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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영화 못 찍게 했으면 내 발로 북한 갔을 거야”
지난 11월5일, 안정숙 <씨네21> 편집장과 영화평론가 김소희씨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리는 회고전에 앞서 신상옥 감독을 만났다. 1949년 데뷔작 <악야>로 시작해 국내 유일의 메이저영화사 신필림을 거쳐 검열로 고통받고 북한에서 영화를 만들어야 했던 거장에게, 잊혀진 반세기 한국영화사의 진상을 들어본다. 편집자
-회고록 집필은 마치셨는지요. 언제 출간하십니까.
=직접 쓰다보니 자화자찬하는 것밖에 안 될 것 같아서 쓰기 싫어졌어. 다른 사람에게 집필을 의뢰했는데 내년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릴 무렵에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부산영화제에서도 회고전이 드디어 열리게 되었네요.
=부산영화제쪽에 ‘김정일이 와도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러겠다고 해서 성사된 것이야. 그동안 회고전을 하면 밤낮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벙어리 삼룡이>만 틀거든. 내가 60년대에
신상옥 감독의 영화인생 50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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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형 영화사 제1호 신필림 흥망사
1960년대 충무로의 패왕으로 군림했던 신필림의 등장은 한국영화 중흥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로맨스 빠빠>(1960)는 그 서곡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김승호, 최은희, 김진규, 도금봉, 남궁원, 엄앵란 등 당시 내로라 하는 스타들을 총동원, 흥행에 성공하면서 신필림의 전신이랄 수 있는 ‘신상옥 푸로덕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 신상옥 감독은 1952년 <악야>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제작사를 차린 뒤, 1급 배우 최은희와 함께 15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해 제작자로서의 능력은 검증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로맨스 빠빠>가 제작자 신상옥의 이름을 부각시켰다면, 1961년 <성춘향>은 신필림이 메이저 제작사로 발돋움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그해 1월28일 개봉, 서울에서만 4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탄탄한 제작사로서의 물적 기반을 갖추게 됐기 때문. 같은 해 9월, 일정
신상옥 감독의 영화인생 50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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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은 거대한 미궁이다. 지난 50년간 한국영화가 걸어온 길을 추적하기 위해 굴려놓은 실타래는 언제나 신상옥이라는 존재 앞에서 뒤엉키곤했다. 고유의 스타일을 모색한 작가이자 장르를 넘나드는 장인이며 국내 유일의 메이저 영화사를 만든 제작자였던 그는, 아직도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는 거장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그를 `시대의 욕망을 연출한 한국영화의 거인`이라 일컬으며 회고전을 기획했다. <지옥화> <연산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다정불심> <내시> <이조여인잔혹사> <천년호> <소금> <증발> 등 9편을 소개하는 이번 회고전은 감독 신상옥에 대한 궁금증에 답하는 것임과 동시에 잊혀진 한국영화 전성시대를 복원하는 시도이다. <씨네21>은 이번 회고전에 앞서 신상옥 갘독을 만났고 그의 영화세계를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제 그의 필름과 육성의 도움을 받
신상옥 감독의 영화인생 50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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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도 한국에서 찍고 싶지만, 여기서 이런 영화로 투자받기는 어렵다. 내 시나리오의 내용을 표현할 수만 있다면, 장소는 우즈베키스탄이건 아프리카건 상관없다. 그래서 다음 영화는 북한에서 찍을 예정이다.”우즈베키스탄의 산속 마을을 배경으로 청년의 ‘가벼운’ 방황을 그린 <괜찮아, 울지마>의 민병훈 감독은 두 편의 영화를 모두 우즈베키스탄에서 찍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부분의 관객이 자리에 남아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는 “모스크바에서 공부한 탓인지 단편영화를 만들 때는 ‘한 철학’하는 분위기를 흉내냈던 것 같다. 그러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곤 이것이 영화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며 평범한 사람들의 집념에 관한 이 영화를 현학적이지 않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그는 또 아름다운 영화 속 풍광을 어떻게 찾아냈냐는 질문에 “헌팅을 위해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알고 보니 내전중인 지역이었는데, 현지 사람들도 이런 곳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하더
“민 감독, 괜찮아, 울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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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수선>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몇시간 앞둔 11월9일 1시, 부산 시네마테크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기자, 평론가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프린트는 이미 완성돼 있었지만 영화제 쪽의 요청으로 개막일까지 시사를 미룬 것. 이날 시사회는 개막작 상영을 코앞에 두고 있었는데도 객석은 가득 찼고 외국 기자들과 피에르 리시앙 등 해외영화제 관계자들도 눈에 띠었다. 아마도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가장 흥분된 날을 보내고 있을 배창호 감독을 현장에서 만났다.부산영화제 예매 개시 직후에 매진돼 화제가 됐다. 감회가 새로울 텐데.기분 좋지만, 좀 우려가 된다. ‘재미’만을 추구한 영화는 아닌데, 관객이 그것만 기대하는 건 아닐까 해서. 미스터리스릴러라는 장르적 운반수단을 통해서 조금 진지한 얘기를 전달하고자 했다.영화의 어떤 요인이 관객의 기대를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하나.마케팅적인 요소겠지. 스타가 나왔다는 것, 그리고 볼거리가 화려하다는 것이 부각됐으니까.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는
“종합문제를 푸는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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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행사(16일)
10:30 잔 모로 기자회견| 파라다이스 카프리룸
14:00 핸드프린팅 잔 모로| PIFF 광장
15:10 <허쉬!> 야외무대 인사| PIFF 광장
16:00 폐막작 기자회견| 코모도 호텔 희락정
22:00 잔 모로 파티| 파라다이스 카프리룸
내일의 행사(17일)
10:00 선재, 운파 펀드 및 수상작 발표 기자회견| 코모도 충무홀
19:30 폐막식| BEXCO
23:30 폐막파티| 부산 아쿠아리움
16, 17일 행사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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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을 찾은 해외 게스트들이 가장 사랑한 한국영화는 <고양이를 부탁해>인 것으로 나타났다. <씨네21> 데일리 취재팀이 지난 15일 해외 프레스와 게스트 3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그들이 가장 많이 본 한국 영화와 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는 모두 <고양이를 부탁해>로 나타났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프레스 센터에 비치된 상영작 비디오 가운데서도 대여순위 1위를 차지한 바 있다.‘가장 인상적인 한국영화’로 <고양이를 부탁해>를 꼽은 해외 게스트는 모두 7명. <나쁜 남자>(6표), <흑수선> <파이란> <와이키키 브라더스>(각각 3표)가 그 뒤를 이었다. 특징적인 것은 <나쁜 남자> <파이란>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비디오 대여순위와 한국영화 관람 순위에서도 2, 3, 4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올해 해외 게스트들이 부산에서
해외게스트들, “고양이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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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영화 선언과 함께 돌아온 배창호의 영화, 부산이 선택한 개막작. 두 요인이 상승효과를 내며 <흑수선>에 관한 기대와 호기심을 발효시켜왔다. “이건 <박하사탕>이 아니다. 감독이 거듭 밝혔듯 관객과 교감을 염두에 둔 영화다.” 첫 대면을 앞둔 이들에게 영화제 관계자들이 마지막으로 강조했듯이 스릴러와 멜로드라마와 전쟁 액션에 혈연을 댄 복합장르영화 <흑수선>은 배창호적 개성을 품이 넓은 대중성 속에 용해하려는 시도였다. 반응과 평가의 스펙트럼도 그만큼 넓었다.“배창호 감독의 역량이 결집된 영화다. 예술성도 있고, 재미도 있다. 사랑도 곁들인 배창호 스타일이다. 아주 좋다. 안 그랬으면 개막작으로 선정했겠나.”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극찬이다. 한국전쟁기를 드라마의 발원지로 삼겠다는 결단을 도와준 영화로 배 감독이 거명한 <공동경비구역 JSA>의 제작자 이은 감독은 “굉장히 열심히, 고생해서 찍은 것이 화면에 보여서 좋았다”고 감상
찬사에서 비난까지, 100인 100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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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 감독이 시네마서비스와 손잡고 대작영화 <흑수선>을 만든다는 소식은 듣는 이들에게 일종의 설렘을 불러일으켰었다. 90년대부터 급격한 세대 단절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80년대 한국영화 중흥의 기수였던 감독과 오늘날 영화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조직이 의기투합했다는 사실이 의미있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한동안 주류 영화계와 적조한 관계에 있었음에도 최근작 <정>을 통해 무뎌지기는커녕 한결 농익은 연출력의 묘미와 함께 독립영화 정신에 가까운 근성마저 보여주었던 감독이, 풍부한 물적 조건과 시스템까지 얻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작품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제대로 된 블록버스터”라는 홍보 문구나 부산영화제가 개막작으로 초청했다는 사실은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반영한다.<흑수선>이 첫 뚜껑을 연 부산 현장의 반응은 상당히 미묘하다. 그것은 ‘배창호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는 말로 요약됨직하다. 배창호적인 것의 실체를 이해하
카오스의 꽃이 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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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가 오는 17일 드디어 막을 내린다. 15일 오후4시 현재 18만여 좌석 중 12만 3천여 좌석이 팔려나가 매표율 67%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영화제 측은 폐막까지 14만여 좌석이 점유돼 70% 가량의 점유율을 보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60개국 200편의 장단편 영화를 상영한 올해, 110편 가량의 작품이 완전매진되거나 1회 매진됐다. 최종 좌석 점유율은 지난 해(73%)와 비슷하거나 조금 줄어들 전망이다. 한국영화는 단편들과 극영화가 고른 호응을 얻었다. 월드 프리미어인 <괜찮아 울지마> <나쁜 남자>를 비롯, 개봉 대기작인 <흑수선>과 <꽃섬>, 극장 개봉작 <고양이를 부탁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이 대부분 매진된 것.한국영화 파노라마 부문 작품들의 면면이 작년보다 훨씬 우수했다는 평가. 프레스와 바이어를 대상으로 한 인더스트리 스크리닝도 썰렁했던 지난 해와 달리 12편 상영에 평균 30-40석이
안녕히, PIFF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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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김소영 교수와 김혜준 실장이 <씨네21>에 기고한 글에서 최소상영일수 보장 등 몇 가지 제안을 했다. 그들의 제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이: <와이키키…> 하면서 핵심적으로 생각했던 문제가 최소상영일수 보장이다. <고양이…>도 같을 거다. 관객이 좋아하는데 보여주고 싶은 거다. 극장에 부탁하면서 3, 4주를 간신히 끌고 가는데 이 극장, 저 극장 끌고 다니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할 수 없이 우리는 극장을 대관하는 생각까지 했지만, 어떤 영화든 상영일수를 보장해 영화만드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관객에게도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김소영 교수 주장에 공감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지역별로 내가 기다린 영화를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는지 정보가 있다면 일주일만 최소상영이 보장되어도 그 안에 정보를 전달하고 나름의 시장 경쟁력을 검증받을 기회를 갖게 된다.⇒ 최: 최소상영일수가 법제화되면 극장에서도 스크린쿼터처럼 지키긴 할 것이다.
“마이너리그 없으면 한국영화 미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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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고양이를 부탁해> 제작이은 명필름 이사·<와이키키 브라더스> 제작·영화진흥위원회 위원최용배 시네마서비스 이사·영화인회의 배급개선위원회 위원장장소 한겨레신문사 5층 회의실일시 11월7일 오후 4시과연 비주류 영화가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은 없는가? <고양이를 부탁해>와 <나비>의 흥행참패에 이어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라이방>이 거둔 흥행성적이 냉혹한 시장의 논리를 다시 확인시킨 가운데 <씨네21>은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김소영(영상원 교수)씨와 김혜준(영진위 정책실장)씨의 제언을 연재했다. 긴급제언을 통해 김소영 교수는 한국영화 최소상영일수 보장을, 김혜준 실장은 전용관 설립 등 각종 저예산영화 지원책을 제안했다. 그렇다면 이런 영화를 만든 제작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극장의 이해관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메이저 영화사의 배급 담당자는 어떤
“마이너리그 없으면 한국영화 미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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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에 대해: <WR…>에서 우리가 시도했던 생각 가운데 하나는 자유롭게 하는 함정(a liberating trap)이라는 것이었다. 만일 사람들로 하여금 영화를 따라가고, 그 자신들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을 멈출 수 없게 하는 식으로 일련의 숏들과 사건들과 감정들을 조직한다면, 그 영화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결코 가지 않는 지점에 사람들을 데려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그 영화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해방하는 함정에 빠지게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빌헬름 라이히에 대해: 그는 정신분석학이 한 사람을 치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20세기의 드문 사회주의적 몽상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내게 그는 위대한 예언자요 또 위대한 과학자이다. 그는 세상에서 과학적 행위, 인간적인 행위, 사랑의 행위, 그리고 시적인 행위를 분리해낼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사회주의적 이상에 대해: 젊었을 때 나
자유롭게 하는 함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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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작 <WR: 유기체의 신비>, 그리고 급강하 마카베예프적 세계의 와해의 조짐은 대략 그의 최고작이랄 수 있는 <WR…> 발표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빌헬름 라이히를 빌려 세계 혁명(World Revolution)을 꿈꾸는 이 영화는 섹스와 관련된 노골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도 장면이지만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사회를 보는 ‘불순한’ 시각 때문에 더 유고 정부로부터 미움을 산 것으로 보인다. 라이히에 대한 기록 필름과 미국의 대담한 성문화를 그린 단면들 사이로 유고사회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허구적 멜로드라마가 단편적(斷片的)으로 전개된다. “프리섹스 없는 공산주의는 무덤”이라고 부르짖는 유고 여성 밀레나는 잘생긴 소련인 스케이트 선수인 블라디미르 일리치를 유혹하려 한다. 그러나 라이히식으로 말하면 ‘성적으로 질병을 앓고 있는’(자신의 욕망에 대해 두려워하는) 보수적인 인물인 블라디미르는 밀레나의 유혹을 자꾸 거부한다. 결국 두 사람은 성적인 합
“나는 혁명을 생각하면 섹스가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