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장커 감독은 전작 <산하고인>(2015)에서 멜로드라마 형식을 빌려 중국 인민들이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며 자본주의에 잠식되어가는 과정을 한 여성의 일생(1999년부터 2025년까지)을 통해 비판적으로 다뤘다. 이번 영화 <강호아녀>(2018)에서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감독의 아내이자 뮤즈인 자오타오를 내세워 현대 중국 사회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멜로드라마 형식에 더해 갱스터 또는 필름누아르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감독은 왜 다시 과거(2001년)에서 영화를 시작하는 것일까? 이는 <강호아녀>가 감독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로 만들어진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의 전작들이 겹치기 때문이다. 특히 <임소요>(2001)와 <스틸 라이프>(2006)의 그림자를 지워버릴 수 없다. 두 영화의 주인공은 비슷한 머리 모양과 의상을 입고 재등장한다. <임소요>에서는 고객이 DVD를 판매하는 빈빈에게 지아장커 감독의 <소무>(1998)와 <플랫폼>(2000)이 없다는 말을 듣고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신인감독의 대담함에 영화관에서 웃음을 터트렸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동안 감독의 영화들을 따라온 관객이라면 <강호아녀>를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감독은 이 영화를 처음 보는 관객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전작들과는 다르게 풍부한 감정과 장르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2001년일까
영화는 지역(산시 다퉁) 조직 보스인 빈(랴오판)과 그의 연인이자 탄광촌 출신 차오(자오타오)와의 17년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시간 순서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조직의 갈등이 드러나고 차오가 교도소에 수감되는 첫 번째 부분(2001년)과 그녀가 출소 후 펑제를 방문해서 빈을 찾아다니는 두 번째 부분(2006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가 홀로 고향 다퉁으로 돌아가서 정착하는(2018년) 부분이다. <산하고인>이 도식적인 화면 크기로 과거(1999년, 1.:33:1), 현재(2014년, 1.85:1), 미래(2025년, 2.39:1)의 시간을 보여줬다면, <강호아녀>는 차오의 여정(산시 다퉁 - 싼샤 펑제 – 신장 - 산시 다퉁)을 따라 자연스럽게 과거(2001년, 2006년)에서 현재(2018년)로 이어진다.
영화의 오프닝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1.85:1의 화면 크기를 영화의 끝까지 유지한다. 영화는 반복되는 상황과 장소를 통해 변화를 겪는 중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도록 구성되었다. 이러한 구성을 위해 감독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영화는 과거(2001년)에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특히 이 영화의 기점인 2001년은 중국이 베이징올림픽을 유치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상징적인 해이다. 또한 인터넷이 보급되고 감독이 디지털카메라로 작업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영화는 2001년을 보여주는 버스 안에서 시작한다. 이 장면이 흥미로운 것은 어린아이의 얼굴(잠들어 있는)을 보여주던 카메라가 승객들의 모습을 보여준 후 다시 돌아와 잠에서 깬 어린아이(순박한 표정)의 모습(2001년에 촬영된 영상)에서 차오(고개를 떨구고 졸고 있는)의 얼굴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배치된 이 두 장면은 실제로 같은 시간에 존재할 수 없는 장면이다. 과거와 현재의 만남. 서로 다른 시간의 공존. 이것이 바로 감독이 이 영화 전체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시간의 변화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길 바라는 중국의 전통, 즉 과거와 현재가 서로 공존하기를 바라는 감독의 의도가 담긴 장면이라면 지나친 억측일까.
이러한 장면 설정은 두 번째 부분인 2006년 싼샤에서도 다시 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건물이 무너진 황폐한 도시(산시의 다퉁)의 전경(1.85:1)이다. 이 도시는 영화의 세 번째 부분(현재, 2018년 영화 제작 당시)에서 재개발로 아파트가 밀집된 모습으로 바뀐다. 황량한 도시를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쿵쿵’ 하는 커다란 북소리와 함께 클럽의 공연 장면(1.33:1)으로 넘어간다. 이 영화에는 독특하게도 차오의 상황이 바뀔 때마다 북소리가 들린다. 이 북소리가 가장 크게 울리는 엔딩 시퀀스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할 예정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오프닝 시퀀스다. 10분가량의 긴 시간을 할애한 오프닝 시퀀스는 앞으로 진행될 영화의 모든 내용이 함축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감독은 친절하게도 이 영화의 장르가 필름누아르라는 것을 홍콩 누아르를 대표하는 <첩혈쌍웅>(감독 오우삼, 1989)의 주제곡(엽천문이 부른 <천취일생>, 영화에서 그녀는 주윤발이 쏜 총알이 눈을 스쳐 실명하게 되지만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을 통해 알려준다. 심지어 첫 번째 부분(2001년) 영화의 중간에 빈이 경쟁 조직의 공격을 받고 다친 후 그의 조직원들과 모여 <영웅호한>(감독 황태래, 1987) 비디오를 보는 장면과 마지막 장면인 거리 싸움 장면에서도 같은 주제곡이 사용된다.
먼저 차오가 권총을 잡는 장면을 보자. 도박장(마작)에서 두 사람이 채권 채무 문제로 다투게 되고 한 사람이 권총을 꺼낸다. 빈은 관우신(청동상) 앞에서 두 사람의 시비를 가린다. 이때 차오가 관우신 앞에 놓인 권총을 집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주제곡의 전주가 흐르면서 오프닝 타이틀이 시작된다. 화면에 영화의 제목 ‘강호아녀’가 뜨자 주제곡이 나온다. 감독은 작정하고 엽천문이 부른 광둥어 버전의 <천취일생>에 맞춰 오프닝 타이틀을 구성한 것처럼 보인다.
무려 1분50초 동안 노래(“매일 나는 방황해요 이 마음은 아침저녁 떠돌고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 상대를 찾길 원했는지… (중략)… 소유하고 싶지만 다만 바랄 수 있을 뿐, 언제나 마음은 살짝 취해 있어요”)를 들려준다. 아쉽지만 영화에서는 가사를 번역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노래의 멜로디만으로도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느껴진다. 특히 카메라는 관우신의 창에서 관우의 얼굴로 이어 차오가 ‘핑거 스냅’을 하는 반지 낀 오른손(권총을 잡았던, 잡게 될)으로 천천히 이동한다. 이처럼 오프닝 시퀀스는 앞으로 다가올 차오의 비극적인 운명을 예측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구성되었다.
다음으로 거리 싸움 장면을 보자. 경쟁 조직의 습격을 받아 수세에 몰린 빈이 위험에 처하자 자동차 안에서 지켜보던 차오는 권총을 장전한 후 차에서 내린다. 그녀는 빈을 구하기 위해 폭력배를 향해 총을 겨누고 허공을 향해 총을 발사한다. 이때 다시 ‘쿵쿵’ 하는 북소리가 울리고 오프닝 시퀀스에서 들려준 주제곡(<천취일생>)이 나온다. 자동차 안 시가의 연기(차오가 피우다 만), 수입 자동차의 앞면 마크의 피(기사와 빈이 다치면서 흘린)가 보인다. 엽천문의 주제곡이 나오는 이 장면은 단 3개의 숏(총을 든 차오-시가의 연기-자동차의 피)으로 이루어졌다. 스틸컷처럼 보이는 이 세개의 숏과 음악을 통해 앞으로 차오의 신변에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 또한 이 장소는 앞으로 계속 반복될 것이다.
앞에서 <강호아녀>는 세개의 다른 시간으로 구성되었지만 반복되는 상황과 장소를 통해 변화를 겪는 중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가 중첩된다고 언급했다. 이 영화가 차오의 여정을 따라가도록 구성된 것은 같은 장소를 다른 시간대(2001~18년)에 통과하도록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권총을 발사한 후 징역 5년(불법무기소지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된 차오는 새로 지어진 교도소로 이감된다. 수감자들이 탄 버스가 거리 싸움이 일어났던 바로 그 장소를 지나간다. 그녀는 버스 안에서 이 장소를 바라본다.
다시 이 장소는 세 번째 부분(2018년 현재)에서 반복된다. 사업에 실패하고 하반신이 마비된 빈이 휠체어를 탄 채 차오를 찾아온다. 차오와 빈이 트럭을 타고 그녀의 집으로 이동하고 그곳을 지나갈 때 빈이 그 장소를 보게 된다. 같은 장소(빈이 폭행을 당했던, 차오가 빈을 위해 총을 발사했던, 죄인이 된 차오가 지나갔던, 휠체어를 탄 빈과 그를 데리고 가는 차오)의 반복. 이처럼 한 장소에서 과거와 현재가 겹치면서 묘한 감응(affection)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시간은 2001년에서 2006년(차오가 탄 버스의 이동에서 흐르는 강물로)으로 바뀐다. 배 위에서 물병을 들고 밖을 바라보고 있는 차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스틸 라이프>의 장면이 떠오른다. <동>(2006)과 <스틸 라이프>의 배경인 쌴샤의 펑제는 감독이 장시간 변화하는 중국의 풍경과 사라지는 문화를 기록했던 장소다. 감독이 이곳을 다시 찾은 것은 현재의 풍경(2018년 영화 제작 당시)과 과거(2006년)의 풍경을 병치시켜 변화의 정도를 드러내고 싶은 의도가 아니었을까.
차오가 빈을 만나고 헤어진 후 그녀가 서커스 공연장(2006년 영상)에 앉아 노래(<얼마나 많은 사랑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를 듣는 장면이 있다. 오프닝 시퀀스의 버스 안 장면과 같은 설정으로 배치된 공연 장면은 2006년에 감독이 실제로 촬영한 영상이다. 반면에 차오가 객석에 앉아 있는 장면은 현재(2018년, 영화 제작 당시)지만 영화상에선 과거인 2006년이다. 여기서는 차오의 모습과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교차 편집으로 보여준다. 앞서 거리에서 같은 노래를 들었기 때문에 후렴구를 따라 부르는 차오의 모습에서 이별의 애잔한 감정이 밀려온다. 영화라는 매체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다.
마지막 장면은 “저항의 표시”
이제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당혹스럽고 충격적인 엔딩 시퀀스에 대해 살펴보자.
차오는 건물 벽에 보안 카메라를 설치한다. 빈의 병세가 호전돼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자 “나 갈게”란 음성 메시지와 돈 봉투를 남기고 홀연히 떠난다. 화가 난 차오는 현관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자 발로 찬다. 현관 앞에 서 있다 다시 안으로 들어온다. 이제부터 그녀의 모습은 감시 카메라(CCTV)에 찍힌 영상의 화면을 통해서만 보인다. 여러 대의 감시 카메라 영상에서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이고, 그녀가 벽에 기대 선 화면이 점점 확대된다. 앞에서 들렸던 ‘쿵쿵’거리던 북소리가 점점 고조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북소리는 지금까지 영화에서 들었던 북소리 중에서 가장 크게 가장 많이(12번) 울린다.
그동안 들었던 북소리를 떠올려보자. 황폐한 산시 다퉁 시내를 보여주는 전경에서, 차오가 빈을 구하기 위해 총을 발사하는 장면에서, 차오에게 성폭행을 저지르려 했던 남자의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차오가 빗속을 달리는 고속도로 장면에서. 이때의 북소리는 위험을 알리는 경고의 메시지처럼 들렸다.
그런데 이 마지막 장면에서 울리는 북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차오를 감시 카메라에 가둔 상태에서 영화를 마무리한 감독의 의도는 누구에게 보내는 메시지인가? 감독은 <필름 코멘트>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장면은 중국 정부의 영화 검열 시스템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무너진 것에 대한 저항의 표시”라고 밝혔다(2019년 3~4월호). 이 얼마나 지아장커 감독다운 통렬한 경고의 메시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