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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하우스의 첫 SF 액션 <업그레이드>의 매력 키워드 5
송경원 2018-09-06

오직 액션을 향하여 직진!

아내를 잃은 남자의 복수극, 인공지능을 이식한 남자의 두려움과 고뇌. 블룸하우스의 첫 번째 SF 액션 <업그레이드>를 설명하는 문장들이다. 이 영화는 간결하고 독창적이며 기발하다. 무엇보다 깔끔하게 딱 떨어진다. 설정과 소재는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던 아이디어지만 익숙한 이야기도 어떻게 변주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흥미로워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아니나 다를까 500만달러의 저예산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이미 북미에서만 두배가 넘는 수익을 거뒀고, 복합문화페스티벌인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2018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고 있다. 전형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장르 본연의 매력에 충실한 영화 <업그레이드>를 소개한다.

1. 블룸하우스의 첫 번째 SF 액션

블룸하우스는 영리하다. 블룸하우스는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를 시작으로 <인시디어스> 시리즈, 최근 <겟 아웃>(2017)과 <해피 데스데이>(2017)까지 흥행시키며 호러영화의 명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블룸하우스가 일부러 호러영화라는 특정 장르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500만달러 이하의 낮은 제작비로 수익을 거두는 장르영화”를 만든다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거기에 부합하는 장르가 대개 호러일 따름일 뿐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더 비지트>(2015), <23아이덴티티>(2016)처럼 아이디어와 상황만 맞아 떨어지면 어떤 장르로도 확장 가능하다. <업그레이드>는 그런 블룸하우스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SF 액션 영화다. 이 영화 역시 제작비 500만달러로 만들어졌으며 북미에서만 두배 넘는 수익을 거둬 블룸하우스 공식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가 제작비가 늘어나면 표현도 다양해질 거라는 것이다. 규모를 늘리면 볼거리도 확장될 수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실상은 정반대다. 자본이 끼어들수록 창작자의 자유도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때로 창착의 번뜩임은 열악한 조건에서 태어난다. 제약과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가운데 새로운 문법들이 발견된다. 블룸하우스의 수장 제이슨 블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의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의미에서 <업그레이드>는 오랜만에 마주하는 영리한 SF 액션 영화다. ‘사지마비 환자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기계처럼 정확하게 움직인다’는 아이디어를 뼈대 삼아 근미래의 상상력을 직관적인 이미지로 풀어냈다. 100분이란 상영시간도 이 영화의 경제적인 연출에 한몫했다. 디지털과 CG로 중무장한 영화들이 기술력만 앞세워 내용 없이 상영시간만 두 시간을 훌쩍 넘기며 방만해진 것과 달리 <업그레이드>는 뼈대로 세운 아이디어에만 더없이 충실하다. 곁가지로 빠지지 않는 영화의 일관된 톤은 <스캐너스>(1981), <터미네이터>(1984), <로보캅>(1987) 같은 80년대 SF가 선보였던 일체감을 환기시킨다. 그저 이번엔 SF 액션이었을 뿐 방점은 ‘블룸하우스’의 전략에 찍혀 있는 셈이다.

2. 인공지능과 로봇, 욕심 부리지 않는 영리한 활용

전신이 마비된 남자가 기계의 힘을 빌려 되살아난다는 아이디어는 일견 <로보캅>을 연상시킨다. 다만 시대에 맞게 기계 장치의 물리적인 로봇이 아닌 인공지능으로 살짝 변주되었다. <업그레이드>의 배경은 음성으로 인식되는 인공지능이 많은 것을 대신해주는 가까운 미래다. 자동차 정비공 그레이(로건 마셜 그린)는 뭐든 손으로 직접 만지고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다. 주차창고에서 시작하는 오프닝은 첨단 속에서도 아날로그를 추구하는 주인공의 성격을 잘 압축한다. 그레이는 거대 IT기업의 회장 에론(해리슨 길버트슨)의 자동차를 수리한 후 가져다준다. 회장의 집에서 잠깐 인공지능의 쓸모와 불안에 대해 짧은 언쟁을 벌이는데 영화는 철학적인 질문들을 최소한으로 깔아두되 깊게 파고들진 않는다. 핵심은 어디까지나 액션이기 때문이다.

그레이는 돌아오는 길에 무장괴한의 습격을 받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자신은 전신마비가 되어 무기력한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에론이 찾아와 그에게 최신의 인공지능 두뇌 스템을 이식할 것을 제안한다. 스템 덕분에 신경이 연결되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지만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 스템이 회장 몰래 그레이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그레이가 스템의 도움을 받아 아내를 살해한 범인들을 찾아나가는 게 이 영화의 축이다. 거기에 육체의 통제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스템과 그레이의 신경전이 이어지면서 또 다른 갈등이 전개된다. 스템에게 통제권을 맡길 때 그레이는 신체능력을 극한까지 사용하는 초인으로 변모한다. 인간의 육체를 지닌 로보캅, 업그레이드된 인간이라고 하면 적절할까.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은 SF의 단골 소재 중 하나다.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인간의 자리를 뺏을지도 모른다는 기계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별반 다를 바 없다. 80년대 SF인 <터미네이터>, <토탈 리콜>(1990)의 정서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라는 트렌디한 소재를 결합시킨 셈이다. 하지만 <업그레이드>는 과학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고찰을 깊게 탐구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액션만 전시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알리바이와 고민을 깔아두는 게 이 영화의 핵심이다. 요컨대 지적인 양념을 살짝 가하는 셈인데 어디까지나 양념의 정도를 벗어나지 않기에 더 감칠맛이 난다.

3. 록 캠(Lock Cam) & 록 스텝(Lock Step), 효과적인 촬영기법

<업그레이드>의 핵심은 액션이다. 이 영화는 액션의, 액션을 위한, 액션에 의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과 스토리를 한 상자에 담아내고 싶었다”는 리 워넬 감독의 말처럼 <업그레이드>는 ‘인공지능에 의해 조작되는 사지마비의 육체’라는 아이디어를 충실히 따라가는 영화다. 디테일한 설정이나 고증은 잠시 미뤄둔 채 최소한의 알리바이를 제공한 뒤 질주하는 영화의 속도에 동참시키는 것은 역시 액션이다. 인공지능에 통제되는 육체라는 컨셉을 구현하기 위해 리 워넬 감독이 선택한 것은 현란한 CG나 특수효과가 아닌 아날로그적인 액션 연기다. 마치 <터미네이터>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 자체가 하나의 특수효과나 다름없었던 것처럼 진짜 로봇 같은 느낌이 드는 연기를 주연배우 로건 마셜 그린에게 요구한 것이다. 실제로 로건 마셜 그린은 겁에 질린 인간의 표정과 로봇 같은 기계적 움직임을 동시에 구현하며 스스로 특수효과가 된다. 실로 블룸하우스다운 접근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업그레이드>의 액션은 현란하고 화려하다기보다 정확하고 딱딱한 액션을 통해 기묘한 이질감을 제공한다. 여기에 인공지능 스템의 목소리 역을 맡은 사이먼 메이든의 연기가 더해져 아날로그적인 실감을 부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돋보이게 하는 건 독특한 촬영기법이다. 록 캠(Lock Cam) & 록 스텝(Lock Step)이라고 명명된 이 기법은 무척 단순하다. 배우에게 카메라를 직접 부착해 인물은 움직이지 않고 대신 주변 화면이 역동적으로 인지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아이폰을 활용하는 독립영화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이러한 카메라 시점은 액션에 속도감을 더하는 것은 물론 기계적인 움직임을 재현하는 등 인공지능에게 지배받는 육체라는 컨셉과도 제법 잘 어울린다. 영화 중 주인공 그레이가 액션을 펼칠 때 외에도 몇 장면에서 게임의 1인칭 시점과 유사한 록 스텝의 카메라를 보여주곤 하는데, 이 장면들이 모두 주제적으로도 중요하게 활용된다. 누구에게 통제권이 가 있는지를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장면에서 록 캠 시점을 활용하는지 찾아보는 것도 해석의 재미를 더할 것이다.

4. 기획, 연출, 각본을 도맡은 리 워넬, 80년대 SF의 향수를 찾아서

시나리오작가이자 배우, 연출자이기도 한 리 워넬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기획, 연출, 각본을 맡아 자신의 취향과 창작력을 한껏 드러낸다. 애초에 기획까지만 맡을 예정이었지만 결국에 직접 메가폰을 잡으며 정확한 상상력을 구현한 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난 리 워넬은 드라마로 연기 경력을 쌓다가 TV쇼 사회자를 맡았다. 이때 영화평론가 역할도 겸했는데 일찌감치 분석과 연출에 재능을 드러낸 셈이다. 리 워넬은 <쏘우>의 시나리오를 쓰며 각본가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쏘우> 시리즈 전체의 기획을 맡아 저예산영화에 합당한 탁월한 전략을 세워나갔다. 그는 또 하나의 흥행 브랜드 <인시디어스>의 각본을 썼고, <인시디어스2>에서는 배우로도 참여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에 <인시디어스3>로 첫 연출 데뷔를 했으며 같은 해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에서 ‘주목할 만한 감독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 리 워넬이 차기작으로 선택한 건 호러가 아닌 SF 액션이었다. ‘컴퓨터의 조종을 받는 사지마비 환자’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업그레이드>는 현대적인 감각과 소재를 차용하되 그 핵심만큼은 80년대 로봇 SF에 바탕을 두고 있다. 명확한 컨셉, 저예산에 집중하는 블룸하우스답게 많이 보여주기보다는 제대로 보여주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는데 그 기원을 80년대 SF에서 찾아낸 것이다. “내 생각에 1980년대는 SF영화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엄청난 실사효과가 많이 나온 그 시절에는 지금 컴퓨터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을 사람이 구현하기 위해 창조적인 생각을 해야만 했다. <로보캅> <스캐너스> <토탈 리콜> 같은 영화들이 <업그레이드>에 영감을 주었다. 가령 <터미네이터>는 관객의 눈을 속이는 여러 촬영기법의 아름다운 시작점이 되었다.” 때로 제약은 창작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500만달러에 불과한 적은 예산이 도리어 영화의 상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제약이 된 셈이다. 욕심 부리지 않고 익숙한 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선보이는 영리함. 잘 만든 장르영화란 이런 것이다.

5. 이례적인 15세 이상 관람가 판정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업그레이드>는 영화제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상영됐다. 몇몇 액션 시퀀스에서 다소 수위 높은 폭력 묘사가 있고 스토리상 총기 살상, 신체 훼손 등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리 워넬 감독 역시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느낌을 살릴 수 있는 부분에는 공을 들였고 ‘완전히 제대로 날려버릴 수 있는 두상’에 대해 만족을 표했다. 반대로 말해 이 영화의 폭력 묘사는 다소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액션과 코미디를 미세하게 넘나드는 영화는 유혈이 낭자하는 가운데에서도 웃음이 새어나오도록 만든다. 이런 장르적 특색과 비현실성 덕분에 <업그레이드>는 이례적으로 정식 개봉에서 15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사실에 입각한 리얼함이라기보다는 영화적, 장르적 리얼함에 가까운 오락을 보다 많은 관객이 즐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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