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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영상학과 모집경향,정시모집 인원 줄고 전형방법은 변함없어다시 입시의 계절이다. 올해 수능일은 예년과 달리 푸근한 날씨였지만, 변덕스런 날씨처럼 점수에 대한 예상이 이랬다저랬다 해 더욱 수험생들의 마음을 힘들게 했다. 영상학과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 영화학도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정시모집이 이제 12월10일을 전후해 일제히 시작된다. 이제 그동안 해온 노력만큼이나 풍부한 정보를 접하고 현명한 선택을 내리는 일이 중요한 시기다. 영상학과의 경우 매년 여러 학교에서 학과를 신설하고 전공을 세분화하는 추세라 다른 전공에 비해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다. 그리고 그만큼 학교와 세부전공에 따라 전형방법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어 더욱 ‘선택’의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영화 붐이 일면서 한창 일어나던 영상학과 신설 붐이 올해는 조금 주춤하지만, 그래도 4년제와 2년제 모두 영상관련학과를 신설한 학교들이 꽤 있다. 가장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은 계명대학교. 계명대는 연극
2003 영상학도 입시 올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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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리치는 50년이 넘도록 일본에 살면서 일본문화와 영화에 관해 글을 써온 사람이다. 1946년 요코하마항에서 처음 일본과 마주했던 리치는 낯선 땅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기 위해 일본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어느덧 일본과 영어권 국가를 잇는 다리가 되기에 이르렀다. 구로사와 아키라와 오즈 야스지로가 영어권 국가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리치의 공로가 컸다. 수십권의 책을 펴내 일본영화와 문화를 알린 리치는 아직 옛 모습이 남아 있는 도쿄 부근 우에노에서 광범한 저술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무엇보다 글쓰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이미지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그는 스스로 실험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왕성한 활동가. 날마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고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는 날이 없다는 리치는 일본보다 훨씬 늦게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한국영화로선 부러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부산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장으로 한국을 찾은 리치를, 영화평론가 임재철씨가 만났다. 그 자신도 일본영화에
영화평론가 임재철,일본영화 전문가 도널드 리치를 만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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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는 일본의 ‘촬영소 시스템’이 잘 작동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많은 우수한 감독들이 별다른 제약없이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60년대 들어 조락의 기미를 보이던 촬영소들은 70년대 들어 결정적으로 붕괴해버리고 만다. 그러한 붕괴의 과정을 설명한다면.무엇보다 감독과 제작자 사이에서 권력이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즈나 구로사와 같은 감독들은 제작자들이 함부로 뭐라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이들의 작품은 흥행도 어느 정도 보장됐을 뿐 아니라 작품성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케이션 촬영을 싫어했던 오즈는 촬영소 내에 비싼 세트를 지어서 영화를 찍었지만, 쇼치쿠는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았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60년대 컬러텔레비전의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관객은 놀라울 정도로 격감했다. 그렇게 되자 영화사는 촬영소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비싼 영화’와 예전 방식을 고집하는 감독들을 피하게 되었다. 60년대
영화평론가 임재철,일본영화 전문가 도널드 리치를 만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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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영화비평으로 출발했지만 소설과 에세이를 쓰는 등 다양한 문필 활동을 하고 있다. 언제부터 문학적 야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내 성장기에서 영화와 함께 가장 중요했던 것은 글쓰기였다. 어렸을 때 나는 주위환경을 내가 전혀 제어할 수 없다는 데서 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아홉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이 무력감이 조금 가시기 시작했다. 어렴풋하게나마 말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열다섯살 땐 처음으로 헤밍웨이를 읽었는데 그의 작품을 조각조각 분해해서 다시 써보는 연습을 했다. 요새 말로 하자면 ‘해체론적 실천’이라고 할 만한 것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글쓰기에 대해 좀더 잘 알게 되었다. 그 경험은 지금도 내 글쓰기에서 중요한 밑천으로 작용한다.당신은 50년 넘게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영어로 글을 쓰고 있다. 어떤 점에서 당신은 20세기 문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던 ‘자발적 망명자’들의 계보에 자신을 포함시키고
영화평론가 임재철,일본영화 전문가 도널드 리치를 만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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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은 지난호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이어 두 번째로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를 인터뷰했습니다. 이번 연쇄 인터뷰의 목적은 12월19일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출사표를 던진 각 정당들의 영화영상 관련 정책의 밑그림을 미리 살펴보는 것입니다. 덧붙여 대통령 후보들의 문화적 소양이나 문화관까지 독자들이 엿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단, 각 후보의 의사와 사정을 반영해서 직접 만나거나 서면으로 하거나 둘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후보마다 달리 인터뷰가 이뤄질 수밖에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편집자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는 11월15일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어느 때보다 숨가쁜 한주를 보냈을 것이다. 이는 후보 단일화 방안을 위한 양쪽의 실무 협상의 진행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무산 위기-협상 재개-막판 진통 등 향배를 쉽게 점칠 수 없다는 언론의 관측들이 일주일 사이 연이어 쏟아졌다. 그랬으니 국민통합21쪽에서 “정 후보와의 대면인터뷰는 도저히 어려울
국민통합21 前대선후보 정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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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말하는 오늘의 영화올해 부산영화제에는 3대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모두 참석해 눈길을 모았다.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디이터 코슬릭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지난해에 이어, 모리츠 데 하델른 베니스 집행위원장은 올해 처음으로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각기 자신의 영화제가 국제영화의 ‘심장’임을 자부하는 이들은 ‘아시아영화의 오늘과 내일’을 가늠하기 위해 부산을 찾았다고 했다. 티에리 프레모 위원장은 “전반적인 아시아영화의 파노라마를 보기 위해 부산을 찾았다”고 밝혔고, 디이터 코슬릭 위원장은 ‘미래의 트렌드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영화제를 ‘패션쇼’에 비유하며, 부산이 바로 그런 곳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그렇다면 매년 최고의 ‘전망’에서 국제영화의 흐름을 목도하는 이들은 ‘오늘의 영화’그리고 ‘내일의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이야기의 초점은 자연스레 아시아영화에 맞춰졌다. 최근 10년 사이, 국제영화제의 이목이 아시아에 집중, 그 안에
PIFF 2002 엔딩 크레딧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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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부산영화제가 11월23일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돌스> 상영을 마지막으로 성대한 축제의 나날들을 끝마쳤다. 부산시의 다양한 행사에 밀려 11월14일에야 시작된 이번 영화제는,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규모나 성과 등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7회라는 연륜과 관객의 꾸준한 참여, 언론의 보도 전쟁을 보며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지는 영화제라는 생각이 든다”는 호주 언론인 러셀 에드워즈의 이야기처럼, 올해 부산영화제는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부산영화제의 날로 성장하는 면모는, 우선 규모에서 확인된다. 이번 행사에는 해외 770명을 포함, 3834명의 게스트가 참여했다. 개·폐막식 게스트까지 포함하면 5318여명으로 지난해 3700여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 해외 기자도 125명 참여, 지난해 72명보다 월등히 많았다. 또 57개국에서 226편의 작품이 상영된 이번 영화제에서는 20만4천여석의 좌석 중 16만7300여석 정도가 들어차 80.7%(지난해 78
PIFF 2002 엔딩 크레딧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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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말, 말, 말“옷이 없어서 못 봤다.”(프랑스 평론가 피에르 리시엥, “<해안선>을 어떻게 봤냐”는 질문에 공항에 짐이 도착하지 않아 개막식 드레스코드에 맞출 정장을 구할 수 없었다며)“파티는 끝났다. 이제 누가 계산을 하고, 누가 설거지를 할지를 정해야 할 때다.”(싸이더스 차승재 대표, 아시안필름인더스트리네트워크(AFIN) 컨퍼런스에서 한국영화시장의 르네상스는 끝났다며)“사람들은 우리가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 바퀴벌레 같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영화를 위해 살아남을 것이다.”(차이밍량 감독, 대만 신전영 20주년 오픈토크 중 대만영화의 현재에 관해 말하면서)“내가 초대하고 싶은 영화는 <엽기적인 그녀> <디아이> 같은 영화다.”(허우샤오시엔 감독, 대만에 새로 문을 연 문화공간 타이베이 하우스에 초대하고 싶은 영화를 말하면서, 아시아 젊은 감독들은 서로의 영화를 보고 토론하면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PIFF 2002 엔딩 크레딧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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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최대의 프리마켓 부산프로모션플랜(PPP)이 11월18일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개막했다.◀ 영화제의 성공개최를 위한 전야제가 13일 저녁 6시에 남포동 PIFF광장에서 열렸다. 부산중구청 주관으로 열린 이 행사에는 부산시민과 언론 등 400여명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뿐 아니라 애드벌룬과 폭죽도 축제의 시작을 알린 소품들.▲ 19일 오후 <광복절특사>의 배우 차승원, 설경구, 송윤아, 강성진과 김상진 감독이 PIFF광장 야외무대에서 관객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들을 보기 위해 몰려나온 관객 틈에서 부산영화제가 열릴 때의 PIFF광장은 감옥만큼 탈출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대만감독 야외무대 - 20일 PIFF광장에서 대만의 허우샤오시엔 감독을 비롯해 린쳉솅 감독, 알렉스 양 감독, 왕밍타이 감독과 배우들이 인사하고 있다.▲ 영화의 바다인지, 사람의 바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오후의 남포동 거리는 북적거렸다. 여기에 갖
PIFF 2002 엔딩 크레딧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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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파트너를 찾았다. 18일 열린 제2회 뉴 디렉터스 인 포커스, 이름하여 NDIF는 신인 감독의 영화제작 계획을 제작사, 투자사와 연결시켜주는 자리. 뜨거운 피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뭉친 그대들, 건승하시라!----◀ 12개국에서 온 21개 프로젝트가 신선한 경쟁을 펼친 올해 PPP에선 홍상수 감독의 <다섯번째 프로젝트>(가제)와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옴니버스영화 <내 생애 최고의 날들>이 공동으로 부산상을 받았다.▲ 남포동의 5인 시위대, 가 아니라 “표를 달라”고 외치는 열혈 관객. 표에 울고 표에 웃는 부산영화제의 익숙한 풍경은 올해도 재연됐다. 특히 가장 먼저 예매된 월드애니메이션단편전처럼 인기 높은 작품의 경우, 티켓을 구하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다.▲ 티켓을 구하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선 사해동포, 남녀노소가 똑같다. 푸른 눈과 금발의 외국인이라고 티켓 없이 영화를 볼 수 있겠나. “월드단편에니메이션 표 구합
PIFF 2002 엔딩 크레딧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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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악마’들의 동복 패션이 아니다. WTO 문화시장 협상을 앞두고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등의 회원으로 이뤄진 시위대가 PIFF광장에서 문화시장 개방 반대를 외치고 있다. 한 민족과 집단의 영혼이 담긴 문화는 흥정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 무릇 모든 사물에서 도(道)를 찾을 수 있는 법. 삶과 진실과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야말로, 그 자체가 도를 논하는 것 아니겠는가. 한 스님이 부산영화제의 지도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책자 속에서 길을, 도를 찾고 있다.◀ 손을 닦는다. 예술가들의 영혼이 담긴 손자국이 행인들의 발길에 더럽혀지는 게 안타까워서였을까.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이들 핸드프린팅에 손의 윤곽을 남긴 거목들의 진짜 손은 지금 카메라를 붙들고 있으니까.▲ 야호! 부산영화제를 온몸으로 지켜낸 자원봉사단이 11월13일 부산시청에서 발대식을 갖고 있다. 하늘처럼 상쾌한 빛의 옷과 마음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은 매표구에서, 극장 입구에서, 사무국에서 영화제와 함께
PIFF 2002 엔딩 크레딧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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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흥미로운 영화제는 ‘발견’의 재미를 주는 영화제다. 부산국제영화제처럼 수백편의 영화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경우엔 더 그렇다. 올해 부산에서 당신의 눈에 들어온 보석 같은 영화는 무엇이었나 이구동성으로 꼽는 한편이 있다면 단연 <질투는 나의 힘>일 것이다. 유난히 처음 선보이는 한국영화가 드물었던 올해, <질투는 나의 힘>은 최고의 화제작 가운데 한편이었다. 내년 4월에 개봉할 이 영화를 비롯해 신선한 홍콩영화 <너는 찍고, 나는 쏘고>와 주목할 만한 다큐멘터리 <연안에서 온 딸> 등 올해의 발견이라 할 만한 3편의 감독을 만나봤다.편집자부산의 발견 1 - <질투는 나의 힘>의 박찬옥 감독냉소를 지운 홍상수? 다르다!올해 부산영화제를 통해 처음 소개된 박찬옥의 데뷔작 <질투는 나의 힘>을 본 많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홍상수적이기는 한데 뭔가 다르다’는 평가를 내리곤 했다. ‘홍상수적’이라는 표현이 홍상수 그 자신의
PIFF 2002 엔딩 크레딧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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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해 <있다> <느린여름> 등의 단편을 거쳐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의 조감독 생활을 한 박찬옥의 장편 데뷔작인 <질투는 나의 힘>은 매력적이지만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애인 같은 영화다. 감독도 그렇다. 끊어질 듯 드문드문 대답을 이어나가는 그의 속은 시원하고 명쾌한 대답을 끌어올리는 두레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늘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생각이 정답”이라는 다소 무책임한 대답을 내놓은 그에게는 영화 속 원상을 바꿔놓았던 윤식처럼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는 묘한 매력이 존재한다. <질투는 나의 힘>은 그렇게 감독과 꼭 닮은 영화다.‘홍상수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라는 세간의 주목이 부담으로 작용하진 않았나.→ 물론 시놉시스 단계서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마음에 두지 않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당장은 만들고 싶은 걸 만들고 비교나 평가 같은 건 나중에 듣자, 그런 마음이었다. 다 감독님
PIFF 2002 엔딩 크레딧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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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발견2 - <너는 찍고, 나는 쏘고>의 홍콩감독 펑하오싱"킬러도 밥먹고 부부싸움하지 않을까?"킬러도 불황을 겪는다. 한때 사람 죽이느라 정신이 없었던 킬러 바트는 홍콩의 경제침체 때문에 아내의 쇼핑도 뒷받침하기 힘든 처지로 전락한다. 이때 고객 마부인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살인장면을 녹화해오라는 그녀의 요구 때문에 영화감독 지망생 추엔을 섭외한 바트. 그는 뜻밖의 호응에 놀라면서도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심한다.<너는 찍고, 나는 쏘고>는 오래간만에 만나는 신선한 홍콩영화다. 스물아홉의 젊은 감독 펑하오싱은 정식으로 영화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타고난 유머감각과 망설이지 않는 과감한 연출로 보름 만에 영화의 마침표를 찍었다. 주로 코미디 극본을 써온 그는 평소에 말을 아끼는 대신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글로 토해낸다고 했다. <너는 찍고, 나는 쏘고>는 그 많은 이야기가 황당하면서도 귀엽게 녹아 있는 영화다. 마틴 스코시즈와 &l
PIFF 2002 엔딩 크레딧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