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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의 영화보는 눈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물론 느끼는 건 있으니 좋아하는 영화도 있고 싫어하는 영화도 있지만 이것은 대개 전문가들의 세련된 평가와는 매우 거리가 있다. 10년도 더 전, 별로 되는 일도 없고 될 것 같은 일도 없던 시절, 한 친구와 나는 “뭐 재밌는 거라도 좀 보자”며 돈까지 빌려 극장에 갔다. 우리가 고른 영화는 바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어? 어? 하는 사이 영화는 끝이 나버렸다. 어렵사리 봤는데 느낌이 별로라면 피차 무안할 것 같아서 둘 다 썰렁한 기분을 누르고 “재밌지?” “응, 재밌어. 영화 좋네” 했던 기억이 난다. 이게 어마어마하게 화제가 되고 큰 상까지 받은 작품이란 건 나중에 알았다. 기분이 묘했다.그로부터 몇년 뒤.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던 옛 애인과 나는 뭔가 아주 웃기고 즐거운 영화를 봄으로써 분위기를 좀 따뜻이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역시 없는 돈에 <에이스 벤츄라>를 보았다. 결과는
이게 뭐 그리 대단하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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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호장룡>과 <환희의 집>(The House of Mirth)을 제치고 뉴욕비평가협회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스티븐 소더버그의 마약소재 드라마 <트래픽>은 대중문화에 관한 실로 야심만만한 서사극이다. 1989년 영국 TV가 방영한 미니시리즈 <트래픽>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영화는 이야기를 더 실감나게 만들기 위해, 무대를 옮겨 미국 국경 바로 남쪽에서 두명의 티후아나 경찰(베네치오 델 토로, 제이콥 버가스)이 마약수송기를 덮치는 장면으로 막을 연다. 그때 뜻밖에 다른 기관의 요원들이 나타나 이들을 따돌리고 현장의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이것은 이어지는 수많은 반전의 신호탄이다. 이어 카메라를 북쪽으로 돌린 소더버그는, 두 형사에 대응하는 미 법무성 소속 마약단속국(DEA) 요원 한쌍(돈 치들, 루이스 구즈먼)이 샌디에이고에서 비밀소탕작전을 수행하다 일을 개판치고 마는 장면, 오하이오의 상류층 10대 4인조가 마약에 흠냐흠냐 빠져 있는 장면
훈계하되, 오버하지는 않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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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트>가 샘 레이미의 영화가 아니라면, 그래도 참을 수 있다. <기프트>는 스릴러물로는 그냥 그렇다. <왓라이즈 비니스>가 미리 선보이지 않았다면, 그 소재만이라도 봐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기프트>는 빌리 밥 손튼이시나리오를 썼다.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썼다는 <기프트>의 시나리오는, 전반부는 높이 살 만한 구석이 있다. 미국 남부,늪지대가 도처에 자리잡은 시골 마을. 남편이 죽고, ‘저주받은’ 재능을 이용하여 근근히 살아가는 여인이 있다. 그녀는 타인의 운명을 보는‘예언자’ 혹은 ‘점쟁이’다.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하는 그 여인의 모습과 그녀가 애정을 갖는 하층계급의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뛰어나다. 동시에 <기프트>는그들과는 반대의 자리에 서 있는, 상류계급의 인간들에 대해서는 명백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그들에 대한 세부가 일면적인 것은 분명하지만,그들의 타락상을 적시하는 것만은 뛰어나다. 단순히 정치적
변절한 시네키드, 웃음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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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OFFICE(서울) 4.14-4.15순위TITLE개봉일스크린좌석수주말서울누계전국누계1친구2001.03.317122,313189,1971,125,9193,188,6752선물2001.03.24265,78227,360411,360984,3643리멤버 타이탄2001.04.14225,47921,90023,40041,5004기프트2001.04.14246,34719,50020,70045,00*5미스 에이전트2001.03.31122,69015,500153,000380,000*6던젼드래곤2001.04.07203,87415,00059,200140,0007베로니카2001.04.1491,5405,2535,25311,3278천국의 아이들2001.03.1747794,062196,409348,9079내마음의비밀2001.04.1435081,0001,0003,00010번지점프를하다2001.02.032116950507,000947,00011트래픽2001.03.101116800228,951468,466(* 자사
국내 박스오피스 4.1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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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국내개봉 영화 가운데 최악의 영화와배우를 선정하는 `제1회 레디스톱(Ready Stop) 영화제'가 인터넷 사이트(www.readystop.com)에서 열린다.네티즌을 대상으로 최악의 영화를 선정함으로써 영화보기의 올바른 시각을 제공하고 한국영화의 흐름을 살펴보려는 일종의 대안영화제로 기획된 것이다.네티즌 투표로 수상자를 뽑는 이 영화제는 △최악의 작품상 △최악의 감독상 △최악의 남우주연상 △최악의 여우주연상 △최악의 남우조연상 △최악의 여우조연상 △최악의 신인남우상 △최악의 신인여우상 △최악의 각본상 △최악의 인기상 등 10개 부문에 걸쳐 시상한다.이 가운데 최악의 인기상은 네티즌들이 직접 선정하고, 나머지 9개 부문은 영화계를 비롯한 문화, 예술, 언론계 인사들로 구성될 전문 심사위원단이 네티즌들이 1차 예심을 통해 선정한 부문별 후보작을 대상으로 수상작과 수상자를 뽑는다.영화를 좋아하는 네티즌들이 주최하는 이번 영화제 시상식은 23일께 있을 예정이다.시상식 장소는
`레디스톱 영화제`..최악영화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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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오페라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오페라보다 더 만들기 어려운 영화가 바로 발레영화입니다. 오페라는 기본적으로 음악 중심이니까 아무리 음악과 각본이 고정되어 있다고 해도 감독은 상당한 시각적 자유를 허용받을 수 있습니다.하지만 발레는 그게 힘들어요. 물론 훌륭한 발레영화도 있습니다. 파웰과 프레스버거의 <분홍신>이 대표작이죠. 하지만 <분홍신>의 발레는 영화를 위해 특별히 따로 안무한 것입니다. 스크린을 통해서 보면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실제로 무대에서는 연출이 불가능한 작품이죠.<분홍신>과는 반대로, 기존 발레들은 전적으로 무대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각의 평면이라는 무대 안에 갇혀 있는 것이죠. 마크 분처럼 용감한 안무가들은 시대 배경을 바꾸고 동성애와 같은 요소를 첨가하면서 고전을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그 역시 무대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4막 발레인 건 마찬가지예요.오늘 이야기하려는 폴 친너의 발레영화 &l
발레영화, 미션 파서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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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빈슨 크루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로빈슨 크루소의 끈질긴 ‘삶의 투쟁’을 보았을 때도, 별반 감동하지 않았다. 꼭 그렇게 힘들여 살아야만 하나? 나이가 들어 ‘제국주의적’인 야심을 은근히 드러내는 근대정신의 수호자라는 것을 안 뒤에는 씁쓸했다. ‘생존’을 위하여 야생의 섬과 원주민과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려 드는 건 분명 고약한 심성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를 백인들의 휴양지처럼 만들어버렸다. 물론 한 개인으로서의 생존본능까지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생존은 그 자체로 의미있을 수도 있다. 나 같으면 게을러서 얼마 안 가 죽어버렸을 가능성이 크지만.어쨌거나 Q채널에서 지난해 미국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서바이버>를 방영한다고 했을 때, 별 관심이 없었던 건 그런 배경 탓이었다. 수만명의 지원자 중에서 16명을 오지로 보내고, 그곳에서 투표를 통해 하나씩 탈락되어 마지막에 남은 ‘최후의 1인’이 100만달러
인간에 대한 지독한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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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 사랑>히로시마에서 만난 프랑스 여배우인 ‘그녀’와 일본인 건축가인 ‘그’. 각자 배우자가 있는 이 두 사람은 불륜의 관계를맺게 된다. 이제 그녀는 히로시마를 떠나려 하고 그는 그녀에게 떠나지 말라고 설득한다. 알랭 레네 감독, 에마뉘엘 리바, 에이지 오카다출연, 동숭아트센터 수입·배급, 상영시간 91분심영섭 시간을 구부려 영화의 심장을 쏘다 ★★★★유지나 홀린 듯이 보다보면 영화매체의 매혹이 드러난다 ★★★★☆홍성남 모던 시네마의 진수, 여전히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박평식 ‘기억의 문’을 가장 아프고 쓸쓸하게 여닫은 영화였지 ★★★★■<사국>세 단짝친구 사요리, 후미야, 히나코. 무당의 딸인 사요리는 단짝친구 후미야를 좋아한다. 15년 뒤, 히나코는 성인이되어 다시 고향을 찾고 사요리가 16살 되던 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나가사키 슈니치 감독, 나쓰카와 유이 출연, 동아수출공사수입·배급, 상영시간 102분박평식 적막한
히로시마 내 사랑 / 팬시댄스 / 사국 / 비밀의 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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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 종>(1961)을 만들 때의일이다. 의정부 끝자락에 위치한 망월사라는 절이 촬영장소였는데, 카메라와 그에 딸린 발전기가 워낙 무거워 절까지 갖고 올라가는 게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었다. 그때 촬영부의 최재형이라는 덩치 좋은 스탭이 짐을 떠맡게 되었다. 그는 한참을 씰룩대며짐을 옮겨놓더니 다짜고자 “어떤 xx가 이딴 장소를 헌팅했어?”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주범은 다름 아닌 나와 홍 감독이었다. 우린 그저웃음만 띠고 있을 뿐이었다. 고생은 배우도 마찬가지였다. 날씨가 더워 사극예복의 물감이 배우들의 피부에 묻어나와, 신이 끝나면 온몸이 파랗게물든 배우가 한둘씩 생기곤 했다. <춘향전>의 참패 이후 홍성기와 김지미의 사이는 예전처럼 살갑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홍성기와의스캔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현지인과 결혼한 염매리가 잠시 고국에 온 일이 있었다. 어쩌다 그 소식을 들은 홍성기가 그녀에게 연락을 했고,잠시 얼굴을 보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페르소나를,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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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가 150편에 육박하는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었고,그 영화들을 모두 합친 시간보다 더 긴 분량의 TV드라마 대본을 썼으며, 그와는 별도로 100권을 훌쩍 넘는 저서들을 남겼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게다가 그 100여권의 저서들 역시 단일한 장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집·대하소설·역사에세이·평론집·희곡·시나리오집·작법서 등 이른바 문학이라일컬어지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고 있다면? 이 절륜의 필력을 자랑하는 불세출의 대작가가 초당 신봉승이다. 흔히 신봉승 하면 1983년부터 90년까지장장 8년 동안 MBC를 통해 방연된 <조선왕조실?gt; 시리즈를 떠올리며 정통사극의 완성자이자 방송작가의 대명사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만,이는 망망대해를 연상시키는 그의 가없는 그릇에 비하여 너무 옹색한 평가에 불과하다. 그 드넓은 바다를 이 좁은 지면에 비추어보자니 스스로 무모하다는자탄에 빠져 자판에 손가락이 가지 않는다.강릉 출생의 신봉승은 고향에서 강릉사범을 마친 이후 수년간초등학
정통사극을 완성한 전방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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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이 어떻게 바뀌어도 변은정은 제목 그대로다. ‘아름다운 청춘’이고, ‘스물넷’이다. 자신의 스물넷은 어떻다고 생각해요? 희망,
설렘이에요.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명쾌한 명사가 날아왔다. 그런 그녀에게선 롤리타 렘피카 향수보다 화사한, 스물넷의 향기가 풍긴다. 시작은, 권유였다. 언니(모델 변정수씨)한테 돈타 쓰던 22살 어느 날, 나한테 돈 그만 타 쓰고 니가 벌어 써라,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그렇게 뛰어든 CF계. 모토롤라에서 라네즈 향수, 미장센까지 CF계를 돌아 스크린까지 걸어왔다.
질문을 던지면, 대뜸 하하하 웃었다. 왜 <스물넷>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대뜸 하하하. “우연이었죠. 하지만 제안을 받고는 지금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생각했어요.” <스물넷>은 소집해제를 한달 앞둔 공익근무요원이자 스물네살인 청년 준이(김현성)가 우연히 다시 만난 옛사랑 은지와 은지의 동생 현지(김민선)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이야기. 준이를 다시
스물넷의 24시, 언제나 맑음, <스물넷> 배우 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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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생·LA 레코딩 워크숍 졸업·UCLA 뮤직 비즈니스 레코딩, 엔지니어링 수학·<비트>(아태영화제 사운드이펙트상) <반칙왕>(한국영화축제최우수녹음상) <오! 수정>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눈물>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파이란> 등 녹음. 라이브 톤 소속. 영상원 전문사 믹싱 강의뻥튀기 영화가 좋다.소위 리얼리티 영화는 할 일이 없다. 어떤 감독의 경우는 배경음에 애들 노는 소리를 넣어놨더니 현장음이 아니라며 빼달라고 했다. 애들 노는소리가 리얼리티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리얼리티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태영씨가 생각하는 리얼리티란 현실적 음이 한번더 ‘리얼하게’ 가공될 때 생긴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더라. 가죽점퍼가 내는 소리가 졸라봤자 때만 나올 헤드락보다 더 리얼하고, 휴지에물을 묻혀서 짜는 소리가 피를 흘리는 소리보다 더 리얼
뻥튀기영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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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를 또 하라고? 실베스터 스탤론이 80년대 자신을 영웅으로 그려낸 람보시리즈 최신판의 캐스팅 제안을 거절했다. “가죽채찍을 든 내 모습이 이제는 괜찮아보이지 않을 것 같다. 생각 같아서는 한번 더 하고 싶기는 하지만, 이 나이에 어울리겠냐”면서 정중히 고개를 저었다고. 첫 번째 람보영화를 찍을 때 36살이던 그는 이제 55살. 그는 최근 레니 할린 감독이 연출한 자동차경주 액션물 <드리븐>을 찍었고, 이 영화는 곧 미국 내 개봉한다.
람보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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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필름 누아르는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클로드 샤브롤(71) 감독이 얼마 전 프랑스에서 열린 코냑 스릴러영화 페스티벌 개막 연설에서 모국의 필름 누아르 장르를 걱정했다. “몇몇 감독들이 요즘 누아르 장르로 돌아오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걱정을 거둘 만한 정도는 못 된다고. “그들은 장르의 법칙에 복종하려는 생각을 안 한다. 미국이나 아시아는 그렇지 않다”고 샤브롤은 말했다. 그1958년 첫 작품 <미남 세르주>를 만든 이래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명으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5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그것이 바로 스릴러 장르의 아름다움이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스릴러는 단순한 오락 장르가 아니다.” 노장의 새 영화 <초콜렛 고마워>는 곧 영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클로드 샤브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