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7일, 박찬욱 감독은 동료 영화인 147명과 함께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을 지지하는 영화인 선언’에 참여해 눈길을 모았다. 최종 개표 결과, 민노당이 최초로 원내 진출을 이루고 두 자릿수의 의석을 차지한 데 대해 박찬욱 감독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집에서 개표방송을 봤다는 박찬욱 감독은 “(함께 선언에 참여했던) 정찬군과 ‘나중에 자축하자’는 문자를 주고받았다”면서, “노출될 기회 자체가 부족했던 민노당이 영화인들의 지지로 언론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결과에 작은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뿌듯해했다. 이후 민노당이 현실 정치 속에서 부딪히게 될 어려움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 이에 대해 박 감독은 “걱정부터 하기보다는 원칙과 노선에 충실할 생각을 하는 것이 민노당다운 태도라고 생각한다. 독립영화를 하다가 상업영화 데뷔를 하는 감독도 충무로에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지 않겠나”라며 민노당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
박찬욱,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영화인 선언’에 참여
-
60년대와 70년대 한국영화 장르의 한축을 담당하며 액션배우로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독고 성’(본명 전원윤, 사진 맨 오른쪽)씨가 지난 4월10일 향년 74살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악극단 출신으로 시작하여 1956년 이강천 감독의 <격퇴>로 충무로에 데뷔한 독고성씨는 주로 활극영화에서 수많은 주연과 어깨를 견줄 만한 독특한 캐릭터의 조연으로 명성을 떨쳤다. 독고성씨는 당대 활극 장르의 성황과 함께, <검은 머리>(1964) <유혹하지 마라>(1967) <팔도 사나이>(1969) <홍콩의 단장잡이>(1970) <협객 김두한>(1975) 등 수백편의 작품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으며, 1998년 정지영 감독의 <까>를 마지막으로 은막을 떠났다.이만희, 김시현, 임원식, 최영철, 김효천, 임권택 감독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그 시대의 액션 히어로들인 장동휘, 박노식, 김희라, 오지명 등과 함께한 독고성씨를 각인
악당이여, 안녕
-
프로필 1973년생·<여성장애인 김진옥씨의 결혼이야기> <땅, 밥 만들기> <잊혀진 여전사>
시작은 이랬다. 현재 빅히트(?)를 치고 있는 <송환>의 촬영 소스에서 우연히 발견한 얼굴들. 장기수 할아버님들 못지않게 친근한 인상으로, 집회나 시위에서는 어김없이 맨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할머님들. “10년 이상 장기수 문제를 촬영했던 선배는 그분들을 ‘어머님’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분들은 장기수 선생님의 부인도 아니고, 가족들도 아니었다. 그분들 역시 <송환>의 주인공들 못지않은 열혈 빨치산이자 공작원 출신의 ‘선생님’들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김진열 감독은 “왜 이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을까”하는 분노가 치밀었다. 애초 ‘전쟁과 여성’을 다루려던 그가, 운동진영에서도 소외받는 여선생님들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다. 그로부터 3년. <여성장애인 김진옥씨의 결혼이야기> <땅, 밥 만들기>에 이
소수 속의 소수를 지지한다, <잊혀진 여전사>의 감독 김진열
-
손현주의 얼굴은 재미있다. 짙은 눈썹과 길게 옆으로 뻗어 ‘한’인상 하게 보이는 눈, 거기에 두꺼운 입술이 언밸런스하게 붙어서 징글징글한 웃음을 만든다. 퉁명스러운 뚝배기 같은 얼굴은 한없이 수더분해 보이기도 하고, 한없이 장난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언뜻 드러나는 표정의 이면에는 ‘앞집 남자’의 평범함을 살짝 벗어나는 진지한 기운이 도사린다. <라이어>에서 그는 가죽점퍼와 배꼽 위까지 끌어올려진 바지를 입고 ‘라이어’(거짓말쟁이)를 쫓는 ‘박 형사’를 연기했다. 이런. <앞집 여자>의 손현주를 생각해보면 그건 분명히 낯설어야만 할 역할이었다. 그러나 소심하고 나약한 앞집 아저씨의 모습에서도, 입에 욕을 달고 사는 무식하고 성깔있는 형사의 모습에서도, 배우 손현주는 자연스레 읽혀진다. KBS 분장실로 리허설을 마치고 황급히 들어오는 그에게서 처음으로 본 것은 특유의 재간으로 가득 찬 작은형이었다. 그러나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그의 얼굴에서 보게 된 것은 진
연기는 준비, 애드리브는 신기(神氣), <라이어>의 배우 손현주
-
-
리브 타일러의 출세작 <스틸링 뷰티>는 국내에 비디오로 출시되면서 <데미지2>로 둔갑했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출연한다는 걸 제외하면 두 영화는 아무 연관이 없지만, 리브 타일러의 이미지만으로 보자면, 아주 난데없는 작명은 아닌 셈이다. 흑발의 롤리타. 여인의 몸에 아이의 순수와 악마성을 품은 리브 타일러는 그런 부조화의 이미지를 한동안 벗지 못했다. 훤칠한 키에 볼륨있는 몸매로, 십대 때부터 농염한 분위기를 풍기긴 했어도, 그 표정과 목소리에선 교태가 아니라 어리광이 묻어나곤 했다. 그런데 그 리브 타일러가 언제부턴가 ‘어른’으로 보이더란 말이다.
그 변화의 과정에 <반지의 제왕>의 요정 아르웬으로 보낸 3년을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위기에 처한 꼬마 호빗을 구하고 인간 남자와 무모한 사랑에 빠지는 리브 타일러의 아르웬은 ‘남자의 향기’ 물씬 나는 이 영화에 온화한 모성을 불어넣었다. 뽀사시한 화면과 에코 음향을 입고 천상의 아름다움을 뽐낸 리브
흑발의 롤리타, 어른이 되다, <저지 걸>의 리브 타일러
-
송강호의 영화적 코멘터리
<효자동 이발사>임찬상 감독이 저한테 처음 시나리오를 준 건 사실인데 저를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고, 제가 안 한다 그러면 어떡하겠어요. 근데 다행히 내가 그 기간에 작품이 계획된 게 없었고 그래서 아주 운이 좋았죠. 서로서로 운이 좋았어요. 청어람쪽에서도 그 작품이 아 이런이런 작품이 있습니다, 언제쯤 나옵니다, 그래왔던 게 아니라 느닷없이 온 거고 나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느닷없이 받게 된 거고. 그렇다고 시간이 남아서 이 작품을 한 건 아니고. (웃음)
외형적으로 보면, 60년대 초반부터 70년대까지의 정치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드는데,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이건 주인공의 어떤 캐릭터가 대변이 돼 가지고 영화가 설명이 되고 작품을 이끌어가는 그런 영화라기보다는 또 정치적인 사건이 중요시되고 그 바탕이 굉장히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그런 작품이 아니구요, 그건 일종의 배경 그 자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따뜻한
송강호와 <효자동 이발사> [2]
-
그 배우와 함께 에 밑줄 긋고 주석달기
스크린 위에서 인간미 없는 송강호의 모습은 없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경필 중사와 〈YMCA야구단>의 이호창 선비 등 영화의 공기 자체가 친숙한 휴머니즘을 쉽게 전달할 수 있을 때는 물론이고 <넘버.3>의 삼류건달 조필, <반칙왕>의 소심한 샐러리맨 임대호 등 유쾌하지만 냉소적인 블랙코미디를 담은 영화에서도 그는 그랬다.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야 말할 것도 없다. 하다못해 보는 이의 입을 바싹 타게 만드는 하드보일드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조차 동진의 잔인함엔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분노라는 또 하나의 인간적인 감정에서 비롯됐다.
<효자동 이발사>의 포스터는 그 표정의 절정을 담고 있다.어쩌면 실제로 이 한컷의 이미지가 자연인 송강호를 일부분 닮은 것인지 모른다. 그가 오래전부터 반복 이야기했던 자신의 취향과 생각들, “사람에
송강호와 <효자동 이발사> [1]
-
이런 걸 전문용어로 ‘자뻑’이라고 한다. 신문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으니, 보수언론은 자신들의 펜대로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게다. 집권 초기부터 대통령을 흔들어대던 <조선일보>는 급기야 “대통령 잘못 뽑았다”는 극언까지 하며 열심히 대통령에 대한 비토 심리를 확산시켜왔다. 탄핵이 이루어지기 전날, <중앙일보>는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이들이 절반에 이른다는 이른바 ‘전문가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때는 무르익었다. 그리하여 거사는 결행되었고, 결과는 닭짓이었다.왜 닭짓을 할까? 간단하다. 닭대가리니까. 원래 <조선일보>는 독자를 속이려 했다. 펜대를 휘둘러 시민들이 들어 살 매트릭스를 지으려 했다. 그들이 지은 가상현실 속에서 시민들은 열렬히 잘못 뽑은 대통령의 탄핵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탄핵이 이루어지니 어떻던가? 시민들이 어디 환호하던가? 한마디로 닭들은 제가 만든 매트릭스에 저 홀로 속아넘어갔던 것이다. 놀랄 일이 아니
닭장 속에선 닭들이
-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이 작은 행성 지구는 일종의 유배지와도 같다. 반경 몇 십 광년인지 몇 백 광년인지 아무튼 근처에 서로 외로움을 달래줄 다른 지적 생명체 하나 찾을 수 없는 이 외로운 별은 인간을 더욱 외롭게 만든다. 어쩐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광경이긴 해도 으슬한 고독이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아주아주 오래된 우주미아의 후손. 외로움은 태곳적부터 유전되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있으면 공포에 가까운 외로움이 엄습하고, 여럿이 있으면 군중 속의 고독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고독의 뿔을 세운다. 누군가는 털어도 털어도 날아드는 먼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열렬하던 꿈과 희망과 사랑과 욕망이 모두 다 무감해지는 나이가 되어도 외로움은 더욱 깊어진다. 우주의 탄생이 빅뱅으로 시작되어 점차 식어가면서 별과 별들이 서로 멀어져가는 거대한 이별의 과정에 있듯이, 한 인간의 탄생도 뜨거운 결합에서 시작되어 점차 반복되는 결별들을 겪으며 점점 더 외로운 존재로 쪼
외로움에 대하여
-
사실 나는 ‘노빠’다. 노무현 빠돌이? 설마. 말 많은 오빠는 딱 질색이다. 나는 노회찬 빠돌이다. 요즘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바짝 뜬 민주노동당 총선 선거대책본부장 노회찬 오빠 말이다. 이럴 수가. 유구한 내 빠돌이 인생에서 머리 빠진 오빠는 처음이다. 심지어 말도 많다. 그런데 입놀림 하나하나에 뻑간다. 용필 오빠 빠돌이를 하던 소녀 시절에도, 젝스키스 못잡아먹어 안달이던 HOT 빠순이 시절에도 오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이렇게 자지러진 적은 없었다. 심지어 눈물까지 찔끔거리기는 궁상도 떤다.고백하건대 텔레비전 토론회 보는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절대 그런 지루한 인간들하고는 연애 안 할 거다, 다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당연히 안 할 거니까. <한밤의 TV연예> 할 시간에 을 보다니. 말이 되는가. 그랬던 내가, 토요일 저녁 채널을 돌리다 오빠에게 필이 꽂혀버렸다.그 운명의 순간은 이랬다. 4월3일 KBS <생방송 심야토론>에 나온 한나라당 의원이 정동영 의장
어느 ‘노빠’의 열광
-
영화가 어째서 신기한 물건인고 하면, 2차원의 평면 위에 3차원인 척하는 이미지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카메라니 영사기니 하는 특정한 기계 장치가 발명된 덕분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붙잡아서 놀아보려는 인간의 유희적 소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살았던 조선의 화가들은 그림 안에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긍재 김득신은 마루에서 담배를 태우던 남자가 말썽꾸러기 고양이를 뒤쫓느라 탕건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맨발로 우당탕탕 마루를 내려서는 순간을 포착했다. 단원 김홍도는 음률에 맞추어 춤추는 무동의 옷자락 속에, 혹은 기와를 얹느라 하늘로 던져올린 물체의 하강 속에 순간성을 기록했다. 혜원 신윤복의 경우 유곽 앞에서 힘자랑하는 왈패들의 싸움 뒤끝이나, 밤길에 남몰래 만난 연인들의 밀회장면, 악공의 연주에 맞추어 칼춤 추는 무희 등 육체의 움직임과 감정의 한순간을 특히 많이 그렸다.같은 시기의 다산
춤, 그림
-
새 버전의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가 개발되면, 지금 쓰는 컴퓨터와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초현실적인, 컬러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의 안무를 보며, 당신은 현실적으로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장롱 속에는 한때 핸드폰이라 불리던, 그러나 이제 무전기라 여겨지는 모종의 통신장비가 누워 있다. 통화는 가능해도, 들고 다닐 순 없다. 뭐랄까, 초현실적인 인물 취급을 당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안 바꾸셨나요? 당신 참, 독종이군요.올해의 경향이란 것도 있다. 물론 <올해의 경향> 하고 나오는 게 아니고, 주로 웨이브나 트렌드, 패션, 모드, 코드, 코어, 스타일, 컨설팅, 붐, 줌, 업그레이드, 리뉴얼, 컬렉션, 템프테이션(하, 항복입니다!) 등의 조합으로 여성지의 면면을 장식한다. 새로운 패션을 지난해의 패션에 겹쳐 입을 순 없다. 컴퓨터를 버리듯, 즉 벗고, 새로 걸쳐야 한다. 지난해의 유행이 복고란 이름으로 다시 유행하기까지는, 대략 25년 정도가 소요된다. 살아 있으면, 다행이
오버, 더 레인보우
-
건달,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집요한 마조히즘에 주목하다“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 중학교 때 보던 ‘빨간 영어’ 1장에 나오는 아포리즘이다. 70년대 중학생 영어 참고서 시장을 제패한 기본영어는 매 장을 서양의 격언으로 시작했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등 주로 합리적이고 청교도 윤리에 충실한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운동 열심히 하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거였다. 나는 뭔가 이상했다. 이 정도 말이 왜 격언이 돼야 하지? 아는 것이 힘이라니! 초등학교 선생님이 무수히 하던 말 아닌가! 폼이 나려면 적어도 “모르는 게 약이다” 정도는 돼야 하지 않는가!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한참이나 한 뒤에야 나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이 장수하는 것은 그 말 때문이 아니라 말한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말의 힘은 ‘어떤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말’에 달려 있다는 것
‘피’ 한번 징하고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 마침내 슈렉과 피오나는 많은 친구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난 <슈렉>.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다. 디즈니로 대표되는 왕자-공주 동화의 전형적인 공식들을 유쾌하게 뒤집었던 녹색 괴물의 동화는 후속편도 기발하게 이어진다. 일명 ‘아주 꽤나 먼곳(Far Far Away)’ 왕국을 다스리고 있는 피오나 공주의 부모님 해롤드 왕과 릴리안 왕비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딸 내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그런데 웬걸. 가녀리고 곱던 딸이 몸은 몇배로 불고 피부는 시퍼레져 있다. 사위랍시고 나타난 인물은 몸무게 700파운드에 위생관념 전혀 없고 수다쟁이 당나귀를 ‘베스트 프렌드’로 동반한 녹색 괴물이다. 이를 그대로 보고 있을 순 없다. 난데없는 녹색 부부의 출현으로 발칵 뒤집힌 ‘아주 꽤나 먼곳’ 왕국은 피오나와 슈렉을 떼놓기 위해 비상작전에 돌입한다.<슈렉2>는 속편이 으레 그렇듯 전편보다 캐릭터를 늘리고
슈렉, 신혼여행을 떠나다, 해외신작 <슈렉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