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1049호부터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요구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지지 캠페인을 매주 게재하고 있습니다. 이주의 지지자는 전려경 프로듀서입니다. 이춘연 대표가 이끄는 제작사 씨네2000에 입사해 <미술관 옆 동물원>(1998)을 시작으로 다수의 씨네2000 제작 작품을 기획, 마케팅했습니다. <여고괴담4: 목소리>(2005), <체포왕>(2010) 등의 프로듀서를 맡았고 <더 테러 라이브>(2013)를 끝으로 독립해 현재는 프리랜서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안국진 감독과 <여고괴담> 리부트를 기획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주 명필름 심재명 대표의 글을 끝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던 연속기획은, 이번 10번째 기고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하는 영화인들의 마음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입니다.
1.
20년 전의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 여러 개의 문 앞에서 서성이는 어린아이였다. 공연이란 걸 한답시고 무대 뒤를 노니다가, 취재랍시고 이 사람 저 사람 들쑤시며 쏘다니다가, 이도 저도 시들해져 동시상영관부터 시네마테크까지 각종 영화관을 오가며 시간을 죽이던 백수 시절이었다. 선택한 무엇도 제대로 좋아할 줄 몰라 찔끔찔끔 훔쳐보던 내가 난생처음 서울 시청 앞 부산은행에 들어선 그 순간(1996년만 해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을 예매하기 위해서는 부산은행에 직접 가야만 했다), 브로셔의 어휘들에 온전히 기대어 영화를 예매하고 남포동의 묵은 관광호텔을 예약하고 서툰 배낭여행자의 행색으로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싣던 그때, 나는 영화를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또 한번 지나갈 흥미, 무겁지 않은 관문. 글과 극, 빛과 소리에 끌리는 본능의 지류. 딱 그 정도의 사뿐함으로 무심코 들어선 영화 세계는 부산의 짠내와 만나는 순간 엉키고 말았다. 부산이 가마산(釜山)이라는 걸, <지독한 사랑>(1996)이 시작된 곳이었다는 걸 간과하다니- 내 생애 최대의, 인생을 건 실수였다.
2.
그로부터 2년 뒤, <지독한 사랑>의 제작사에 입사하게 된 나는 지금까지 영화를 만지고 있다. 설렘에 혹해 훌쩍 전심을 던졌건만, 그래도 아직 완벽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움켜쥐고 세월을 걷고 있다. 부산에 고마운 건, 첫 만남 이후 언제나 그곳에 있어주었다는 거다. 지난 달력에 쌓인 먼지를 털며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첫사랑이 오랜 연인이 되어 부산에 있어주었고, 가을이면 별다른 기별이 없어도 그이를 찾아 그곳에 갔다.
해운대의 청송(실은 그 안의 포장마차)에 서로의 성장을 기록하며 내년을 기약하던 오랜 연인은 외할머니를 닮아갔다. 그이가 차린 밥상은 친근하면서도 불편했고, 고집스러우면서 한결같았다. 고봉으로 꽉 눌러 푼 보리밥 앞으로 군내 나는 청국장에 묵은지가 중심을 잡고 갓 캐낸 제철 채소와 해산물을 따라가다보면 누구나 편애할 수밖에 없는 계란프라이를 만난다. 혹여나 어느 순간 그 상의 모습이 영양소 균형과 칼로리를 고려한 전문 요리사의 밥상처럼 변신했다면 서운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을 거다. 문제는 나였다. 풋풋해서 설레는 첫사랑이 해묵어 지긋한 옛 연인이 되고, 익숙해서 잊어버린 외할머니가 되는, 짧지 않은 시간을 지나면서 내 사랑은 지독함을 잃었다.
3.
20년 전, 영화 <지독한 사랑>에서 영민(김갑수)의 연인 영희였던 강수연 선배가 부산국제영화제의 본류를 지키려 고군분투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랑의 역사에 있어 증오보다 더 무서운 게 무관심이라던가. 영민과 영희가 몇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듯이 부산도, 그이를 대하는 나도 1996년 그때와 똑같은 마음일 수는 없다. 하지만 소식을 듣는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부산은 그곳에 오롯이 있어주리라, 어떤 누구도 그이를 흔들지 못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부조리한 현실 정치로 인해 금이 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내 사랑은 자극을 받았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지켜보는 것. 각자의 존재 방식을 인정하고, 상대의 역사를 존중하면서 찾아가 말 거는 것. 같이 밥 먹으며 조언하고, 서로 어루만지며 당부하는 것. 그래도, 그곳에, 그렇게, 있어주는 것. 다시 고개를 바로 하고 지독함을 대신할 새로운 수식을 찾아볼 생각이다. 우리 사랑의 역사는 지독함이 빠져나간 뒤에도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