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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르는 결코 내러티브영화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1988년 <누벨바그> 이후 13년 만에 칸영화제에 출품한 고다르의 신작<사랑의 찬가>에서 고다르 특유의 형식실험은 여전하다. 누군가를 향한 것인지 모를 대사, 쉬지 않고 반복되는 암전과 자막, 이미지와사운드의 엇갈림, 정지한 것과 움직이는 것의 묘한 대칭 등 <사랑의 찬가>는 일반 극영화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영화다. 사랑의네 가지 계기인 만남, 육체적 열정, 다툼, 헤어짐을 다루는 작품을 만들려는 남자가 있다. 그는 작품에 어린 남녀, 성인 남녀, 늙은 남녀세 커플을 등장시키려 하는데 성인 남녀에 관한 이야기에 문제가 생긴다. 마땅한 여자주인공을 찾지 못하던 남자는 3년 전 만난 적 있는 여자에게배역을 맡기려 하지만 그 순간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일반 극영화라면 충분히 따라갈 만하지만 고다르는 이같은 이야기를 완전히 분해해서이미지와 사운드의 단면만을 제시한다. 흑백으로 진
칸영화제 | 장 뤽 고다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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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태풍으로 세트가 완전히 박살나는 재난을 맞으며 제작기간이 하염없이 길어지자 온갖 악소문이나돌았고 <지옥의 묵시록>은 영영 완성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해 칸영화제는 완성되지 않은 이 영화를 경쟁작 목록에 넣음으로써파산 직전이던 코폴라를 구했다. <지옥의 묵시록>은 그해 폴커 슐뢴도르프의 <양철북>과 황금종려상을 공동수상했고, 흥행에서도제작비 3천만달러를 가뿐히 뛰어넘는 성공을 거뒀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나 53분을 추가해 재편집한 <리덕스>는 “1979년 개봉판에비해 더 깊고 어두우며 강력한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리덕스>에 새로 들어간 대표적인 신은 커츠 대령(말론 브랜도)을 암살하러간 윌러드 대위(마틴 신)가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고무농장에 머무는 장면. 베트남의 식민지 역사를 보여주는 이 신은 <지옥의 묵시록>을낳은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보여
칸영화제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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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다르와 코폴라, 영화의 신전에 돌아오다칸은 참을성을 요구하는 곳이다. 영화를 상영하는 곳 어디서나 길게 줄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누구나 호기심이 동할영화라면 몸싸움도 각오해야 한다. 기어이 보고 말겠다는 결심이 없으면 해변에서 지중해의 볕을 쬐는 편이 몸에 이롭다. 주상영관인 팔레 앞은오전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영화에 목마른 사람들로 들끓는다. 어깨를 부딪히지 않고 걷기 힘들 만큼 혼잡한 거리에서 방금 본 영화에 대한촌평들이 오간다. 한쪽에선 ‘걸작이냐 쓰레기냐’는 판단이, 다른 한쪽에선 ‘살 것이냐 말 것이냐’는 결단이 칸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사람들이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그렇지만 칸도 마냥 아름답고 우아한 면만 보여주진 않는다. 한국인이 많이 묵는 호텔에선 4군데 방에서 도난사건이나서 가뜩이나 불편한 이방인의 심기에 바늘이 돋게 만들었고 모영화사 대표는 밤길에 소매치기를 당했다.경쟁부문 미국영화 5편, 고른 호평 받아이런 재난에 대해 칸이 해줄 수 있는 유
제54회 칸영화제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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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는 법도가 있다. 물론 친구가 친구의 배에 연장을 담그고 동네 양아치 이강재가 똘마니들 뒤통수를 연탄으로 까는 것이야 영화 속의 싸움이므로 논외다. 그런 관계를 ‘친구’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탄식은 절실하긴 하지만 아쉽게도 옆집에 가서 물어봐야 할 문제다. 싸움에 법도가 있다는 것은 이를테면 루쉰(魯迅)의 글로 확인된다. ‘물에 빠진 개는 때려야 한다’는 루쉰의 주장이 그것이다. 군벌 잔재와 반개혁세력에 대하여 린위탕(林語堂) 등이 이른바 화해와 용서의 ‘페어플레이론’을 내세웠을 때 루쉰은 어떤 경우라도 물에 빠진 개는 때릴 수밖에 없다고 강론한 바 있다.그 논설의 핵심을 추존하면서도 잠시 곁눈으로 읽을 때 루쉰의 절묘한 매력이 따로 발견된다. 그러니까 루쉰은 물에 빠진 개를 운운하면서 싸움의 법도에 대하여 말한다. 만일 송능한 감독이 <넘버.3>의 속편을 찍는다면 불사파의 강론장면에 인용할 만하다. ‘땅에 쓰러진 상대는 더이상 때리지 않는다’거나 ‘상대방의 수법을
게임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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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는 부산에, 20년 가까이 그 밑거름을 마련해준 행사가 있다. 바로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위원장 전수일)다.강제규, 이정국, 이상인, 양윤호, 민규동, 김태용, 류승완 감독이 학생 시절 또는 장편 데뷔 이전에 모두 이 영화제를 거쳐갔다면 믿을수 있을는지. 지난해부터 아시아지역으로 범위를 넓힌 이 영화제는 올해 상영작 84편으로 더욱 덩치를 불려 5월25일부터 29일까지 경성대와시네마테크 부산을 찾아간다. 적어도 닷새간은 ‘아시아에서 독립단편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양적, 질적으로 발전된 영화제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작품들은 한국필름부문과 한국비디오부문. 한국필름부문에는 모두 184편이 출품됐고,36편의 단편들이 예심을 통과해 영화제 기간에 선을 보인다. 변두리 목욕탕 때밀이의 고단한 일상을 그린 <용산탕>(연출 이하),전쟁 때 헤어진 연인을 그리며 무당이 된 여인의 이야기 <돌아갈
영화의 바다에 닻 내린 짧은 필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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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늘 한 일은 없지만 끼니는 때워야지’ 하면서 식당에 들어갔다가 텔레비전에서 <조용한 가족>을 방영한다는 예고편을 보게 되었다. 처음엔, ‘아니 공중파에서 <조용한 가족>을?’ 하면서 놀랐다가 주말의 ‘명화’라기에 더욱 놀랐다. ‘아… <조용한 가족>이 이번주 주말의 ‘명화’로 선정됐구나.’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며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주말을 기다리게 되었다.항상 그랬지만 주말은 찾아왔고 명화를 하는 시간이 되어서 모든 전화기의 배터리를 제거한 다음- 그 시간에 누가 나한테 전화를 걸어, “지금 뭐하냐?” 물어보면 대답하기 쑥스러워서- 방 안의 조명도 알맞게 맞춰놓고 몇번인가 자세를 고쳐잡으며 어서 명화하기를 기다렸다.지루한 광고 때문에 잡았던 자세가 그새 흐트러지긴 했지만, 속으로 ‘명화라서 광고가 많이 붙은 모양이군’ 하면서 별 불평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광고 하나하나를 지켜보았다. 드디어, 화면이 바뀌어 시퍼런 배경에 ‘19세 미만 관람
글쎄, 손끝을 보지 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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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극작가, 자연철학자였던 괴테(1749∼1832)의 긴 창작 생애에는 좀 특별한 데가 있다. 주요 작품만으로 따진다면, 그가 첫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낸 것이 스물다섯 때이고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쓴 것은 마흔일곱이 되어서의 일이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일흔둘에 그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여행> 완결판을 내고 또 거기서 11년 뒤인 여든셋에 극시 <파우스트> 제2부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해에 그는 죽는다. 그가 <파우스트>를 완성하고 죽었다는 것이 꼭 특별한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특별한 것은 그가 근 60년 동안 마르지 않는 샘처럼 ‘창조성’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보통의 사람에게 여든셋이란 이미 적당히 노망기 들거나 혼미해져 코끼리 다리가 넷인지 다섯인지 기억하기 어렵고 기억하는 일조차 귀찮아질 만한 나이다. 그런데 그 나이에 이르도록 창조력이 왕성하게 살아 있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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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분위기가 뉴욕 시내를 도배하고 있다. ‘승리’라는 커다란 글귀를 머리에 이고 경례를 붙이는 해군병사, 전투기에 앉아 뒤를 돌아보는 아득한 눈빛의 젊은 파일럿, 창공을 뒤덮은 전투기의 무리. 3차대전이라도 일어나서 군대며 간호사를 모집하는 걸까? 때아닌 세계대전 분위기를 조성한 ‘전범’은 <진주만> 포스터다. 문제는 자부심 강하기로 소문난 뉴욕 시민들이 이 좋게 말해 복고적인 나쁘게 말해 국수적인 이 포스터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 그 결과 곳곳에서 포스터가 도난당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진주만> 포스터는 영화포스터로는 유례없는 고가에 판매되고 있기 때문. 2차대전 선동포스터를 흉내내 군복, 전투기 등의 이미지를 동원한 이 포스터는 다른 방법으로는 구할 수 없고, 오직 인터넷 경매사이트인 eBay에서 250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포스터를 꼭 갖고 싶었던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시내를 도배한 <진주만> 포스터를 ‘소장
홍보를 위해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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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TV토크쇼의 섭외담당자 제인(애슐리 저드)은 새로 입사한 프로듀서 레이(그렉 키니어)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이별을 통보하기 위해 3년간 사귄 옛 애인을 만나고 온 레이의 태도가 영 심상치 않다. 레이의 마음이 한순간에 떠난 것을 느낀 제인은 홧김에 동료인 에디(휴 잭맨)의 집에 룸메이트로 들어간다. 어느 날 신문의 과학란에 실린 수소의 교미행태 기사를 읽게 된 제인은 ‘새 암소 이론’에 빠져들기 시작한다.Review 헤어진다. 이별의 아픔이 정신뿐 아니라 육체로도 전해져 아릿하게 가슴을 후벼판다. 서서히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이젠 의문에 빠진다. “왜 내가 차였지? 이유가 뭘까? 다른 여자가 생긴 걸까? 아니면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물론 이런 고민은 오래 가지 않는다. 저마다 시일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자신이 가장 다치지 않는 방법으로 이별의 이유를 정리하기 때문이다. <썸원 라이크 유>의 제인 역시 이별 뒤 사랑의 실패요인을 찾으려 애쓴다. 그
썸원 라이크 유 Someone Lik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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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매혹적인 여인 야드비가(일디코 토트)와 결혼한 온드리스(빅토르 보도)는 온몸이 폭발할 듯한 기쁨과 기대를 갖고 첫날밤을 맞이한다. 그러나 야드비가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동침을 거부하는데, 결혼 전에 사귀던 바람둥이 법률가 프란시(로만 루크나르) 때문이라는 사실이 곧 알려진다. 아내를 잃을까봐 두려워진 온드리스는 징병을 피하기 위해 경찰 밀정 노릇까지 떠맡지만 야드비가와 프란시의 관계가 정리되기는커녕 두 사람 사이에 생긴 아이까지 맡아 기르게 된다.Story 초하(初夏)를 향해가는 극장가에는 또 하나의 정격 드라마 한편이 내걸린다. ‘또 하나’라 함은 헝가리영화인 <야드비가의 베개>가 운명에 사로잡힌 캐릭터와 남자배우의 연기력을 중심으로 한 고전적인 드라마라는 점에서 한국영화 <파이란>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야드비가의 베개>는 자의식 강한 여성관객에게 편치 않은 감정을 줄 소지가 다분하다. “여자로 변신한 악마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야드비가의 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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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1980년의 어느 날, 수배 대학생 상호는 변두리 마을의 허름한 목조건물 2층에 세들어 살게 된다. 바닥의 작은 구멍을 통해 본 1층 방엔 매혹적인 여인 희란(김지현)이 살고 있다. 그녀의 남편(최철호)은 투박하고 가학적이며 여인은 정사 와중에도 남편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희란의 몸에 넋이 나간 상호는 몰래 숨어들어 남편을 가장한 채 그녀를 범한다. 두 번째 정사에서 희란은 상호의 얼굴을 보지만 그를 받아들인다. 둘의 비밀정사가 잦아질수록, 전직 형사였고 콤플렉스 심한 남편의 눈길은 점점 차가워진다.Review 썸머타임>은 욕심이 많은 영화다. ‘포르노그라피, 그 이상의 흥분’이란 카피에서 이 영화의 주된 목표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썸머타임>은 역사의 환부, 우울한 시대의 초상에까지 손을 뻗친다. 이 영화에서 육체의 향연을 벌이는 남녀는 모두 ‘80년 광주’로 집약되는 어두운 시대의 자식들이다. 그들은 선했으나 역사의 화염을 피하지 못해 더럽고
썸머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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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비상한 문학적 재능을 가진 브롱스의 흑인 소년 자말 월레스(롭 브라운)는 친구와 가족 앞에서는 농구밖에 모르는 평범한 또래로 행세한다. 괴이한 소문에 감싸인 이웃의 은둔자(숀 코너리)의 집에 숨어든 자말은 주인에게 들키자 놀라 배낭을 둔 채 도망치고, 며칠 뒤 창문으로 던져진 배낭 속 일기장에서 빽빽한 수정과 조언을 발견한다. 은둔자의 제자이자 친구가 되는 자말. 학력평가에서 고득점한 자말은 영재학교로 전학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말을 맞이하는 건 편견덩어리 교사(F. 머레이 에이브러햄)와 총명한 여자친구(안나 파퀸), 그리고 그의 은둔자 친구가 한편의 걸작을 남기고 영영 사라진 전설의 작가 윌리엄 포레스터라는 사실이다.Review 신만이 창조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기막히게 아름답다. 천재도 그들 중 하나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들 틈에서 ‘다른’ 존재로 격리되기를 두려워하는 16살의 흑인 소년 자말은 그 아름다움을 역병으로 여긴다. 성적은 딱 튀지 않을 만큼 조절하고, 친구
파인딩 포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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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쉬] <간장선생> - `스크림`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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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영화에 르네상스가 올 것인가. BBC필름이 영국영화 제작에 앞장서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BBC필름은 코발트미디어그룹과 함께 향후 3년 동안 1억500만파운드 규모의 영화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BBC필름이 이런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은 공동제작한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330만파운드의 저예산으로 제작된 <빌리 엘리어트>는 오스카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에 지명됐을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6900만파운드의 수익을 올리는 등 비평과 흥행 양단에서 고른 지지를 받았다. 현재 주디 덴치 주연의 저예산영화 <아이리스>를 제작중인 BBC필름은 기존의 저예산 프로젝트 지원 제작 방식을 유지하되, 800만파운드 이상의 대형영화 제작에도 힘을 쏟게 된다. BBC필름과 손을 잡은 코발트미디어그룹은 런던과 베버리힐스에 적을 두고 있는 영화 투자 및 판매 배급사로, <치킨 런>과 의 제작에 참여한 바 있다. BBC
BBC필름, 1억500만파운드 규모의 사업계획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