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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세팅이 거의 마무리될 무렵, 박기형(36) 감독은 갑자기 오현제(38) 촬영감독에게 다가가 소곤거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촬영감독의 응답. “제가 착각했네요. 트랙을 깔아야 할 것 같은데요.” 4월27일, 경기도 가평군 소재 허수아비 갤러리. <아카시아>의 2회차 촬영현장이다. 오후 촬영이 다소 늦어지는 것에 대해 박 감독은 “그냥 카메라 고정하고 틸업(tilt up)하면 질감이 안 나와. 인물 사이즈 유지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붐업(Boom up)하려고 했는데 촬영쪽에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거예요. 좀 지나면 속도가 붙겠죠” 한다. 이날 촬영은 미대 교수인 시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어린이 미술대회 심사를 맡게 된 직물공예가 미숙(심혜진)이 전시회장을 둘러보다 E. 뭉크의 <절규>를 연상케 하는 묘한 그림을 마주하게 되고 이 그림을 그린 커다란 눈을 가진 아이 진성(문우빈)과 만나는 장면이다. 공포영화의 결을 따라 편집해야 하는 것을 염두에 둔 듯 10번이
독향을 내는 꽃,<아카시아>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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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감독 루치오 풀치의 영화가 무삭제로 출시된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일반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루치오 풀치는 공포영화 마니아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감독이다. 고어의 황제로 불리는 루치오 풀치의 영화는 머리가 터져버리거나 안구를 자르는 등 극악한 고어장면으로 유명하다. 그 덕에 그동안 루치오 풀치의 영화는 아예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거나, 나왔어도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좀비>도 1992년에 이미 비디오로 나왔지만, 중요한 부분은 모두 잘려나갔다.1927년생인 루치오 풀치는 어떤 장르이건 능숙하게 만들어내는 장인으로 알려져 있다. 뮤지컬과 코미디, 서부극 등 다양한 장르를 만들어내던 루치오 풀치는 60년대 후반부터 스릴러에 주력한다. 가톨릭 교회에 대한 풍자가 문제가 되어 고난을 겪었지만 루치오 풀치는 79년에 만든 <좀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 루치오 풀치는 <하우스 바이 세미테리> <비욘드> &
무삭제 고어영화를 만난다,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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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reversible, 2002년감독 가스파 노에출연 모니카 벨루치, 뱅상 카셀, 알베르 뒤퐁텔장르 스릴러, 드라마출시사 파라마운트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도 있었던 아름다운 커플이 한순간 나락으로 질주한다. 홀린 듯이 지옥의 풍경을 담아내는 카메라는 악마의 시선 자체가 되어가며, 가스파 노에는 무자비하게 인간의 가장 깊숙한 심연을 응시한다. 2002년 칸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되었을 때 이 우아하고 귀족적인 축제의 장을 한순간 경악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돌이킬 수 없는>은 그러나 단순히 싸구려 선정주의의 한방으로만 치부될 수 없는 파워를 발산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라는 음산한 경구, 가스파 노에는 진심으로 21세기의 파졸리니가 되기를 꿈꾸는 야심가다.
악마의 시선이 되어버린 카메라,<돌이킬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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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 로맨스>는 꼭 10년 전에 개봉했다. 당시 한국 극장가에 걸렸던 <트루 로맨스>를 야단스럽게 수식했던 문구들은 ‘신세대와 MTV의 영화!’ 비슷한 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낯선 느낌은 그 홍보 문구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당혹스러움의 정체는 오히려 <트루 로맨스>에 충만한 일종의 난폭한 정서에서 비롯되었다. 그건 폭력이 난무한다는 의미에서의 물리적인 난폭함이 아니다. 처음 만나는 남자에게 “넌 나의 운명이야”라고 곧장 고백하고, 재수없는 포주를 곧장 처단하러 달려가고, 자신의 혈통을 조롱한 상대방의 머리에 곧장 총구를 들이대고, 친구의 행방을 묻는 악당에게 망설이지 않고 곧장 정답을 누설하며…. 그런 식의 ‘곧장’의 물결들. 직설적인 유머와 조롱의 기이한 랑데부, 잔혹한 죽음과 천진난만한 사랑의 맹세가 시침 뚝 떼고 나란히 연결되는 정서의 만화경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이제 2003년으로 넘어온다. “안녕하세
여전히 쿨한 그들,<트루 로맨스> 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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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믿을 수 없는 모험과 방탕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싶어.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가능하다면… 성인(聖人)이 되고 싶어.” 1972년, 케네디적인 야망에 불타는 청년 필딩은 열렬한 액티비스트 사라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미국의 칠레 내정간섭을 반대하던 사라는 의문의 폭발사고로 숨을 거둔다. 11년 뒤, 꿈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원의원 필딩의 눈앞에 어느 순간 사라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실제 그녀일까, 아니면 그녀의 유령일까?<러브스토리>의 원작자이기도 한 스콧 스펜서의 소설을 영화화한 <웨이킹 더 데드>는, 조너선 로젠바움이 지적한 것처럼 ‘사랑이 정말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닐 조던의 <애수>와 아주 닮아 있다. 거의 종교적이리만치 신비로운 열정에 감응하며 고행의 길을 자처하는 주인공들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경험한 적 있는 모두에게 기이한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그렇게 속세와 천상이 한순간 겹쳐지며 실패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웨이킹 더 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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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개그콘서트> 매주 일요일 밤 8시50분KBS 뉴스92003년 한국에서 가장 인기 좋은 뉴스는? MBC의 도, KBS의 <아침뉴스>도, SBS의 <나이트라인>도 아니다. 줄곧 시청률 30%의 언저리를 맴도는 <개그콘서트>의 다. <…언저리 뉴스>의 웃음 코드 속에는 이 나라 뉴스 프로그램의 엄숙주의에 대한 조롱이 들어 있다.<…언저리 뉴스>의 인기는 뉴스 위기 시대의 반영이다. 정보 홍수시대의 텔레비전 뉴스는 속보성은 떨어지고, 심층분석에도 실패하고 있다. 아무리 새로운 척 떠들어도 상당수 시청자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뉴스의 실체에 대해 알고 있다. 게다가 대한민국 뉴스들은 수박 겉핥기식 현상전달, 찬반양론의 기계적인 나열, 교훈 섞인 마무리로 구성되는 전통적인 구조를 고수해 시청자들을 질리게 만든다. 게다가 시청자들은 첫마디만 들어도 무슨 내용인가에 어떤 흐름으로 전개될지를 대충 짐작하는 ‘빠꼼이’들이다.
뉴스의 폐허 위에서 피는 웃음꽃,<개그콘서트>의 <9시 언저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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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 무지 화면 속에 한 남자의 나레이션이 조용히 흐른다. 그리고 시끄러운 소음들과 함께 남자의 얼굴이 드러난다.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중심으로 서서히 뒤로 물러선다. 남자는 총을 들고 있고, 붙잡힌 여자는 몸부림치고 있다. 원신연 감독의 <자장가>(2003년/ 35mm)는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시작한다. 하지만 관객들이 사건을 이해하기도 전에 충격적인 총성과 함께 상황이 종료된다. 그리고 기자들의 목소리를 빌어 이야기가 전해진다. 영화는 충분히 긴장감이 넘치고, 원씬 원쇼트의 형식 실험도 재미있지만, 영화는 감독이 선택한 스타일에 갖혀 재빨리 마무리된다. 하나의 아이디어안에 장점과 단점이 함께 포함되어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김다영 감독의 <Super Morse>(2003년/ 16mm)는 빚더미에 올라앉은 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모두 전화로 빚독촉을 받느라 정신이 없다. 젊디젊은 주인공 역시 그놈의 빚 때문에 연애도
[독립 · 단편영화] 가난이 죄요,<자장가><수퍼 모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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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t Horizon, 1997년감독 폴 앤더슨 | 출연 로렌스 피시번 MBC 5월24일(토) 밤 11시10분
우주선 이벤트 호라이즌이 연락이 끊긴 지 7년 뒤 생존신호가 포착된다. 구조선의 대원들은 이벤트 호라이즌에 도착한 뒤 이상한 일을 겪고 하나씩 목숨을 잃는다. 밀런 선장 등의 대원은 이벤트 호라이즌이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지 의심한다. 대원들은 우주선에서 탈출을 꾀하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최근 <레지던트 이블>을 만든 폴 앤더슨 감독작. 고전적 공포를 SF장르에 접목한 수작이다. 로렌스 피시번, 샘 닐 등 출연.
[주말 TV] 이벤트 호라이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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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nee Prochaine si Tout Va Bien1981년, 감독 장 루 위베르 | 출연 이자벨 아자니 EBS 5월25일(일) 낮 2시
만화가 막심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그의 동거녀 이자벨과 많이 닮았다. 이자벨은 아기를 갖기 원하지만 아직 막심은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다. 그래서 둘의 갈등이 시작된다. 서로 다른 파트너를 만나 바람을 피운 막심과 이자벨은 곧 상대방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한다. 둘은 원하던 아이를 갖게 되지만 다시 과거의 일이 문제가 되면서 다툼이 벌어진다. 전형적인 멜로영화. 이자벨 아자니 등이 출연한다.
[주말 TV] 사랑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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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Morts Sur Ordonnance, 1975년감독 자크 루피오 | 출연 미셸 피콜리 EBS 5월24일(토) 밤 10시만화 <몬스터>는 제목만이라도 아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의학스릴러라는 장르를 떠올릴 때면 이 만화가 먼저 연상된다. 만화 <몬스터>엔 한 전문의가 나온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되살린 한 생명을 스스로 끊어버리려고 결심한다. 일종의 절대악을 상징하는 생명을 의학의 힘을 통해 연장시켰으며 이를 뒤늦게 알고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다. 만화엔 다른 곁가지 에피소드가 많지만 중심 서사는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것도 사실이다. ‘의술’이라는 영역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작품을 심리스릴러 영역으로 접목하는 기법 역시 탁월하다. <죽음의 사중주>은 거칠게 비유하자면 축소판 <몬스터>다. 병원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그리고 의사들의 강박관념, 끔찍한 범죄, 이를 영민하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강박의 데칼코마니,자크 루피오 감독의 <죽음의 사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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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얄개' 시리즈로 70년대 하이틴영화 붐을 일으켰던 석래명(石來明) 감독이 20일 오후 1시 지병인 간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64세.경복고와 고려대 법과대를 졸업한 고인은 50년대 조흔파의 명랑소설 <얄개전>을 각색한 이승현ㆍ강주희 주연의 <고교얄개>를 76년에 발표해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25만8천명의 관객을 동원했다.이어 77년 <고교 거꾸리군 장다리군>, <얄개 행진곡>, <여고얄개>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이승현ㆍ김정훈ㆍ강주희ㆍ김보연ㆍ진유영 등을 청춘스타로 만들었다. 당시 석감독은 김응천ㆍ문여송과 함께 70년대 하이틴영화의 트로이카로 일컬어지기도 했다.고인은 최훈 감독 아래서 조감독 생활을 하다가 71년 신영균ㆍ문희 주연의 멜로영화 <미워도 안녕>으로 데뷔했다. 얄개 시리즈 이후에도 <가을비 우산속>, <아스팔트 위의 돈키호테> 등을 연출했으며 92년 배우 진유영에게 메가폰을 맡겨 &
`얄개` 시리즈 석래명 감독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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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극장가 최고의 화제는 <살인의 추억>의 관객몰이가 어디까지 계속될 것이냐이다. 개봉 뒤 지난 20일까지 26일 동안 355만명(CJ엔터테인먼트 집계)이 들었고, 여전히 관객이 줄지 않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 영화의 흥행 행진에 최대 변수인 <매트릭스 2 리로디드>가 23일 개봉한다. <매트릭스2>는 맥스무비의 예매율 집계에서 94.6%라는 압도적인 수치를 보이며, 이번 주말부터 당분간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킬 것을 예고하고 있다.주목할 건, 다른 굵직한 영화들이 모두 <매트릭스2>를 피해 가느라 이 영화 외에 <살인의 추억>의 다른 경쟁작이 없다는 점이다. 23~25일 주말 예매순위도 <살인의 추억>이 2위이다. <살인…>은 2위 자리를 확실하게 차지하고서 꾸준히 관객몰이를 해나갈 전망이다.지난 주말 박스오피스는 <살인…>이 서울관객 12만명(이하 CJ엔터테인먼트 집계)을 넘기면서 막 개봉한
23일 개봉 <매트릭스2> 흥행돌풍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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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여배우 임수정이 영화 <…ing>(제작 드림맥스)에 출연한다. 신인 이언희 감독의 데뷔작인 <…ing>는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던 내성적 여주인공 '민아'에게 이상형과 전혀 딴판인 남자 친구 '영재'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경쾌하고도 따뜻하게 그리는 영화. 임수정은 민아역을 맡아 영재역의 김래원과 엄마로 출연하는 이미숙과 호흡을 맞춘다.
임수정은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 대통령 딸 역을 맡은 바 있으며 현재 <장화, 홍련>(제작 영화사 봄)에도 출연 중이다. 튜브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 배급을 맡은 <…ing>는 6월 촬영을 시작해 올 가을 개봉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ing>에 임수정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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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영화가 없네, 빌어먹을”젠장, 또 마감시간이 지났다. 오늘은 최악이야. 아, 술이 웬수다. 그렇게 퍼마시지만 않았으면 벌써 마감했을걸 이꼴이 뭐야, 좀비 같은 꼬락서니하고는…. 좀 있으면 지엄하신 심은하 기자님이 싸늘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실 테고 나는 방값 밀린 자취생이 요리조리 도망다니다가 걸린 집주인에게 애걸하듯 쩔쩔매며 한 시간만 한 시간만 빌어대야겠지. 전화를 꺼놓을까? 그래봤자 사무실로 하면 받을 수밖에 없잖아. 아예 부서 전화코드를 다 빼놔버려? …미쳤군.무슨 영화를 쓰지? 쓸 영화가 없네. 빌어먹을…. 나도 남의 돈 거저 먹으려는 건 아니라구. 지난 주말부터 <엑스맨2>와 <펀치 드렁크 러브> <어댑테이션>, 다 돈주고 봤다구. 근데 어떡해. 그냥 “참 재미있었습니다”가 끝인데…. 애당초 원고료 올려준다고 덥석 이 코너를 받은 게 문제였어. 나에게 지구상의 영화는 그저 ‘재미있는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 두 부류만 존재할 뿐이야.
아가씨,자신을 <어댑테이션>의 찰리로 착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