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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쇼맨>과 함께 보면 좋을 쇼 비즈니스 영화들
김소미 2017-12-20

쇼를 사랑한 영화들

<시카고>

일찍이 스스로 정체성을 쇼맨(showman)으로 규정했던 <위대한 쇼맨>의 바넘은 홍보를 위해 논란을 즐겼고, 신기하거나 재미있는 볼거리가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개의치 않고 무대에 세웠다. 그 배짱만 보아도 흔치 않은 인물임이 분명한 위대한 쇼맨, 바넘의 흔적을 이어받은 영화들을 추려봤다. 19~20세기 쇼 비즈니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는 뮤지컬을 위주로 댄스홀의 무용수들, 백스테이지의 제작자들, 데뷔를 꿈꾸는 배우들 등 어지럽게 뒤섞인 군상의 흥겨움과 고뇌를 동시에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시카고> (Chicago, 2002)

눈부신 핀 조명이 비추는 무대와 연기가 피어오르는 퀴퀴한 뒷골목이 나란히 놓인 곳이 <시카고>다. 영화는 춤과 노래를 함께 선보이며 거기에 희극적 요소를 곁들이는 대중 친화적인 쇼인 보드빌 장르를 다룬다. 이 분야 최고 스타인 벨마(캐서린 제타 존스)는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 사실을 알고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록시 하트(르네 젤위거) 역시 자신을 이용한 정부를 죽여 감옥에 갇힌다.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등장한 변호사 빌리(리처드 기어)는 현대판 바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쇼 비즈니스계를 떠도는 축축한 욕망들을 동력삼아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교묘히 이용한다. 두번의 치정 살인, 쉴 새 없는 쇼, 엔터테이닝 업계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시카고> 속 세계가 지닌 추악함을 화려함으로 바꾸어놓는다. 관능적인 재즈 선율과 안무, 위트 있는 대사 등 뮤지컬의 장점은 고스란히 품으면서 롭 마셜의 유려하고 과시적인 편집 스타일이 더해졌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무대에 등장해 노래를 하고 익살을 떨어대는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영화 전체가 거대하고 흥겨운 보드빌 쇼처럼 보이기도 한다.

<캉캉> (Can-Can, 1960)

장 르누아르의 1954년작 <프렌치 캉캉>과 비교하면 월터 랭의 <캉캉>은 좀더 쉽고 유쾌한 태세의 영화다. 캉캉은 1830년대부터 파리의 댄스홀에서 유행한 무용인데, 풍성한 주름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다리를 높이 들어올리는 춤의 동작으로 인해 부도덕과 음란을 이유로 불법으로 지정된다. 시몬(셜리 매클레인)은 1896년 파리 몽마르트르에 위치한 인기 있는 살롱의 사장이자 훌륭한 캉캉 댄서다. 그는 특유의 순진한 매력을 이용해 판사, 변호사, 경찰 할 것 없이 사람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여 캉캉 공연을 지속해나간다. 실제 댄서 출신인 셜리 매클레인이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해 유려한 무용에서부터 마임 연기에 이르기까지 뮤지컬의 재미를 든든히 책임진다. 프랭크 시내트라와 루이 주르당이라는 두명의 믿음직한 프랑스 배우들 역시 앙숙 관계인 바람둥이 변호사와 착실한 판사 콤비를 노련하게 소화해낸다. 캉캉의 가치를 믿는 시몬의 용기 있는 행동과 그녀를 둘러싼 두 남자의 로맨틱 코미디가 즐거운 조화를 이루는 영화다. 대미를 장식하는 캉캉 쇼의 화려함과 재기 넘치는 분위기가 여전히 생생한 위력을 발휘한다.

<위대한 지그펠드> (The Great Ziegfeld, 1936)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명제작자로 회자되는 플로렌즈 지그펠드의 업적을 영화화했다. 영화가 대중의 오락이 되기 전인 19세기부터 무대 공연, 쇼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지그펠드(윌리엄 포웰)의 뒤를 좇는다. 백스테이지 뮤지컬의 일종으로 그가 공연을 제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담기는데 역시나 충실한 전기영화의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쇼 비즈니스 세계의 위용을 과시하는 화려한 무대 장면들에 공을 들인다. 지그펠드의 첫 번째 부인이자 그를 통해 스타가 된 애나 역으로 루이제 라이너가 명연기를 펼쳐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지그펠드를 사랑하지만 그의 여성 편력과 사치스런 씀씀이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기를 결심하는 라이너의 절절한 연기가 발군이다. 실제로 플로렌즈 지그펠드 덕분에 업계에 이름을 알린 패니 브라이스가 본인 역할로 출연한다는 점 역시 눈길을 끈다. 패니 브라이스의 이야기 역시 1968년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주연의 <화니걸>을 통해 영화화됐다.

<물랑루즈> (Moulin Rouge, 2001)

바즈 루어만의 <물랑루즈>는 2000년대 초반 뮤지컬 장르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한 작품이다. ‘붉은 풍차’라는 뜻을 지닌 물랑루즈는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 위 환락가에 위치한 잘나가는 댄스홀. 물랑루즈의 쇼걸인 샤틴(니콜 키드먼)은 신분 상승을 꿈꾸는 속물적인 면모가 다분한 인물이다. 여기에 돈과 다이아몬드를 노래하는 탐욕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시인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이 등장하면서 로맨스가 증폭된다. 1899년, 19세기 끝자락에 매달린 이 위태로운 쇼 비즈니스 세계는 바즈 루어만 감독에 의해 어른들의 동화 세계로 탈바꿈한다. 서사만 놓고 보자면 신파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현대적으로 해석된 공연 장면의 압도적인 화려함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뮤지컬 장르로는 22년 만에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등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고 의상상과 미술상을 수상했다. 극단적인 낭만성과 과장으로 점철된 영화의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쇼 비즈니스의 명암을 켜켜이 품는다. 얼마간 컴퓨터그래픽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니콜 키드먼의 첫 등장도 놓쳐선 안 된다.

<올 댓 재즈> (All That Jazz, 1979)

밥 포시의 자전적 요소가 다분히 반영된 캐릭터 조 기디언(로이 샤이더)은 매우 예민하고 파괴적인 예술가다. 브로드웨이의 성공한 연출가인 조 기디언은 방만한 생활로 심장병이 악화돼 병상에 묶인 신세가 된다. 앞선 영화들이 쇼 비즈니스계의 음지까지도 다소 가볍고 흥겨운 태도로 끌어안았다면 밥 포시의 <올 댓 재즈>는 훨씬 더 비극적이고 분열에 찬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죽음을 앞둔 그 앞에 쇼 비즈니스 업계에서 보낸 자신의 삶이 편린이 되어 떠다닌다. 조 기디언의 죽음은 무대 밖에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쇼 비즈니스의 강력한 환각과 피로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실제로 밥 포시는 1987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조 기디언은 뮤지컬과 일체로서 살아왔던 자신의 삶에 작별을 고하며 노래를 부른다. 이어서 마치 뮤지컬의 코러스 단원처럼 그 주변 인물들이 그의 소리에 화음을 맞추며 무대를 이루는 장면은 감동적인 동시에 통렬한 풍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979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 (There’s No Business Like Show Business, 1954)

1950년대 뮤지컬영화 전성기의 부유한 정서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아이들을 데리고 공연을 다니는 몰리와 테렌스 부부의 쇼에서는 바넘이 꾸렸던 초창기 형태의 서커스, 보드빌 공연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각기 특출난 재능을 지닌 세 자식들을 본격적으로 영입해 ‘도나 휴 가족’ 쇼단을 꾸리기로 결심한 이들의 이야기는 곧장 오랜 시간을 건너뛰어 세 남매가 장성한 후의 어느 날로 이어진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도널드 오코너가 걸출한 탭댄스 실력을 자랑하는 막내 팀을 연기하는데, 그가 넋을 잃고 쫓아다니는 미모의 가수 지망생 빅키가 바로 마릴린 먼로다. 빅키는 팀과 달리 어린 시절부터 홀로 생활하며 오로지 쇼를 통해 자신을 표출할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이 쇼가 내 미래를 결정할 거야”라는 그녀의 다짐은 뮤지컬에 대한 낙천적 믿음과 헌사로 가득한 1950년대 뮤지컬의 태도를 대변한다. 가족애를 북돋우는 줄거리를 하고 있지만 대형 자본과 시네마스코프 화면이 빚어내는 뮤지컬의 화려함이 사실 이 영화의 전부나 다름없다. 바넘이 원했던 엔터테이닝 공연의 모범 사례 같은 영화다.

<쇼콜라> (Chocolat, 2016)

19세기 말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도 편견과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바넘의 쇼 단원들이 무수한 비난과 멸시 속에 처했던 것처럼 <쇼콜라> 역시 스스로 식인종 연기를 자처하며 조롱거리가 되어야만 했던 흑인 광대 라파엘의 이야기를 담는다. 오랜 경력을 자랑하지만 더이상 업계의 부름을 받지 못하는 광대 푸티트(제임스 티에레)가 라파엘에게 콤비 플레이를 제안하면서 두 사람은 파리 최고의 서커스단에 입단할 정도로 성공가도를 달린다.

<쇼콜라>는 <위대한 쇼맨>의 시끌벅적한 뮤지컬 세계와 나란히 두자면 조금은 심심하게 보이는 드라마다. 철저하고 냉정한 비즈니스적 관계인 동시에 광대로서 일면 서로를 공감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때때로 무대 안팎을 넘나들며 더욱 모호한 속성을 내비친다. 우정의 단단함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좋아하던 라파엘은 어느새 <오셀로>의 주인공이 되는 변화를 겪는다. 진실의 의미가 무효한 쇼 비즈니스 세계에서 자신을 찾으려는 예술가의 시도가 유의미한 궤적을 만든다. 영화 말미에 뤼미에르 형제의 흑백영화 <쇼콜라와 푸티트의 시소 의자>를 통해 그들의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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