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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에는 섬뜩함이 있다.그가 그려내는 현실은 지나치게 예리하다. 그걸 보고 있으면 내 살점 어딘가가, 혹은 가슴 한구석이 베어져나가는 듯한 서늘함이 느껴진다. 막막해진다.‘강령’이라도 되어, 내 안에 다른 영혼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처럼.<큐어>에서 살인자의 희생물이 되는 시골 부부는 단 한번의 싸움도 하지 않은 잉꼬부부였다. 어린 시절부터 속속들이 서로를 알고 있는부부이기 이전에 친구. 하지만 살인자의 ‘사술’에 걸려들어, 남편은 아내를 죽인다.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어떤 악의 그림자, 혹은 잿더미같은 것들이 되살아나서. 그걸 보고 있자니, 너무 많은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전주영화제에서 상영한 <강령>을 보니, 그 순간이 또 떠올랐다. 너무나 착한 부부는, 한순간의 욕망 때문에 낭떠러지로 떨어진다.그걸 잘못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강령의 힘을 가진 아내는, 그 ‘기프트’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조차 힘들다. 그 ‘기프트’를 이용하면
절대선은 없다, 절대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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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하| 대중문화평론가 oheunha@hotmail.com내가 가장 좋아하는 액션배우는 아놀드 슈워제네거다. 물론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아주 멋졌지만 그뒤로도 유치원도 가고 아들 선물을사려고 무진 애를 쓰기도 하고 심지어는 임신까지 하는 모습에서 친근감을 느꼈다. 가장 싫어하는 액션배우는 장 클로드 반담이다. 내가 이 사람에게감사하는 것은 제목들이 더러 ‘장클로드 반담의 **’ 하는 식으로 이름을 명시해주어 즉각 피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설명하기 창피할 정도로 구질구질하고 기구한 사정으로 인해 <엑시트 운즈>를 보게 됐다. 제목으로 미루어 액션영화인 것 같다는 것만짐작할 뿐 주인공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나는 제발 반담만은 아니기를 초조하게 빌었다. 다행히 그 바람은 이루어졌으나. 아아, 스티븐시걸. 반담에 비해 나은 점이 있다면 섣부른 연기를 아예 시도조차 안 한다는 점 정도일까. 평생을 같은 표정과 같은 복장으로 일관하며 때가되면 액션
노력이냐, 새출발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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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머스 해리스가 있는 뜸 없는 뜸 다 들인 끝에 <양들의 침묵> 속편을내놓았을 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티븐 킹 같은 사계의 권위자가 한니발 박사를 “우리 시대 소설이 낳은 가장 위대한 괴물”이라고 치켜세우며극찬을 했다. 그러니 그 기대감이 오죽하랴만, 돌아온 렉터의 영화를 목빼고 기다려온 분들이여, 그만 고정하시고 눈높이를 낮추시라.영화판 <한니발>은 괴물이라기보다는 그저 괴이쩍을 뿐이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속편으로 따지자면, 바보천치같은 <대부3> 따라갈 영화가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니발>에 구원 따위는 없다. 그저 떼돈 벌 욕심에 눈이 먼패거리들 외에는. 그리고 돈 버는 일이 꽤나 엄숙한 과업이라도 된다는 듯이, 할리우드 스튜디오 두곳에다 리들리 스콧, 데이비드 마멧, 스티븐제일리언 같은 몸값 비싼 재주꾼들 여럿, 뿐만 아니라 플로렌스시까지 이 일에 뛰어들어 구색을 맞춰주었다. 비록 열의의 대부분을 영화포스터찍는 데 탕진
렉터? 기대하면 후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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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뚱뚱한 여자예요.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있고요. 커다란 옷을 입었어요. 옷이헐렁거리는데 양끝 손은 손이 아니라 불이 막 타올라요. 응… 손으로 자기 배를 막 밀고 있어요, 얍 하면서. 막 화내요….” 이제 막 8살이된 꼬마환자는 대체 이 흐리멍덩한 잉크반점에서 어떤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일까. 핑클과 이소라의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흉내내고, 연극을 하는듯 “엄마, 죄송해요. 절 용서해주세요”라며 셰익스피어의 여주인공보다 더 구슬피 흐느끼는 이 조그만 성격배우의 세상은…. 그녀의 반응에그림자를 덧씌우고 가위로 오려내본다고 치자. 혹 그녀가 꿈속에서라도 프랑스의 애니메이터인 미셸 오슬로 감독을 만났던 것은 아닐까? 그도아니라면 그녀가 말한 무의미한 잉크반점 속에 커다란 옷을 입은 여자와 <프린스 앤 프린세스>에 나오는 기모노를 입고 도둑의 배를발로 조이는 노파는 왜 그리도 비슷한 그림자로 내 머릿속 명암의 경계를 지워내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그 기모노를 입은 노파를 살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입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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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소시스트>여배우 크리스는 딸 리건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다. 의사들은 리건에게 신경장애란 진단을 내리지만 날이 갈수록 리건의발작은 심해진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 린다 블레어, 막스 폰 시도 출연, 워너브러더스 수입·배급, 상영시간 130분박평식 악령, 그 가공할 파괴력과 예지력에 대해서 ★★★★■ <투발루>아직도 수영장이 성황이라고 믿는 눈먼 아버지에게 소음을 틀어주면서 살아가던 안톤의 수영장에 아름다운 소녀 에바가 찾아오고,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파이트 헬머 감독, 드니 라방, 슐판 하마토바 출연, 오성미디어 수입, 필름뱅크 배급, 상영시간 100분박평식 채플린의 화폭에 쿠스투리차의 붓으로 그린 담채화 ★★★☆유지나 무채색 여행으로의 초대. 심심해도 묘미가 있다 ★★★☆■ <에너미 앳 더 게이트>1942년 소련을 침공한 히틀러의 제3제국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장기전에 들어간다. 소련군 선전장교 다닐로프는 막 전장에 투입된 병사
엑소시스트 / 투발루 / 에너미 앳 더 게이트 / 웨어 더 머니 이즈 / 첫사랑 / 교도소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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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의 한국영화를 논할 때 반드시고려에 넣어야 할 것이 이른바 문예영화라는 개념이다. 막연히 “예술성 높은 문학작품을 각색한 영화” 정도로 이해되고 있지만 정작 그 개념의본질적 규정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덕분에 오리지널 시나리오인 김지헌의 <만추>나 이상현의 <한> 등이 문예영화의범주로 분류되자 그 개념을 놓고 일대 공방전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도대체 문예영화라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 개념으로 떠올랐을까? 간단하다.이른바 문예영화라는 것을 만들면 정부로부터 외화수입쿼터를 할당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이 5.16쿠데타 직후 과거 일제시대의영화법을 그대로 베껴 만든 졸속 영화법 때문에 빚어진 웃지 못할 촌극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악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다. 흥행성을 염두에두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도 된다는 것은 작가나 감독에게 얼마나 황홀한 작업조건인가?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의 상당 부분이 바로 이문예영화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틈
문예영화의 막차를 탄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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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식모>(1968)가 흥행을 하고 나서한참 뒤의 일이다. <서울의 지붕밑>(1961)으로 데뷔하여 <말띠 여대생>(1963), <소문난 여자>(1966)등으로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던 이형표 감독이 나를 찾았다. <남자식모>의 리메이크건(件) 때문이었다. 원작자인 임화에게서 이미허락받은 상태여서 나 역시 반대할 이유는 없었으나 몇 가지 단서 조항을 달기로 했다. 먼저 영화 속에 쓰인 나만의 독특한 기법을 다시 사용해서는안 된다는 점과 두 번째로 감독협회에 50만원을 기부하는 조건이었다. 나만의 독특한 영화적 기법이란 서브타이틀을 야채로 표시한 것인데 지금은종종 재미있는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이 방식이 당시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당근이나 배추, 양파 등으로 등장하는 직함과 이름을보며 관객은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했고,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단박에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것은 또한 <남자식모>를 관객의뇌
엽기의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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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mpireHunter D 제작매드하우스 감독 가와지리 요시아키 수입·배급 튜브엔터테이먼트 개봉예정 6월16일일본 애니메이션의 장점 하나는 ‘액션’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움직임’의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 사실성보다도시각적 쾌감을 중시한다고나 할까. <뱀파이어 헌터 D>의 가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의 작품은 특히 그렇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첫 한국개봉작인 <무사 쥬베이>나 비디오로 출시된 <마계도시>의 액션은, 자극적이다 못해 아름답다. 아니 황홀하다. <마계도시>그리고 <요수도시>와 <뱀파이어 헌터 D>의 원작자인 기쿠치 히데유키가, 기묘한 액션이 돋보이는 자신의 소설들을 가와지리요시아키에게 맡기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아득히 먼 미래. 최종전쟁 뒤 인간 위에는 귀족 뱀파이어들이 군림하고 있다. 인간 역시 뱀파이어에 대항하기 위해 전문 뱀파이어 헌터를 만들어내고,그들을 앞세워 싸워나간다. 그중
슬프고도 황홀한 유혈의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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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달밤’. 얼핏 들으면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인 듯한 제목의 이 영화는 현재 경주에서 막바지 촬영이 한창인 김상진 감독의 코믹액션물이다. 이성재, 차승원, 김혜수가 주연을 맡아, 한때 삼각관계를 다룬 멜로물이라는 오해를 받던 제작진은, 지금은 <친구>의 코믹버전이 아니냐라는 해괴한(?) 소문까지 돌고 있다고 귀띔한다.지난 4월 초 세명의 배우가 횟집에서 만나는 장면을 공개하고 멜로물로 비쳐질까 고심하던 제작진은 액션장면 현장을 한번 더 공개했다. 지난 5월 초 촬영현장인 경주 보문단지 내의 한 별장에서 만난 김상진 감독은 떠도는 소문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다. “<주유소 습격사건>이 막가는 코미디라면 이 작품은 드라마가 강한 코미디영화죠”라며 한마디 덧붙인다. “이거 적성에 안 맞는 영화하느라 죽겠어요.” 잠시 뒤 찍을 액션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이날 촬영장면은 영준(이성재)이 폭력조직 본거지에 부하를 구하러 갔다가 얻어맞는 장면. 그러나 정
달 밝은 밤, 주먹질은 계속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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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에서 너스 베티로, 또 브리지트 존스로 재미있는 캐릭터 변신을 하고 있는 르네 젤위거. 그가 <브리지트 존스의 일기>의 속편 캐스팅 제안을 받고 거절했다는 소식이다. 브리지트 역을 맡아서 다시 살을 찌우고 싶지는 않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는 젤위거. “아니에요. 9달이나 다시 런던에서 살기가 싫어 그렇죠! 누가 몸무게를 신경쓴다고 그러나요?” 공식적으로는 ‘무게’설을 부인했다. <브리지트 존스의 일기>에서 젤위거는 하룻동안 섭취한 칼로리와 담배갯수를 일일이 기록하는 주인공 브리지트 존스로 나온다.
몸무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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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스미스가 동화책을 썼다. <우리 단둘이>(Just the Two of Us). 이 그림동화책은 그가 이제 8살이 된 아들 트레이를 위해 가사를 썼던 동명의 노래를 ‘각색’한 것이라고. 요즈음 무하마드 알리의 전기영화 <알리>를 찍고 있는 윌 스미스. 그는 <우리 단둘이>를 가리켜 “첫 작품”이란다. 앞으로도 계속 동화책을 쓰겠다는 것. “야다(윌 스미스의 아내)와 나는 아이디어가 아주 많아요. 이 책을 내고 일단 반응을 살필 생각입니다.”
아이디어, 무궁무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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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 소피아 로렌이 생애 100번째 영화를 찍는다. 제목은 <이방인 가운데>(Between Strangers). 연출은 로렌의 아들 에도아르도 퐁티가 맡는다. “위대한 여배우이자 위대한 한 사람과 일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로렌의 아들은 말한다. <이방인 가운데>를 위해 두 모자는 LA에서 몇주 동안 리허설을 했다고. 구체적인 작품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은 채, <이방인 가운데>에는 제라르 드파르디외와 미라 소비노도 캐스팅된 걸로 밝혀져 있다.
소피아 로렌의 100번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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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멕시코에선?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데스페라도> <스파이 키즈>에 이어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작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에도 출연을 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는 <엘 마리아치> <데스페라도>에 이어 로드리게즈가 스파게티 웨스턴에 바치는 세 번째 오마주영화. 제목부터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들에서 따온 이 영화가 출연진을 물색하자,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로드리게즈의 ‘녀석들’이 들썩거리는 모양이다. 출연을 확정한 반데라스말고도 <데스페라도>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 함께한 쿠엔틴 타란티노도 ‘멕시코’로 돌아올 예정이고, 현재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생을 그린 <프리다>를 찍고 있는 샐마 헤이엑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반데라스와 함께 ‘멕시코’행을 하고 싶어하고 있다. “저급하고 더럽고, 더 실험적인 스타일”로, <스파이 키즈> 이후 <엘 마리아
멕시코로 간 총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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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5일 <공동경비구역 JSA>의 일본개봉을 앞두고 지난 5월5일 송강호와 함께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었던 박찬욱 감독. 그러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본행이 무산되어 아쉬워하던 차, 15일 송강호 대신 이영애와 함께 방일하게 되었다고. 이에 주변사람들은 하나같이 “전화위복입니다, 감독님”이라고 입을 모았다. 19일 귀국하는 박찬욱 감독은 23일 판문점에서 <니혼TV>와 인터뷰를 하고 이 내용은 일본개봉 전날 밤 <니혼TV> ‘오늘의 뉴스 특집’ 코너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박찬욱 감독, 일본행 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