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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히든 픽처스] 관객들은 복도 많지
송경원 2020-06-19

히든픽처스 6월 상영작을 소개합니다

<산나물 처녀>

독립예술영화를 지원하고 더 많은 작품들을 관객에게 소개하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와 <씨네21>이 함께하는 독립예술영화 온라인 유통지원 프로그램, 히든픽처스가 6월에 어울릴 만한 보석 같은 영화들로 다시 찾아왔다. 올해 히든픽처스로 선정된 영화 50편의 영화 중 6월의 히든픽처스로 선정된 10편의 작품(장편영화 1편, 단편영화 9편)을 소개한다. 6월의 히든픽처스는 올레 tv와 OTT 플랫폼 Seezn의 영화/시리즈 부문 ‘아트무비 살롱’ 코너에서 무료로 만나볼 수 있다.

씁쓸하고 사랑스러운 우화

<산나물 처녀>

감독 김초희 출연 윤여정, 정유미, 안재홍, 배유람 상영시간 29분 제작연도 2016년

관점만 달리해도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산나물 처녀>는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재해석해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하는 영화다. 70년 동안 짝을 찾아 헤맨 순심(윤여정)은 미지의 행성 지구까지 날아온다. 우연히 숲속에서 혼자 나물을 캐고 있던 달래(정유미)를 만난 순심은 달래에게 호감을 느껴 함께 나물을 캐며 서로 의지한 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구해주고 답례로 남자를 만난다.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역전된 역할극에서 나오는 깨알 같은 재미로 가득 차 있다. 사랑에 관한 우화는 다소 낯설고 조악한 형식으로 펼쳐진다. 그런데 이 과장되고 연극적인 상황이 쌓이다보면 어느새 보는 이를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드는 힘이 있다. 가벼운 패러디 우화가 아니라 사랑과 인생에 대한 예리한 통찰도 담겨 있다.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진 후 ‘이별의 맛’이 씀바귀 같다고 말하는 달래의 한마디는 긴 여운을 남긴다. 장편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독특한 감각을 선보인 김초희 감독의 재기발랄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단편. 김초희 감독은 어떻게 하면 인물을 사랑스럽게 보일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아는 것 같다.

불안해서 더 반짝이는, 청춘의 발견

<동아>

감독 권예지 출연 심달기, 류경수, 이유경, 김현목 상영시간 40분 제작연도 2018년

때로 어떤 영화들은 인물을 온전히 그려내는 것으로 제 몫을 다한다. <동아>는 17살 소녀 동아의 불안하면서도 반짝이는 세계를 담은 영화다. 동아는 남자친구에게 신발을 사주고 싶다. 온라인에서 마음에 드는 신발을 발견한 동아는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엄마가 준 학원비로 운동화를 사려한다. 하지만 막상 거래하러 나온 남자는 원래 가격보다 더 비싼 값을 부른다. 신발을 한짝만 살 수 없냐고 제안하는 동아에게 남자는 오늘 자신과 함께 술을 마시면 싸게 주겠다고 한다. 각자의 사정과 생존방식이 충돌하는, 마냥 웃지 못할 상황들은 생의 아이러니를 잘라서 관객의 눈앞에 들이민다.

<동아>는 이야기와 구성은 단순하지만 장면에 담긴 심리는 복잡미묘하다. 동아를 둘러싼 세상은 냉담하고 답답하다. 하지만 동아는 자신의 열악한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욕망을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다. 팍팍한 현실과 대비되는 동아의 생기발랄한 얼굴은 우리가 무엇을 따라가야 할지 헷갈리게 만든다. 동아는 일정 부분 현실을 외면한 채 마치 상황의 방관자처럼 행동하지만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소녀의 몸부림은 십분 공감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분명한 건 동아 역을 맡은 배우 심달기가 전하는 에너지가 확실하게 스크린을 장악한다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이들의 썩은 동아줄을 함께 쥐어보고 싶어 연출을 했다”는 권예지 감독의 말처럼 고달프고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인물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하다. 심달기 배우의 생기 넘치는 매력으로 빛나는 영화.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 단편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침묵하지 않는 역사

<서산개척단>

감독 이조훈 상영시간 76분 제작연도 2018년

역사는 끝내 침묵하지 않는다. 다만 때때로 시간이 좀더 필요할 뿐이다. <서산개척단>은 박정희 정권이 1961년 국토개발사업에 강제동원한 대한 청소년개척단에 대한 기억을 재소환하는 다큐멘터리다. 이른바 서산개척단이라고 불린 이 사업은 출신 지역도, 하는 일도 달랐던 수많은 이들을 때론 속이고, 때론 억지로 끌고 와 강제노역시킨 국가 단위의 폭력이었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 군부는 경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전국 140곳에 달하는 지역에서 일제히 간척사업을 진행한다. 당시 이 사업은 제대로 된 장비 없이 오로지 인력으로만 진행됐고 박정희 정권은 거리의 부랑아들을 교화시키고 빈민층의 자활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납치해 현장에 투입시켰다.

<블랙딜>(2014)로 민영화 사업의 민낯을 파헤쳤던 이조훈 감독은 59년 전 해묵은 진실을 드러내며, 또 한번 국가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부조리를 고발한다. 영화는 생존자들의 인터뷰는 물론 문서, 방송, 문화영화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당시 정황을 재구성한다. 특히 한쪽의 입장에 일방적으로 쏠리지 않고 피해자부터 중간관리자까지 여러 시점에서 사건을 입체적으로 그려나감으로써 신뢰를 더한다. 감독은 단지 과거를 복원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생존자들에게 재현 화면을 보여주는 등 현재의 목소리를 담으려 애쓴다. 재현의 윤리 등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굳이 그 지점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하여 59년 만에 드러난 진실들은 자연스레 관객의 분노를 자아내며 현재진행형의 문제의식을 촉발시킨다.

애니메이션으로 피어나는 6월의 상상력

<귀머거리와 바람>

<귀머거리와 바람> 감독 황규일 상영시간 14분40초 제작연도 2014년

<여우소년> 감독 탁도연 상영시간 11분 제작연도 2018년

<대머리마을 이발사> 감독 성보경 상영시간 10분 제작연도 2018년

<친화득 B> 감독 최원재 상영시간 8분 제작연도 2019년

<바퀴돈다> 감독 김상준 상영시간 12분 제작연도 2018년

<피부와 마음> 감독 박지연 상영시간 11분 제작연도 2018년

<지옥문> 감독 김일현 상영시간 9분 제작연도 2018년

<바퀴돈다>

애니메이션은 상상을 구체화하는 힘이 있다. 머릿속에 추상적으로 맴돌던 이미지들이 생명을 얻어 화면 위에서 살아 움직일 때, 관객은 이야기가 전하는 것을 넘어 보이는 것 그대로 직접 공감할 수 있다. 6월의 히든픽처스에서는 우리도 몰랐던 우리의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애니메이션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황규일 감독의 <귀머거리와 바람>은 귀가 들리지 않는 소년이 보이지 않는 바람을 좇는 이야기다.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던 소년은 어느 날 아버지가 만들어준 모형 비행기를 들고 세상 밖으로 향한다. 깨지고, 구르고, 넘어지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소년의 모습은 우리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닮았다. 대사 없이 리듬과 이미지만으로 성장의 감각을 충실히 전달하는 섬세한 작품이다. 탁도연 감독의 <여우소년>은 또 다른 방식으로 집 밖 세상을 접하는 소년의 이야기다. 방 안에서만 놀던 소년은 벽지 속에 숨겨진 문을 통해 숲으로 둘러싸인 다른 세상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여우소년들과 만나 벌어지는 신기한 경험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킨다. 세계, 충돌, 성장 등 애니메이션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키워드를 자신만의 감각과 이미지로 표현한 독창적인 작품이다. 기발한 상상력이라면 성보경 감독의 <대머리마을 이발사>도 빠질 수 없다. 사람들의 머리가 자라지 않아 파산 위기에 빠진 대머리마을의 이발사가 어느 날 혀로 핥으면 머리가 자라나게 하는 신비한 소를 발견하고, 사람들 사이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유머러스한 상황만큼이나 디테일한 캐릭터 묘사가 즐거움을 더한다.

<여우소년>

애니메이션의 매력 중 하나는 무엇이든 변신, 변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박지연 감독의 <피부와 마음>, 김상준 감독의 <바퀴돈다>, 최원재 감독의 <친화득 B>는 모두 애니메이션 특유의 이미지 변형의 매력을 한껏 살린 작품들이다. <피부와 마음>은 권태에 빠진 주부 윤희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더이상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남편은 닭이 되고,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아빠는 사슴으로 변하는 식이다. 마음이 곧 이미지가 되는 애니메이션적인 상상력이 돋보인다.

<바퀴돈다>에선 두꺼비로 변한 사람들이 나온다. 매일 같은 노선으로 지하철을 운전하던 주인공은 어느 날 선로 위에서 괴생명체를 발견하고 급정차하다가 기절을 하는데 깨어나보니 모든 승객이 두꺼비가 되어 있다. 방향을 잃은 현대인들의 불안과 무기력을 SF적인 상상력으로 표현했다. <친화득 B>는 현실 도피처로 등산을 택한 이들의 여정을 따라간다. 40대 초반 시간강사 영수는 불안에 시달린다. 영수는 이를 잠시나마 잊고자 암벽 등반에 몰두하는데 어느 날 새로운 코스를 발견하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지옥문>은 변형의 끝자락을 보여주는 실험적인 애니메이션이다. 어느 날 숨이 막혀 죽은 동휘는 지옥에 떨어진다. 심판관은 동휘가 살인을 했다고 말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주인공은 우선 자기가 누구인지부터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탄탄한 주제의식과 기괴한 형식미의 결합이 돋보이는, 그야말로 애니메이션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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