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시티>와 <앨리어스>
J.J. 에이브럼스가 처음 영화 연출을 맡은 것은 2006년이다. 그 전에 그는 각본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고 대표작은 <아마겟돈>이다. 당시 그의 나이 32세, <사랑 이야기>와 <헨리의 이야기> 각본을 쓸 당시엔 겨우 25세였다. 남다른 감각을 입증한 에이브럼스는 드라마 연출에 나선다. 그의 대학 시절을 반영한 청춘물 <펠리시티>와 여대생을 전면에 내세운 스파이 드라마 <엘리어스>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인기 미드 <로스트>
본격적으로 J.J. 에이브럼스에게 떡밥의 제왕 타이틀을 달아준 계기는 드라마 <로스트>였다. 그가 직접 파일럿 에피소드 연출을 맡고, 제작을 도맡은 재난 드라마 <로스트>는 남태평양의 외딴섬에 불시착한 항공기로 인해 표류된 생존자들의 고군분투를 담았다. 불시착한 비행기의 사고 원인이 미스터리로 남고, 이곳 섬에서 발생하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로스트>의 주된 떡밥 역할을 해 간다. 특히 시즌의 마지막 에피소드마다 심어 놓은 클리프 행어(충격적인 결말의 단초를 제시해 다음 화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는 장치)나, 이야기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많은 떡밥들로 인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시즌 6까지 지속적인 인기를 누려온 <로스트>로 인해 당대에 떡밥 위주의 드라마가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J.J. 에이브럼스에 <로스트>의 공이 쏠린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도 제기된다. 그의 인지도가 마케팅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더욱 핵심적인 역할을 해낸 제작자는 데이먼 린델로프였다는 후문. 그렇긴 해도 J.J. 에이브럼스가 없었더라면 <로스트>의 수많은 떡밥들이 탄생하지 않았을 거란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미션 임파서블 3>
시나리오 작가로, 드라마 연출자로 입지를 다져온 J.J. 에이브럼스에게 놀라운 제안이 찾아온다. 바로 <미션 임파서블 3>의 감독직에 추천된 것. 떡밥의 제왕인 그는 첫 영화 연출작에서도 떡밥의 위용을 과시했을까? 정답은 예스. 이쯤 되면 묻지 않아도 당연한 사실이다. <미션 임파서블 3>는 '토끼발'이라는 정체불명의 생화학무기에 대한 설정을 영화 내내 사용하면서도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않는다.
뭔가 아주 대단한 존재일 것만 같은 토끼발에 대해 호기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결국 공개된 토끼발의 정체에 망연자실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션 임파서블 3>이 액션 영화로서의 미덕은 충분히 해냈다는 평가가 따랐다. 1편을 기린 오마주로 읽어낼 여지도 많으며 상하이 빌딩 위에서 펼친 액션 신이 인상적이다. 정작 3편에 대한 만족도와는 별개로 흥행 성적은 좋지 못했다. 2005년 인기 토크쇼인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케이티 홈즈와의 열애를 고백하며 문제의 '소파 뛰기'로 오버 액션을 선보인 톰 크루즈에 대한 비호감 이미지가 흥행에 큰 타격을 준 것이다.<클로버필드> 시리즈
2008년 <클로버필드>를 시작으로 8년 뒤 <클로버필드 10번지>, 2년 뒤 <클로버필드 패러독스>까지. 이어진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한 시리즈지만 시간순으로 이어져있지는 않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동일한 설정에서 파생된 스핀 오프 작에 해당한다. 아무튼 세 편 모두를 제작한 J.J. 에이브럼스가 <클로버필드>를 위해 공들인 떡밥의 스케일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정교하다. 우선 미국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의 목이 굴러다니는 충격적인 재난 현장이 담긴 <클로버필드>의 예고편이 주목을 받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맨해튼 도시 한복판에 거대 괴수를 출현시킨 <클로버필드>는 맨 마지막 장면에다가 바다에 인공위성이 떨어지는 장면을 은근슬쩍 심어놓았다. 그런 다음 <클로버필드 10번지>가 개봉하기 2달 전부터 아주 치밀한 ARG(대체 현실 게임; 가상 사건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는 가정하에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는 현실 게임)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클로버필드>의 주인공이 일본행을 결심하게 되었던 석유 시추 기업 '타구루아토'가 복병.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회사인 타구루아토는 괴수와 관련성이 있는 인공위성의 배후로 짐작됐다. 게다가 타구루아토의 홈페이지에 몇몇 사람들이 이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받기도 했다. 이메일의 말미에는 이달의 직원에 관한 정보가 있었고, 그의 티셔츠에 적힌 문구를 www로 시작하는 주소에 적용시키자 다시 온갖 단서가 숨겨진 사진들의 나열로 이동한다. 이 무수한 떡밥을 하나하나 열거하려면 스크롤이 모자랄 지경이니 더 궁금한 사람은 검색해 볼 것을 추천한다.
떡밥의 원천 '미스터리 박스'
J.J. 에이브럼스는 TED 강연을 통해 떡밥의 원천에 대해 말한 적 있다. 그는 수년 전에 상점에서 구입한 매직 박스를 가져와서는 "15달러를 주고 샀지만 아직도 열어 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상자를 열지 않는 것은 희망과 상상력, 잠재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한다. 에이브럼스에게 미스터리는 어느 것보다 강력한 자극제다. 그는 <죠스>의 상어 브루스가 너무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면 그를 무서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로맨틱 코미디 <졸업>에서 멋진 데이트 신이 완성될 수 있었던 건 남녀의 대화 내용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 아이디어가 미스터리 박스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면 관객들은 많은 이야기들을 선물 받게 된다"고 믿는 철칙이 그를 떡밥의 제왕으로 만들어 주었다.
떡밥이 너무해
<미션 임파서블 3> 이후 J.J. 에이브럼스는 <스타 트렉>과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연출하며 꾸준히 영화팬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그의 의도대로 '미스터리 박스'를 즐기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지칠 줄 모르는 떡밥 공세에 거부감을 표하는 관객도 많아졌다. 이는 그가 떡밥을 뿌리는 데에 더 큰 관심을 두며 떡밥의 회수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거나, 밝혀진 진실조차 허탈감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던 탓으로 추정된다.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경우, 라이언 존슨 감독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전편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설정과 떡밥을 이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수습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스타워즈>의 대단원은 마무리됐지만 '미스터리 박스'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 J.J. 에이브럼스 감독에게서 떡밥의 유혹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