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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요청으로 해고자의 장례식장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는 예지(조여정)의 카메라가 멀찍이 보인다. 술을 마시느니 마느니 하는 호석(설경구)과 미옥(전도연)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자, 어느새 카메라의 거리가 달라져 있다. 호석은 가까이 다가온 카메라를 발견하고 거부 의사를 밝힌다. 그날 이후 예지는 호석이 자신의 카메라 앞에 서주기를 바라며, 그의 아내 미옥을 통해 관계를 만들어가려 노력한다. 누군가는 찍고, 누군가는 찍혀야 한다. 인물 혹은 사건을 담는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현실의 독립다큐멘터리 제작 현장에서 감독은 자신이 찍고 싶은 인물이나 대상과의 관계를 쌓기 위해 카메라 없는 시간을 꽤 오래 보내기도 한다. 찍히는 사람은 이 사람이 신뢰할 만한 감독인지 탐색하고, 감독 역시 그에 대한 신뢰를 쌓아간다. 그렇게 서로의 세계가 뒤섞이고, 충돌하기도 협력하기도 하며 작업은 진행된다. 하지만 <가능한 사랑>의 예지는 다큐멘터리스트로서
[기획] 예지(의 카메라)를 향한 변명 - 다큐멘터리 감독의 시선에서 본 <가능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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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은 명실상부 숭고의 작가였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가 보여준 정동이란 숭고의 영역에 가까웠다. 불가역의 시간, 태생의 한계와 사랑의 미혹, 죽음의 부조리와 용서의 난해함, 허구로도 헤아리기 어려운 생의 고통이란 인간이 통제할 요량 없이 그저 겪어내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다. 그 불가해함의 크기에서 우리는 무언가 거대한 것과 마주했다는 인상, 즉 숭고를 체감했다. 이때 이창동은 이미지를 의식의 중핵에 겹치는 일에 누구보다 능숙한 이였다. 거대한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편이 아니라, 거대한 것을 이미지 내부에서 다 설명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밀양>의 마지막, 신애(전도연)에게 비치는 햇빛의 명도와 경계 없음이란 언어로 갈무리될 수 없는 이미지만의 결정력이었다. 신의 비정한 평등함이라는 의식이 햇빛으로 치환됐다. <시>에서 치매로 진단받던 미자(윤정희)는 의사의 엄중한 말씨에도 불구하고
[기획] 형상, 공간, 시간의 작음 - 숭고의 관점에서 본 <가능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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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사랑>의 마지막 장면은 시점숏일까, 플래시백일까? 이건 어리석은 질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집에 돌아온 미옥과 호석 부부는 마당에 앉아 밤하늘의 보름달을 바라본다. 그들의 시선에 비친 달이 화면을 채우고 나면 잠시 뒤에 영화가 끝난다. 이 장면은 누가 보더라도 카메라가 두 사람의 시선을 대리하는 시점숏이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상상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이 장면은 누군가의 플래시백일지도 모른다. 한밤의 마당에서 언젠가 떠오른 보름달을 지켜보던 기억 속의 시선인지도 모른다. 억지스러운 상상일까? 무언가를 바라보는 인물의 시선과 그 눈에 비친 대상의 모습을 이어붙일 때 영화는 두 장면이 동일한 시공간에 존재한다는 연결의 약속을 전제한다. 다만 그 약속에는 분명한 근거가 없다. 영화 이미지의 표면에는 명시적인 좌표와 시제와 주체의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가능한 사랑>의 결말에 나타난 보름달의 이미지가 두 사람이 바라보는 시선의 대상인지,
[기획] 시점숏과 플래시백, 혹은 범용한 이미지를 나눈다는 것 - 우화로서의 <가능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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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여러 각론을 부르고 있다. 작중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등장하는 예지(조여정)의 윤리성부터 시작하여, 영화 속 상징이나 구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등장하고 있다. 거장의 복귀작다운 화제성이다. 이에 <씨네21>은 <가능한 사랑>을 보는 네 가지 시선을 준비했다. 김병규 영화평론가는 카메라 없이 꿈꾸는 영화의 시선이 무엇일지, <가능한 사랑>의 영화적 논제를 화두로 던진다. 이우빈 기자는 이창동 감독이 꾸준히 천착해온 숭고의 관점에서 <가능한 사랑>의 문제를 지적한다. 실제 쌍용자동차 집단해고 사태를 취재해온 하샛별 다큐멘터리 감독의 시선을 통해 작중 다큐멘터리 요소의 활용에 대해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전문가로서 미옥(전도연)과 호석(설경구)의 아들 철이를 통과하여 <가능한 사랑>과 근래 한국영화의 자폐스펙트럼 인물들을 진단한다. 영화의 마
[기획] 무엇이 가능해진다고 읽으셨나요 - <가능한 사랑>을 보는 네 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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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길면 곳곳이 이야기가 많은 법이니…(중략)…이리로 들어와 거니는 이는 새 힘을 얻어 흐뭇한 웃음을 웃고 가리라.’-탑골공원 사적비(1967)
역사를 보존하는 방법 중 가장 흔한 것은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다. 1919년 3월1일, 독립선언문이 낭독됐던 탑골공원에는 그로부터 48년이 지난 후, 국가적인 정비사업을 거친 후에야 기념비가 세워졌다. 역사가 기념비의 형상으로 사람들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누구의 손에 의해 측정되는가. 언젠가부터 한국영화는 질곡의 역사를 재현을 통해 재정비하는 일에 몰두해왔다. 가령 <택시운전사> <변호인>과 같은 현대사를 다뤄온 영화들은 이미 확정된 역사적 사실을 영화로 변환하여, 진리를 추구하거나 혹은 교육적 역할에 충실한 페다고지로 기능하면서 올곧은 이미지를 취득했다. 그런가 하면 <1987> <서울의 봄>을 비롯한 몇몇 영화들은 시대상과 인물들을 최대한 정밀하게 묘사하고 재현하는
[기획] 비문을 새기는 손(들) <암살자(들)>, 재현보다 허구로 의혹의 빈자리를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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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들)>이 개봉 직후 ‘또 하나의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자, 국민의힘 등 자칭 ‘보수’세력은 대대적인 백래시(반발)를 시작했다. 그들의 세 가지 콤플렉스가 동력이 됐다. 첫째 역사 콤플렉스. 그들은 ‘좌파’가 역사를 독점한다고 믿는다. 그 피해의식은 스타벅스코리아와 배재고 야구부가 야기한 논란을 거치며 근래 더욱 짙어졌다. 둘째 영화 콤플렉스. 그들은 영화가 여론과 정치를 움직인다고 믿으며, 그 영화판을 ‘좌파’가 장악했다고 여긴다. 가령 후쿠시마 참사 이후 논쟁 결과 월성1호기 하나가 폐쇄됐는데도 ‘영화 한편(<판도라>) 때문에 탈원전 정책이 시작되었다’는 서사를 만들었다. 셋째 ‘유가족’ 콤플렉스. 그들은 반정권 투쟁으로 나아간 세월호 참사·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반감을 갖고 있다. 이번엔 자신들이 ‘육영수(박정희)의 유가족’처럼 처신한다. 실제 유가족인 박근혜씨가 유영하 국회의원을 통해 입장문을 내자 그들의 사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기획] 뒤늦고 설익은 반항 vs. 퇴행적 극우 백래시 - 독재의 후과로 만들어진 한국 사회 ‘반감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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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들)>을 향한 공방은 2주째 작품과 무관한 방향으로 비화 중이다. 지난주 1576호의 보도(‘<암살자(들)>, 스크린 밖에서 이어지는 공방’) 이후로도 논란의 불씨는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조직적 관람평 조작을 밝히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주연배우의 자택 앞에서 영화 상영 중단 및 배우 외모에 정파적 의미를 덮어씌우는 위협적 집회가 이어지더니 제작사와 배급사는 배우들이 나서는 개봉 2, 3주차의 무대인사와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보수정당이 우세한 지역에선 영화 상영이 중단되는 일마저 발생했다. 이때 파고들 문제는 누가 불길에 장작을 지피느냐다.
21세기 한국영화 뉴스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독자라면 작금의 사태에서 <그때 그 사람들> 공방을 떠올릴 터다. 2005년 10·26 사건 당일을 다룬 임상수 감독의 블랙코미디가 개봉하자 박지만(박정희의 아들)은 영화가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유족의
[기획] 영화는 정쟁의 도구가 아니다, <암살자(들)> 개봉 이후 벌어진 일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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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8일 현재 252만 관객을 돌파한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논의는 정쟁으로 번졌고 여야는 <암살자(들)>의 제작진을 국정감사의 증인, 참고인으로 세우는 문제를 두고 대립한다. 고발과 고소, 취소와 강행이 극장과 각종 영화제에서 저마다 반복 중인 이 사태에 대해 국내 언론은 물론 <버라이어티> <스크린 데일리> 등 영미권 매체까지 매일 주시하며 기사를 발행한다. <씨네21>은 지난주에 이어 이번호에서도 영화 전문 매체로서 <암살자(들)>을 두고 스크린 밖에서 이어지는 공방을 전한다. 지난 3주간 발생한 쟁점에 대한 정리 그리고 사태를 바라보는 김수민 정치평론가, 문주화 영화평론가의 비평을 싣는다. “관객의 판단을 정치가 대신하지 않”도록(10월8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발표된 영화인 공동입장문의 일부), <씨네21>역시 취재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어지는 글
[기획] 무엇이 논쟁인가 그리고 논쟁을 누가 확산시키는가 -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 쟁점 타임라인과 사태에 대한 정치평론가, 영화평론가의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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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을 통한 우리의 목표는 미처 이름을 못 가진 탓에 무시되고 오해받는 존재 목적들과 존재 양식들을 복권하는 것이다.” 지난 8월 영상 비평 웹진 <횡단>이 창간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전문사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매체다. 동시대의 다른 시네클럽들이 고유한 색채의 상영회를 중심으로 하여 활동한다면, <횡단>은 글의 형태로 본인들의 사유를 알리는 중이다. 이제 막 시작한 비평지에 대해 말한다는 일이 다소 섣부를 수는 있다. 그러나 <횡단>이 보여준 비평의 너른 형태가 여러 기대감을 부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횡단>은 영화를 비롯해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온라인 생태계, 게임 등에 관하여 다양한 비평을 가한다. 더불어 영화·영상 제도와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않는다. 서울영화센터를 둘러싼 논란, 제1회 서울청소년실험영화제의 시도, 강릉시의 정동진독립영화제 예산 삭감 문제에도 더듬이를 세우며 여러 기획·인터뷰 기사를
[인터뷰] 비평의 틈새를 찾아서 - 영상 비평 웹진 <횡단> 편집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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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에 대해 학문적으로 정립된 정의는 없다. 다만 시네클럽에 대한 지배적인 서사는 있다. 이 서사에 따르면 시네클럽은 양차 대전 시기 파리를 중심으로 탄생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제도화된 시네마테크와 더불어 팽창했으며, 영화에 대한 특별한 사랑과 가치를 공유하고 이에 근거하여 특정 영화를 선정하고 상영하는 관객과 전문가 집단(영화감독과 비평가를 비롯한 영화인뿐 아니라 인접 예술 종사자와 지식인도 포함한다)에 의해 운영되었다. 상영 및 토론, 출판물 발간 등의 활동을 통해 시네클럽은 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정전과 시네필리아 이념을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
물론 이것은 시네클럽에 대한 서유럽 중심의 서사다. 최근의 영화사 연구는 유럽 내에서도 스페인과 동구권,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시네클럽으로 관심의 저변을 넓혔으며, 이 과정에서 이 지역들의 시네클럽이 고전영화, 예술영화, 전위영화만을 상영하지 않았고 정치적, 교육적 기능 또한 수행했음을 밝혔다. 아시아로 초점을 이동하자면 대만과
[특집] 연속성과 차이들 -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시네클럽, 그 과거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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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의 시네클럽 6곳을 소개한다.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다양한 상영회와 세미나 등의 활발한 기획을 보여주는 시네클럽들이다. 서울과 수도권뿐 아니라 부산, 대구와 같은 지역에서의 움직임도 함께 포착하려 했다. 각 시네클럽에 대한 상세 정보는 함께 게재한 SNS 계정을 참고해도 좋겠다.
영화 집단 키니마
인스타그램/ @kinima_kr
거점/ 서울 마포구
주요 활동/ 세미나 ‘모험으로서의 영화비평’, 상영회 ‘전시의 영화들’, ‘씨네마지옥’
영화 집단 ‘키니마’는 ‘움직임’, ‘사회운동’, ‘쿠데타’, ‘예술 사조’ 그리고 ‘영화’ 등을 의미하는 현대 그리스어 낱말(κίνημα)에서 이름을 따왔다. 초기~고전기 영화와 동시대 무빙 이미지 작업을 꿰뚫는 비평적 지점을 모색하고 그 필요성과 방법론을 탐구하고자 하는 의지로 설립됐다. 라울 월시, 에른스트 루비치 등의 고전영화를 상영하면서도, 임철민, 장윤미, 박진용 감독 등 본인만의 영화적 방법론을 실천하는 동시
[특집] 상영회, 세미나, 모임, 출판에 스터디까지 - 6곳의 시네클럽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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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씨네21>은 1494호 특집기사 “마이크로시네마 가이드”를 통해 최근 두드러지는 새로운 영화 문화의 움직임을 종합했다. 통상적인 극장이나 영화제 등 기존의 영화 문화 바깥에서 자체적인 영화 상영·비평·출판·배급·제작 활동을 이어가며 각자의 영화 문화를 조성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시각예술 커뮤니티 소리그림, 1인 배급사로 체제를 전환한 시네마토그래프, 스스로 “정체불명의 조직”(배은열 INK 집행위원)이라 부른 대전 INK, 상영회 집단 로트링겐 등을 만나고 취재하여 작금의 현상을 갈무리했다.
1년6개월이 지난 현재, 새 영화 문화의 바람은 더 눈에 띄게 강해지고 있다. 전국 곳곳 각자의 자리에서 펼치는 기획을 넘어 영화제, 기관, 학술세미나 등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감지하여 다루는 중이다. 영화제가 대표적이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지난해 ‘클럽 시네마’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마이크로시네마, 시네클럽, 커뮤니티 시네마의 이름으로 활동
[특집] 무언가를 하고 있다 - 시네클럽 혹은 시네마 이니셔티브를 향한 응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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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의 전성시대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 곳곳 자그마한 단위의 시네클럽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요즘이다. 기존 영화 문화에서 누리기 어려웠던 세밀한 프로그래밍과 상영회, 대화의 자리 등을 마련하며 영화 문화의 약동감을 살려내는 중이다. 영화와 극장의 위기가 시대의 수사처럼 여겨졌던 최근 몇년 사이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바람이다. 이 풍향을 느낀 기성 영화제, 극장, 기관 등은 여러 시네클럽의 활력에 주목하며 몇개의 리액션을 보이고 있다.
<씨네21>은 현재 흥미로운 모양새를 띠는 시네클럽들의 양상을 간략히 종합하면서 기존의 영화계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살폈다. 김지훈 중앙대학교 영화미디어학센터 디렉터는 과거 1990년대 한국에 불었던 시네클럽과 최근의 시네클럽이 어떤 점에서 닮았고 다른지를 회고했다. 마지막으로 주목하여 만난 시네클럽은 지난 8월 웹진 형태로 창간한 비평지 <횡단>이다. 상영회 중심의 시네클럽이 주요한 형태인 최근,
[특집] 영화 문화의 약동 시네클럽의 지금 - 동시대 시네클럽 소개와 1990년대와의 비교, 비평 웹진 <횡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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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귀여운 녀석들이 바캉스를 떠났다. 치이카와의 세계에서 지나치게 좋은 조건은 대개 위험신호다. 역시 귀여운 여름 모험으로 출발해 누가 괴물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쉽게 가를 수 없는 기묘한 윤리극으로 나아간다. 아이들에게 충분히 신나는 모험담이지만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노동과 포식과 우정과 선택의 문제가 자꾸 눈에 밟힌다. 물론 처음 온 사람도 괜찮다. 치이카와는 어떤 존재인지, 왜 이 귀여운 친구들이 자격증을 따고 괴물을 잡아야 하는지, 인어 섬으로 떠나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사실을 여섯 가지 질문으로 정리했다.
Q1. <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なんか小さくてかわいいやつ, 이하 <먼작귀>)을하나도 안 봤는데 극장판부터 봐도 되나요.
A. 괜찮다. 치이카와, 하치와레, 우사기가 친구라는 사실만 알고 가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이번 영화는 팬들이 흔히 ‘세이렌 편’ 혹은 ‘섬 편’이라 부르는 장편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한다. 보수가 높은 아
[기획] 귀엽다고 방심하면 잡아먹힌다 -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입문을 위한 6문 6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