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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춘향전>(1935)의 야심은 ‘유성’에만 있지 않았다. 이필우는 1931년 디스크에 사운드를 따로 녹음하는 방식의 유성영화가 수입되자 4년 연구 끝에 필름에 직접 소리를 입히는 방식의 P.K.R 발성장치를 만들어낸다. 형인 이명우가 연출과 촬영을 맡고, 이필우가 조명과 녹음을 맡은 <춘향전>은 애초 동시녹음까지 욕심냈던 것. 하지만 현장은 머릿속의 구상을 헤집어놓았다. 처음 써보는 시스템이라 작동이 서툴렀고, 새벽 두부장수 소리부터 자동차 소리까지 덤벼드는 노이즈를 어찌할 수 없었다. 후시녹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상과정까지 거치고 나니 버려야 할 필름만 4만척. <농부가>를 집어넣으려 하였으나 충분한 경비를 얻지 못해 포기한 뒤 양악으로 대체한 것은 이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었다. <춘향전>이 놓친 최초의 동시녹음영화의 타이틀은 이듬해 <홍길동전>(1936)이 가져갔다.최후의 무
스크린 진기록 대행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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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독립영화 흥행작 <파업전야>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파업전야>(1990)를 첫손에 꼽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다. 총관객 4만여명. <오! 꿈의 나라>에 이은 장산곶매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1990년 4월6일 서울을 비롯해 전국 11개 지역에서 동시상영됐다. 한수라는 평범한 노동자가 모순된 현실을 인식하고 투쟁에 동참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극영화. 당시 정부는 4월7일, 상영 이틀째인 서울의 예술극장 한마당에 난입해서 영사기재와 필름을 압수했을 뿐 아니라 4월13일 전남대 상영장에 헬기를 띄우고 1800명의 병력을 동원하는 등 공권력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공동투쟁위원회가 만들어지고, 4월15일부터 전국 8개 지역에서 동시상영 투쟁이 시작되는 등 전국적인 대열을 결집케 만들었다.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아기 업고 영화 만든” 감독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보라고 그래. <미망인>(1955)을 내놓으며 ‘여성 감독 1호’라는 수식을
스크린 진기록 대행진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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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변사 우정식무성영화 시절, “목소리를 가진” 변사는 스타 중의 스타였다. 행진곡에 맞춰 ‘모닝 코트’차림으로 등장한 변사는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컨닝 램프가 부착된 무대 아래쪽 테이블에서 흥을 돋우었다. 최초의 변사로 기억되는 이는 우정식. 이보다 앞서 황실에서 활동사진을 설명하는 이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직업적인 변사로 보기가 어렵다. 변사들이 활동을 시작했던 때는 1912년 영화만을 전문으로 상영하는 경성고등연예관 개관을 전후해서라고 보는 것이 정설. 우정식은 이 무렵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악인의 볼따귀에 주먹을 날릴 때 “어드러 둥둥!” 하는 추임새는 그만의 특기였다고 한다. 이때 500여명 남짓한 관객도 함께 “어드러 둥둥!”을 외쳤다니 극장 안 열기는 뜨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 양반 출신인 그는 “말이 더디고 박력이 없어” 2권(卷)짜리 단편 활극에만 주로 기용됐다. 단성사의 서상호, 조선극장의 김조성, 우미관의 이병조 등 내로라 하는 경쟁자들이 들어선 시
스크린 진기록 대행진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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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처럼 머리에 내려꽂히는 무시무시한 단어, 종교재판. 위노나 라이더와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주연한 <크루서블>이나 숀 코너리의 <장미의 이름>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종교재판’은 참혹한 고문, 화염 속에 쌓인 희생자의 절규 등 피비린내 절절한 잔혹함을 연상시킨다. 잔인했던 중세 기독교의 치부. 악마를 쫓다가 스스로 악마가 되어버린 신부들…. 혹시 아시는지 아직도 종교재판이 이어져오고 있다는 사실을.교회 잔혹사와 관련된 서류들을 극비로 보관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바티칸 교황청은 여느 나라 정보기관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직위(신앙추기경회 수장)로 인해 현대판 종교 재판관으로 불리는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1542년 교황 바오로 3세의 칙령으로 시작된 종교재판과 관련된 서류들을 1998년 몇몇 학자들에게 제한적으로 공개했다. 450년 이상 베일에 쌓여 있던 잔혹한 비밀이 드러나자 많은 영화제작자들은 그 속에 묻혀 있을 비극적 인생들을 영화화하고 싶어 군침을
[베를린] 범죄, 교회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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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 사상 초유의 흥행 기록 세운 <영웅>, 한국영화 <무사>도 개봉지금 베이징의 극장가에는 전례없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극장 개봉작의 저렴한 불법 복제 VCD와 DVD가 판을 치는 중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요즘 베이징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극장가는 <영웅>을 보려는 관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12월20일 전국 주요 대도시에서 개봉한 <영웅>은 3일 동안 베이징에서만 700만위안, 전국적으로는 5천만위안을 벌어들여 지금까지 중국 내 최고의 흥행수입을 자랑하던 <타이타닉>의 기록을 일찌감치 넘어섰다. 공식 종영일인 1월10일까지 집계된 수치를 살펴보면 베이징 2126만위안, 전국 2억위안으로 중국영화 사상 초유의 흥행기록을 수립했다. 관객 동원 수로 환산해보면 전국 800만명에 가까운 수치이다. 아직은 극장 문화가 정착하지 못한 중국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당분간은 깨지기 힘든 놀라운 기록이라 할 만하다.
이러
[베이징] <무사>, <영웅>에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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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3일에 일본에서 개봉한 <황혼의 세이베이>가 롱런하고 있다.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로 잘 알려진 야마다 요지 감독이 처음으로 도전한 본격 시대극으로서 기획단계부터 주목받아온 <황혼의 세이베이>는 당초 12월20일에 종영할 예정이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관객 수가 감소하지 않아 연장 상영에 이르게 됐고, 1월5일 현재 7만9746명의 관객을 동원해, 약 9억6700만엔의 흥행수익을 거두고 있다. 10억엔 돌파도 가능한 상황.
이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담당한 쇼직쪽은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영화에 대한 입소문이 좋게 퍼졌다”는 것을 흥행 돌풍의 요인으로 꼽았다.<황혼의 세이베이>의 배경은 에도 시대 말엽인 1865년. 아내를 여읜 채 노모와 두딸과 함께 살고 있는 가난한 하급 무사 세베는 근무가 끝나면 한눈팔지 않고 집으로 직행하는 탓에 동료들로부터 ‘황혼 세베’라는 별명을
[도쿄] 중장년 남자관객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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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마법의 방>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 런던의 연말 극장가의 모습은 세계의 다른 어느 곳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아트영화/외국어영화들은 상대적으로 잠잠했던 이 시기에 한국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첫눈처럼 살포시 그리고 신비로운 느낌으로 문을 열었다.<고양이를…>은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지난해 12월26일부터 런던의 커즌 소호(Curzon Soho)에서, 그리고 27일부터 클래팸픽처하우스(Clapham Picture House)에서 개봉해 현재 개봉 3주째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 12월26일은 ‘박싱 데이’(boxing day)라고 해서 크리스마스 휴가기간으로 보통은 런던 시내의 다른 극장들을 말할 것도 없고 상점들도 문을 잘 열지 않는 날. <고양이를…>로 다른 극장들보다 하루 일찍 문을 연 커즌 소호는, <타임 아웃> 독자들의 투표에서 몇년째 가장 쿨한 극장으로 꼽힌 곳이다. 런던 시내 차
[런던통신] 런던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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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청소년의 창작영화제인 18세 미만 영화제(Sottodiciotto Film Festival)가 지난해 11월30일부터 12월6일까지 자동차의 도시 토리노에서 열렸다. 18세 미만 영화제는 행사 명칭 그대로 18세 미만의 초·중·고교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카메라에 담아내고, 그 성과물을 선보이는 행사. 올해 3회를 맞는 이 영화제는 여느 영화제와 다른 특색을 가진 토리노영화제와 토리노시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올해 이탈리아 전역에서 158개의 작품이 출품됐다.
어린 필름메이커들의 작품은 학교 생활과 친구들의 이야기, 부모와의 갈등, 여행, 아기와 동물 등 신변잡기적 소재의 영화로부터 음악과 미술 등을 활용한 색다른 영상 실험을 선보인 작품까지 매우 다양했다. 또 전쟁과 기아 등에 시달리는 다른 나라의 또래 친구들에 대한 걱정과 관심을 표명한 작품이나 전쟁 등을 소재로 한 시사적인 다큐멘터리까지 선보여 영화제를 찾은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 영화제에선
[로마] 나이는 18 이하, 생각은 18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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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개봉된 독일영화는 총 53편. 관객 동원 총 1150만명. 자국영화 시장점유율 약 10%.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무차별 공격 속에서도 그나마 자국영화 시장을 10% 점유했다니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러나 깔끔한 수치 뒤에 숨어 있는 속사정을 들여다보라. 한마디로 2002년 독일영화는 참패했다. 독일인 1150만명이 자국영화를 관람했다지만, 이 수는 2001년 단 한편의 독일영화 <마니투의 신발 한짝>이 동원한 관객 수에도 미치지 못한다.
2001년 독일영화 최고 흥행을 기록했던 이 얼치기 서부극 단 한편에 몰린 관객 수가 무려 1200만명이었다. 마니투의 신발, 그것도 두짝이 아닌 단 한짝이 발휘했던 위력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올해 독일영화계는 참담했다. 자국영화 시장점유율 10%라는 수치도 엄밀하게 따지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프랑스영화 <아멜리에>가 독일 자본이 대거 투입됐다는 구실로, 독일영화로 탈바꿈해
[베를린] 독일,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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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이 저물었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너무 심한 ‘뒷북’일까요. 이럴 때 편리한 것이 음력이지요. 음력으로, 우리는 아직 2002년 세밑을 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2002년을 돌아보는 김에, 좀 넓게 돌아보기로 합니다. 한국 밖의 영화계에선 2002년 한해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영화를 ‘띄우고’ 또 ‘씹었는지’ 말입니다. 때맞춰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지들이 속속 2002년 결산 기사를 내놓아주었습니다. 이에 <씨네21>은 <필름 코멘트> <빌리지 보이스> <뉴욕타임스> <타임> <가디언>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카이에 뒤 시네마> <키네마순보>가 선정한 2002년 최고·최악의 영화목록을 갈무리했습니다. 이미 보신 영화는 어디쯤 자리잡고 있는지, 아직 만나지 못한 미지의 걸작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 편집자정리 박은영 cin
세계의 영화지들이 꼽은 2002년 베스트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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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죽지 않는다, 쇠퇴할 뿐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선정 베스트 10
유난히 풍작을 이룬 2002년을 돌아보며,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걸작’과 조우한 기쁨을 이렇게 추억하고 있다. “예술은 죽지 않는다. 다만 쇠퇴할 뿐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두 평론가 오언 글라이버만과 리사 슈워츠봄을 이렇듯 흥분하게 만든 영화는 <파 프롬 헤븐>과 <어바웃 슈미트>다. 멜로와 코미디로 장르가 다르긴 하지만, 이들 작품은 두 평자의 눈에 현대 미국사회를 비춘, 가장 맑은 거울이었다.
글라이버만은 <파 프롬 헤븐>이 “고전영화의 영광을, 금지된 로맨스에 대한 갈망이라는, 유니버설한 캔버스에 옮겨 담았다”면서, “50년대의 화려하지만 억압된 교외 풍경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고 평했다. <어바웃 슈미트> 역시 “미국의 다양한 매너리즘을 종합한 국민 캐릭터에 대한 코미디”라는 의미에
세계의 영화지들이 꼽은 2002년 베스트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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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악동, 신세기 첫 걸작
<가디언>의 2002년 베스트 10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블러디 선데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막달레나 자매들>, 칸영화제 본선 진출작 <전부 혹은 전무> <스위트 식스틴>의 공통점은 모두 영국영화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고스포드 파크>까지 보태보자. 2002년 영국 영화계는 기세 등등할 이유가 충분했다. 하반기에 접어들어 필름 포 등 주요 프로덕션이 문을 닫는 바람에 영화산업이 침체에 빠지긴 했지만 말이다.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는 그중에서도 <모번 캘러의 여행>을 2002년 최고의 영국영화로, <아들의 방>과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최고의 외국영화로 선정했다. <가디언>의 일요일판인 <옵저버>의 평론가 필립 프렌치의 초이스에서도 <아들의 방>과 <멀홀
세계의 영화지들이 꼽은 2002년 베스트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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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7인의 선택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세계의 영화지들이 꼽은 2002년 베스트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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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영화의 약진타이 영화 <친애하는 당신>에 열광
서구 평론가들이 아시아영화에 깊이 매혹되고 있다. 미국, 프랑스, 영국의 영향력 있는 영화평론가들이 선정한 2002년의 베스트영화 목록을 살펴보면,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영화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키아로스타미의 <텐>이나 차이 밍량의 <거기 지금 몇시니>가 자주 언급된 것은 서구에서 그들의 지명도로 볼 때 그리 놀랍지 않다. 그러나 애니메이션(그것도 셀애니메이션)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지아장커의 저예산 독립영화 <임소요>가 심심찮게 상위에 랭크됐다는 것은 꽤나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특히 <임소요>는 <필름 코멘트>가 선정한 미개봉 영화 베스트 10에서 1위에 올라, 서구 평단에 지아장커의 지지 기반이 확고해졌음을 방증해 보였다.
무엇보다 놀랍고 반가운 사건은 타이 출신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화려한 등장이다. 2002년 칸영화제 주목할
세계의 영화지들이 꼽은 2002년 베스트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