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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오기 전에 나는 <씨네21>을 보면서 관람영화 리스트를 만들었다. 1순위는 국내에서 절대 개봉안할 것처럼 생긴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와 <사회적 학살>, 그리고 개봉 여부와 상관없이 에밀 쿠스투리차 신작 <인생은 기적처럼>(상영시간 154분, 자그마치 2시간34분. 개봉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2순위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슈퍼사이즈 미> <타네이션>. 여기다 <미낙시>라는 인도 영화. 인도영화는 효과100%의 자장가라는 선입관 때문에 비싼 KTX 타고 가서 볼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5년 동안 소설을 못 쓰고 방황하는 소설가’가 주인공이라는 작품소개를 보니 나 비슷한 사람이 있구나 하는 반가움이 일었다. 하지만 부산에 머무는 건 개막날부터 2박3일간, 안타깝지만 몇편은 탈락이다. 입장권은? 못 구해도 좋다. 부산에서 놀면
소설가 조선희가 들려주는 부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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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고레다 히로카즈/일본/141분/메가박스 5관 1시제목으로 걸려 있는 ’아무도 모른다’의 말뜻은 첫 신이 시작된 이후 곧장 밝혀 진다. 조용하고 한적한 동경의 어느주택가. 단촐한 이삿짐이 들어오고 엄마와 아들은 집주인에게 아들을 소개한다. 자식이라곤 얌전하고 조용한 이 아이 하나 뿐이라고. 그러나 방으로 갖고 들어온 가방 안에서는 나머지 두명의 아이들이 나오고, 바깥에서 기다리던 아이까지 몰래 들어와 식구는 모두 다섯이 된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비극의 단초가 된다. 엄마가집을 나가버리고, 그 후 네명의 아이들은 최악의 상황에 몰린다. 필사적으로 살아 갈수 있는 방식을 찾으려 애써보지만, 굶주림은 끝에 달한다. 어쩔 수 없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가장이 된 12살 소년 아키라는 너무 빨리 삶의 슬픔을 본다.1988년 동경에서 있었던 실화에 기초하여 이 슬픈 영화를 만든 고레다 히로카즈는 다큐멘터리 출신 감독답게 미세한 감정들을 포착한다. 영화는 별다른
<아무도 모른다> Nobody Kn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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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은 장난감이 아니며, 총을 쏘는 행위는 패션이 아니다. 명확한 대상과 이유를 모르는 자의 총질은 한낱 바보 같은 행위일 뿐이다. 싱싱하던 시절의 엘비스 코스텔로가 만든 앨범 제목처럼, 올바른 행동엔 ‘진실한 혹은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만 한다. 클로브 샤브롤이 마지막 공산주의 영화가 될 거라 했던 <의식>과 나이든 세 악동 래리 클라크와 에드 라크만, 하모니 코린이 만든 캘리포니아의 지옥도 <켄 파크>는 ‘나는 총을 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의식>의 마지막, 두 여자는 <돈 지오반니>를 보던 일가족이 사냥감인 양 장총을 발사한다. <켄 파크>의 처음,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켄 파크는 셀프카메라 앞에서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겨눈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는 보호자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가정부가 주인을 살해한 이유를 우리가 궁금해하는 만큼, 켄 파크의 친구들도 그의 자살과 그의 살인이 이상하기만 하다. 거기에 더해 우리가
[DVD vs DVD] <의식> vs <켄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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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2004년/114분/감독 빔 벤더스/부산 1관 오전 11시<풍요의 땅>은 이방인의 눈에 포착된 미국의 초상화이다. 비록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지만, 젊은 시절 미국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영화 <해밋>을 연출하기 위해 헐리우드까지 날아간 경험이 있던 빔 벤더스. 지금 그가 바라보는 미국이란 거대한 편집증에 시달리는 환자이다. 이 영화는 대조적인 두 인물의 행적을 따라가며 어디에서 치유의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 묻고 있다. 주인공 폴과 라나가 그들이다.L.A에 살고 있는 폴은 그린베레 출신이며, 걸프전 참전 군인의 경력을 가진 자칭 애국자이다. 그러나 언제 테러가 일어날 지 모르니 대비해야 한다고 믿는 과대망상증 환자이다. 개조 차량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수상해보이는 아랍인들을 감시하고 뒤쫓는 것이 거의 모든 그의 일과이다. 어느 날 그에게 이스라엘에서 살던 조카 라나가 찾아온다. L.A의 홈리스를 돕고 선교활동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라나, 오용된
<풍요의 땅> Land of Ple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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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스 초이스/아르헨티나,프랑스/2004년/76분/감독 리산드로 알론소/메가박스 9관 1시형제를 죽이고 감옥에 들어온 남자 바르가스는 반백이 다 되어서야 출소한다. 그는 그길로 자신의 딸 올가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바르가스는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밀림으로, 그 밀림에서 다시 외딴 섬으로 딸이 옮겨간 자리를 찾아 다닌다. 그러나 끝내 아버지는 그 여행길에서 딸을 만나지 못한다. 늙은 출소자 바르가스의 한없이 더딘 여행이 이 영화의 전부다. 그런데 묘하게도 영화는 어떤 숭고한 느낌마저 자아낼 만한 침묵의 의식을 치루고 있다.<죽은사람들>은 2001년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첫 번째 장편영화 <자유>가 초청되면서 아르헨티나의 신예로 주목을 모았던 리산드로 알론소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다. 밀림을 헤매는 몽롱하면서도 기이한 오프닝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유유히 흐르던 카메라의 무빙을 따라가다 마주치는 아이들의 시체들, 칼을 쥔 누군가의 손. 리산드로 알
<죽은 사람들> VLos Muer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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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의 약진에 힘입어 다양성의 시대에 접어들어지난 90년대 중반 금융위기의 피해를 가장 크게 본 아시아의 국가들인 한국과 태국, 인도네시아의 영화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였거나, 발전의 가능성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아직 한국이나 태국처럼 자국영화의 시장점유율도 높지 못하고, 전반적인 영화산업의 성장속도가 더디기는 하지만 가린 누그로호 이후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희망의 조짐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영화평론가 세노 구미라 아지다르마가 언급하였듯이 90년대의 인도네시아영화는 ‘침묵의 시기’였고, 그것은 산업적으로는 제작 편수의 급격한 감소와 관객수의 급감, 미학적으로는 저급한 수준의 상업영화(가린을 제외한)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전부터 대안영화의 성격을 지닌 소위 ‘게릴라영화’의 전통이 가린 누그르호의 출현을 낳았고, 기존의 인도네시아 영화계의 낡은 관행을 타파하면서(특히 젊은
성장의 기운이 이제 인도네시아로 몰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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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 테스트용으로 사용될 만큼 빼어난 화질과 사운드를 자랑하는 <세븐>은 출시 뒤 3년여가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레퍼런스급 명품 타이틀로 손꼽힌다. SE 버전으로 출시된 DVD에서는 디스크2에 담긴 양과 질 모두 뛰어난 서플먼트도 볼거리.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극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연쇄살인마 존 도와 관련된 메뉴들이다. 존 도의 일기장 세부와 그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는 ‘The Notebook’에는 디자이너들의 코멘터리를 통해 그의 광기어린 필체를 재현하는 과정과 실제 자살한 사람의, 눈물 자국까지 포함된 유언장을 입수하는 등 자료 수집에 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다. 완벽한 캐릭터 소품을 만들고자 한 디자이너들의 이와 같은 노력은 마치 존 도라는 캐릭터 그 자체를 연상시키는 편집광적인 인상마저 들 정도다. 또한 ‘Still Photographs’에서는 존 도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설정된 탐식, 탐욕, 교만에 해당하는 범죄사진들과 사건현장
[서플먼트] 연쇄살인의 추억, <세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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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가 스파게티 웨스턴에 바친 헌사 에서 보듯, 아메리카의 서부라고 알고 있던 현장은 사실 스페인 알메리아 등지의 황야였다. ‘달러 삼부작’의 성공으로 미국의 초대를 받은 세르지오 레오네와 함께 스파게티 웨스턴은 드디어 아메리카 대륙의 서부에 발을 내딛게 된다(대부분의 장면은 여전히 스페인에서 찍었지만). 그런데 레오네는 내심 한편의 웨스턴을 기대했을 제작사와 생각이 달랐으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이하 국내개봉 제목 <웨스턴>)는 스파게티 웨스턴에 이별을 고한 작품이었다. 세르지오 코르부치나 다미아노 다미아니 같은 좌파성향 스파게티 웨스턴의 동료들이 피끓는 영화를 만들 동안 상대적으로 낭만적 세계를 견지했던 레오네는 <웨스턴>에서 정치적인 색채를 드러낸다. 모두가 혁명을 이야기하는 1960년대 말, 각본에 참여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곳곳에 좌파의 기운을 담아놓은 것이다. 죽음의 발레와 와일드 보이들이 떠난 곳에
서부극 최고의 미학,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스페셜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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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레딧을 통해 감독은 <트로이>가 <일리아드>로부터 단지 영감받았을 뿐임을 분명히 하고 있기에 이 영화를 원작과 비교하는 것은 처음부터 의미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트로이> DVD와 동일 장르이자 4년 전에 레퍼런스 타이틀로 등극한 <글래디에이터> DVD와의 비교는 어떨까?
화질부터 보자. 컴퓨터로 감상시엔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HD급 TV나 프로젝터로 감상시엔 종종 놀라운 수준의 디테일과 그라데이션을 보게 된다. 영상 비트레이트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것이 화질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지 않은가? <글래디에이터>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잡티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선 <트로이>의 판정승. 하지만 전반적인 색감의 표현력과 해상력 면에선 <글래디에이터>가 앞서나간다. <트로이>는 편차있는 화질을 보여줘 레퍼런스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운드 역시 DTS 트랙을 담았던 <글래디에
글래디에이터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트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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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기획만화의 봄이다. 이처럼 많은 만화들이 기획된 적이 없었다. 밀리언셀러는 대부분 만화들이다. 수많은 출판사들이 회사의 명운을 걸고,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있다. 많은 돈이 흘러다닌다. 그런데 이 많은 기획만화(학습만화)의 모양을 살펴보면 판박이처럼 똑같다. ‘번안’에 머무르고 있다. ‘만화’는 단지 원작을 표현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책들에는 동일한 수식이 붙는데, “만화로 보는…”이 그것이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 <만화로 보는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만화로 보는 좋은 생각> <만화로 보는 세계민속 어드벤처> <만화로 보는 쿠오바디스> 등등. 이런 번안만화는 대부분 ‘좋은 만화’를 고민하기보다는 ‘경쟁력 있는 원작’을 고민한다. 만화는 단지 번안의 도구이기 때문에 개성이나 새로운 시도보다는 익숙한 화면을 ‘빠르게 생산’하게 된다. 많은 기획자들이 만화와 원작의 조화나 원작의 새로운 해
명작이면 다인가? ‘만화로 보는…’시리즈 열풍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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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오래된 김기덕의 지지자다. 그가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게 낯간지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간 김기덕을 지지하는 일이 쉽지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1996년 <악어>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감동했다. 한강 물밑에서 죽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이 숭고한 종교적 기적처럼 보였다. 나는 당연히 남들도 그렇게 느낄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당시 <악어>를 본 평론가나 기자 누구도 이 영화를 지지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난 풋내기 영화기자였다. 좋은 영화로 판단했다고 <악어>의 훌륭함을 다 표현할 능력이 내겐 없었다. <악어>를 좋게 본 평론가가 있을까? 나는 애타게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내가 글로 쓰지 못한 이 영화의 진정한 새로움을 누군가는 봤을 것이라 믿었다. 내가 아는 한 그해 <악어>를 지지한 유일한 평론가는 정성일씨였다. 그의 글은 김기덕 감독뿐 아니라 내
김기덕 감독에 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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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극장에 가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텔레비전뿐이었다. 그중에서도, ‘명절’은 절호의 기회였다. 아침저녁으로 영화 프로그램을 틀어주는 텔레비전은 일종의 멀티플렉스 상영관이었다. 물론 모두 다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 아니 좋은 영화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쉽고 부족한 극장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비디오가 생겼지만, 그건 귀한 물건이었다. 나는 큰아버지집에 가야만 그걸 볼 수 있었고, 대개 그날은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었다. 추석 때 빌려보지 못한 <쾌찬차>를 7개월이 지난 그 다음해 설날에 겨우 빌려보면서 명절이 3개월에 한번씩 있었으면 좋겠다는 어린 생각을 했었다.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친척집에 가는 대신 친구들과 뭉쳐 동네 동시상영극장을 찾는 것이 명절 행사였다. 편집은 영사기사 아저씨의 전권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릴리아나 카바니의 <우편배달부>와 <천녀유혼>을 같이 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몇년이 더 훌쩍 지나서 진지하게
선택의 즐거움이 있는 명절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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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부터 영화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알포인트>가 관객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은 모양이다. 1975년 우리 현대사에서 삭제된 뒤 우여곡절을 겪었던 전쟁을 되새김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기쁜 일이다. 이미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전쟁이 도착한 좌표는 어디일까? 유감스럽게도 <알포인트>의 좌표처럼, 우리는 아직도 이 전쟁의 언저리, 또는 과거, 또는 그 어디도 아닌 곳을 맴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알포인트의 좌표는 상징적이다. 63도32분, 53도27분에 위도와 경도를 대입하면 이 포인트는 남극이거나 북극에 근접한 지구상의 어느 위치를 가리킨다. 호치민의 서남부 150km 또한 유령의 지점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곳에는 섬이 없다. 미루어 짐작건대 호치민에서 383km 떨어진 푸쿠옥(Phu Quoc)섬일지도 모른다. 이 섬은 호치민의 서남부이며 캄보디아 국경에 접해 있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 제국군과 휴양소가 마땅히 있었음직한 섬이다. 그런데
제국주의의 함정, <알포인트>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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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심사 과정에 문제제기"한국영화의 진흥을 위한다는 곳이 어떠한 영화가 아카데미에 출품돼야 하는지는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튜브픽쳐스의 황우현 대표(사진)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 선정을 두고 되풀이되는 촌극에 대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무능을 질타했다. 그 자신 2002년 발생한 <집으로…> VS <오아시스' '분쟁'의 주인공이라 관심이 간다. 그는 "당시에도 영진위의 무능으로 문제가 엄청나게 커지고 왜곡됐다. 나 역시 영진위의 처사때문에 너무도 억울했다"고 밝혔다.황대표는 7일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어떤 작품을 올려야 할지는 영화를 안봐도 알 수 있다. 작품이 좋고 나쁨의 문제가 결코 아니지 않은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탈 만한 작품인가가 중요한 것 아닌가. 아카데미의 성격에 맞는 영화를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심사위원도 필요없다. 심사위원을 내세우는 것은 영진위가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진흥을
튜브픽쳐스 황우현 대표, 영진위 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