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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보이지 않기에 그만큼 더 아름답다.”언뜻 이런 말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은 사기다. 음악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음악이 왜 아름다운가에 관하여 실제로 아무것도 알려주는 것이 없다. 음악은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들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게 ‘물리적으로’ 와닿는, 실제로 그 주파수들의 떨림이 내게 오는 어떤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음악이 ‘들린다’는 있는 그대로의 육체적 진실에서부터 출발한다.허진호 감독은 적어도 ‘보이지 않기에 아름답다’식의, 가짜로 그럴듯한 언어를 말하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감독이다. 그는 때처럼, 여전히 소시민적이다. 그의 카메라는 <봄날은 간다>에서도 소시민적인 배경을 가진 남자주인공의 막막함을 포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주인공들 역시 사물과 소리를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점. 첫 영화에선 사진사, 이번 영화에서는 사운드 기사. 그들의 행위는 예술적 행위라기
소시민적 막막함으로, 한걸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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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가장 많은 언론의 세례를 받고 있는 국산 3D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큐빅스>(Cubix).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일이다. 당시 대원C&A와 시네픽스는 로봇 모형 몇개를 두고 고심하고 있었다. <지구용사 벡터맨>에 이어, 두 회사가 함께할 새로운 프로젝트에 등장시킬 로봇을 고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 단연 눈길을 끌었던 로봇이 바로 지금의 ‘큐빅스’다. 사실 큐빅스가 돋보인 것은 당연했다. 알록달록한 주사위를 연상시키는 몸체의 로봇이라니, 인류를 수호하는 존재의 위엄과 권위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러나 큐빅스의 독창성은 함께 서 있는 다른 로봇들을 ‘식상하게’ 만들었고, 타깃층에 어필하는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어렵지 않게 주인공으로 채택될 수 있었다.<큐빅스>는 2040년 버블타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26부작 TV시리즈다. 비교적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일까. 인간과 인간, 로봇과 로봇, 그리고 인간과 로
40년 뒤, 애완용 로봇과 산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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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는 어린이들의 오랜 친구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만화’ 하면 ‘어린이’를 떠올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 어린이를 위한 만화가 사라졌다. 어린이들의 성장이 빨라지고 일이년만으로도 세대차이가 생겨나는 요즘, 만화 역시 소구계층에 맞게 정교하게 분화되어가고 있다. 아트 슈피겔만과 프랑수아 뮬리가 기획하고 17명의 미국, 유럽 만화가가 참여한 <호롱불>은 세계 각국의 옛날이야기를 만화로 옮긴 책이다. 그렇다면 이 만화책은 그동안 우리 만화시장이 간과하고 있었던 거대한 황금밭, 유아를 포함해 초등학생까지를 포괄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옛날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 그 옛날이야기들이 탁월한 시각 이미지에 실린다는 점이며, 세 번째 만화 특유의 과장과 뻥이 친근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따뜻하고 인간적인 시각에서부터 시니컬하고 냉소적인 시각까지 어린이들이 보는 옛날이야기라고 무조건 권선징악을 이야기하는 무지막지함을 피
세계 각국의 옛날이야기 <호롱불>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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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는 뉴욕의 풍광이 있다. 고급상점이 즐비한 매디슨 애버뉴, 방치된 폐차와 낙서가 지저분한 할렘과 러시아인들의 가득한 리틀 오데사까지. 그리고 열한살에 강간당하고 친부가 마피아에게 노리개로 팔아버린 뒤 몸을 팔고 살인하며 살아가는 소냐의 이야기는 ‘뉴욕’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설정이다. 뤽 베송이 <니키타>에서 제시한 ‘어린 시절부터 길들여진 살인병기 여성’이라는 설정과 유사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제롬 샤린이 시나리오를 맡은 자크 드 루스탈의 <화이트 소냐>는 주인공이나 이야기, 구체적인 플롯에 이르기까지 하드보일드한 누아르영화를 연상시킨다. 주인공 소냐는 자매애(어쩌면 레즈비언일 수도 있는)에서 힘을 얻어, <화이트 소냐>라는 제목이 상징하는 대로 남성의 욕망과 매춘과 폭력을 일삼는 마피아 조직에 대항하기에 이른다.하드보일드한 이야기, 강렬한 색의 향연기왕 누아르로 갈라치면 이미지에 있어 극단적인 흑백의 명암대
야수, 자매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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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감독의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 홈페이지가 문을 열고 스무살의 비밀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영화제목에서 전달되는 스무살의 느낌이 홈페이지 구석구석에도 그대로 묻어나는 사이트로 플래시의 화려함보다는 일러스트레이션의 귀여움이 돋보인다.줄거리, 캐스팅과 캐릭터, 작품소개, 프로덕션 노트, 스탭 등 영화 전반에 대한 얘기가 담겨 있는 ‘이 영화가 궁금해’ 코너와 6개의 동영상, 갤러리, O.S.T로 이루어진 ‘고양이를 보여줘’ 코너 그리고 태희, 혜주, 지영, 쌍둥이 5명의 얘기를 엿볼 수 있는 ‘그녀들이 궁금해’ 코너가 준비되어 있다.‘이 영화를 보여줘’에서 만날 수 있는 동영상과 갤러리도 놓칠 수 없는 코너지만, 학창 시절의 추억이 절로 나는 앙케트 형식의 캐릭터 소개, ‘그녀들이 궁금해’도 네티즌들의 발목을 붙드는 코너. 네티즌들과의 특별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없이도 이런 비밀스런 느낌의 컨텐츠들은 커뮤니티 형성에 강력한 힘이 되는 까닭이다.영화 <고양이를 부
<고양이를 부탁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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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독서, 뒹굴거리기 등으로 채워지는 단조로운 생활에서 그나마 이벤트라고 할 만한 게 헌책방 순례다. 갖고 싶었던 책을 싼 가격에 장만하는 것도 좋지만, 나온 지도 몰랐던 신기한 책, 사고 싶어도 구하기 어려운 새 책들을 손에 넣는 게 더 근사하다. 며칠 전 일본에서 91년 나온 <메가드라이브 팬>이란 잡지를 발견했다. ‘메가드라이브’는 최근 퇴출된 세가의 게임기 ‘드림캐스트’의 할아버지격인 게임기다. 맨 앞을 장식하는 게임은 <샤이닝 더 다크니스>다. 이 게임은 당시 일본에선 흔치 않던 3D 던전 스타일의 롤플레잉 게임이었기 때문에 전투시스템이 대서특필되고 있다. 시리즈는 <샤이닝 더 홀리아크>라는 후속편,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역시 ‘샤이닝’이라는 머리말이 붙는 시리즈물인 <샤이닝 포스> 등으로 9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다.하지만 지금은 물러난 게임이 더 많다. 30대 이상이라면 오락실에서 하던 <원더 보이>를 기억할지 모른
10년 전 게임책을 넘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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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영화들이 조직폭력배들을 많이 등장시키는 것을 보고 있으면, <영웅본색>에서 시작해 <첩혈쌍웅>에서 정점을 이루었던 이른바 ‘홍콩 누아르’영화의 전성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홍콩 누아르영화들이 거의 완벽히 몰락한 요즘까지, 성룡만은 꾸준히 홍콩의 범죄조직을 자신의 영화에 등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미국의 자본으로 미국인 감독이 만든 <러시아워> 시리즈에서도, 성룡이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 홍콩의 범죄조직이 등장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할리우드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탈리아계 미국 범죄조직인 마피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 관객 대부분은 홍콩의 범죄조직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것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마피아를 다룬 영화들을 볼 때 영화의 문맥 속에 녹아 있는 마피아라는 조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과는 달리, 홍콩의 범죄집단은 그저 단순한 영화적 장치로 치부해버리고 넘어갔기 때
홍콩은 좁다. 할리우드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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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개발도상국들, 아프리카 담배산업의 표적되다.”“캘리포니아 폭도들, 148일 만에 아프리카 인질 석방.”때는 2001년 상반기. <The Daily African>이라는 아프리카의 어느 일간지에 이런 기사들이 연이어서 1면 톱을 장식한다. 세상이 개벽하는 순간인가? 이 무슨 아프리카 붐이란 말인가?베트남에서 장동건 같은 스타가 한국 붐을 일으키고, 홍콩에서 안재욱이 그들의 가슴에 별로 떴다는 얘기는 있었다. 중국·대만·베트남 등 동아시아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가 치솟는 현상에 힘입어 불어닥친 이른바 한류(韓流) 말이다. 이처럼 ‘아시아에 부는 한류 열풍’이라는 얘기는 심심찮게 들어봤어도 아직 ‘서방을 강타한 아프리카 열풍’은 입에 오르내린 적이 없는데…. 우리가 모르는 새 서양에 바야흐로 아프리카류의 바람이 불어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누군가가 날조한 기사인가? 아니면 아프리카의 민족주의자들이 흑인들 기살리기를 위해 연출한 자작극인가? 더이상 헷갈리기 전에 이쯤에
백인우월주의에 똥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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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KBS2 수,목 밤 9시50분‘민비.’ 불과 5∼6년 전까지 우리는 조선의 26대 왕인 고종의 왕비를 이렇게 불렀다. 어린 시절 역사책이나 드라마에서 만났던 민비는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 권력싸움을 벌이다 결국 일본 낭인의 칼에 비명횡사하는 탐욕스런 여인이었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민비를 ‘명성황후’란 이름으로 다시 접한다. 이름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그녀의 삶과 공과에 대해서도 전과 다른 평가를 듣는다. 여성이란 것 자체가 큰 굴레였던 유교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가치관을 추구했던 인물, 적극적인 세계관과 결단력으로 남편 고종의 통치를 보좌했던 여걸. 새롭게 평가받는 ‘명성황후’의 모습은 대강 이렇다.특히 KBS2TV에서 방송하는 대하사극 <명성황후>의 모습은 그녀가 등장했던 숱한 사극과는 확실하게 다른 모습이다.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의 갈등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꺾지 않는 당찬 모습을 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살뜰한 아내의 모습을 갖고 있다.
다시 보자, 그 남자 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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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감독 신상옥 출연 신영균 <EBS> 10월14일(일) 밤 10시1960년대 신상옥 감독이 최고의 흥행사였음은 두말할 나위가가 없다. <성춘향>에서 <빨간 마후라> 등 당시 신상옥 감독은 스타시스템을 능란하게 활용하면서 다양한 장르영화 문법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당시 그의 필모그래피에 두 작품이 눈에 띈다. 하나는 <연산군>(1961)이고, 다른 하나는 <대원군>이다. 이 두편의 영화는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마치 서로를 마주 보는 한쌍의 거울 같은 느낌을 준다. 두 영화 모두 정사(正史)로부터 일정 정도 소외된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 그리고 사극이면서도 대중친화적인 작업이라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신상옥 감독은 전작 <연산군>에서 생모에 관한 기억에 시달리면서 폭정을 일삼는 연산군 일대기를 다룬 바 있는데 <대원군>에선 왕위에 오를 아들 앞날을 위해 ‘미
흥행의 달인, 조선 말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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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n Brocovich 2000년,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출연 줄리아 로버츠 <HBO> 10월14일(일) 오후 6시누가 이 여인을 모르나요? <에린 브로코비치>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별다른 행운을 누리지 못하는 여성이 점차 자신의 삶을 자각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이 영화는 법적인 소송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라고 말한바 있다. 영화에서 에린 브로코비치는 두번 이혼하고 세 아이를 둔 처지다. 교통사고를 당한 그녀는 변호사 에드의 사무실에 찾아가 일자리를 달라고 막무가내로 버틴다. 하지만 사무실 직원들에게 거친 말씨와 야한 옷차림으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 서류정리를 하던 에린은 우연하게 엄청난 사건을 접하게 된다. 어느 대기업 공장에서 유출되는 유독 물질로 마을 사람들이 병들게 가고 있었던 것.<에린 브로코비치>
케이블영화 <에린 브로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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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을 연출한 리처드 도너 감독, 그리고 촬영감독 얀 드봉이 가세해 만든 오락영화. 오랜 세월 경찰로 근무한 로저 머터프는 이제 정년퇴임 날짜를 얼마 안 남기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경찰에서 불법무기가 사라지고 길거리의 갱들이 무기를 들고 설치는 것. 경찰은 사건 용의자로 전직 경찰인 잭 트래비스를 지목한다. <리쎌 웨폰> 시리즈의 세 번째로, 멜 깁슨과 대니 글로버의 콤비 연기가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액션과 코미디가 적당하게 배합되어 있다.
TV영화... <리쎌 웨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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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풍미한 배창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이동철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달동네에 ‘검은 장갑’이라 불리는 여인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녀의 남편 태섭은 과거에 살인을 한 탓에 도망중인 몸으로 검은 장갑에 생계를 의존한다. 한편, 검은 장갑의 전 남편 주석이 나타나자 세 사람은 갈등을 겪게 된다. 한국적 리얼리즘의 시각에서 멜로드라마를 구성한 수작. 김보연, 안성기, 김희라 등이 출연한다.
TV영화... <꼬방동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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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사 크리스티의 원작소설을 시리즈의 가이 해밀턴 감독이 영화화했다. 영국의 한 시골마을에 여배우였던 마리나와 그녀의 남편이 찾아온다. 마리나가 연 파티장에서 동네의 한 부인이 독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 이후 마리나는 누군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제시카의 추리극장>의 여배우인 안젤라 랜스버리가 주연으로 열연한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록 허드슨, 토니 커티스 등의 스타들이 출연하고 있다.
TV영화... <거울살인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