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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는 어떻게 보면 노년에 만나 정열적인 사랑에 빠진 두 노인의 섹스일기이다. 두 노인의 사랑은 젊은이들 못지않게 열렬하며, 서로의 몸에 대한 탐닉 역시(특히 횟수) 젊은이들 뺨친다. 다큐멘터리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극영화이기도 한 이 영화가 표방하고 있는 자연주의적 수법은 한편으로는 충격적이다. 섹스를 하고 있는 노인들의 실물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이다. 관객은 그 능숙하지 않은, 영화적으로 길들여져 있지 않고 유연하지도 않은 노년의 몸들이 뒹구는 장면 자체를 메시지 이전에 받아들이게 된다. 그 그로테스크한 현실은 하이퍼 현실이고, 우리는 어떤 표본실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사랑의 보편성, 혹은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몸의 보편성 같은 전언이 이 영화의 테마일 수도 있지만 정작 그 ‘몸’ 자체가 테마다.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몸들의 살아 꿈틀대는 실물감이 먼저 다가온다. 이 영화는 그러한 실물감을 내러티브나 메시지보다 우선시한 한국 초유의 영
목구멍 소리 그대로,하시게 <죽어도 좋아>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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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영화는 게임을, 게임은 영화를 곁눈질하며 상대의 자리를 탐내왔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처럼 게임에 대한 통찰도 애정도 없이 겉모습만 성의없이 베끼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아발론>처럼 게임 논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는 영화가 있다. <툼레이더>는 게임 캐릭터와 배경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블록버스터가 되었고, <레지던트 이블>은 게임 문법을 응용해 새로운 느낌의 영화를 만들었다. 게임쪽으로 말하자면, <윙커맨더>처럼 게임보다는 동영상쪽에 더 치중한 듯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영화 같은 극적인 연출로 명성을 얻었다.원 소스 멀티 유즈의 시대다. 블록버스터영화나 만화는 으레 게임으로 나온다. 게임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이 영화보다 먼저 선을 보였다. 땅 위의 엘프 군주들에게는 세개의 반지, 돌집의 드워프 왕들에겐 일곱개의 반지,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들에
게임 같은 영화,영화 같은 게임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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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감독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은 한마디로 코믹한 추리극이다. 홈페이지는 어두운 면보다 밝고 코믹한 면을 내세웠다. 특히 8명의 남자도 아닌 여자, 그것도 프랑스에서 최고의 개성을 가진 아름다운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인 만큼 홈페이지의 핑크빛 무드가 잘 어울릴 수밖에 없다. 홈페이지의 포인트는 배우, 감독, 이벤트다. 여덟 송이 꽃의 아이콘으로 표현된 배우들의 화려한 면면은 절대 놓칠 수 없는 정보들이다. 만든 사람들 코너의 오종 감독 인터뷰는 영화의 제작의도를 알려주고 있고, Movie Make-up 코너는 여배우들의 의상과 안무를 어떻게 조율했는지 흥미로운 뒷얘기를 전한다. 더 자세한 정보는 뉴스게시판에 여러 매체에 실린 기사 스크랩을 들러보면 된다. The Family & Suspect의 계보도는 여인들의 복잡한 관계를 한눈에 보여주며 범인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동영상과 O.S.T 코너에서는 배우들이 직접 춤추는 장면과 노래부른 샹송을 감상할 수 있다. 끝으로 다양
8명의 여인들의 핑크빛,<8명의 여인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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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제2회 부천국제영화에서 <바운스>를 본 것은 우연이라면 우연이었다. 한창 일본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던 상황이라 <사무라이 픽션> <알렉산더> <후따리> <왕립우주군> <가미가제 택시> 같은 영화들에 집중하다가, <가미가제 택시>의 감독이 만든 또 다른 작품이라는 정보만 가지고 무작정 보았던 것.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원조교제를 다룬 작품이라는 설명을 보고는 묘한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때까지도 원조교제란 그렇게 일본영화에서나 접할 수 있는, 아직은 낯선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문이나 <시사매거진 2580> 같은 TV프로그램을 통해 한국판 원조교제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오기는 했지만, 그건 정말 극소수의 이야기일 뿐이었다.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원조교제는 그 대체 용어를 공모한 결과 ‘청소년 성매매’로 바꿔 불러야
<바운스>를 통해 그려진 일본의 원조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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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꺼내놓고 그림을 그리기 전 선생님은 “노란 크레용으로 본을 떠라”고 하셨다. 가끔 검은 크레용으로 밑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은 혼이 나곤 했다. 검은 선 테두리는 일종의 금기였다.지난 6월 이성강 감독의 <마리이야기>가 프랑스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홍익대 황선길 교수는 수상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만화는 선의 예술이지요. 그런데 이 작품은 선 대신 면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검은 선 없이 색으로만 구분한 것이지요. 이런 독특한 형식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닐까요.”선이 잘 드러나지 않는 작품의 특징은 부드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잔잔한 얘기를 꾸려나가는 데 적당하다. 이런 스타일의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 <파워 퍼프 걸>이다. 귀여우면서도 무지막지한 세 꼬마소녀들의 힘은 두툼한 검은색 테두리로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가끔 TV에서 이 작품을 볼 때 왠지 모르게 갑갑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내 무의식 속에
유연한 테두리,<이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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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주는 만화 대상순수하게 독자들로 투표인단이 구성되어 최고의 만화에 상을 주는 ‘독자 만화 대상’이 만들어진다. 만화비평 웹진 <두고보자>, 만화비평 모임 ‘올쏘’, 만화검열 반대모임 ‘자유의 검은 리본’ 등 만화 커뮤니티들이 주축이 되어 준비 중인 이 상은 최근 공식 홈페이지(www.comicreader.org)를 개설하고 만화독자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출판 만화 대상’, ‘오늘의 우리 만화’ 등 정부기관이 시행하고 있는 만화상들이 독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만화잡지의 공모전 역시 출판사의 신인 수급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새로운 상을 제정하게 된 이유라고 말한다. 12월3일까지 후보작들이 선정된 가운데, 12월28일까지 투표자 등록을 한 독자들에 한해 투표를 실시한다.아즈 망가 대왕 완결21세기 초반을 강타한 개그걸작 <아즈 망가 대왕>이 전 4권으로 국내 완결 발간되었다. 평범해서 더 특별해 보이는 여고생들의
독자가 주는 만화 대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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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이다. 동그란 얼굴에 귀여움 가득한 눈, 속이려고 해도 틀림없다. 때로는 형사로, 때로는 스포츠 플레이어로, 나름대로 멋진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만 언제나 고양이의 본성을 숨기지 못해 망가지던 바로 그 녀석. 무시무시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고양이 <왓츠 마이클>(What’s Michael, 학산문화사 펴냄)이 돌아온 것이다. 아니 처음으로 제대로 왔다고 해야 할까 그때는 제대로가 아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 공원에서 새를 잡으려다가 실패하곤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며 달아나던 고양이 마이클. 한때 국내 만화잡지에 번역연재되어 놀라운 반응을 일으켰던 바로 그 모습. 늦었다. 그래도 좋다. 뒤늦게라도 정식 단행본으로 제대로 만나는 즐거움은 크다.격투코미디의 제왕 고바야시 마코토가 1984년부터 연재해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왓츠 마이클>은 지금 보아도 신선한 감성이 넘치는 동물만화의 고전이다. 만화 속에서 동물 주인공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
고바야시 마코토의 <왓츠 마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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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벨바그의 살아 있는 기념비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작품 열여섯편이 12월1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하이퍼텍 나다(www.dsartcenter.co.kr, 02-766-3390)와 시네마테크 부산(www.piff.org/cinema, 051-742-5377)에서 동시에 상영된다. 1960년 <네 멋대로 해라!>라는 담대한 구호로 영화를 선동한 이후 급진주의자이자 근본주의자로서 ‘래디컬’의 두 가지 의미를 실천해온 장 뤽 고다르. 영화의 심장을 동경하는 우리는 왜 자꾸 그를 맴돌 수밖에 없는가?1. 그의 영화, 괴상하다고다르의 영화는 어쩐지 이상하다. 그것은 일반적인 영화와는 너무나 다르며, 그런 것들에 비해서 특별히 더 나은 것도 없어 보인다. 차라리, 그것은 형편없다. 우리가 아는 상식의 수준에서는 말이다. 이것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 극장들을 떠돌아다니는 영화들을 보라. 아주 민감한 표피를 손으로 훑는 듯이 살살 건드리는 흥미진진한 코미디, 그런가 하면, 온갖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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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금 다르게 보기고다르에 대한 생각들, 아무리 그를 부추기고 위대하다 말을 해도 그의 영화를 보면서, 그에 대해 읽으면서, 그에 대한 비평가들의 말을 들으면서, 의아스러울 것이며, 모호할 것이다. 그래서 대체로 두 가지의 결과지어지는 태도들: 그래도 다들 중요하다 말하니까 졸립고 건조하더라도 눈을 부릅뜨고 뇌를 신경줄이 끊어져라 긴장하면서 쳐다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은근히 가슴속에는 울화도 있다. 울화, 혹, 내가 잘못되었더라도 고집스럽게 말하고 싶은 것. 이거 전부 사기가 아닌가 예술은 느껴지는 것일 텐데 언제부터 이렇게 머리로 하는 것이 되었는가 부질없어짐. 은근한 기분나쁨.이런 생각은 사실 전혀 틀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고다르를 높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영화는 정말로 단순하며, 거칠고, 생경하고, 산만하며, 장난 같다. 총을 맞고 뛰어가는 그 벨몽도의 우스꽝스런 모습이라니…(<네 멋대로 해라>) 푸른 눈의 우수, 알랭 들롱의 전혀 그답지 않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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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싸움, 끝나지 않을 싸움고다르야말로 영화를 재발명한다. 현실에의 눈, 극들 사이의 가공된 긴장과 포장 대신에, 투박한 실제를 집어넣는 것. 샹젤리제는 아름답지 않다. 거기에 있을 뿐이다. 고다르는 카메라한테서 삶을 해석하고 만들어내는 눈을 제거하고 그에게 대신 현실의 이완된 느슨함, 느닷없음, 모호함, 거칠음을 포착하는 눈을 제공한다. 그래서, 바로 이 점에서 모든 것이 고다르로부터 달라진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따라서 위대한 작품이 아니다. 감독을 위대하다고 할 때의 그 위대함은 고다르와는 전연 상관없다. 그는 영화라는 도구의 두 번째 발명가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여기서 시작한다. 그는 작품이 없다. 우리가 흔히 다른 것들에 붙이는 이름으로서의 작품이란 그에게는 없다. 그는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영화가 이야기이고, 의미이며, 텍스트라면, 그는 그 경계 바깥에 있다. 완전히 바깥 말이다. 그는 그 영화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하는 것은 ‘영화’라는 도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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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1960년 ┃ 90분 ┃ 출연 장 폴 벨몽도, 진 세버그1962년의 어느 인터뷰에서 고다르는 자신의 장편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가 애초에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영화가 되었다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리처드 콰인의 <푸쉬 오버>(1954)와 같은 리얼리즘적인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제공해준 이야기를 가지고 고다르가 만들어보고자 했던 것은 다분히 (고전적) 할리우드적인 의미에서의 리얼리즘적인 갱스터영화였던 것이다. 그러나 고다르 자신의 개인적인 기질이나 제작환경 등은 그걸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그가 만들어낸 영화는 대략의 스토리라인만 전통적인 장르영화에 속한 것일 뿐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에서는 철저히 전통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나 영화를 구성하는 방식에서 아나키스트적이었던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쏟아졌던 비판들을 돌파하고서 영화사의 새로운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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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빌 Alphaville, une Strange Aventure de Lemmy Caution1965년 ┃ 100분 ┃ 출연 에디 콩스탕틴, 안나 카리나로베르토 로셀리니,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등이 참여한 옴니버스영화 <로고팍>(1962)에 포함된 고다르의 영화는 20분짜리 <신세계>였다. 이것은 근처에서 일어난 원자폭탄 폭발의 여파로 인해 갑자기 완전히 바뀌어진 세계가 된 파리에 온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미래세계를 다룬 고다르식의 SF영화였던 셈인데, 이 장르에 대한 고다르의 탐사는 3년쯤 뒤 <알파빌>에서 완전한 형태로 이루어지게 된다. 원제가 <알파빌, 레미 코숑의 이상한 모험>인 이 영화는 비밀 정보원 레미 코숑이 알파 60이라는 컴퓨터가 지배하는 낯선 도시 알파빌에서 벌이는 말 그대로 이상한 모험을 다룬다. SF영화의 세계에 탐정영화와 로맨스영화의 틀을 겹쳐놓은 <알파빌>은 분명 독재사회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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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Le Week-end1967년 ┃ 105분 ┃ 출연 미레유 다르크, 장 얀파리에 살고 있는 탐욕적인 부부 롤랑과 코린은 시골에 있는 코린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주말에 자동차를 끌고 나간다. 그런데 이들을 맞는 것은 끔찍한 교통 정체와 그것보다 훨씬 더 나쁜 혁명가들이다. 영화 속의 인물인 롤랑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자신들에 대한 악의를 알아챈 듯 "불쾌한 영화 같으니라구. 우리가 만나는 건 죄다 미친 사람들이잖아”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주에서 길을 잃은 영화>와 <쓰레기더미에서 발견한 영화>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주말>은 이 주인공들 같은 인물, 즉 탐욕스럽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부르주아들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으로서 만들어진 영화다. 이 명백히 정치적인 영화에는 분석 같은 것도 없다. 고다르는 부조리한 유머와 섬뜩한 폭력을 융합해 부르주아들과 소비사회를 무참하게 공격한다. 한편 <주말>은 고다르 특유의 실험정신이 돋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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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일본에서 개봉해 14개월 장기상영 기록을 세운 일본형 블록버스터. 일본 아카데미 13개 부문을 수상하는 등 흥행성과 함께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한국의 <투캅스>처럼 일본의 형사를 코믹하고 사실적으로 그린다. 일본 최고의 톱스타 오다 유지가 주인공 아오시마 형사 역을 맡아 강한 매력을 선사한다. 서플에 수록된 음성해설과 제작과정 등을 통해 일본 블록버스터의 제작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 외에 극장용 예고편과 포토 갤러리 등을 서플에 담았다.
춤추는 대수사선 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