지금 뭐하는 거야?? 남자 하나 놓고 걸신 들린 사람들처럼 뜀박질을 하고. 같은 여자로서 넘 자존심 상한다~~~~~. (제레미에게 매달리며) 자기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응? 응??
제레미/ 신랑이 신문에 신부 구인 광고를 냈다는군. 갑부 할아범이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는데, 30살 생일 오후 6시까지 결혼을 못하면 모든 유산이 깡그리 날아갈 거라 했대나. 원래 3년 동안 사귀던 앤이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청혼을 거절한지라 일단 아무하고라도 결혼해서 유산을 받아낼 셈으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서류를 뒤적이며) 이 녀석 원래부터 결혼이란 걸 끔찍하게 무서워했
영화 속 결혼식을 말하다 [2]
-
아직도 웨딩 크래셔가 뭔지 모른다고? 무식한 당신을 위해 잠시 영어 강의 좀 하겠다. 웨딩 크래셔=Wedding(결혼식)+Crash(난입하다)+er(∼하는 인간). 감이 오나? 그렇다. 나 제레미와 불알친구 존, 우리 둘은 남의 결혼식에 하객인 척 들어가 즐기는 걸 일생의 유일한 낙으로 살아온 일당이다. 아니, 사실 일당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군. 우린 그저 누구누구 친척입네 거짓말 좀 하고, 공짜 음식으로 배 좀 불리고, 외로움에 불타는 여자들에게 화끈한 하룻밤을 선사해주는 그런 분들이다. 타고난 말발과 각종 개인기로 참석하는 결혼식마다 주인공이 됐던 우리니까, 뭐 일종의 웨딩 엔터테이너라고도 할 수 있겠지.
한데 백전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던 우리가 딱 한번 무너진 적이 있었으니… 바로 야심차게 찾아간 재무장관 클리어리 가의 결혼식이었다. 사전 준비는 완벽했지만, 딱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던 거다. 그건 바로 사랑, 그래 그 몹쓸 놈의 사랑이었다. 존 이 자식은
영화 속 결혼식을 말하다 [1]
-
“영화 속의 곽원갑은 나 자신이다”
이연걸이 1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지난 2월24일 오후 이연걸을 그의 숙소에서 만났다. 검은 옷을 단정히 차려입은 이연걸은 흔들리지 않는 맑은 눈빛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내면, 마음,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액션스타라는 옷을 벗고 불교와 자기수양을 얘기하는 이연걸에게는 변화가 느껴진다. 그의 우아한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아직은 미지수다.
-유년기를 무술로 보내다가 영화계로 진출한 계기는 무엇인가? 무술대회를 5연패하고 향후에는 중국체육학교에서 무술선생으로 순탄하게 살 수 있는 장래가 있었는데 새로운 분야로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무술을 익혔다. 1973년 이소룡이 사망하고 영화계 사람들은 무술에 뛰어난 새로운 배우를 찾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주목했던 내가 17살이 되자 그들은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소림사>를 찍게 됐다. 올림픽이나 오스카상을 노릴
이연걸을 만나다 [3]
-
<황비홍> _ 액션영화의 ‘진맛’을 처음으로 맛보다
이연걸에게 진정한 도약이 된 영화는 널리 알려진대로 <황비홍>이다. <황비홍>에 대해 이연걸은 “좋은 액션영화를 만들기 위한 감각을 알려준 영화”이며 “격투장면이 관객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를 처음 깨달았던 계기”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전까지는 액션장면을 구성하고 연기하기에 주력했고, 그것이 어떻게 보여질지는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액션장면을 상의하려고 집으로 찾아온 이연걸에게 서극이 보여준 자료는 자연다큐멘터리였다고 한다. 사자가 먹이를 잡는 과정을 보여준 서극은 “우리 액션장면은 이렇게 진행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이연걸은 반복해서 그 장면을 살펴보면서 “순식간에 일어나는 폭력 이전에 고요함이 주는 긴장”을 마음속에 새겼다. 불과 바람이 일렁이고 두 인물이 합을 겨루기 전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황비홍>의 마지막 격투장면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연걸을 만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