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커버스타
[커버스타] 감정을 좇아가는 영화가 좋다 - <싱글라이더> 이병헌
정지혜 사진 오계옥 2017-02-14

어떤 배우는 등장과 함께 관객의 마음속 빗장을 풀고 관객을 극으로 이끈다. 그러면서도 관객의 시선이 쉬이 자신의 파장 너머로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않는 자성까지 갖췄다. 이병헌은 그런 배우다. 그는 관객의 신뢰를 끌어안고 관객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방향감각을 잃지 않는다. 이번엔 <싱글라이더>의 재훈을 통해서다. 중년의 증권회사 지점장인 재훈은 부실채권 사건으로 고객들의 인생뿐 아니라 그 자신의 인생까지 송두리째 잃을 위기 앞에 서 있다. 죄책과 모멸감이 그를 사로잡을 때 재훈은 아내 수진(공효진)과 아이가 있는 호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생각한 그림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목격하고 지켜본다. <싱글라이더>는 재훈의 무표정 속 표정들, 텅 빈 눈빛 속 무수한 이야기들로 번져나가는 영화다. 이병헌의 미더운 얼굴이 궁금해진다.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마다 이야기 자체가 설득력이 있는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역할인지를 자문한다고 했다. <싱글라이더>는 어떠했나.

=한편의 소설을 읽은 듯 시나리오에 흠뻑 빠졌으니 설득력만큼은 상당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재훈이 낯선 상황을 계속해서 지켜봐야 했기에 연기가 단조롭게 보일까봐 무척 걱정됐다.

-바라본다는 행위를 통해 재훈의 심리와 감정이 드러나고 여기에 환상적인 장치까지 결합하는 방식이다.

=딱 내가 좋아하는 유의 영화다. 엄청난 사건이 있는 ‘영화적’인 서사보다는 인물의 심리나 감정을 아주 세밀하게 좇아가보는 영화 말이다. 그런 면에서는 <달콤한 인생>(2005)과 맞닿아 있다. 판타지적 요소는 딱 <번지점프를 하다>(2000)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재훈의 대사가 상당히 적다. 재훈이 뭔가를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도 하고 재훈의 시선, 눈빛, 바라보는 행위로 상황과 감정을 전하는 서사 구조다.

=시나리오를 읽을 땐 잘 못 느꼈는데 현장 편집본을 확인하다 그제야 알았다. ‘아, 큰일이다. 대사가 정말 없네. 실험영화 같은데?’ (웃음)

-<싱글라이더>는 서사 전개 자체가 반전으로도 보인다. 배우로서는 재훈이 이 반전을 인지하는 순간과 그 전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연기할지가 커다란 숙제였을 텐데.

=반전의 파장이 굉장히 크다. 반전을 위한 반전은 절대 아니다. 다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했다. 그래야만 내 연기에 내가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이주영 감독님과 재훈이 인지하는 반전의 순간을 관객도 함께 알 수 있게 되느냐 여부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만 알 수 있는 기점들을 아주 은근하게 극에 만들어뒀다.

-언어가 달라지면 발성도 달라지잖나. <싱글라이더>에도 영어 대사가 있지만 할리우드에서 작업하며 이 부분에 있어 터득한 게 있을까.

=되게 힘든 부분이다. <매그니피센트 7>(2016) 때 에단 호크빈센트 도노프리오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그전에는 기껏해야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는데. 이번엔 다들 떼로 나오는 데다 촬영 기간도 할리우드에서는 상당히 긴 편인 6개월 가까이다 보니 동지애가 생기더라. 진짜 친구가 돼 “한번 좀 가르쳐줘봐”라고 말하며 비로소 말문이 트였달까.

-<마스터>(2016)의 진 회장(이병헌)이 필리핀에 갔을 때 현지 억양을 반영한 로컬화된 영어를 구사하는 데서 당신의 치밀함이 엿보였다.

=미국인처럼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후배가 동남아에서 사업을 할 때는 현지인의 영어 발음으로 말하더라. 사업을 할 땐 그게 더 효과적이라면서. 진 회장처럼 팔색조에 약삭빠른 인간이라면 그 정도는 가뿐히 가능하지 않겠나. 필리핀 배우들 오디션을 볼 때 내 영어 대사의 녹음을 부탁해 들어봤더니 악센트나 억양의 특징이 들리더라. 관객이 알아봐주실지 나름 기대하며 준비했던 부분이다. (웃음)

-역사적 실존 인물인 최명길 역으로 <남한산성> 촬영이 한창이다.

=병자호란이라는 치욕적인 역사의 순간을 그리다보니 상당히 묵직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척화와 화친의 입장을 가진 인물들이 끝까지 팽팽히 맞서니 그 긴장감이 상당할 것이다.

-지난해 <내부자들>(2015), <밀정>(2016), <마스터>로 이어지며 영화의 흥행과 개인적인 수상이 계속됐다. 그런 좋은 기운이 당신의 다음 행보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아진 게 사실이기도 하다. 행복하면서도 이런 게 얼마나 더 지속될까 불안하기도 하다. 스스로를 너무 소진하는 건 아닐지. 나아가 관객이 내게서 그런 피로감을 느낀다면 더 큰일이니. 나를 추슬러야 할 이유다.

관련영화

관련인물

스타일리스트 PR라인 김미현 실장 / 헤어 아우라 임철우 원장 / 메이크업 끌로에 김정남 원장·의상협찬 델디오, 로드앤테일러, 브룩스 브라더스, 코스, 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