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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대신 작가를, 잠 대신 다큐를전주 아가씨 김현정 기자의 `작가`들과의 同居同樂 무박8일장 외스타슈의 다큐멘터리 을 20분 정도 보고 있던 젊은 관객이 가방을 움켜쥐었다. “오빠, 이게 뭐야. 도저히 못 보겠어. 나 먼저 갈게.” 평범한 할머니가 한번 했던 이야기를 자꾸만 다시 하는 은 감독이 친한 친구들에게만 보여준 영화라고 했다. 그가 그렇게 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나갔고, 기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파란색 ID카드를 내밀고 들어왔던 나는 차마 나가지 못했다. 처음도 아니었다. 거장에게 바치는 오마주와 밤인지 낮인지 분간이 안 가는 흑백 무성영화, ‘작가’라고 불리는 감독들의 다큐멘터리를 견뎌온 일주일 동안, 자꾸 선배 H가 떠올랐다. 지난해에 그는 파졸리니의 <테오레마>를 보고 돌아온 내게 눈을 최대한 크게 뜨면서 “너, 왜 그랬니?”라고 물었다. 사실은 너무 심하게 잠든 나머지 꿈도 꿨다고는 절대 말 못했지만, 그는 사람 보
현정이의 전주 다이어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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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이어 감독님, 죄송합니다전주 시내 한가운데 펼쳐진 `마당`의 전경. 매표소들과 안내데스크뿐 아니라 저녁 6시부터는 밴드들의 공연이 잔치의 흥을 돋우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전주영화제 일반 상영작은 입장료가 5천원이지만, 심야상영과 음악을 연주하는 ‘소니마주’는 1만원이다. ID카드로 무료 티켓을 끊어 상영장 겸 연주회장에 들어가면서 유료관객에게 부끄럽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영화는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무성영화 <잔다르크의 수난>이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라고 알고 있는 <잔다르크의 수난>은 잔다르크의 짧은 생애 중에서 재판과 화형만을 뽑아낸 영화였다. 어마어마한 클로즈업이 쉬지 않고 나오는 이 영화에 멜로디를 넣을 부분이 마땅치 않았는지, 네명으로 이루어진 연주팀은 계속 붕붕거리거나 끼익거리기만 했다. 언제쯤 음악이 시작될까 궁금해하다가, 잠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긴 영화는 중간에 한번 자줘야 중요한 결말을 놓치지 않아”라고 위안삼던 평
현정이의 전주 다이어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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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상영관인 전북대 문화관 앞은 늘 관객으로 북적댔다. 4월 27일부터 29일까지는 `희망시장`이라는 이름의 아트벼룩시장이 열리기도 했다.<일곱 명의 발레리나> <야간 경비원의 시선> <첫사랑> 세편을 묶은 키에슬로프스키의 다큐멘터리는 부문을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극영화로 착각했을지도 모를 영화들이었다. <첫사랑>은 임신 때문에 서둘러 결혼한 열일곱살 소녀와 스무살 청년의 1년 가까운 시간을 관찰한다. 학교에 다니면서 돈을 벌고, 어린 나이에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부부에겐 일상이 드라마다. 사회주의 국가에선 허가를 받지 않으면 할머니집 빈방 한칸도 마음대로 쓸 수 없다. 혼인신고를 기다리는 부부가 많아서 빈틈이 날 때까진 결혼도 못한다. 그래도 씩씩하게 살길을 찾아다니는 두 사람은 귀여운 딸을 낳지만, “이 아이는 우리보다 현명할 테니까 우리처럼 되진 않을 거야”라고 다짐한다. 신기했던 것은 결혼식장에 온 부모가 “너는 나보다 행복할 거야
현정이의 전주 다이어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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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도라 하면 그래 하면서 놀라기부터 한다. 그런 고결한 신앙을 가진 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게다. 그러면서도 더러 세례명을 묻는 이가 있기는 하다. 야고보다, 야곱, 제이콥이다. 냉담자요, 배신자인 마당에 이제 와서 한때의 성당 편력을 들먹여서 무엇하겠으며 신앙이 어떠니 경건함이 저떠니 해봐야 뭐하겠는가마는 어쨌든 신앙이라는 게 거추장스러운 짐일 때가 있다. 그 신앙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윤리적 덕목마저 지키지 못할 때가 그중 하나다. 가령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거 솔직히 지키기 힘들다. 아니 지키고 싶지 않을 때가 너무 많다. 미운 놈은 미워해야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화를 뿜어내야만 한다. 이런 기본도 안 돼 있으니 성당에 발 끊은 건 백번 잘한 일인지도 모른다.야곱 하면 떠오르는 게 영화 <야곱의 사다리>와 <빵장수 야곱>이라는 책이다. <성자가 된 청소부> 따위와 함께 한국에서 꽤나 팔렸던 책이다. 까마득히 잊혀진 줄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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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나이는 2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에 걸쳐있다. 나는 40대 초반이다. 평소엔 그냥 어울린다. 어울리다 보면 그냥 친구 같고, 물리적 나이 차이가 별로 의식되지 않는다. 내 또래보다 20대와 훨씬 잘 통하고 더 가깝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가 김영하씨는 또래의 남자들과 어울리기 싫은데, 그 이유가 한국 남자들은 자기 또래의 낯선 남자들을 만나면 거의 본능적으로 기싸움을 걸거나 나이와 학연 지연 따위를 확인하려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자들이 그러는 건 그건 저 사람이 나의 적인지 동지인지 확인하기 위해 혹은 자기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정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느낀다. 그러나 가끔 다른 생각이 든다.일 끝나고 밤 늦게 가진 술자리에서 한 20대 여자 후배에게 “세상이 좋아지려면 뭐가 바뀌면 좋겠냐”고 무심하게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남자 친구하고 사이가 더 좋아지면 좋겠고, 엄마가 안 아프시면 좋겠고…” 당황했다.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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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쓰지?”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쓰지 커피를 마셔볼까. 마셔도 안 풀리네. 베스트셀러 도서의 각색을 의뢰받은 시나리오 작가가, 끙끙대다가 각색을 포기하고는 끙끙대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각색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상한 영화. 이상하긴 하지만,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로 놓고 보면 그다지 새롭진 않은 것 같고. 대인관계에 소심하고, 창작엔 엄격한 이 작가가 악몽에 시달리는 게 우습지만 특별한 아이러니가 있는 것 같진 않고. 왜, 우디 앨런식 캐릭터 코미디가 상투적으로 보일 때와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통상적으로 써봐 이런 건 좋고, 이런 건 아쉽고 하는 식으로 그런데 그게 구별이 가나 좋은 그 점이 바로 아쉽고, 아쉬운 그 점 때문에 좋을 수도 있는데. 또 좋은 점도 아쉬운 점도 다 선명하지 않을 땐 억지로 말을 만들어 대다수 영화가 그럴 텐데 그 동안은 어떻게 기사를 써왔지 그래. 일단, 줄거리부터 요약하자.시나리오 작가 찰리
[새 영화] <어댑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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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과 순수를 추억하는 따뜻한 동화“이건, 동화예요.”물 속에서 카메라가 천천히 헤엄치듯 수몰된 마을의 낮은 담장, 골목, 가게를 비추는 첫 장면부터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그렇게 말을 건다. 하얀 눈 쌓인 산 위에 외따로 서 있는 나무 오두막, 검은 밤하늘에 또렷이 보이는 화성, 털귀마개를 하고 빨간 자전거를 몰고 다니는 시골 우체부…. 영화 속 배경과 인물은 모두 예쁜 동화처럼 사람들을 맞는다. “지치셨나요 잊었던 이곳으로 오세요.”<화성으로…>는 성공적이었던 데뷔작 <동감>(2000년) 이후 김정권 감독과 작가 장진이 두 번째 만난 작품. 언뜻 보기에 영화는 ‘순수한 사랑’의 이야기다. 죽은 아버지가 ‘화성으로 갔다’고 믿는 소녀 소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소년 승재는 꼬박꼬박 대신 답장을 쓴다. “화성엔 아무나 가냐. 대통령, 우주비행사, 그리고 편지 배달해야 하니까 우편배달부나 가지”라던 이 꼬마들의 말처럼 17년이 흐른 뒤에도 승재(신하
[새 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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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사랑방이 매해 개최하는 인권영화제는 ‘영화’라는 매체가 궁극적인 인간성의 실현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확인하고 희망을 품어볼 수 있는 자리다. 오는 23~28일 서울아트시네마와 광화문 아트큐브에서 펼쳐질 7회 영화제는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다. 모두 33편의 국내외 작품 가운데 이주 노동자의 인권에 관련된 건 7편이다. 카메라의 시선은 미국 남미인들의 이민 역사(<도시>), 네덜란드에 취업한 남아프리카 간호사들의 갈등(<모험>), 한국의 산업연수생 제도 철폐문제(<우리는 이주노동자다>) 등 세계 곳곳에 가 있다. 올해는 1990년 유엔에서 채택한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의 한국정부 가입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는 해다.지난해 ‘전쟁과 인권’을 내세웠던 영화제는 올해 역시 ‘미국의 전쟁범죄’를 또 하나의 섹션에 배치시켰다. 노엄 촘스키의 미국의 대테러전 비판을 담은 <파워 앤 테러>, 걸
[인권영화제] 이주노동자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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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원장 정홍택)은 26∼30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영상자료원 시사실에서 김기(1929~) 감독 초대전을 마련한다. 29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김기 감독은 64년 <동백아가씨>로 데뷔해 87년 <유정>까지 80여 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동백아가씨>와 <여로>(73년), 김수현 작가의 작품을 영화화한 <상처>와 <청춘의 덫> 등을 히트시키며 한국적 멜로드라마의 전형이 되어온 영화 연출가다.흥남화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쟁 당시 단신으로 월남한 그는 <삼등과장>, <육체의 문> 등으로 알려진 이봉래 감독의 조감독으로 충무로 생활을 시작한다. 7년간의 조감독 생활 끝에 처음 메가폰을 잡은 <동백아가씨>는 당시 흥행기록에서 2위 영화를 멀찌감치 따돌리며 '대박'을 터뜨린 영화. 신성일과 엄앵란, 황해가 호흡을 맞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인 이
한국영상자료원 김기 감독 초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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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홍콩의 영화제작자들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과 관련된 영화 2편의 제작에 착수했으며, 곧 촬영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BBC 인터넷판이 7일 보도했다. BBC는 우선 홍콩 만다린 영화사가 제작중인 스티브 정 감독의 `사스의 도시(The City of Sars)'가 이르면 오는 7월 개봉될 예정이라고 전했다.코미디 드라마인 이 영화는 강제로 격리당하면서 만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와 사스 치료에 몰두하는 홍콩 의료진들의 애환, 사스로 파산한 한 기업가가 질병을 막기 위해 벌이는 노력 등 사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3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BBC는 또 중국의 유명 여배우 공리(鞏利)가 중국에서 제작될 사스 영화에 출연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전했다. 출연이 결정되면 공리는 이 영화에서 환자의 치료에 헌신하다 결국 자신도 사스에 감염되는 간호사 역을 맡을 예정이다. 공리는 21편의 영화에 출연한 베테랑 영화배우로, '붉은 수수밭'과 '홍등', '귀주 이야기' 등에 출연해
中.홍콩, 사스 영화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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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심플리 레드 | 유니버설 발매브릿팝 솔 밴드 심플리 레드의 8번째 음반이자 3년 만의 신보. 마빈 게이와 스티비 원더의 팬이라면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음반이다. 밥 딜런의 포크록 히트곡 <Positively 4th Street>과 자메이카의 레게 뮤지션 데니스 브라운의 레게 클래식 <Money in My Pocket>을 하우스 버전으로 리메이크했다. 펑키한 재즈 솔 넘버 <Lost Weekend>도 인상적이다. 21세기에 나온 음반치고는 고전적인 따뜻함이 흘러넘친다.<Apres Un Reve>로랜드 한나 | 강앤뮤직 발매2002년 11월13일 사망한 피아노의 거장 로랜드 한나의 유작앨범 <Apres Un Reve>가 발매되었다. 사망하기 불과 2달여 전에 녹음된 음반으로 슈베르트, 쇼팽, 루빈스타인, 드보르자크, 말러 등이 작곡한 9곡의 클래식 작품들을 재즈의 선율로 선보인다. 최근 클래식을 재즈로 편곡해서
[문화단신] ,<에곤 실레,벌거벗은 영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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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나의 영화는 누구의 것일까? 모든 스탭들의 이름은 기억에서 지워지고 주인공, 또는 감독의 이름만이 남아 영화의 제목과 함께 세월을 유영한다. 그렇다면 영화는 감독의 것, 주인공의 것인가? 사실, 도대체 이름으로 남는다는 것은 때로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하나의 영화는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 내가 잘 아는 어느 영화감독은 “사람들은 모른다. 감독조차 모른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황야의 무법자>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것인 줄 알지만 사실 그 영화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것이라는 것이다. 부당한가. 모리코네라는 이름이 또 다른 하나의 이름일 뿐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 영화는 그 ‘음악’의 것이다.
<모노노케 히메>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97년작이다. 하야오가 ‘은퇴작’이라고 선언했던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가장 전형적인 구조물로 꼽을 만하다. 일본 특유의 토속신앙과 결부된 ‘정령숭배’에서 비롯하여 환경주의까지를 아
히사이시 조 음악의 정점,<모노노케 히메>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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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가 뒤틀리는, 그러나 일상의, 폭소자기처럼 질투심 많은 성격에, 매일 그렇게 남의 그거 보고 있는 거 알면, 가만있지 않을 거잖아!/ 그러는 자기는, 그 소심한 성격에 자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걸 알면 또 상처받을 거 아냐!/ …. (중략) 내게 그렇게…. 굵고, 단단했어?/ 그걸 몰라서 물어!(<이크> 소수 송재성 만화, <내. 연. 애. 는. 위. 기. 에. 처. 했. 다. > 중 풍선 속 대사)이렇게만 보면, 두 사람 사인은 연인이고 불륜관계고, 최소한 한 사람은 자기 직업을 속였다. 그 직업은, 미루어 짐작해서, 산부인과 의사? 아니다. 치질전문의다. 그럼, 무슨 얘기지? 만화는 처음부터 둘 다 남자고, 두 남자는 치질환자와 치질의사 관계고 곧 두 사람은 호모에로틱 관계다. 그리고, ‘그거’는 (여성기가 아니라 남자의 항문이고, 덧붙혀 누구나의 항문이다, 왜냐하면 ‘취향이 좀 색달’라서 치질을 얻은 여자 환자도 등장하고, 그녀는 ‘그게 굵고 좀 딱딱하’
<계간 만화 이크> · 주완수 만화에세이 <내 일본인 마누라 켄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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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내가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한 지 꼭 10년이 되었고, 한국 영화사에 본격적으로 매달린 것은 이제 4년 남짓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배운 가장 분명한 사실은 이영일이라는 인물은 영화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이영일의 한국영화사 강의록>은 이 산이 얼마나 넘기 힘든 거대하고 험난한 산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산 증거일 것이다.<이영일의 한국영화사 강의록>은 한국예술연구소가 엮어낸 ‘한국예술아카이브총서’ 시리즈의 두 번째 책자로, 2001년 타계한 고 이영일 선생이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과정에서 1999년 2학기부터 2000년까지 3학기 동안 한 마지막 강의를 기록한 것이다. ‘강의록’이라고 하는 이 책의 구성방식은 그동안 이영일의 저서에서 보여줬던 한국 영화사의 대표적인 비평가로서 그리고 영화사학자로서의 면모와 더불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교육자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광으로서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한국 영화사의 거대한 산, 이영일,<이영일의 한국영화사 강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