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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버스 안에 탄 한 청년이 내뱉은 말은 일종의 논쟁을 불러오는 불씨가 된다. 그 앞의 자리에 앉은 남자가 말한다. “어디에도 제대로 된 정부는 없소.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층이 힘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지.” 그러자 버스 승객 가운데 또 누구인가가 이야기한다. “인류 전체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는 게 누구지? 우리를 이간질하고 있는 게?” 이에 대한 대답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서 이반이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때 했던 이야기를 흉내낸 것으로 되돌아온다. “아마도 악마겠지요.” 바로 그때 마치 무언가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을 엿들어서 당황하는 것처럼 버스는 급정거를 하고 만다.이 세상의 혼돈은 정말이지 악마의 탓인 것일까? 사실 그건 일종의 모함일지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 장면에서 버스 승객이(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도 함께) 공유하는 것이 있긴 한데 바로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을 만큼 이 세상은 잘
자살 권하는 인생,<아마도 악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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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랄한 지역유지 페드로와의 결혼을 거부하던 기티에르가 상어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처했을 때 ‘바다의 악마’로 불리던 신비로운 생물체가 그녀를 구해낸다. 실상 그는 해양왕국을 설립하려는 열정에 휩싸인 과학자의 아들이자 창조물인 ‘앰피비안 맨’(양서 인간) 이치얀더였다. 불가능한 사랑의 열정에 휩싸인 이치얀더는 기티에르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초반부, 조잡한 분장과 단순한 특수효과의 퍼레이드를 보며 낄낄거리다가도 어느덧 자세를 고쳐잡고 이 비극적인 동화에 점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어공주>의 전도된 버전이자 가깝게는 <가위손>의 묵직한 정서적인 울림을 공유하고 있는 <앰피비안 맨>은 러시아의 쥘 베른이라 불리는 SF 거장 알렉산더 벨야예프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본격 SF라기보다는 좀더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배경 속에서 철학자의 그것과도 같은 관조적인 시선으로 인간 군상의 운명을 담아냈던 원작의 미묘한
비극적인 동화,<앰피비안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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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TV로 방영되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사지절단’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어울리는 버전이었다. 아편굴 장면은 알아볼 수 없게 토막났고, 속전속결의 간명한 폭력신은 거의 삭제되었다. 내가 과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봤던가? 아마도 ‘대강의’ 내러티브만을 보았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이 영화를 완성하는 데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임했던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엿보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이번에 새롭게 출시된 디렉터스 컷 ‘이후’부터일 것이다.1921년, 1933년, 1968년. 각각의 시간대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과 함께 시대의 전환점이기도 하다. 1921년, 뉴욕 이스트 사이드의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성장하는 소년들의 꿈은 하나다. 자신들이 지금 섬기고 있는 보스의 위치에 오르는 것, 전설적인 이름 벅시처럼 자신들의 이름을 세상에 날리는 것. 그들은 게임의 법칙을 배워나가며 꿈을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그 위
누가 그 시간을 안다 말하는가,<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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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미로운 음악이 깔리고, 이제 곧 라디오에서 듣게 될 목소리. “한번을 봐도 일생 동안 기억되는 영화, 그 기억에 함께하는 음악이 있습니다.” 뭘까? 혹시 영화음악 음반 광고 아닌가? 맞다. 하지만 그 의의는 다르다. 지난 7월3일 영화배우 안성기, 조승우가 스크린쿼터 지키기 운동의 일환이자 그 수익금 일체를 활동 지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마련된 ‘내 인생의 영화음악’ 음반제작 프로젝트의 CM을 녹음했다. 안성기, 조승우는 감독, 제작자, 배우, 언론인 등 영화계 14인에게 선곡받아 진행되는 이번 음반제작에 배우로서 참여했으며, 며칠 전 미리 녹음을 마친 이영애와 함께 응원전까지 같이하고 있다. “수익이 잘될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영화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관객도 스크린쿼터에 대한 관심을 공유했으면” 한다는 안성기, “이제 막 영화를 시작한 사람으로서 스크린쿼터는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반인들도 알아줬으면 한다”는 조승우. 두 배우는 짧은 CM송에 맞춰 느리게 또는 빠르게,
[사람들] 우리 영화를 지키는 또 하나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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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호장룡> <러시아워2> <무사>의 히로인 장쯔이가 <조폭 마누라2-돌아온 전설>(제작 현진시네마/감독 정흥순)에서 주인공 신은경과 대적하는 장면에 카메오로 출연하기 위해 7월9일 한국을 내한했다. 장쯔이는 9일 촬영준비, 언론 인터뷰 등을 마치고, 10일 오전 촬영에 임한다. 장쯔이는 국내에서의 일정이 끝나는 대로 미국으로 출국한다. 제작사에 의하면, 장쯔이가 이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이유는 홍콩에서 흥행 1위까지 올랐던 전편 <조폭 마누라>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조폭 마누라2-돌아온 전설>은 9월5일 추석시즌 개봉예정이다.
[사람들] <조폭마누라> 깜짝출연,장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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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깁슨에게 태클이 들어왔다. 그는 현재 자신의 제작사 아이콘프로덕션에서 예수의 죽음을 다룬 영화 <열정>을 제작 중인데, 친유대단체 ADL(THE Anti-Defamation League)이 영화 속 유대인들의 묘사를 두고 시비를 건 것이다. 이 단체는, “멜 깁슨의 영화가 유대인들을 피에 굶주리고 가학적이며 돈만 밝히는 사람들로 표현했다”면서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유대인 사회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다”고 항의했다. 내년에 개봉할 예정인 <열정>은 이전에도 아르메니아 방언과 잔인한 십자가 처형장면이 문제시됐었다. 제작사의 대변인은 ADL의 발언을 특별히 언급하지는 않고, 대신 “나나 내 영화나 유대인에 대한 반감은 없다”는 멜 깁슨의 말을 전했다.
[사람들] “나쁜 뜻은 없었다니까” ,멜 깁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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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로버츠의 얼굴이 붉어졌다. 불꽃놀이 하려다가 화재안전요원들에게 저지당해서 기분이 몹시 상했기 때문이다. 2001년 <멕시칸>을 촬영하면서 만난 카메라맨 대니 모더와 결혼 1주년을 앞둔 그는, 돌아오는 7월4일 미국 독립기념일도 ‘기념’할 겸, 결혼 1주년도 챙길 겸, LA의 새 집에서 화려한 불꽃놀이쇼를 계획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안전수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허가를 얻지 못했다. 1년 전 뉴멕시코에 있는 자기 개인 소유의 목장에서 현재의 남편으로부터 로맨틱한 청혼을 받았던 줄리아 로버츠. 그날을 멋지게 기념하려던 뜻이 꺾였으니 실망이 컸을 법도 하다. 그는 현재 커스틴 던스트와 공연한 <모나리자의 미소> 촬영을 모두 마친 상태다.
[사람들] 불꽃놀이 하게 해 줘! 줄리아 로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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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헐크>의 감독 리안이 은근슬쩍 은퇴설을 내비쳤다. 은퇴사유는 나이가 들어서. “요즘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자주 느낀다. 확실히 늙었다.” <와호장룡>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한 그는 “원래 몇주만 쉬어도 곧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번엔 <헐크>를 시작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며 몸이 쇠약해지고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마흔아홉살. 스필버그가 8살 더 많고 스코시즈가 12년, 리들리 스콧이 17년 연배다. 임권택 감독도 18년을 더 사셨다. 여기에 쉰여섯살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여전히 빵빵한 근육질 몸으로 거침없는 액션을 자랑 중이라는 점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리안의 은퇴설은 아직 일러 보인다.
[사람들] “몸이 예전 같지 않아”,리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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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누 리브스는 베푸는 일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같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촬영 당시 스턴트맨 열두명에게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선물하고, 특수효과팀과 의상디자이너들에게는 5천만달러의 거금을 아무렇지 않게 기증했을 만큼 통 큰 이 남자. 이번엔 10년 동안 백혈병을 앓고 있는 여동생을 위해서 LA에 있는 개인 저택을 병원으로 개조할 것이라고 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 특별한 병원은, ‘오직 한명의 입원환자’를 위해 최고급 시설과 실력있는 의사들을 갖출 예정. 리브스의 저택은 할리우드가 훤히 내다보일 만큼 전망이 뛰어난데다 폭 50피트의 넓은 수영장에 분수대까지 설치돼 있다. 오랜 투병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휴식을 얻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장소다.
그는 3년 전에도 통 크게 베푼 적이 있다. 여자친구였던 제니퍼 자임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자 장례식 비용 일체를 지불했는데, 중요한 건 둘 사이의 관계가 이미 한참 소원해진 뒤였다는 사실. 인생에서 돈은 별로 중
키아누 리브스, 여동생을 위해 개인 저택을 병원으로 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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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내 멋대로 기념일’ 같은 것이 있지 않나요. 생일도 개천절도, 어버이날도 스승의 날도 아닌데, 사소하고, 별볼일 없는 날인데, 그냥 나 혼자 만들고 혼자 기념해버리는 그런 날. 7월3일은 저에게 그런 기념일 중 하나입니다. 7월3일은 바로 지난해 6월30일 월드컵이 폐막하고 시작한 드라마 <내 멋대로 해라>의 첫 방송일이었습니다. 붉은 악마 티셔츠만큼이나 뜨거운 반응 속에 방영되던 드라마 중간, 인터뷰를 하자고 홍익대의 어느 골목으로 불쑥 그를 불러낸 저는 잠시 할말을 잃었던 것도 같습니다. 브라운관 넘어 사랑해버린 사람들의 조물주가 거기에 마른몸을 털털거리며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지난 초겨울이었던가요. <네 멋대로 해라>의 미진이 여전히 남아 있는 서울거리를 떠나 훌쩍 파리로 날아간 그에게서 엽서가 한장 날아왔습니다. “건물들이 낮아서 구름도 낮습니다. 그리고 물처럼 흐르는 게 파리의 구름입니다. 에펠탑이 보이는 파리의 지붕 밑이 제 방입니다.
[cine bench] 아,부디 당신 멋대로! 인정옥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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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에 태어나 아흔여섯해를 살았고, 그중 60년을 카메라 앞에서 보냈으며, 12번의 오스카 후보에 올라, <모닝 글로리>(1933), <초대받지 않은 손님>(1967), <겨울의 사자>(1968), <황금연못>(1981)으로 4개의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손에 쥔 그녀에게 20세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배우라는 찬탄이 과찬은 아닐 것이다. 이제 그 찬사는 그저 영전 앞에 놓이는 조화가 되었지만…. 캐서린 헵번이 2003년 6월29일 미국 코네티컷 자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오드리 헵번이 치마를 입은 말괄량이였다면, 그보다 20년이나 먼저 데뷔한 캐서린 헵번은 바지를 입은 말괄량이였다. 어린 시절 가족들이 부르는 캐서린이라는 이름이 싫어 머리를 손수 깎고 자신을 ‘지미’라고 소개하던 그 이상한 소녀가 연극무대를 거쳐 영화에 도착했을 때, 1930년대 미국은 새로운 여성상을 마주해야만 했다. 모두가 롱치마와 밍크코트로 몸을 두르고 맵시를 뽐
말괄량이의 작별인사,6월29일 타계한 캐서린 헵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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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관객도 맘껏 즐길 수 있게!학원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90년, 대동제를 맞은 어느 대학 한 강의실에서는 흰 천을 스크린 삼고, 신문지로 자리를 삼은 500여명의 관객이 모여 있었다. ‘바깥 상황이 좋지 않다’는 말에 잠시 끊긴 영화의 제목은 <파업전야>. 영사기를 돌리던 공대생 채홍필(34)의 손에는 방금 필름을 자르던 커터칼이 들려 있었다. 조금의 웅성임도 없이 앉아 있던 관객에게 다시 빛이 뿌려지기 시작한 건 10분이 조금 지난 뒤였다. 두개의 롤로 이루어진, 90분 남짓한 길이의 영화는 두번의 긴급 중단과 롤 교체에 걸린 시간을 모두 포함한 세 시간의 상영을 마쳤다. 자리는 한동안 미동조차 없더니, 누군가의 선창에 의해 <철의 노동자>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대학 2학년, 자그마한 영화동아리 회장이던 채홍필은 그 순간 영화가 대중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두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기계공학과를 중도에 포기하고 16mm 현장에서 뛰어다닌 6개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자원활동팀장 채홍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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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도 질투한,귀여운 선생님“너무 어료었지만, 그래두 쟤미있었어요.” 푸른 눈과 금발의 미인이 웃음을 머금고 이야기한다. 능숙하다 할 순 없지만, 어수룩하지도 않은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 여성의 정체는 김성수 감독의 로맨틱코미디 <영어완전정복>에 출연 중인 안젤라 켈리(28). TV의 재연 프로그램 등에 나오는 ‘아르바이트 배우’냐고? 천만의 말씀. 호주 현지 오디션으로 선발된 프로배우다.이 영화에서 그녀가 맡은 배역인 캐서린은 주인공 영주(이나영)와 문수(장혁)가 다니는 영어학원의 강사다. 영주와 날선 신경전을 펼쳐야 하고, 문수의 치근거림을 감당해야 하는 등 영화의 큰 축을 이루는 역할. 또 ‘사람들 사이의 소통은 언어가 아니라 마음으로 이뤄진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서 핵심적인 열쇠를 쥔 비중있는 인물이다.물 다르고 산 다른 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겠지만, 무엇보다 한국어 대사가 많다는 점은 그녀를 스트레스의 구덩이에 빠뜨렸을 법하다.
<영어완전정복>의 배우 안젤라 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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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애니스톤이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꼽은 ‘2003 100명의 유명인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은 의외였다. 지난해 그녀의 수입은 고작(?) 3500만달러로 이 분야에선 23위일 뿐이다. 게다가 인터넷 조회 수는 20위, 언론보도 40위, TV와 라디오 노출에선 26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영광스런 자리를 내준 이유에 대해 <포브스>는 이렇게 적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줄리아 로버츠보다 대중적이다. 특히 지난 한해 다른 어는 누구보다 그녀를 커버스토리에 많이 다룬 잡지 편집장들에게는.”
남자들 입에 침이 흥건히 고이게 하는 팔등신도, 조각상 같이 잘 다듬어진 얼굴의 소유자도 아닌 애니스톤이 미국 주요잡지 표지에 가장 많이(<포브스>에 따르면 13.5회) 등장한 데는 남편인 브래드 피트와의 사생활이나 패션리더로서의 삶에 대한 궁금증 탓도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프렌즈>가 가장 큰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이 여섯 친
속 깊은 여자친구, <브루스 올마이티>의 제니퍼 애니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