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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감독 김희철, <미안해요, 리키>를 보고 프리랜서의 애환을 말하다

일해도 일해도, 왜 이렇게 살기가 어려운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로 칸국제영화제에서 두번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후 은퇴를 고민하다 <미안해요, 리키>를 만들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최초 공개된 <미안해요, 리키>는 켄 로치가 왜 노동자들의 감독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으로, 긱이코노미(산업현장에서 계약직•임시직 등을 필요에 따라 고용하는 경제 형태)가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비단 영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큐멘터리 <진실의 문>(2004), <이중섭의 눈>(2017) 등을 연출한 김희철 감독은 택배 배달업을 하는 리키에게서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프리랜서 노동자들을 보았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운전 노동 프리랜서이자,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 <잠깐 운전하고 오겠습니다>를 쓴 김희철 감독이 <미안해요, 리키>를 본 뒤 ‘프리랜서의 세계화’에 대한 단상을 보내왔다.

주인공 리키(크리스 히친)는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해본 일이 많다. 대개 건설 현장에서의 거친 일들이다. 배수, 배관, 굴착, 콘크리트치기, 목공, 도로포장, 조경…. 무덤 파는 일까지 해본 다경력자다. 모든 현장엔 짜증나게 하는 상사와 게을러터진 동료가 있기 마련. 리키는 이제 혼자 일하는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택한 직업은 택배 프리랜서다. 배송회사 면접관이자 관리자는 “회사에 고용된 기사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택배를 하기 위해선 차가 필요하다. 회사 밴을 이용하면 월세처럼 빌리는 돈을 내야 하기에 내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너무 적다. 중고 밴을 잘못 샀다간 수리비가 많이 나와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다. 리키는 아내와 상의해서 새 차를 할부로 산다. 밴 차량의 계약금 1천파운드는 착한 아내의 차를 팔아 마련했다. 이제부터 리키는 매일 14시간씩 주 6일 일하는 어엿한 프리랜서 사장이다. 리키는 몇 년 고생하더라도 목돈을 마련해서 아내와 두 아이 등 네 식구가 셋방살이하는 삶을 청산하고 싶어 한다. 자기 차로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 사장 리키는 아무리 보아도 사장처럼 보이지 않는다. 내 이름으로 된 차에 내 명의로 보험을 들었는데도 배송할 땐 가족조차 태울 수 없고 고객과 문제가 생기면 항의를 받은 프랜차이즈 본사로부터 바로 경고를 받는다. 시간은 늘 촉박하고 허기를 채우려고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먹다보면 단말기에서 알람이 울려 다음 배송을 채근한다. 말이 사장이지 배송 시스템이 정해주는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부품, 즉 노동자일 뿐이다.

철밥통이라 욕하면서도 정규직을 원하는 이유

리키의 아내, 애비(데비 허니우드)는 홀로 지내는 노인이나 장애인을 돌보는 간병인이다. 혼자 힘으로 화장실도 못 가는 약자들은 애비에게 괜한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그녀가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고 먼 곳에 거주하는 고객의 집까지 제시간에 맞춰 가기 위해선 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남편의 택배용 밴 계약금 때문에 차를 팔아버린 후론 버스를 타고 다닌다. 고객의 집으로 가는 이동시간은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고 교통비는 지원받지 못한다. 애비의 삶 역시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9시까지 고단한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부부는 둘 다 피곤에 절어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아들과 딸, 두 아이는 우유와 시리얼로 끼니를 스스로 해결하는 게 다반사다. 툭하면 학교를 안 가는 아들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건물 벽에 그라피티를 하는 게 일상이다. 아들보다 어리지만 훨씬 철든 딸은 아빠의 택배 일을 도우며 팁을 받기도 한다. 아빠 리키는 자식들이 자신처럼 살지 않길 바란다. 하루 14시간씩 남 뒤치다꺼리만 하다 볼일 다 보는 삶. 누구도 그런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않지만 헤어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침실에서 애비는 리키에게 자신의 악몽을 이야기한다. 리키와 자신이 젖은 모래에 빠졌는데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꺼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점점 더 깊은 구렁 속으로 온 가족이 빨려 들어가는 꿈. 리키는 자신과 가족의 휴식을 위해 관리자에게 휴가를 신청해보지만 단박에 거절당한다. 애플, 아마존, 삼성, 자라 제품의 지속적 배송 계약을 따내려고 실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관리자에게 휴가 신청은 씨도 안 먹히는 얘기다. 힘을 가진 관리자는 구시렁거리며 불만을 토로하는 노동자에게 언제든지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자식이 아버지의 또는 어머니의 가난을 그대로 대물림받는 것은 영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나아지지 않는 암울한 상황은 이미 세계화되어 보편적 상황이 된 지 오래다.

필자는 2001년부터 몇개의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었지만 개봉한 작품도 없고 배급으로 발생하는 저작권료를 받아 풍족한 삶을 누려본 경험도 없다. 생계를 위해 이것저것 다양한 일들을 해야 했다. 초중고에 예술강사라는 자격으로 파견되어 영화를 가르치는 일을 오래 했다. 근 10년 가까이 수업 시간당 4만원이고 방학 땐 무일푼. 연봉으로 치면 1200만원 정도의 수입과 약간의 아르바이트로 번돈으로 생활했다. 강사료는 한번도 오르지 않다가 몇년 전 3천원 인상되었다는 소식을 강사 일을 그만둔 후에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반평생 넘게 철물점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몸 쓰는 일도 그닥 낯설지는 않았다. 40대 들어 제주도로 이주해서 3년 정도 살면서 비닐하우스 철거, 태양광 패널 관리, 에어컨 설치 보조, 전자도어록 설치 현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귤이나 고등어 같은 특산물을 팔기로 했었다. 지난해 서울로 다시 이사를 한 후 대리운전 등 운전하는 일로 먹고살아보려고도 했다.

리키처럼 자차로 하는 배송 일을 잠깐 하기도 했다. 일산 근처, 우주항공모함처럼 큰 규모의 건물에 차들이 줄을 서서 들어간 후 자신에게 배정된 물건들을 차에 가득 싣는다. 두루마리 휴지 등 부피가 큰 물건들이 많으면 딱 운전할 공간만 남아서 보조석 사이드미러가 안 보일 정도였다. 물, 고양이 모래처럼 상대적으로 무거운 물건을 엘리베이터 없는 3, 4층 빌라에 배송하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배송 일은 오래 하지 않았다. 배송 중 머리에 피가 나는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주택 담 위에 뻗은 쇠창살에 머리가 부딪혀 마치 공포영화 찍는 것처럼 피가 철철 났다. 하지만 그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고 물류 회사는 책임질 일이 없었다. 내가 내 배송 사업을 하다가 내 실수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었다. 프리랜서의 계약조건이 그랬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철밥통이라 욕하면서도 정규직을 원하는구나. 젊은이들이 노량진 학원가에서 컵밥을 먹으며 어떻게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려고 하는 건 다 이유가 있구나 실감했다.

올해 4월엔 잠실에 있는 서울특별시택시운송사업조합에 가서 택시운전자격증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영화 작업이고 뭐고 당장 먹고살아야 하니 아예 택시 운전을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이었다. 그 직후 영상과 관련된 임시직을 구하게 되었지만 부업으로 주말마다 ㅌㄷ 드라이버를 몇 개월 동안 했다.

ㅌㄷ 드라이버는 인력파견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한다. 정규직으로 계약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프리랜서 자격이다. 프리랜서라도 업무는 전혀 자유롭지 않다. 근무 신청한 요일의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해야 하고, 손님에게 정해진 멘트로 인공지능 로봇처럼 응대해야 한다. 앱에서 손님의 호출이 뜨면 거부할 수 없고, 휴식 시간은 따로 없어서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다. 휴식은 곧 내 수입이 줄어드는 것이니 마음 놓고 쉬는 것도 심적으로 부담이다. 불법주차로 단속되면 택시 자격증이 있어 받는 월 수당까지 주지 않는 규정도 일방적이다.

‘임대충’이 농담으로 통하는 시대의 풍경이란

프리랜서라는 이름의 노동자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 대리운전, 오토바이 음식 배달, 전동 퀵보드 수거 및 충전 등등 이른바 4차 산업으로 탄생한 수많은 앱들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형태가 아니라 파트타임 잡으로 최소 서너 가지의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프리랜서들을 양산하고 있다. 사람들의 편리함과 안락함을 위해선 또 다른 사람들의 수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기업들은 고객의 편의를 위한 각종 의무뿐만 아니라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책임과 여러 비용들을 갑을관계로 계약한 프리랜서들에게 전가하면서 수수료를 빼먹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몇 개월 뛰었던 ㅋㅋㅇ 대리운전의 수수료는 20%다. 고객이 대리운전비 2만원을 내면 중개해주는 회사는 4천원을 앉아서 번다. 대중교통 이동 비용은 당연히 프리랜서 운전자의 자부담이고 고객의 차가 손상되는 사고가 발생하면 마치 선심 쓰듯 30만원만 내면 된다면서 책임 비용을 부가한다. 만약 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가 다치기라도 하면 온전히 자신이 든 보험으로 해결해야 한다.

고용 노동자의 수당, 4대 보험, 퇴직금 등 책임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직접고용이 아닌 프리랜서 형태로 계약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하는 일은 똑같은데 정규직의 반에 해당하는 월급도 못 받는 대기업 비정규직 문제처럼 프리랜서들의 노동조건은 그 열악함과 비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선할 법적, 제도적 장치들은 원시적이다. 법과 제도가 완벽하게 만들어지면 문제들이 해결될까? 사람들은 직업과 사는 곳의 형태에 따라 계급을 매겼다. 이미 우리는 빌라에 살면 ‘빌거’, 임대아파트에 살면 ‘임대충’이라며 아이들끼리도 놀려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돈이 돈을 번다고 가진 것이 많은 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자산이 불어나고 그것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한다. 대부분의 월급쟁이, 프리랜서들은 딱 먹고살 만큼의 수입만으로 대출이자를 갚아나가며 살아간다. 3일에 한명꼴로 산업현장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세상이 점점 불공평하고 부당하게 바뀌고 있는데 사람들은 불만과 불안을 느끼면서도 당장 자신과 식구의 생활비를 벌어야 하므로 쳇바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끔 그 쳇바퀴에서 탈출하여 재벌 기업에, 시스템에, 국가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국회 앞에서 단식을 하거나 강남역 사거리에서 고공농성을 이어나간다.

영화에서 리키는 빚을 갚기 위해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려고 애쓴다. 켄 로치 감독은 영화에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로지 차가운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그 냉랭한 사회에서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것은 영화 속 인물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예전처럼 노동자들의 연대도 쉽지 않은 환경이다. 하지만 침묵의 쳇바퀴를 깨고 부당과 불합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면 애비의 악몽처럼 모두가 구렁에 빨려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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