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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은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의 매력은 처음 경험하는 홍차의 맛과 비슷해서 쉽게 익숙해지지는 않지만, 한번 빠져들면 쉬이 헤어나오기도 힘들다. 우리는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이런 종류의 배우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는 강하지만 우악스럽지 않고, 이지적이지만 오만하지 않으며, 유니크하지만 유별나지 않고, 아름답지만 천박하지 않다. 좋은 볕에서 잘 말린 고급 홍찻잎으로 우려낸 기품있는 차 한잔. 10여년간 그를 키운 연극무대에서 스크린으로 제대로 옮겨 심어진 이 서른셋의 배우는 사실, 수식어 가득 찬 글보다는 ‘그저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은 사람이다.
“매 순간 살아 있어야 합니다. 카메라가 배우를 쫓아갈 겁니다. 호정씨는 ‘연기’하지 마십시오. 그냥 ‘반응’하시면 됩니다.” 촬영장에는 흔히 들을 수 있는 시끄러운 ‘액션’사인도, ‘컷’사인도 없었다. 그저 안나가 비행기를 타는 첫 장면부터 망각의 바이러스를 찾아가는 여정 내내 <나비>의 디지털카메라는 졸졸 그를 다큐멘터리처럼
그윽하고 따사로운, 오후의 홍차처럼, <나비>의 김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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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배우 소피아 로렌(67·사진))이 26일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인 ‘아메리카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세르주 로지크는 로렌이 52년 동안 배우로 활동하며 출연한 “잊지못할 영화들”을 지적하면서 “그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시상식에 빨간 드레스를 입고 참석한 로렌은 상을 받은 뒤 감격했다고 말했다.
리나 베르트뮐러 감독의 새 영화 <프란체스카와 눈지아타>의 세계 첫 상영을 위해 몬트리올을 방문중인 그는 이 작품에 언급하면서 “대본을 받아 첫 몇쪽을 읽자마자 감동했다”고 말했다. 로렌은 또 배역과 자신 사이에 몇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이 영화에서 한 고아소녀를 입양한 고위관리의 아내역으로 나오는 로렌은 이번 영화로 네번째인 베르트뮐러 감독과의 작업은 “항상 즐거움을 준다”고 말했다.
소피아 로렌, 몬트리얼 영화제 특별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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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대목 막바지에 다다른 할리우드의 2001년 성적은 양호하다. <스크린 데일리>에 따르면 2001년 할리우드가 벌어들인 미국 내 입장 수입은 8월 현재 약 50억달러. 지난해 같은 기간의 47억1천만달러를 3억달러가량 넘어선 수치다. 스튜디오 관계자들이 연말 집계를 더욱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이유는, 여느 해보다 하반기 흥행 기대작이 많은 올해의 라인업.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휴가를 전후해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반지의 제왕> 등 박스오피스를 뒤흔들 것이 확실시되는 대작과 톰 크루즈, 짐 캐리, 러셀 크로 등 스타를 앞세운 영화들이 스케줄을 받아놓고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대작 오락영화들의 퍼레이드가 다시 시작되는 추수감사절까지는, 특수효과가 숨을 죽이고 배우들의 연기가 전경에 나서는 개성파영화가 스크린을 채우는 계절.9월 개봉하는 <트레이닝 데이>는 고참-신참 형사 짝이 파헤치는 LA의 마약 거래를 다룬 영화다. 덴젤 워싱턴과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반지의 제왕> 등 할리우드 가을영화 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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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파동이다 신사참배다 해서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맞은 56번째 광복절. 서울 수색 인근의 한 폐벽돌공장에 차려놓은 세트장에서 막바지 촬영에 여념이 없던 제작진의 분위기는 이날 따라 사뭇 숙연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역사적 상상을 영화의 기본 전제로 삼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날 촬영분이 일본 비밀경찰이 조선인 아지트를 급습해 대학살을 자행하는 장면이었기 때문.
촬영이 시작되면서 한밤중 적막을 찢어놓는 총소리가 터지자 지하 근거지에 은신해 있던 조선인들이 땅바닥을 뒹굴었다. ‘아닌 밤중에 총소리’에 놀란 주변 주민들의 항의 때문에 다음날부턴 총없는 액션장면만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이날 장면은 광복절이라는 시간적 상황과 맞물려 비장한 느낌을 전해줬다. 이날 장면은 이같은 비영화적 무게 못지않게 영화 내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조선계라는 사실 때문에 일선에서 밀려나,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하던 중 비밀경찰과 우
역사의 밤에 쓰는 “만일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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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에로영화의 대부 틴토 브라스가 새 영화 <센소45>의 촬영을 끝내고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센소45>는 1945년 베니스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데, 독일군 장교를 사랑하는 상류층의 한 부인이 그를 찾아 베니스로 떠나는 여행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부인은 결국 자신의 사랑을 찾지만, 베니스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정부의 배신이다. 정부가 자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돈을 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결국 그를 살해한다.<센소45>의 원작은 카밀로 보이토의 소설 <센소>로, 루키노 비스콘티의 1954년작 <센소>의 원작이 되기도 했던 작품. 브라스는 시대적 배경 설정을 1865년에서 1945년으로 바꿨다. 브라스는 “내 영화는 절대로 비스콘티 작품의 리메이크가 아니다. 비스콘티는 원작보다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주제에 치중했지만, 내 영화는 원작에 충실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이번 영화는 내가 사랑하는
이탈리아 에로영화의 대부, 틴토 브라스 신작 <센소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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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0년 전 하룻밤 새 만들어졌던 베를린 장벽은 동서독 주민들을 포함한 평화주의자들뿐 아니라 잘 나가던 한 미국 영화감독에게도 절망감을 안겨줬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선셋대로> <뜨거운 것이 좋아> 등의 빌리 와일더 감독. 지난 8월13일 베를린 장벽 건설 40주년을 맞은 독일의 언론들은, 이 동서 냉전의 상징적 건축물이 어떻게 와일더의 1961년작 <하나, 둘, 셋>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는가를 상세하게 들려줬다.제임스 캐그니가 베를린에 파견된 코카콜라 지사장 맥나마라로 분해 매일 아침 조회시간에 “코크(Coke)로 동구권 정복!”을 외치는 이 정치풍자극은 심각하기 그지없는 동서 갈등을 코미디적 상황에 담아 보여주려는 와일더의 야심작이었다. 61년 6월 초 케네디와 흐루시초프가 비인에서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만 해도 촬영은 순항중인 것처럼 보였다. 이미 동서 베를린의 경계가 삼엄하게 지켜지고 있었지만 남자 주연 호르스트 부흐홀츠가 자
정치풍자극이 넘지 못한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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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통의 영화아카데미가 21세기 한국에 자랑할 것은 빛바랜 자랑거리인 동문 출신 영화감독들의 머리숫자와 개원 이래 지금까지 우렁차게 돌아가고 있는 독일제 16mm 동시녹음 카메라밖에는 없게 될 날이 곧 올지도 모릅니다.”8월30일자로 영화아카데미 주임교수직을 사임하는 황규덕 감독이 그동안 품고 있던 영화진흥위원회와 일부 상임위원에 대한 불만을 한꺼번에 터뜨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98년부터 영화아카데미 주임교수를 지냈던 황 감독은 지난 9일부터 ‘한국영화아카데미와 문화강국의 실체’라는 글을 네 차례에 걸쳐 영진위 자유게시판에 올렸다.그는 이 장문을 통해 영진위의 미진한 지원을 비판하는 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했다. 그는 1984년 출범 당시 12명이었던 학생 수가 36명으로 증가했고 교육연한도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났지만 “1년 예산액은 개원 당시 수준을 답습하지도 못하였”으며, 촬영분야가 신설됐음에도 교수 충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98년 부임 당시 집무
영화아카데미를 살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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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에로티시즘의 유령영화를 관람한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 “<베사메무쵸> 보기 운동을 벌이자는 기사를 써야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번쯤 빚 보증에 곤욕을 치렀거나 실직의 공포를 상상해보았음직한 남성기자들이 대부분인데, 평범한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오히려 참신한 <베사메무쵸>의 관람 후일담이 업계에 화제다.그런데 이처럼 ‘참신한’ <베사메무쵸>에는 한국영화사를 관통하는 익숙한 코드가 하나 깔려 있다. 바로 사회적 위기를 여성의 성적 위기로 치환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뿌리깊은 비유 체계인데, 그 원형은 나운규의 <아리랑>(1926)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나라를 잃은 민족의 비애는 주인공 영희가 친일파에게 겁탈당하려는 장면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민족의 위기를 여성의 성적 순수성 상실로 비유하고, 그것을 지켜주지 못한 남성의 자존심 상실로 연결하는 것은 이후 주한미군문제를 제기하는 영화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오발탄&g
한국영화사에 나타난 여성의 성적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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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고지식한 샐러리맨 철수(전광렬)와 성실하고 억척스런 아내 영희(이미숙), 그리고 네명의 아이들이 사는 18평 아파트의 아침은 이불을 걷어붙이며 일어나라고 소리지르는 영희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평범하지만 의욕이 넘쳐나던 이들의 가정에 남편의 실직과 빚 보증으로 인한 파산 위기가 닥친다. 경매로 넘어갈 지경이 된 집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철수와 영희에게 돈 많은 남녀가 유혹해온다. 자존심과 신의, 아파트를 건질 수 있는 돈 사이에서 두 사람의 갈등은 제각각 깊어진다.■ Review 청춘스타가 한명도 나오지 않는 <베사메무초> 시사회장에 젊은 관객이 모여 앉아 여기저기서 훌쩍거린다. 영화가 시작된 뒤에도 큰소리로 떠들던 주부의 목소리도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전윤수 감독은 서른을 갓 넘긴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의뭉스런 데뷔작을 가지고 관객의 의표를 찌르는 데 성공한 것이다.사실 의표는 초반부터 찔렸다. 아내가 이불을 확 들추자 그 아래에서 남편과 네
베사메무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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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미군 특수부대의 윌라드(마틴 신)는 고향에 돌아갔다가 아내가 내민 이혼장에 도장을 찍고, 다시 정글로 돌아온다. 혼돈과 막연한 갈망에 시달리던 윌라드에게 떨어진 임무는 캄보디아에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 커츠 대령(말론 브랜도)를 암살하라는 것. 엘리트 코스를 달리던 커츠 대령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길을 택했다. 윌라드와 그를 캄보디아까지 수행하는 4명의 병사들은 전쟁의 심장부를 관통하며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된다. 윌라드 일행을 강 입구에 데려다주는 킬고어 대령(로버트 듀발)은 단지 서핑을 하기 위해서 한 마을을 쑥밭으로 만들어버리고, 죽음의 냄새에 취한 병사들은 플레이걸의 위문공연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병사 두명을 잃고 커츠 대령의 거처에 도착한 윌라드는 마을 전체를 휘감은 광기에서 이상한 동질감을 느낀다.■ Review 조셉 콘래드의 장편소설 <암흑의 심장>(1902)을 각색한 <지옥의 묵시록>(1979)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의도와는
시사실/지옥의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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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밸런타인 데이를 며칠 앞둔 어느날,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내왔던 케이트(말리 셸턴), 페이지(데니스 리처즈), 도로시(제시카 캡쇼), 릴리(제시카 코피엘)는 또다른 친구 셸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날 이후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내용이 담긴 밸런타인 데이 카드를 받은 이들은 정체 모를 신변의 위협에 시달리게 된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들은 13년 전 한 파티 때 자신들에 의해 성추행범으로 몰렸던 소년의 이름을 떠올린다. 제레미 멜튼이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당시 사건 이후 소년감호소와 정신병원 등에 수용되는 불우한 삶을 살아왔다. 네명의 여성은 멜튼이 성형수술을 통해 다른 인물로 변신한 뒤 그들 주변을 맴돌며 복수를 꾀한다고 판단,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들의 예감대로 그해 밸런타인 데이 파티는 핏빛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Review 여타 슬래셔호러영화와 마찬가지로 <발렌타인>을 보는 관객이 품게 되는 가장 큰 의문은 연쇄살인범이 누구냐는 것
발렌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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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역은 연기하기도 보기도 지루해”공명정대한 변호사인 것은 확실하지만 유머와 관련된 신경계에 손상이라도 입은 듯한 남자. 브리짓이 주책을 부릴 때면 황당함을 넘어서 분노에 가까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 남자. 그러고도 유사시에는 브리짓이 망친 파티 요리를 대신해 와이셔츠 소매를 걷고 오믈렛을 만들어주는 이상한 남자. “나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좋아요.” 마침내 마크 다아시가 꾹 다문 입매 사이로 빌리 조엘의 발라드 가사 같은 고백을 억지로 끄집어내듯 건넬 때, 브리짓과 여성 관객은 그만 그의 모든 ‘과오’를 용서하고 싶어진다. 루돌프 무늬 스웨터를 입는 그의 범죄적인 패션감각까지도.전혀 매력없는 남자처럼 등장해 결국에는 관객을 사로잡는 어려운 다아시 역을, 힘도 안 들이고 연기한 콜린 퍼스(41)는 적어도 영국인들에게는 다아시 역의 배우가 아니라 미스터 다아시 자체다. 국내 케이블채널에도 방영된 바 있는 1995년 시리즈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 역이 그를 스
마크 다아시 역의 콜린 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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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는 런던의 출판사에 다니는 32살의 미혼여성. 명절 때면 남자를 엮어주려는 어머니와 애인 없냐는 주변의 참견에 스트레스를 받는 그녀는 새해부터 칼로리와 흡연량, 주량 메모를 포함한 일기를 쓰면서 생활을 개선하자고 결심한다. 성탄파티에서 소개받은 무뚝뚝한 인권변호사 마크 다시(콜린 퍼스)와 떨떠름한 첫인상만 남기고 헤어진 브리짓은, 바람둥이 직장 상사 다니엘 클리버(휴 그랜트)와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나 연인의 아파트에서 벌거벗은 여자와 마주친 날 브리짓의 짧은 사랑은 파국을 맞고, 새 애인을 사귄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아빠를 돌보는 일까지 짊어진다. 방송사 리포터로 이직한 브리짓은 마크의 도움으로 특종을 얻고 파티에 그를 초대해 따뜻한 한때를 보내지만 불쑥 찾아온 다니엘의 구애와 두 남자의 주먹다짐으로 서로를 오해한 채 헤어진다. 다니엘과 마크의 과거사를 알게 된 브리짓은 마침내 마크를 향한 감정을 확신하지만 마크와 다른 여성의 약혼이 발표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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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포영화의 명가 해머영화사 작품들이 부활한다. 아트선재센터는 오는 9월5일부터 9일까지 5일간 해머에서 제작한 영화 7편을 상영할 예정.
이번에 상영될 작품은 1950년대 작품인 테렌스 피셔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의 저주> <드라큐라> <늑대인간의 저주> 등과 발 게스트 감독의 <쿼터매스 엑스페리먼트>, 70년대 작품인 <뱀파이어 연인들> <버진 뱀파이어> <뱀파이어 서커스> 등이다. 서울 상영이 끝나면 9월12일부터 16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도 상영할 예정(문의: www.artsonje.org, 02-733-8949).
영국 해머공포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