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국 영화 흥행 3위를 기록했던 <완벽한 타인>.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현시점 원작 영화인 이탈리아의 <퍼펙트 스트레인저>도 국내 관객들을 찾았다. 코미디와 진지함을 오가는 상황, 기막힌 반전, 삽입곡 등의 세부 요소까지 그대로다. <완벽한 타인>의 흥행에는 탄탄한 원작의 위력이 적지 않았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퍼펙트 스트레인저>처럼 국내에서 리메이크한 해외 영화들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한국의 선택을 받은 다양한 국가의 원작 영화 여섯 편을 알아봤다.
일본 <열쇠 도둑의 방법> → <럭키>
일본은 가장 많은 한국 리메이크작을 배출한 나라다. 최근작으로는 제목까지 똑같은 <리틀 포레스트>,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있으며 이외에 <체인지>(1997), <바르게 살자>, <복면달호>도 일본 영화가 원작이다. 그중 가장 크게 흥행한 리메이크 영화는 유해진, 이준 주연의 <럭키>. 일본의 <열쇠 도둑의 방법>을 한국식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인생이 뒤바뀌는 기억상실증 살인청부업자와 청년 배우 지망생’이라는 기본 설정은 두 영화가 같다. 그러나 원작은 코미디 요소가 적었다. <럭키>는 유해진의 코믹 연기를 내세웠지만 <열쇠 도둑의 방법>의 킬러는 훨씬 진중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거기에 조연 캐릭터들의 비중도 커졌으며 보다 촘촘한 인물 관계를 자랑했다. 일본 특유의 과장된 리액션도 차별점. 오락성에서는 <럭키>가 우세했지만 원작은 교훈적인 메시지, 드라마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미국 <러블리, 스틸> → <장수상회>
의외로 미국의 영화를 한국에서 리메이크한 사례는 거의 없다. 이미 관객들에게 익숙한 작품이거나, 제작 규모의 차이가 원인인 듯하다. 그나마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장수상회>의 원작인 <러블리, 스틸>. 니콜라스 패클러 감독이 23살에 제작한 영화다. 그의 어린 나이와 ‘노년의 사랑’이라는 주제는 어색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러블리, 스틸>의 핵심은 황혼의 로맨스에 숨겨져 있던 반전. 중반부까지는 제목처럼 포근한 달달함을 선사, 후반부에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반전이 등장했다. 확실히 한국에서 사랑할 법한 내러티브다. 강제규 감독은 반전은 그대로 유지했지만 캐릭터의 성격(<러블리, 스틸>에서는 노년의 신사였지만 <장수상회>에서는 고집불통 할아버지)을 변경, 재개발 등 한국적 상황을 추가해 <장수상회>를 완성했다.
프랑스 <포인트 블랭크> → <표적>
일본 다음으로 한국에서 리메이크를 많이 한 나라는 영화의 기원지, 프랑스다. 그중 소개할 작품은 2010년 제작됐던 프레드 카바예 감독의 <포인트 블랭크>. 영문도 모른 채 납치된 아내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포인트 블랭크>가 내세웠던 가장 큰 강점은 속도감이다. 양파 껍질을 벗기는 듯한 전개를 단 한 번의 ‘쉬는 시간’ 없이 이어가며 보는 것만으로 숨이 가쁜, 덕분에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몰입을 자아냈다. 뻔한 소재들을 뻔하기 않게 연출한 액션 스릴러. 4년 뒤 <포인트 블랭크>는 한국에서 <표적>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관객들을 만났다. 류승룡을 필두로 특징이었던 빠른 호흡의 액션을 살렸다. 또한 폭력성을 조금 낮추어 15세 관람가 등급으로 개봉, 약 2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체코 <희망에 빠진 남자들> → <바람 바람 바람>
한심, 두심, 세심한 남자들의 19금 코미디를 볼 수 있었던 <바람 바람 바람>도 국내 관객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체코 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원작은 인물 관계가 살짝 다른데, 매형과 처남이었던 <바람 바람 바람>과 달리 <희망에 빠진 남자들>은 장인어른과 사위다. 진중한 분위기도 꽤 등장한다. 불륜이라는 행동과 이로 인해 겪게 되는 상실을 깊이 있게 그려냈다. 이병헌 감독은 이 지점을 포기하고, 시종일관 가벼움을 유지하는 특유의 코미디를 선택한 셈이다. 같은 내용이지만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원작, 리메이크작이다.
스페인 <더 바디> → <사라진 밤>
‘정열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다. 스페인의 스릴러 영화 <더 바디>는 죽은 아내의 시체가 사라지며 발생하는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알렉스(휴고 실바)의 무너져내리는 내면을 서늘하게 표현했다. 일부 장면에서는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정반대의 목적이지만)앞서 소개한 <장수상회>처럼 <더 바디>도 후반부 반전에 ‘포텐’을 터트렸다. 예상을 뒤엎고, 또다시 뒤엎는 충격적인 반전으로 관객들의 뒤통수를 때렸다. 수학 공식처럼 철저히 계산된 <더 바디>는 이후 한국에서 김희애, 김강우, 김상경 주연의 <사라진 밤>으로 재탄생됐다. 역시나 거의 유사한 플롯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판은 반전보다는 형사와 용의자의 대립구도에 더 집중했다.
아르헨티나 <내 아내의 남자친구> → <내 아내의 모든 것>
<표적>에 앞서 류승룡의 진가를 확인시켜 준 작품도 리메이크 영화였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아르헨티나에서 7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내 아내의 남자친구>를 리메이크한 것. 스틸컷만 보면 감성 터지는 멜로가 예상되지만 <내 아내의 남자친구>도 명백한 로맨틱 코미디다. ‘카사노바에게 아내의 유혹을 의뢰한다’는 설정 자체에서 오는 코믹한 상황들이 빈번히 등장했다. 그 사이 권태와 질투 등 인물들의 감정을 촘촘히 포착하며 호평을 받았다. 이미 흥행 요소를 입증한 영화는 원래 할리우드에서 먼저 리메이크할 계획이었지만 산드라 블록의 캐스팅 불발로 무산, 한국으로 와 민규동 감독의 손에 쥐어졌다. 원작에서 카사노바 캐릭터는 소소한 웃음을 담당했지만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는 찰진 대사, 연기를 통해 독보적인 캐릭터로 업그레이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