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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여포로>로 검열 고초, 뇌출혈 딛고 다시 현장으로
2002-03-13

“인민군복 멋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갔어”

이만희 감독의 (1965)는 포로가 된 국군 간호 장교들을 호송하는 북괴군 장교가 주인공으로 등장했어. 구봉서가 북괴군 장교 역을 맡았는데, 감독의 요청에 따라 인민군복을 멋지게 만들어 입히고, 가죽으로 만든 군화까지 신기고 나니 그렇게 폼이 날 수가 없는 거야. 지금은 구봉서가 코미디언으로만 알려졌지만, 그 당시엔 얼굴이 곱상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폼나는 멜로에도 썩 잘 어울렸거든. 그래 이왕 하는 김에 위장망까지 쇠로 만들어 영화를 신나게 찍었지.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어. 상영을 위해 검열을 받는데 이 부분이 딱 걸린 거야. 왜 인민군복이 국군복보다 더 멋있게 나오느냐, 게다가 세무 신발이 웬 거냐, 위장망은 헝겁으로 대충 표현했어도 될 텐데 쇠망까지 동원했냐, 이런 식이었지. 하는 수 없이 나와 감독이 경찰에 붙잡혀 들어가 혼이 나고,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상영이 됐어. 내용이 잘렸는지는 알 수가 없지. 하도 경황이 없었으니까.

한복도 마찬가지지만, 군복은 시대별로 고증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전혀 다른 시대가 돼버리니까 신경이 많이 가. 일본군이야 일본서적이 종로바닥에 지천으로 널려 있었으니까 쉽게 구해다 볼 수 있었고, 인민군은 중앙정보부에서 참고를 하라고 견본을 하나씩 보내줬어. 계급장이나 훈장 등을 확인하려면 반공회관을 찾았지. 러시아군이나 중공군도 다 그런 식으로 알아내야 했어. 지금은 전쟁기념관이 번듯하게 세워져서 전쟁 관련 복식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만 그땐 정보부나 육군본부를 가야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

서적에 관련해서는 남편의 도움이 컸어. 그이가 항상 하는 말이 “사람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밥을 먹지 않는 것과 같다”였거든. 특히 옷하는 사람들은 천만 잡고 있기 일쑨데, 머리가 텅텅 비어서 어떻게 시대에 맞는 옷을 짓겠냐고 꾸중도 많았지. 그래서 문양, 색깔, 세계의 군복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구해다 줬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른바 ‘건빵 주머니’라 불리는 바지주머니가 생기고, 양쪽 가슴에도 총알주머니가 달렸어. 목 위까지 채우던 칼라에서 양옆으로 45도가량 벌어지는 칼라로 바뀌었고. 전후를 기점으로 군복에 많은 변화가 있었어. 서로 다른 나라의 군복을 200∼300벌씩 지어도 어디 가서 공수해 온다는 생각은 못했지. 그저 손으로 일일이 짓는 거 외엔 머리 쓸 줄 몰랐어. 물론 어디 가서 구해지는 물건도 아니었고.

68년 최인현 감독의 <방울 대감>을 끝내고, 신상옥 감독과 <내시>를 찍는데,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거야. 피곤이 잘 가시지 않고, 머리가 멍한 게 영 기분이 좋지 않았어. 하지만 타고난 근골만 믿고 병원 갈 생각은 안 했어. 결국 일이 터졌지. 크랭크인을 얼마 두지 않아 의상 만들 천을 고르는데 머리가 핑그르르 돌더니 그만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거야. 뇌출혈이었던 거야. 그로부터 40일을 꼬박 병원 신세를 졌어. 사실 그 기간은 거의 기억에 없어. 중환자 독방에 30일을 누워 있었으니. 게다가 수술의 후유증으로 정신이 나가서 횡설수설하고 사람도 몰라봤어. 의사들은 거의 기대를 하지 않았나봐. 나중에 퇴원을 하는데, 아무 약도 안 주는 거야. 내가 오히려 아무 약이나 조금 달라고 했지. 내가 결정적으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건 남편의 배려 덕분이야. 홀로 독방에 누워(그것도 돌아다니지 못하게 꽁꽁 묶인 채) 멍하니 횡설수설 하는 모습을 본 남편이, 그게 하도 측은해 보였는지 침대 두개 있는 방으로 옮겨 달래서 그 옆에 누워 나를 보살폈거든. 다른 방으로 옮기는 도중에 정신이 차차 돌아와서 사람을 알아보더래.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현장으로 돌아와선 바로 <내시>에 쓰일 금관조복 100벌을 만드는 데 착수했어. 주위에서 다들 말렸지만, 그게 빨리 낫는 길이라 생각했어. 좋아하는 일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가더라도 그게 낫다고 생각했어. 아무도 6년 이상 살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벌써 36년이 넘었으니, 세상만사 천운에 달린 거지.

74년에 이르러 김수용 감독이 김지미, 허장강 등을 고용해 대작 <토지>를 만드는 데 날 불렀어. 55년 문단에 진출한 박경리가 69년부터 쓰기 시작한 소설이 원작이었지. 19세기 말 경남 하동군의 만석지기 가문이 겪는 역사적 격동을 다루는 영화인지라, 의상만 해도 일본 군복, 농민옷, 양반 옷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었어. 특히 김지미는 극 중에서 어린 서희부터 나이 든 서희까지 고루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나이에 따른 신체변화와 시대 변화를 고려한 의상을 만들어야 했지. 결국 공을 들인 대가로 파나마영화제에서 당당히 의상상을 거머쥐었어.

구술 이해윤/ 1925년생·<단종애사> <마의 태자> <성춘향> <사의 찬미> <금홍아 금홍아> <서편제> <친구> 의상 제작 정리 심지현 simssisi@dreamx.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