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3년만에 영화로 돌아온 한석규를 만나다 (2)
2002-05-03

“3년 동안요? 편해지고 자유로워졌지요”

새 영화 <이중간첩>

5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한석규의 신작 <이중간첩>은 <공공의 적> 시나리오를 썼던 김현정, 백승재 팀에 심혜원 작가가 합류해 내놓은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김현정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출신. 한석규는 이 영화에서 어떤 인물이 되어 관객과 만날까? <이중간첩>은 어떤 점에서 시나리오 고르는 데 까다롭기로 이름난 한석규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영화로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가 있었잖아요. <쉬리>가 남북 대결구조를, <공동경비구역 JSA>가 화해를 다루고 있는데 <이중간첩>은 남북문제를 내부에서 들여다보는 영화예요. 내부의 적이 있다는 시각인 거죠. 통일을 원하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남북의 권력층이 분단을 체제유지의 도구로 이용하느라 실제로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권력자에게 통일은 그저 구호에 지나지 않고 통일을 막는 적은 사실 내부에 있지 않나, 라는 접근자세예요. 여기서 제가 맡은 인물은 위장귀순한 북쪽 스파이죠. 너무도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남한에 왔지만 결국 남과 북 모두에 버림받고 제3국행을 택하는 인물이에요. 60년대에 실제로 비슷한 일이 있었대요. 이수근이라는 사람이 귀순했는데 간첩이 아니었지만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했대요.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제3국행을 택한 역사적 사건도 같은 맥락에 있고요.”

한석규는 신인 감독의 작품에 많이 나왔다. <닥터봉> <은행나무 침대> <접속> <초록물고기> <넘버.3> 등 출연작 8편 가운데 6편이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었다. 이번에도 신인 감독이네요? 했더니 “언제 신인 아니었던 사람 있나요? 신인이 자꾸 나와줘야죠”라고 답한다. 그가 늘 안전한 선택만 한다는 세간의 인식은 이런 구체적 진실과 마주치면 힘을 잃는다. 확실히 한석규는 시나리오에서 영화의 에너지를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난 배우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미지와 캐릭터는 어떻게 바꿔가고 있을까? <이중간첩>에서 보여줄 변화가 어떤 것인지 물어보았더니 “제가 어떤 이미지인가요?”라고 되묻는다. 그는 “변신을 기대해주세요” 같은 뻔한 대답을 피해간다.

“아마 제 이미지로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CF 이미지가 크지 않나 싶어요. 좀 정적인 면이 강한 이미지죠. 변신을 해야겠다는 강박은 없어요. 장르가 달라지면 캐릭터도 자연히 변하는 거니까요. <이중간첩>도 기존에 봤던 한석규에서 크게 벗어날 듯싶진 않아요. 어떤 식의 변신이든 저에 대한 이미지는 그대로 남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알 파치노 같은 배우도 작품마다 다르지만 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잖아요. 변신에 초점을 두기보다 이야기 속에 잘 섞여들 수 있는지가 중요하죠. <이중간첩>에선 북쪽 장교 출신으로 목표를 확실히 갖고 있는 인물로 나와요. 오직 앞으로 전진만 하는 인물인데 자기가 믿었던 이념, 가치관, 인생관이 깨져나가죠. 어느 날 자기가 신봉한 모든 것이 옳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와르르 무너지는 인물이에요.”

형 한선규씨는 제작자로

<이중간첩>은 쿠앤필름에서 기획된 작품이지만 한석규의 형이자 매니저인 한선규씨가 공동 제작자로 참가하는 영화이다. 일각에선 한석규의 3년 공백이 형 한선규씨를 제작자로 데뷔시키기 위한 기다림이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광우> <제노사이드> 등 이전에 준비했던 작품들은 모두 한선규씨가 제작하려던 영화들이며 한선규씨는 지금까지 한석규의 출연결정과 이미지 메이킹에 대단한 공헌을 했다. 특히 배우가 직접 나서면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분에서, 악역을 대신했다. 정말 그는 형의 제작 데뷔를 위해 3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것일까?

“어쨌거나 형과는 평생을 같이 가야 해요. 내가 영화를 하게 된 이유, 연기를 하게 된 힘, 그게 다 형이거든요. 아마 둘째형이 응원해주지 않았으면 결코 못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형 때문에 3년을 쉬었다고 말할 순 없어요. 그게 영향이 없던 건 아니지만 전부도 아니죠. 제가 형과 함께하려는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 둘이 영화를 보는 시각이 비슷하기 때문이에요. 형이 영화사를 만든 건 기존 영화에 대해 답답한 심정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걸 저도 공감해요. 일단 형이 제작을 하기로 한 이상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주면서 편안하게 해야죠.”

그는 영화출연이 없던 기간 동안 극장에도 자주 가고 DVD도 많이 봤다고 말한다. 지난해 본 한국영화 중엔 <파이란>을 첫손에 꼽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냐고 물었더니 망설임없이 <빌리 엘리어트>를 권했다. “아, 거 좋네. 그냥 그 한마디면 되는 영화같아요. 제가 본 최고의 엔딩 5편 가운데 하나에요.” 빌리 와일더의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도 한석규의 추천작이다. “어디선가 보니까 잭 레먼은 평생 빌리 와일더 감독하고만 영화하고 싶다고 했대요. 사회성, 풍자정신, 그런 게 정말 잘 살아 있는 영화였어요.”

한석규는 영화의 본질이 ‘추억’ 같은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한다. 떠올리면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다시 보면 눈이 아려오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기억, 배우로서 그가 했던 작업도 또 그가 해야 될 것도 그런 추억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지난 영화들에서 한석규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을 많이 남겼다. 어쩌면 한석규의 시나리오 선택 기준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영화인지 아닌지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의 사진사 정원이 남긴,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라는 마지막 한마디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잠시 멀어져 있던 그곳에 다시 나타난 한석규에게, 우리는 여전히 좋은 추억을 기대한다. 인터뷰를 끝내고, 그는 잠시 자리에 머물러 담배 한대를 더 태웠다. 거기엔 돌아온 흥행배우 한석규 대신 믿음이 가는 연기자 한석규가 자리하고 있었다. 글 남동철 namdong@hani.co.kr·사진 이혜정 ejung@hani.co.kr▶ 3년만에 영화로 돌아온 한석규를 만나다 (1)

▶ 3년만에 영화로 돌아온 한석규를 만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