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마드리드의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일하는 훌리아(카르멘 마우라)는 낡은 아파트의 매매를 책임져야 한다. 근사한 홈바와 물침대가 갖춰진 그곳에 남자친구를 끌어들여 달콤한 일탈을 즐기려는데, 천장에서 오물과 바퀴벌레가 쏟아져내린다. 위층에 혼자 살던 노인이 오래 전에 죽어 있었던 것이다. 훌리아는 우연히 노인의 집에서 거액의 돈다발을 발견하게 되자, 이를 몰래 빼돌리려 한다. 하지만 이 돈은 아파트 주민들이 함께 나눠 가지려던 것. 훌리아와 주민들의 돈가방 쟁탈전은 유혹과 회유, 인질극과 구타, 살인방조와 살인으로, 점차 그 수위를 높여간다.■ Review 오프닝 타이틀. 원색의 회오리 속에 겁에 질린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여자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토해내더니,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내리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뭔가를 열심히 뜯어먹고 있는데,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부패한 시체의 손가락이다. 이 영화의 갈 길이 스릴러거나 호러라고 예고하는 듯하다. 그러나 예측은 불허, 속단은 금물이다.
<커먼웰스>는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직전까지 스토리와 장르를 판가름하기 힘든 영화다. 주인 없는 돈가방을 둘러싼 아비규환의 인간군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얼핏 <쉘로우 그레이브>와 <심플 플랜>을 연상시키지만, 그렇게 무거운 톤은 아니다. 은밀한 규칙이 지배하는 집단에 이물질로 거치적거리는 외부인의 존재도 <델리카트슨 사람들>에서 본 것이지만, 여기선 그런 희생양이나 구원의 이미지가 아니다. <커먼웰스>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속물이다. 돈 때문에 속고 속이고 죽고 죽인다. 썩은 시체가 발견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의 몸이 두동강나고, 돈을 빼돌리려던 여자는 죽도록 얻어맞는다. 그런데 <커먼웰스>는 돈가방의 행방에 몸이 닳고, 혈투극에 경악하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데를 보고 키득대게 만드는 이상한 영화다.
“진정한 공포와 폭력은 현실과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이른 아침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이웃이 당신의 얼굴을 무섭게 쳐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감독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가 고백하는 대로 <커먼웰스>의 출발점은 이처럼 누구나의 평범한 일상, 더불어 사는 삶을 관통하는 불안과 공포다. 영화의 무대인 아파트에선 관리인이 주도하는 ‘공공의 이익’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한다. 반대해도 안 되고, 배신해도 안 되고, 탈퇴해도 안 된다. 곧바로 죽음이다. ‘횡재의 운을 나누자’던 공동체 의식은 이렇게 해서 횡포가 되고 폭력이 된다. 주민들은 아파트 밖으로 뛰쳐나온 뒤에는, 한술 더 떠 이기심과 집착, 욕망의 야수성을 드러낸다. ‘공공의 이익’이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다.
이글레시아 감독은 사물과 인간에 대한 공포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탈출구가 유머라고 믿는다. 그래서 슬프고 무서운 사건을 우습게 포장하고, 인간의 약점을 과장하고 희화화한다. “우린 착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하는 주민들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이들에게 돈이 필요한 건 임시직의 고용 불안에서 벗어나거나,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가거나, 입냄새 제거 수술을 받으려는, 소박한 바람에서다. 그저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전략적 제휴거나 위선이며, 실상은 원한과 치정으로 얽혀 있다. 가뜩이나 어설픈 그들의 손발이 척척 맞아줄 리 없다.
또 다른 웃음의 요소는 장르를 비틀고, 기존 영화를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하는 비주류적 감성이다. <커먼웰스>는 히치콕 스타일의 스릴러 모양새를 갖추는 척하면서, 사지절단 호러와 앙상블 코미디와 할리우드식 액션을 천연덕스럽게 버무려넣고 있다. 특히 히치콕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곳곳에 널려 있는데, 오프닝 타이틀의 비주얼은 <현기증>을, 마천루에서 벌어지는 아찔한 추격전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이웃집을 망원경으로 주시하는 남자의 행각은 <이창>을 연상시킨다. 오리지널 영화팬들의 눈에는 다소 불경하게 비칠, 악취미적인 패러디도 있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복장을 한 남자가 “포스가 온다”고 외칠 때, 그는 샤워하는 여자를 엿보며 자위하는 중이다. 돈가방에 목숨 건 아줌마는 몸뻬 바람으로 공중 곡예하듯 옥상 사이를 날아다니며, <매트릭스>를 패러디한다.
<커먼웰스>는 스릴과 쇼크, 공포와 유머가 어우러진, B급 코미디의 걸작이지만, 취향에 따라 열광할 수도 혐오할 수도 있는, 그런 영화다. 2000년 스페인 개봉 당시, 5주 연속 1위를 지키는 등 흥행에도 성공했다. 박은영 cine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