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배우 박중훈, 임권택 감독, 배우 안성기, 김홍준 감독.
한국영화사에서 거장이라는 수식이 식상하다 싶을 만큼 당연한 이들. 바로 감독 임권택과 배우 안성기다.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 이래 102편의 영화를 찍은 임권택 감독과 <황혼열차>(1957)로 연기를 시작해 한국인의 얼굴로 자리매김한 배우 안성기는 국민감독, 국민배우라는 수식에 갇히지 않은 채 여전히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젊은’ 영화인이다. CGV아트하우스의 ‘한국영화인 헌정프로젝트’는 CGV아트하우스 상영관 두곳 CGV서면, CGV압구정을 각각 임권택관, 안성기관으로 새롭게 단장해, 두 영화인에게 ‘존경’의 헌사를 바치는 기획이다. 지난 3월22일 헌정관 개관을 기념해 <씨네21> 역시 이 자리를 축하하는 의미로 26인의 영화인에게 <씨네21> 21주년 특집호 커버 촬영을 요청했다. 더불어 임권택, 안성기의 영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 김홍준 감독(현 충무로뮤지컬영화제 예술감독, 임권택 감독의 조연출을 거쳤다)과 배우 박중훈을 초청해 이 뜻깊은 자리에 대한 의미를 짚어볼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한국영화사에도, <씨네21>의 순간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영화인들과 가진 의미 있는 이 시간을 지면에 소개한다.
박중훈_헌정관 오픈 기념으로 임권택 감독님과 안성기 선배의 대표작이 소개되는데, 그중 네 작품(<칠수와 만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투캅스> <라디오 스타>)이 함께한 작품이더라. 내 대표작을 꼽으면 그 네편이 다 들어간다. 영화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작품을 함께한 거다. 영화를 40편 정도 했는데, 임권택 감독님과는 늘 인연이 안 돼 <달빛 길어올리기>(2010) 한편을 한 게 참 아쉽다.
임권택_그전부터 늘 같이하고 싶었는데, 스케줄이 안 맞았다. <태백산맥>(1994)에서도 한번 요청했다가 안 맞았고, <장군의 아들>(1990) 때도 그랬고.
박중훈_<장군의 아들>은 꼭 하고 싶었는데 공개 오디션을 하셨다. <씨받이>(1986) 때는 출연을 안 시켜주시기에 감독님께 “저 씨돌이라도 하면 안 될까요” 하면서 졸랐던 기억이 난다. (웃음) 감독님이 좀 멀게 느껴질 수 있는데 오히려 나에겐 함께한 감독님 중 제일 편안한 감독님이셨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주셔서 “감독님하고 친구 같아요” 이런 말씀을 드리기도 했다.
임권택_내가 박중훈씨와 같이 일해보고 싶었던 작품은 <태백산맥>이었다. 박중훈이라는 연기자에게서 끌어내서 해보고 싶은 그런 것들이 있었다. <달빛 길어올리기>의 모습은 좋아서 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담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훨씬 많은 매력이 있는데 그 매력을 내가 하나도 못 담아내면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박중훈_감독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대표작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웃음)
안성기_내 출연작 중 배창호 감독님 작품과 더불어 임권택 감독님 작품이 가장 많다. 감독님은 항상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신뢰를 해주셔서 믿음이 가는 연출자다. <화장>(2014)은 감독님이나 나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하느라 감독님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을 거다.
임권택_기왕의 해나가는 과정에서 변화가 감지될 뿐이지 만들 때는 그 변화를 점검할 여유가 없다. 현장에서는 그런 여유가 없다. 모든 것이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가고 있기 때문에 늘 자신한테 턱걸이하고 사는 거다. 이 현장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냉철하게 분석해서 현장과 마주친다기보다는 내 흥 안에서 흥을 찍다가 끝나는 거다. 그런데 안성기라는 배우는 내가 100여편이라는 작업을 해오면서 가장 안심하고 영화를 같이할 수 있는 배우다. 그런 배우가 흔치 않다.
삶과 영화에 대한 태도가 닮았다
김홍준_나는 <개벽>(1991) 연출부 막내로 감독님과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의자 나르고 소품 챙기고 그런 일을 했고, 그러다 <장군의 아들2>(1991), <장군의 아들3>(1992)에 참여하고 <서편제>(1993) 조감독을 하면서 감독님을 옆에서 지켜보게 됐다. 감독님 연출부 생활을 하면서 신기했던 게 하나 있다. 영화를 시작하면 평생 이 영화를 찍어도 안 끝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감독님은 영화를 할리우드식으로 준비하고 가는 게 아니라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 덜 중요한 것에서 더 중요한 것, 어떻게 찍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에서부터 크게 달라지는 것 순서로 진행한다. 그 순서에 맞추다 보면 점점 빠져들게 되고, 그러다보면 더이상 이게 남의 영화가 아닌 온전히 내 영화가, 우리 영화가 돼버린다.
안성기_감독님 작품은 콘티가 없으니 막막함이 크다. 군대에 갔는데 영원히 군대에 있을 것 같은, 분명 제대 날짜가 공지됐는데 제대를 못할 것 같은 그런 기분과 비슷하다. (일동 웃음)
임권택_나도 힘들다. 그렇게밖에 갈 수 없는 내가. (웃음)
김홍준_맞다. 현장에서 감독님이 제일 힘들어하셨다.
임권택_<장군의 아들> <개벽> <서편제>를 거치면서 짧은 시간 안에 김홍준 감독이 여러 편을 나와 함께했다. <서편제>를 하면서 보니 내가 판소리에 관해 너무 아는 것 없이 시작했더라. 그래서 걱정했는데, 김홍준 감독이 내 뒤에서 조감독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주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감독이 해내야 할 것까지도 모두 잘해내더라. 어려운 소재를 아주 쉽게 찍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건 김홍준이라는 조감독이 치밀하게 해준 덕택이었다.
김홍준_감독님이 워낙 작품을 많이 찍으셔서 3년 정도 연출부 생활에 4편의 작업을 했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 <서편제> 때 감독님이 조감독 제안을 하셨는데, 내 딴엔 기량도 안 되고 해서 “다른 분을 영입하면 어떨까요” 했는데, 감독님이 크게 꾸짖으시면서 할 수 있다고 하셨다. 거역할 수 없어서 시작한 거다. (웃음) 경험 많은 다른 조감독들에 비해 내가 떨어지니 감독님께 도움 될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 판소리 관련해서는 보좌를 해야겠다 생각한 거다. 감독님이 보시는 책 다 따라 읽고 판소리 듣고, 마치 경쟁하듯 매달렸다. 감독님이 아시는 그 이상을 알아야 내가 감독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때도 내가 지시를 받는 조감독이라기보다 내 작품처럼 생각하고, 의견이 다르면 대들기도 하고 그랬는데, 감독님은 연출부 막내나 보조출연자나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신다. 그래서 참여하는 동안엔 이 영화가 한국영화 최고의 걸작이 될 것 같고, 내가 굉장한 영화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항상 결과가 좋을 수는 없지만 그런 믿음이 스탭들에게 공유되는 것이, 감독님이 삶이나 영화에 대해 가지는 태도 같다.
안성기_감독님 작업은 늘 같이하는 기분이 든다. <만다라>(1981) 때는 지산 스님으로 나오는 전무송 선배하고 함께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감독님도 그렇고 정일성 촬영감독님도 그렇고 버스 한대로 다니다가, 여기가 좋다 싶으면 내려서 찍고 그랬다. <서편제> 때는 눈이 한번 제대로 와야 지산 스님이 눈에 파묻히는 장면을 찍는데, 때맞춰 폭설이 내렸다. 감독님 작품은 늘 뭔가 이렇게 도와주고 있다.
김홍준_로케이션 이야기라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감독님은 고생을 사서 하신다. 워낙 많은 작품을 촬영하시니 수많은 로케이션 데이터가 다 머릿속에 들어 있을 텐데 한번 찍은 데는 절대 안 가시고, 자꾸 지우신다. <서편제> 할 때 정말 어머어마하게 헌팅을 했다. 영화 시작할 때 태흥영화사에서 봉고차를 한대 뽑아줬는데 촬영 끝날 때 10만km를 뛰었더라. 영광에서 촬영할 때 서울에서 벽제 세트 짓고 있으면 정비하는 동안 벽제 가서 점검하고 다시 영광에 오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하셨다. 같이 다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체력전인 거다. 그런 일정에도 감독님은 아침 9시에 집합이면 더 일찍 새벽 6시에 세트장에 나와 계신다. 내가 감독님보다 먼저 간 게 딱 한번이다. 오기로 감독님보다 먼저 가자 해서 밤을 새우고 새벽 5시30분에 가서 그렇게 됐다. (웃음)
박중훈_두분이 공통점이 많다. 감독님 서재에 가면 얼마나 고민하고 노력하는 분인지가 보인다. 안성기 선배도 성실하기로 워낙 유명한 분이고. 정지영 감독님이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에서 조감독할 때, 진짜 탱크가 등장하고 무전기도 원활하지 않은데 감독님이 나서서 위험천만한 가운데 지휘를 다 하셨다더라. <달빛 길어올리기> 찍을 때도 현장에서 가장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감독님이셨다. 또 두분 다 직관이 뛰어나다. 임권택 감독님과 같이 작업한 친구들이 세트에서 불 끄면 감독님 눈만 고양이처럼 빛난다고 하더라. 알파고가 나오더라도 감독님을 이길 수 있을까 싶다. (웃음)
임권택_너무들 칭찬을 하시는데 터무니없는 소리다. 거장이라는 말도 자꾸 하는데 나는 거장이 아니라고 소리칠 수도 없다. 그런 것이 따라붙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고. 나를 좀 살려주려면 그런 소리가 없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도 그 소리를 들으면 소화가 안 된다.
안성기_그런 부분은 <씨네21>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 90년대 초에 북한은 인민배우라는 호칭이 있는데, 우리나라도 뭔가 수식하고 싶었던지 나를 ‘국민배우’라고 쓴 거다. 그때부터 ‘국민’이라는 수식이 들어갔는데 참…. (웃음) 물론 작품을 할 때는 ‘국민’이라는 말에 억눌려 작품을 선택하거나 그 말 때문에 하는 작품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박중훈_그럼 안성기 선배도 그렇고, 앞으로 ‘근근이 이어온 감독 임권택’ 이렇게 불러드리면 어떻겠나.
임권택_사실은 근근이가 맞는데. 그것도 듣기엔 별로 안 좋네. (일동 웃음)
안성기_나는 ‘배우 안성기’ 그거 하나면 족하다. (웃음)
만들었으면 책임감을 가지고 지켜주길
박중훈_나는 우리 영화계에서 두분이 거장 임권택, 국민배우 안성기라고 불리는 게 좋다. 내가 영화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영화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았다. 나보다 앞 세대인 두분은 오죽했을까. 본인들은 이런 호칭이 쑥스러울지 몰라도 덕분에 영화인들의 전체 위상이 올라간 거다.
김홍준_딱 두 단어로 정의하면 롤모델이다. 임권택 감독님도 물론이고 안성기 배우는 배우로서 자기 입장을 밝히고 현안이 있을 때 당당하게 나선다. 한국영화계에 몸담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한국영화 위기설’이라는 거였다.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 한국영화계 다양성 확보 문제, 영화제 관련 문제, 산업적인 지점의 문제 등등이 있었다. 늘 사건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럴 때마다 앞서서 목소리를 낼 사람이 필요했다. 두분은 연기자라는, 예술가라는 역할로도 평가받을 분들이지만 한국영화라는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주어진 역할을 해오셨다. 영화계 전체의 흐름,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제2의 임권택, 제2의 안성기가 나와야 한다.
박중훈_나는 그래서 두분을 이정표라고 생각한다. 두분이 없으면 이 험한 길에서 운전을 할 수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안성기 선배가 없었으면 사고가 났을 것 같다. 내가 시속 180, 200km로 달리는 스포츠카라면 안성기 선배는 80km로 달리는 트럭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사고 안 치고 여기까지 온 거다. (웃음)
임권택_그건 나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웃음) 내가 이번에 CGV에 감사를 하고 싶은 게 이 회사가 천만 관객을 어떻게든 만들어보려고 했던 회사 아닌가. 언제까지 저 큰 회사가 저렇게 돈만 쳐다보고 갈 것인가 하고 굉장히 불편했었다. 내 이름이나 안성기씨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다른 어떤 영화인의 이름을 붙였다고 하더라도 감사했을 것이다.
박중훈_저는 두분의 만수무강을 기리며 120번째 영화에 출연하기로 약속하고 싶다. 감독님 서른편만 더 하시고, 안성기 선배와도 5번째 영화를 하고 싶다. 나 역시 헌정관에 대해 감사한다. 다만 한가지 부탁은 핸드프린팅이나 헌정행사다 많이 다녀봤는데 할 때만 요란하고 곧 없어지더라. 만들었으면 책임감을 가지고 지켜줬으면 좋겠다.
안성기_독립영화쪽을 위해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는지 지켜보려고 한다. 이 상영관이 젊은 영화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뿌리로서의 역할을 잘해갔으면 좋겠다. 나도 책임지고 참여하려고 한다.
김홍준_이 극장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는 최종적으로는 관객의 힘이 아닐까 싶다. 관객이 임권택•안성기관을 계속 찾는다면 극장주도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계속 운영할 거다. 안성기 1관에 이어 2관, 3관까지 생길 수 있다. 수익금 일부를 독립영화에 기부한다거나, 한국 고전영화를 보여주는 상영관으로 만든다거나 하는 운영 프로그램도 굉장히 중요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토대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안성기_무엇보다 감독님과 최근까지도 같이 해왔다는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감독님은 영원한 현역이다. 나는 나대로 배우의 정년을 확장해가는 작업을 열심히 할 테니 감독님도 작품을 계속 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