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여러 번 유해진의 웃음의 정체를 파보자 했던 것 같다.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는데, 사석에서 그는 다소 평범했다. 이를테면 <타짜>(2006)에서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던 타짜 고광렬의 모습 같은 것이 평소의 그에게는 온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고광렬입니다” 하고 고니(조승우)의 가족에게 찾아가 너스레를 떨 때, 쇳소리 섞인 하이톤의 목소리로 웃다가 표정을 싹 바꾸어버리는 타짜 고광렬이나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에서 ‘음파~ 음파~’ 하며 산적단에 바다 수영법 강의를 하는 해적 철봉이 선사하는 기가 막힌 웃음. 영화에서 그의 표현은 화려했고 능수능란했으며, 다채로웠고 디테일이 많았다. 또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릴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빨랐다. 그러니 느리고 조용하고 조금은 어눌해 보이는 유해진의 모습을 접하면서, 화면 속 그 장면들이 신기루같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달까.
그런 면에서 <럭키>는 극화된 유해진보다는 평소의 유해진을 유추하게 만드는, 의외의 재미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성공률 100%의 냉혹한 킬러가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져서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얼떨결에 무명배우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설정이 이미 코믹 자체인 영화. 정작 스크린 속에서 그렇게 분주했던 유해진이 <럭키>에서는 많은 말을 하지도, 웃지도,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 전환의 연기를 선보인다. 유해진 역시 그 지점에 먼저 끌렸다. “시나리오를 보는데 전혀 코믹하지가 않더라. 그리고 코미디로 가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으로 했다. 그래야 이 영화는 결국 코미디가 될 수 있겠다 싶더라. 그런 점에서 새로운 도전 지점을 찾아준 영화였다.” 유해진은 이미 ‘붕 떠 있는’ 영화를 현실감 있게 안착시키는, 웃지 않지만 관객을 웃음으로 몰고 가는 고도의 기술을 발휘한다. 그리하여 <럭키>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유해진의 총합인 것 같으면서도, 적어도 영화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유해진의 색다른 연기를 보여준다. “예전에 연극 연출가 중에 나만 보면 그런 이야기를 한 분이 있었다. 영화에서 유해진을 왜 그렇게 소모시키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본인은 나를 웃기게만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 시각으로 나를 봐준 게 그렇게 고맙더라.”
‘코믹’에 능란하다고 여겼던 이 배우는 스크린 연기 20년이 지난 지금, 단 한번도 어설프게 웃기려 하지 않은, 관객을 눈속임하지 않은 연기로 부동의 신뢰를 구축한 배우다. “코믹 연기를 하면서 늘 폭발할 것 같았다. 내가 온전히 흡수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금방 눈치채고 어설퍼진다. 그만큼 까다롭고 도전할 지점이 많은 연기다. 그럼에도 코믹 배우로 굳혀지기 싫은 건, 단지 한 가지 색깔로 가는 게 싫어서다. 초창기에는 조폭 코믹 장르를 주로 하다 보니 붙게 된 ‘양아치’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더라. 그렇게 이미지가 고정되어버리니까 벗어나고 싶었다.” 지난해는 유해진이가진 다양한 결들을 실감케 하는 해였다. <극비수사>(2015)에서 아이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도사 김중산을 비롯해 <베테랑>(2015)에서 재벌 3세 조태오의 재산 을 관리하는 오른팔 최 상무와 <그놈이다>(2015)의 연쇄살인마 민 약국으로 바쁘게 자신의 스펙트럼을 확장해왔다. 그 지각 변동은 이미 지금으로부터 6년 전에 시작됐다. “류승완 감독이 처음으로 <부당거래>(2010)에서 말끔한 슈트를 입게 해주었다. 강우석 감독님이 <이끼>(2010)에서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마을 주민 김덕천을 연기하도록 했는데, 그런 역할은 내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게끔 기회를 준 분들에게 감사한다. 물론 이런 시도를 두고, 유해진 재밌을 줄 알았는데 실망이었다는 말도 듣지만 그렇더라도 계속 도전을 해야 한다. 그래야 계속 내가 배우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럭키>에서 보조출연자로 설움을 받으며 노력하는 무명배우의 생활을 연기하면서, 그는 부쩍 초창기에 연기할 때의 어려움을 떠올리기도 했다. “예전 내 생활에서 팁을 얻어 응용도 많이 했다. 내가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때를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기도 하지만, 막상 배우로서 그의 생활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1년의 대부분. 오늘도 새벽까지 차기작인 <택시운전사>를 찍고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그는 정신없이 바쁜 일정이 끝나면 늘 비워둬 엉망인 집정리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삼시세끼>까지 더해, 올해 정말 쉬지 않고 일했다. 겨울에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여름 내내 촬영한 <공조>에서는 남북 공조수사에 투입된 강력반 형사로, 또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을 그린 <택시운전사>에서는 광주의 택시운전사로 분해, 유해진은 또 유해진식의 장르 불문하고 따뜻함이 묻어나는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큰 바위에 걸리지 않고 슥슥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나이가 드니 이젠 더 어깨가 무거워진다. 항상 고민하고 돌이켜보려 한다. 답은 없지만 고민의 시간 끝에 또 무언가 나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