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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극장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쓴 4박5일 영화의 일기

10/05

11:00

여행 첫날은 미신주의자가 된다. 온갖 사소한 일을 ‘조짐’으로 받아들인다. 출발은 덜컹거렸다. 객차 짐칸에는 내 슈트케이스를 둘 자리가 없었고 새 신발의 밑창은 너무 딱딱했다. 기차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리는 동안 <보이후드>를 다시 보면 제격일 것 같아 챙겨왔으나 KTX가 영화보다 15분 먼저 종착역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했다. 퍼트리샤 아퀘트가 “난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단다”라고 흐느끼는데 영화를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나는 매우 호사스런 처지다. 제일 중요한 업무가 아홉명의 관객과 더불어 내가 선택한 여섯편의 영화를 관람하는 ‘시네마 투게더’ 프로그램이니 미안스러울 지경이다. 함께 관람할 영화를 고르고 보니 거장감독 작품 3편과 데뷔작 2편, 그리고 노장과 신인이 공동 연출한 작품 하나다. 프로그램의 첫 영화는 내일 오후 1시 해운대에서 상영되는 아이슬란드 화가 다큐멘터리 <지평선의 화가 게오르그 구드나손>. 9인의 시네마 투게더 멤버와는 상영 직전 상견례를 한다. 오늘 할 일이라고는 짐을 풀고 마음을 풀어놓는 것이 전부다. 그래도 오전부터 부지런을 떤 까닭은 부산 가는 김에 영화의 전당 자료실에 소장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2011년작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This is Not a Film)를 보겠다는 포부 때문이었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는, 이란 정권을 비판해 국가안보를 위협했다는 죄목으로 가택연금당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집 안에서 찍어낸, ‘영화를 만들 수 없음’에 관한 영화다. 극중에서 감독은 미처 제작하지 못한 시나리오를 읽는가 하면 위문 온 동료와 창밖 풍경을 연신 카메라에 담는다고 한다. 그때까지 들어본 중 가장 솔깃하고 절절한 ‘하이 컨셉’이었다. 이 영화는 당시 검색을 피해 케이크 안에 파묻은 USB로 칸국제영화제에 밀수됐다. 그해 부산영화제 상영을 놓친 이후 어디서도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를 보지 못한 나는, 자파르 파나히의 신작 <택시>가 부산영화제 상영 후 곧 개봉한다는 소식에 더 게으름을 피울 수 없겠다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지 뭐. 모처럼 진취적 기상을 발휘해 찾아간 자료실은 영화제 기간 중 프레스 배지 데스크로 홀딱 개조돼 있었다. 배지를 발급받고 구글 맵으로 자료실을 검색했는데 도통 뜨지 않았던 까닭은 내가 바로 거기 있었기 때문이었다!

16:00

3D 독립영화 <물고기>를 내놓았던 박홍민 감독의 신작 <혼자>를 비디오 시사실에서 봤다. 끔찍한 폭행사건을 길 건너에서 카메라로 목격한 사진작가가 악몽 속 악몽을 반복하는 나선형 구조를 취한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주인공을 사로잡고 있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무명 예술가로서 현재의 좌절을 토로하고 있다. <혼자>를 초현실적 미로 체험으로 만드는 중요한 조건은, 비좁은 골목과 층계로 연결된 서민 주택 밀집지구의 로케이션이다. 시작도 끝도, 위도 아래도 없는 M. C. 에셔의 판화를 현실화한 듯한 <혼자>의 공간은 방향과 출구를 잃어버린 인물의 머릿속과 일치한다. <혼자>의 테마와 구조는 올해 초 개봉한 이광국 감독의 <꿈보다 해몽>과 가까운 곳에 있다. 그러나 <혼자>는 한층 어둡고 폐쇄적이다. <꿈보다 해몽>의 고독이 곁에 있는 타인의 고독에 손을 내민다면 <혼자>는 자아의 바닥으로 계속 수렴한다. <꿈보다 해몽>이 춥지만 햇살이 내리는 낮이라면 <혼자>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영원한 밤과 같다. 전작 <물고기>의 영어 제목이 <Fish>였으니 <혼자>의 영어 제목은 <Selfish>가 어떨까 엉뚱한 생각을 했다.

18:00

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A와 만났다. 2007년 제1회 시네마 디지털 서울에서 처음 명함을 교환한 이후 1년에 한번쯤 영화제 어딘가에서 만나 짧은 수다를 나눈다. 미팅 포인트는 예외 없이 기자와 프로그래머를 위한 비디오 시사실이다. 모니터로 영화를 보고 있는 그의 어깨를 내가, 아니면 그가 내 어깨를 건드리며 소리죽여 “하이!” 인사하는 순간 또 한해가 흘렀음을 실감한다. 카페 대신 광장에 마련된 야외 바에 자리잡았다. 영화발전후원금 3천원을 내면 맥주 또는 와인을 무려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다. 이건 혹시 모두를 잔뜩 취하게 해서, 영화인들이 예술적으로 사업적으로 과감한 결단을 부산에서 내리도록 부추기는 영화제의 책략? 즐겁고 두서없는 영화 잡담이 시작됐다. 인도의 신작들에 대한 실망, 한국영화들이 영어 제목을 기존의 고전에서 따오는 것은 나쁜 아이디어라는 공감, <베테랑>을 무척 재미있게 보았는데 결말은 보수적으로 해석했다는 그의 감상과 그에 대한 내국인 기자로서 나의 오지랖 보충 설명이 오갔다. 화제는 프로그래머와 영화 기자가 하는 업무의 차이로 넘어갔다. A는 본인이 일하는 영화제에 초청한 적 있는 남미 감독의 신작이 완성되길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 경우도 그렇지만 초벌 편집 단계에서 조언을 요청받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편집에 개입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솔직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이 관건이다. 나는 A가 속한 영화제가 자국영화 프로모션을 최소화하고 세계독립영화의 허브 기능에 집중하는 모습이 늘 부러웠다. A가 눈을 찡긋했다. “오, 그걸 지키려고 꽤나 싸웠죠!” 세계 어디서나 좋은 영화제의 항상성은 물밑의 안간힘으로 지속되는 것이다. 두잔째 맥주가 바닥을 보일 무렵 우리는 한때 훌륭했던 영화 작가가 더 이상 세계를 주시하기를 멈췄을 때 생기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이번 영화제에서도 숱하게 마주칠 롱테이크로 주제가 넘어갔다. “사람들은 길게 찍기를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착각이죠. 대부분은 흉내에 그치고 관객도 느끼죠. 소수의 재능 있는 감독만이 관객을 숏의 리듬에 동화시켜, 다른 시간의 차원으로 옮겨 놓을 수 있어요.” 맞다. 하지만 왜 어떤 숏은 너무 길고 어떤 테이크의 길이는 정당한지, 어디서부터 하나의 숏이 아름답기를 멈추고 억압하기 시작하는지 우리는 어떻게 말과 글로 독자/관객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앞에 두고, A와 나는 잠깐 말을 멈췄다. 어느새 싸늘해진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데 야외상영관의 화려한 조명이 하늘을 갈랐다.

<지평선의 화가 게오르그 구드나손>

10/06

12:30

영화제에서 개설한 채팅방에서 나눈 인사가 전부였던 시네마 투게더 조원들과 드디어 대면했다. 이 프로그램 경험이 있는 참가자도 있지만, 대부분 나만큼이나 없는 용기를 그러모아 영화의 친화력만 믿고 생면부지의 타인들과 어울리기로 결심한 수줍은 관객이다. 개막부터 체류한 멤버가 있는가 하면, ‘비전’ 부문에 집중해 신작 한국영화를 완전정복 중인 조원도 있어 도리어 내가 추천과 조언을 받을 형편이다. 그리고 우리의 첫 영화가 시작되었다. <지평선의 화가 게오르그 구드나손>(Horizon)은 2012년 타계한 아이슬란드 풍경 화가를 기리는 영화다. <씨네 21> 창간 무렵 <자연의 아이들>이라는 영화가 개봉된 기억이 있는 프리드릭 토르 프리드릭손 감독이 신예 베르구르 번부르크와 공동연출했다. 다큐멘터리의 형식은 관습적이다. 생전의 화가가 본인의 방법론을 설명한 영상과 그를 추앙하는 비평가와 친구들의 인터뷰를 종합했다. 인터뷰이 가운데에는 구드나손의 미국 전시와 출판을 주도한 배우 비고 모르텐슨도 있다. 하지만 찬사하고 규정하는 전문가들의 평보다는, 화실에서 캔버스 하나하나를 들춰 보이며 일상의 단어로 본인이 체감하는 작업 절차를 묘사하는 구드나손의 말들이 유용한 통찰을 준다. 이 천재는 창작 과정을 탈신비화한다고 해서 아티스트로서 잃을 게 없다고 믿는다. 게다가 상세한 설명 후에도 신비는 여전히 거기 있다. 예술가 다큐멘터리가 취할 수 있는 노선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독창적 예술은 그 자체로 충분히 미스터리이기에 상식적이고 평이한 접근이 주는 유익도 상당함을 새삼 절감한다. 한편 올해 영화제 뉴커런츠상 후보작인 정성일 감독의 왕빙 감독에 대한 다큐멘터리 <천당의 밤과 안개>처럼 대상 예술가의 태도와 메소드를 온전히 자신의 형식으로 받아안는 야심적인 사례도 있다.

지평선은 분명 눈에 보이는 풍경이지만 실존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의 끝이기에 관념이기도 하다. 구드나손의 회화는 외양상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낭만적 풍경화나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로스코의 그것과 달리 구드나손의 그림은 구상화이며, 신의 내려다보는 눈으로 그려진 듯한 프리드리히 풍경화의 숭고미와는 떨어져 있다. 구드나손은 “자신이 경작할 밭을 돌아보는 농부의 눈”을 견지한다. <프로메테우스> <인터스텔라>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로케이션으로 선사시대의 대지와 초월적 공간을 ‘연기’했던 아이슬란드는 물론 스스로 이미 신령스럽다. 분명 평평해 보이는 땅 위를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은 다른 중력장을 보는 듯하다. 같은 나라 출신 밴드 시규어 로스의 음악처럼, 구드나손의 그림은 비약 없이, 착실한 붓질만으로 아이슬란드의 영적 기운을 포착한다. 캔버스의 피부를 연신 더듬는 이 영화가 필름 아닌 디지털로 촬영된 점이 아쉬웠다. 평생 풍경을 그린 이 화가는 놀랍게도 “내 작업은 결국 시간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관찰하고 스케치하고 화실로 돌아와 한번 붓을 긋고 물러서서 한참을 바라보며 다음의 올바른 터치를 찾아내기까지가 모두 시간이고, 하늘과 산을 그리는 동안 마음속에 일어나는 회상과 아직 착수하지 않은 작품에 대한 상상 또한 내포된 시간이다.

“작업 진도가 나아가지 않을 때는 그림이 출구를 못 찾았다기보다 내가 끝낼 준비가 안 된 것이다. 그럴 때는 잠시 화실을 떠나 있기도 한다. 그림이 나보다 앞서갈 때도 있다. 그때도 따라잡을 시간이 필요하다. 작업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은, 다른 문이 내게 열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예술가이건 아니건 구드나손의 이 말에서 위안을 얻을 수많은 사람들을 그려보았다. 동시에 다음 영화 <산하고인>의 지아장커 감독이 월터 살레스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을 떠올렸다. “영화가 문제없이 진행되면 불안하다. 습관적으로 찍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를 의심한다.”

16:00

<스틸 라이프>(2006) 이후 지아장커는 급변하는 중국 역사를 영화로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숨가쁘게 완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스틸 라이프> 후반작업 중 감독은 부친을 여의었다. 이 점이 관계있는지는 물론 전혀 알 수 없다). 언급한 월터 살레스 감독의 <지아장커, 펜양에서 온 사나이>에서 그는 삶의 터전과 네트워크가 폭력적으로 철거되는 중국의 현실 앞에서 영화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기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향을 떠난 지아장커의 영화는 <24시티> <상해전기> 그리고 중국 전역의 징후적 사건들을 엮어낸 <천주정>을 지나 <산하고인>에서는 2025년의 미래까지 시야에 포괄한다. 마을 성벽 너머를 동경하던 <플랫폼>의 젊은이들이 원했던 세계가, 바람직한 미래가 정말 이것이냐고 되묻는 형국이다. 1999년, 2014년, 2025년의 3부를 거치며 등장인물의 생활 반경이 넓어짐에 따라 스크린의 화면비율 역시 1.37:1에서 1.85:1로 다시 2.35:1로 변한다. 1부에서 밀레니엄을 맞아 광장에 빽빽이 밀려든 군중숏은 깊은 감흥을 자아낸다. 희망도 낙망도 아닌 신열, 진원지를 가릴 수 없는 힘에 밀려 어깨를 붙이고 이리저리 밀려다니고 있는 세기말 인민들의 얼굴은 역사의 이미지 자체다. 또한 타오(자오타오)가 중심에 있는 회한에 찬 삼각관계를 따라가는 <산하고인>의 1, 2부는 테니슨의 시 <이노크 아든>이나 더글러스 서크의 고전 멜로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애절함으로 손수건을 적신다. 그러나 타오의 아들이 중심에 선 미래시제의 3부에 이르러 영화는 급격히 공허해진다. 영화를 한번 본 관객의 섣부른 단정이지만 현재의 위기감에서 비롯된 현기증을 상투적으로 극화한 것처럼 보인다. 은유는 너무 직접적이고 세 주인공 중 벼락부자 남자 캐릭터는 특히 얄팍하다. 지아장커가 드라마틱한 사건을 중심에 둔 픽션을 계속 만든다면 신흥 지배계급을 얼마나 생생하게 형상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은 예감도 든다. 어쩌면 지아장커가 예언을 찍었다는 사실 자체가 깊이 생각해야 할 심대한 변화가 아닐까? 큰 숙제를 받은 기분이 됐다. 인터뷰에 따르면 지아장커의 차기작은 무협이라고 한다.

20:00

러슬로 네메시 감독의 <사울의 아들>(Son of Saul)은 나치의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임박한 처형을 앞두고 가스실에서 시한부 부역자로 일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의 눈길이 가스실의 즐비한 시신 가운데 한 소년의 몸에 머물면서 드라마가 시작된다. 시네마 투게더의 12개조 중 세팀이나 좌석을 신청했다고 하니 한국 영화인들에게도(‘멘토’의 다수가 직접 영화를 만드는 분들이다) 관심사인 영화임에 분명하다. 홀로코스트는 어떻게 그려도 영화적 윤리에 대한 질문 앞에 무결하기 어려운 뜨거운 제재다. 비극의 잔해와 증언만으로 연출된 클로드 란츠만의 장대한 <쇼아> 정도가 덫에 걸리지 않은 예로 기억된다. 그러니 무엇보다 첫 장편으로, 말하기 불가능한 것을 말하고 보여줄 수 없는 것을- 그것도 스릴러 장르의 설계 안에서- 찍는 도전을 감행한 감독의 결기가 놀라웠고, 다음은 기술적인 완성도에 감탄했다. <사울의 아들>은 부조리하고 이해 불가한 역사의 포로가 된 인간의 상황을, 개인이 택한 부조리한 대응 방식을 거울로 삼아 비춰 보인다. 그 거울은 작고 흐리지만 이 사태를 볼 수 있는 방도는 이것뿐이라고 감독은 판단한다.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에 차마 포커스를 맞출 수 없기에, 대신 모든 사태를 고통으로 풍화된 무표정으로 반영하는 주인공 사울(게자 뢰릭)의 마스크는 잊을 수 없는 영화 속 얼굴의 갤러리에 등재될 것이다.

22:30

나란히 앉아 세편의 영화에 웃고 울고 두들겨 맞고 나니, 별 대화 없이도 아는 사이가 돼버린 기분으로 우리 조의 멤버들과 ‘시네마 투게더의 밤’ 파티에 참석했다. 올해의 한국영화에 대한 대화의 끝자락이었던가? <명량> 이야기가 나왔다. 해남이 고향이라는 B에게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울돌목이 정말 영화가 보여주듯 언덕에 올라서면 전투상황이 훤히 보이는 지형인가요?” 대체로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식의 대답을 해준 B는, 어업에 종사하는 부친께서 해마다 명량해전 재연 행사에 일본군 역할로 동원되는데 무척 귀찮아하신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배에 기름도 자비로 넣어야 하고, 열두척으로 대군을 격퇴한 대첩이니 자연 일본군 대역이 훨씬 많이 필요해서 매번 적군 역인데 좀 싸우다가 우르르 패퇴하다보니 그닥 흥도 나지 않는단다. “이제는 양식업을 하셔서 안 하시려나?” 강강술래 명문인 우수영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지에서 대학생활 중인 B의 덤덤한 한마디에 우리 팀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웃었다. 어쨌거나 후손들이 우리를 기억할까 묻던 <명량> 속 수군 병사의 걱정은 기우였다.

<산하고인>

10/07

14:00

오전에 <자객 섭은낭>을 보았다. 홀려서 보는 동안 색즉시공, 일필휘지 같은 말들이 나비처럼 머릿속을 날아다녔다. 손가락으로 그 날개를 집고 싶었지만 잡히지 않았고 나중에는 잡고 싶은 마음이 스러졌다. 이 영화는 허우샤오시엔 감독 회고전과 더불어 머지않아 개봉된다는 소식이 있으니 시간을 들여 나중에 적기로 한다. 영화를 보고 중국 식당에 시네마 투게더 팀과 둘러앉았는데 모두 비슷한 심정인지 영화에 관해 앞다투어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의 사극영화에 빈칸이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현대 관객에게 즉각 분명한 논리와 정서로 과거의 사건을 설명하는 식 말고는 재미있는 시대극을 만들 수 없을까? 중국인들은 과연 이 영화를 예술적 허장성세로만 볼까? 우리에게도 <춘향뎐>이 있었지만, 과거를 다루는 영화의 특권을 살려 당대의 심성과 시공의 감각으로, 그 시대의 예술 양식을 끌어들여, 사라진 미감을 살려낼 수는 없을까?

점심식사 후 비는 시간. 비디오 룸에서 영화를 보려다가 이쯤에서 정신을 수습해 지금까지 본 영화들을 다시 생각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비프힐 1층 라운지 카페에 앉아 있는데, 한 어른이 다가와 맞은편 의자에 끙 하고 앉았다. 유리벽 너머 길가에서 김밥을 팔고 계시던 아주머니다. 오늘 손님 많이 오는 날이냐 내게 물어보시더니 카페 스탭들이 만드는 샌드위치 개수를 슥 헤아려 보시고는 많이 오나보다 끄덕이신다. 영화제 매년 오시나요? 그럼, 수영만에서 야외 상영할 때부터 팔았는데. 김밥만 40년을 해서 아주 맛있어. 여기도 매일 사먹는 사람들 있어. 그러다 손님 없으면 여기 들어와 설렁설렁 돌아다니며 쉬지. 초록색 플라스틱 궤짝을 뒤집어 만든 의자로 돌아간 아주머니는 그늘을 따라 해시계처럼 자리를 움직이셨다. 나도 맛보고 싶었지만 극장에 김밥을 갖고 들어가긴 어려운 데다 다음 영화에는 시체와 거식증이 나온다.

17:00

폴란드에서 온 <바디>는 육체를 대하는 세 가지 태도로 요약할 수 있는 영화다. 사고로 엄마와 아내를 잃은 부녀가 있다. 여자의 옷과 물건은 주인 잃은 방에 보존돼 있다. 엄마를 만질 수 없게 된 딸 올가는 몸을 부정하고 거식증으로 도피하지만 감식반 형사가 직업인 아버지는 육체에 무감동해지는 길을 택한다. 끔찍한 사체를 접한 직후에도 꾸역꾸역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살쪄간다. 아버지의 비만한 몸은 딸을 더욱 역겹게 한다. 올가의 거식증 치료사로서 부녀와 만나는 안나는 제3의 길을 택했다. 아이를 잃은 그녀는 아예 육체의 죽음은 무의미하다고 믿고 영매가 됐다. 이 세 사람이 갈등을 거쳐 어느 저녁 강령식을 위해 손을 잡고 둘러앉는다. 몇 시간 후 누군가 졸기 시작하고 누군가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인물들이 내내 사로잡혀 있던 절대적 고통이 불현 듯 객관화되는 순간이다. 소재에 긴장해 몸에 잔뜩 힘을 주고 보았더니 쓸쓸한 코미디였다.

20:00

<바디>를 한 극장에서 우연히 관람한 세명의 멤버들과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크리샤>의 상영관으로 달려갔다. 제목의 크리샤(크리샤 페어차일드)는 추수감사절을 맞아 소원했던 가족을 찾아와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났다고 증명하려고 애쓰는 중년 여성이다. 그녀의 노력은 간절한 나머지 위태롭고, 이모에게 입양된 친아들을 포함한 가족은 크리샤의 실수만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친절한 말 뒤의 빗장 질린 마음, 이미 너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감추는 요란한 포옹이 넘쳐난다. <영향 아래의 여자> <레이첼, 결혼하다>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등 유사한 소재의 영화가 많았지만 <크리샤>는 작명법대로 주인공에게 주의를 집중한다. 촬영, 편집, 음향, 음악 등 모든 기교가 과잉할 만큼 크리샤의 감정과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총동원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연출은 크리샤와 나머지 식구들을 미묘하게 분리하는 블로킹과 자세다. 신인감독 트레이 에드워드 슐츠는 중독자였던 아버지와 사촌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크리샤 역의 이모 등 본인의 가족을 캐스팅해 9일 동안 어머니 집에서 이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입국하자마자 예정에 없던 GV를 위해 상영관으로 달려온 감독은, 가족의 오랜 상처를 벌리는 작업이 어렵지 않았느냐는 관객의 질문에, 양친의 직업이 테라피스트였기에 문제는 감추지 말고 직면해야 한다는 태도를 가족이 공유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크리샤>는 심리 테라피와 문제를 공유하는 집단 치료가 널리 쓰이는 미국 문화가 실패하는 지점을 보여줄 때 흥미롭다. 무뚝뚝한 사회도 개인을 괴롭힐 테지만, <크리샤>는 사교적이고 상냥한 제스처가 보편화된 사회에서 진짜 문제를 가진 사람이 감출 수밖에 없는 갈증을 포착한다. “이번이 너의 기회였는데 망쳤어!”라는 크리샤 언니의 절규와 거기 누구보다 동의하고 좌절하는 크리샤의 모습도 만사를 기회와 성취 문제로 이해하는 미국 문화의 습성을 보여주는 듯해 흥미롭다.

<바디>

10/08

10:00

내일 아침 마지막 영화인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프랑코포니아>를 남겨두고 앞당겨 시네마 투게더 뒤풀이를 가졌다. 관람한 영화들을 이야기하던 멤버들은 한 영화 안에서 화면비율이 여러 차례 변하는 경향을 지적했다. “지금까지는 특정 비율의 프레임으로 영화가 시작하면 끝까지 화면의 테두리는 지켜진다는 고정 관념이 있었는데 이번에 본 영화들은 그렇지가 않네요.” 자비에 돌란의 <마미>가 화면비율 변화를 뮤직비디오적으로 구사해 눈길을 끌었고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액자 속 액자 구조를 그대로 화면비율에 대응시켰던 일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확실한 형식으로 표가 났지만 우리가 본 영화들은 딱히 원칙을 바로 파악할 수 없을 때도 많았어요.” 돌아보니 정말 그렇다. <산하고인> <자객 섭은낭>이 여러 비율을 썼고 <크리샤>는 1.85:1로 시작해 크리샤가 술에 취했을 때 2.35:1로 가로를 넓혔다가 결정적 사고로 그녀가 완전히 고립된 다음 1.33:1로 변했다. <산하고인>과 <자객 섭은낭>에서 가로가 짧은 화면비율을 택한 시퀀스의 미술적 효과는 상대적으로 뚜렷해 보인다. 넓은 땅을 가로가 긴 네모로만 담아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부동산 개발이 한창인 1999년이 배경인 <산하고인>의 1.37:1 화면은, 카메라 시점을 위쪽에 둠으로써 신축 중인 원경의 고층건물부터 개발 전인 근경의 모래강변까지를 첩첩이 잡아 다른 시대가 불균질하게 공존하는 풍경을 한 프레임에 담는다. <자객 섭은낭>의 그것은 심원법으로 그려져 자연의 높이나 크기보다 깊이를 드러내는 동양 풍경화의 구도로 작용하기도 한다. 디지털 촬영이 우세해지면서 화면비율의 변경은 그리 큰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의도된 화면 구도를 보호해주는 극장의 마스킹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이 많은 네모들을 잘 다룰 준비가 되어 있을까?

10/09

12:00

마지막 날의 행운. 가방을 끌고 숙소를 나서다가 <소셜포비아>의 홍석재 감독과 만나 차를 마셨다. 그의 영화적 관심사는 여전히 테크놀로지로 인한 커뮤니케이션과 사회•경제적 활동 양상의 변화다. “성장하며 보았던 훌륭한 고전 영화들의 드라마를 사랑하지만 지금 영화를 쓰고 만드는 감독으로서 실생활에서 그런 진실한 순간을 발견하기가 점점 어렵다고 느껴요.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가 점점 더 과거로 가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저는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이 휴대폰을 붙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거든요. (웃음)” 요컨대 홍석재 감독은 일정한 세월이 흐르면 낡은 영화가 될지언정 본인으로서는 당대문화를 기록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그 겸손 뒤에는 시대를 감식하려는 의욕이 있었다. 소재주의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소재는 영화의 수명과 관계없을 터다. 홍석재 감독이 이어 말했다. “월드 와이드 웹도 애초에 우주 탐사를 위해 개발된 기술의 부산물이었는데 이제는 지구를 지배하고 있잖아요. 사람들은 이제 프런티어를 포기하고 내부에 지어올린 우주에서 모든 걸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잠시 생각하던 그는 내게 되물었다.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논쟁과 다툼이 허상이라고만 생각하세요? 아니면 엄연히 중요한 리얼리티라고 보세요?” 나는 후자에 가까운 답을 했다. 그리고 <보이후드>에 관해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사이트 앤드 사운드>와 했던 인터뷰의 일부를 떠올려 홍 감독에게 이야기했다(마침 저녁에 부산 지역 청년들의 영화모임에서 <보이후드>를 이야기할 예정이어서 잘 기억하고 있었다). 링클레이터는 2002년부터 2013년까지 <보이후드>를 찍으면서 의식주의 유행이 더이상 문화적 연대를 드러내는 데에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가령 <보이후드>의 배경이 1966년부터 77년까지 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대신 지표가 된 것은 게임기와 스마트폰, 컴퓨터의 기종이었다. 링클레이터의 결론은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의 삶은 가상세계에 로그온되었고 그 비중은 커져왔다. 과거의 펑크족이나 운동가들처럼 서브컬처를 만들어 연대감을 표하고 저항하고 삶의 지향을 드러낼 필요는 사라졌다. 페이스북의 계정에 자기 세계를 지어놓고 ‘좋아요’를 받으면 그것으로 족하게 됐다. 그러므로 홍석재 감독이 주시하고 있는 영역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긴 불가능하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과 정치에 이미 실제 지분을 갖고 물리력으로 작용하는 세계를 없는 셈 치는 일이 될 테니까.

23:00

서울행 막차에 올랐다. 시네마 투게더 멤버 몇분이 건네준 편지를 꺼내 다시 읽고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잊혀지기 전에 메모했다. 곧 촬영할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C, 고3때 도서관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다 조짐도 없이 눈물이 터져 영화라는 것에 처음 놀랐다는 D, 직장 복귀를 준비하며 영화들로부터 격려받고 있는 E, <남영동1985>를 보고 저도 모르게 혼자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는 F, 영화가 이미 가라앉고 있는 배는 아닐까 회의하면서도 자기를 걸어보기로 한 G. 영화를 많이 좋아하고 여력이 있어서 참여한 분들이겠거니 짐작한 내 생각이 짧았다. 시네마 투게더의 멤버들은 삶이 여유로워서가 아니라 필사적으로 여유를 잃지 않기 위해, 생활에 휘둘리는 대신 생활의 주인으로 버티기 위해 부담과 고역을 감수한 분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열성스런 관객들이 영화를 보지 못하는 시간에 그들을 대신해 많은 영화를 보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부스스한 머리로 차창에 기대어 졸며 스스로에게 일렀다. 그러니까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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