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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고 매혹적인 영화 <지구 최후의 밤>리뷰 - 비간 감독과 배우 탕웨이 인터뷰
김성훈 2019-08-29

황홀한 영화적 체험을 놓치지 마시길…

지난 7월에 조용히 개봉해 영화를 좀 본다는 관객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여전히 극장에 걸려 있는 영화가 있다. 2018년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영화 <지구 최후의 밤>이다. 이 영화는 장편 데뷔작 <카일리 블루스>로 2015년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과 신인작품상(특별언급)을 수상해 혜성처럼 등장한, 29살 비간 감독의 신작이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꿈처럼 신비롭고 기묘한 이 영화를 소개한다. 더불어 영화를 연출한 비간 감독, 이 영화에서 주인공 완치원을 연기한 배우 탕웨이와 서면으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다. 특히 비간 감독과의 인터뷰를 주선하고 그에게 질문지와 답변지를 전달해준 탕웨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낯선 감독 이름만큼이나 스타일이 생소하다. 가파른 계곡과 수많은 동굴, 강 등 이야기의 무대인 카이리의 자연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인데 최근 중국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무려 60여분에 이르는 롱테이크 트래킹숏은 유려하고, 대담하다.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초기작 등 여러 영화들에 오마주를 바치지만 어느 영화에도 매몰되지 않는 뚝심도 갖췄다. SF영화를 연상케 하는 제목인 <지구 최후의 밤>은 29살인 중국의 비간 감독이 장편 데뷔작 <카일리 블루스>(2015)에 이어 내놓은 두 번째 장편영화이자 카이리의 정서를 몽환적으로 담아낸 러브 스토리다. 국내에서는 지난 7월 25일 개봉했다.

뤄홍우(황각)는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고향 카이리를 찾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고장난 시계에서 얼굴이 잘려나간 어머니의 사진을 발견한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일은 백묘라는 친구의 죽음에서 시작됐다”고 과거를 떠올리며 읊조린다. 늘 노름빚을 피해 도망다녔던 백묘는 줘홍위안에게 사과를 팔기로 한 날 죽임을 당했다. 뤄홍우는 “그때 막 이혼했던 까닭에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사과가 다 썩은 뒤에야 그 일이 기억났다”고 말했다. 나중에 전처의 경찰 친구로부터 “백묘의 시체가 어느 갱도에서 발견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썩은 사과 더미를 치우다가 그 안에서 권총을 발견한다. 줘홍위안을 찾기 위해 그의 애인을 미행했는데 그녀가 화장한 모습이 어머니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이름은 완치원(탕웨이)이다.

영화는 2D 화면인 전반부와 3D 화면인 후반부로 구성된다.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영화 제목이 등장하고, 뤄홍우가 극장에서 3D 안경을 쓴 채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든다(원래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이것은 3D영화가 아닙니다만 우리의 주인공과 함께 3D 안경을 착용해주세요’라는 자막이 등장하는데 국내 개봉 버전은 2D라 이 자막이 등장하지 않는다.-편집자). 뤄홍우가 기억 속 미스터리한 여성 완치원을 찾아가는 전반부와 뤄홍우가 꿈을 탐험하는 후반부가 동전의 앞뒤 같다는 점에서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연상되기도 한다.

희미한 기억과 꿈이 그렇듯이 전반부는 뤄홍우의 과거(의 기억)와 현재, 기억과 꿈이 뒤섞여 혼돈스럽다. 뤄홍우와 완치원이 어떤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뤄홍우의 독백과 기억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한다. 사건(혹은 기억)은 단편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여백이 많아 줄거리를 요약하기가 만만치 않다. 넉넉지 않은 단서들을 미루어보면 뤄홍우는 고향 카이리와 친어머니에 대한 상실감 때문에 고독한 남자다. 사실 영화의 전반부는 감독의 전작인 <카일리 블루스>와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카일리 블루스>에서 전과자 출신이자 시인인 천(천융중)이 카이리의 한 진료소에서 일하면서 조카 웨이웨이(뤄페이양)와 이부형제의 아들인 크레이지 페이스(셰리쉰)를 돌본다. 그러던 어느 날, 천은 크레이지 페이스 때문에 팔려간 웨이웨이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고, 결국 당마이까지 이른다. 그 과정에서 시간의 왜곡이 일어난다. 이러한 구조가 <지구 최후의 밤>에서도 유사하게 펼쳐진다. 뤄홍우는 자신을 떠난 친어머니, 조직 보스 줘홍위안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친구 백묘 등 여러 인물들(에 대한 기억)을 만난 뒤 당마이로 간다. 이 과정에서 림키옹의 음악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그때마다 화면의 이미지들은 몽환적이며 시간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훌쩍 뛰어넘는다.

“꿈에 사라진 여인이 나왔다. 이제는 잊어야겠다고 결심할 때마다 꿈에 나온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뤄홍우가 읊조리는 독백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꿈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뤄홍우가 꿈을 꾸는 후반부는 관객이 그의 꿈속을 체험하고 탐험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뤄홍우가 한 소년을 만나 탁구 대결을 해 그를 이긴 뒤 그의 도움을 받고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다다른다. 소년과 헤어지기 직전, 뤄홍우는 “이름을 지어달라”는 소년의 부탁을 받고 “꼬마 백묘”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곳에서 케이블을 타고 당구장에 갔다가 완치원을 쏙 빼닮은 한 여성 카이전(탕웨이)을 만난다. 붉은 점퍼를 입은 카이전은 누가 봐도 완치원과 동일한 인물로 보이는데, 아마도 완치원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기 전의 시간으로 짐작된다. 동네 불량배로부터 그녀를 구해줬다가 뤄홍우와 카이전은 당구장에 갇힌다. 뤄홍우는 꼬마 백묘로부터 받은 탁구채를 회전시켜 카이전과 함께 하늘을 날아 당구장을 탈출한다. 마을 광장에선 가수 선발 대회가 열리고, 카이전은 무대에 오르려고 한다. 뤄홍우는 횃불을 들고 가수 선발 대회를 찾은 한 여성(실비아 창)을 뒤쫓는다(이 여성은 뤄홍우를 두고 떠난 그의 어머니로 짐작된다). 백묘, 백묘가 싣고 가던 사과, 완치원이 뤄홍우에게 사달라고 한 자몽, 방을 회전시킬 수 있는 초록색 책에 적힌 주문 등 전반부에서 등장한 장치들이 후반부에도 각기 다른 모습과 역할로 변주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무려 60여분 동안 컷 분할 없이 한 호흡으로 전개되는 트래킹숏은 환상적이다(에마누엘 루베스키 촬영감독이 <버드맨>(2014)에서 선보인 롱테이크 스테디캠과 유사하다. <버드맨>도, <지구 최후의 밤>도 앨프리드 히치콕이 <로프>(1948)에서 컷 되는 부분을 교묘히 감춰 하나의 테이크로 보이게 시도한 롱테이크숏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 이중에서 뤄홍우가 케이블을 타고 높은 전망대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장면과 뤄홍우와 카이전이 하늘을 나는 장면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황홀하다.

주인공 천이 버스, 트럭, 배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도로, 길, 강을 달리는 장면들을 롱테이크 트래킹숏으로 담아낸 전작이 그랫듯이, 이 영화에서 롱테이크숏은 단순히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한 카메라의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을 지속시키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특히 어린 백묘가 뤄홍우에게 “나와 탁구시합을 해서 이기면 마을로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제안하자 뤄홍우는 어린 백묘와 진짜 탁구를 치거나, 뤄홍우가 카이전(완치원)을 괴롭힌 동네 불량배들에게 “당구공을 포켓에 집어넣으면 당구장에서 나가게 해주겠다”고 말하자 동네 불량배가 긴장한 채 큐대를 들어 당구공을 치는 등 즉흥적인 상황들이 컷 분할 없이 연출되는 장면들은 환상적이고 마법 같다.

뤄홍우와 완치원의 애절한 사랑과 계속 떠돌아다니며 살아갈 것 같은 인생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 같은 폭죽의 불꽃처럼 덧없다. 그것은 혜성처럼 우리 앞에 당도한 비간 감독을 기억하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 영화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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