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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들을 기억하리라, 이 영화들로 기억되리라 (3)
씨네21 취재팀 송경원 2014-12-30

<씨네21> 기자들과 필진이 2014년 최고의 영화와 영화인을 선정했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영화들만이 살아남는다

<보이후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2014 해외영화 베스트5

올해의 해외영화 1

<보이후드>

시간의 흐름을 필름에 새긴 <보이후드> 앞에 2014년 올해의 영화라는 수식어가 새겨졌다. 2위와 거의 2배에 가까운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지지다. 12년 동안 소년의 성장을 매년 15분씩 기록한 영화는 영화라는 매체가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의 끝자락에 서 있다. “시간을 담는다는 영화적 행위를 극한으로 밀고 가며 매체의 가능성을 재발견한 영화”(듀나), “영화가 진정 ‘시간의 예술’임을 보여주는 희귀하고도 숭고한 사례”(주성철) 등 한결같이 <보이후드>가 증명한 영화의 매체적 본질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굳이 영화사적 의미를 더하지 않더라도 이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감동이다. 어쩌면 “인생사 아무도 모르는데 영화를 12년이나 찍는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다”(이현경), “‘이게 아니라 뭔가 대단한 게 있을 줄 알았어’라던 패트리샤 아퀘트의 대사가 가슴에 와서 콕 박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그런 소소한 인생의 아름다운 시간을 너무 담담히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솔직한 평이 이 영화를 설명하는 데 더 적절한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선물처럼 주어진 이 아름다운 시간을 좀더 음미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성장과정이 이윽고 나의 이야기로 체험되는 <보이후드>는 비록 같은 화면, 같은 대사, 같은 상황 속에서도 모두 조금씩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열려 있다. “<보이후드>는 매 순간이 우리가 삶의 끝과 의미를 ‘모른다는 사실을 철저히 알아가는’ 과정”(김혜리)이기에 놀랄 만큼 개인적인 프로젝트임에도 놀랄 만큼 보편적인 감동을 안긴다.

올해의 해외영화 2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아트하우스 블록버스터.”(미국 영화산업지 <더 랩>(The Wrap))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수식어가 아니었나 싶다. 웨스 앤더슨의 전작을 통틀어 가장 많은 제작비(3100만달러)를 들여 완성된 이 작품은 대중(한국 관객 77만명)과 평단의 긍정적인 반응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어느 대부호의 살인사건에 휘말린 호텔 지배인과 로비보이의 모험담을 조명하는 이 영화는 “부르주아의 속물근성과 인간들의 잔혹한 역사가 웨스 앤더슨을 만나 스타일리시하고 유머러스하게 펼쳐지는”(김지미) 작품이다. “지나온 적 없는 어제의 세계들에 대한 근원적 노스탤지어”(이동진)를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내러티브도 한몫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를 주목하게 만드는 건 단순한 배경을 넘어서 하나의 인격을 가진 캐릭터처럼 보이는 프로덕션 디자인의 묘미다. “감독의 자기모방과 과도하게 팬시하게 보이는 장식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얄팍한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많이들 장식과 기교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듀나)

올해의 해외영화 3

<인사이드 르윈>

<인사이드 르윈>은 “교묘하고 부드러운, 홀려놓고 자취를 감추는. 고양이 같은 매혹”(김혜리)으로 관객을 그의 여정에 동참시키는 영화다. 기타를 멘 빈털터리 가수가 뉴욕과 시카고를 오가는 단출한 이야기, 그외 인상적인 등장인물이라고 해봐야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지만 영화가 전하는 감정 폭은 그 어떤 영화보다 풍성하다. “‘밥 딜런’이 되지 못했던 이들에 대한 코언의 연가”(장영엽)라는 평처럼 우연과 작은 실수들을 활용해 역동적인 희비극의 순간을 촘촘히 이어 붙인 코언 형제의 솜씨가 놀랍다. “뿌린 만큼 착실히, 그리고 탁월한 방식으로 거둔다. 작고 소소한 것들이 거대한 삶의 흐름을 이뤄가는 모양이 아름답고 신비하다.”(윤혜지) 1960년 미국 포크 가수 데이브 밴 롱크를 소재로 한 만큼 음악 또한 탁월하다. “<인사이드 르윈>은 르윈의 음악적 오디세이다. 그가 이런저런 노래들을 거쳐 어느덧 처음 그 자리 그 노래로 돌아올 때, 그것은 더이상 같은 자리 같은 노래가 아니다. 비로소 ‘나’의 노래에 충실할 수 있게 된 르윈의 목소리엔 전에 없던 힘이 실려 있다."(이후경) 그렇게 가난한 예술가의 영혼에 고인 우수는 맑은 음색에 실려 오래도록 우리의 마음을 다독인다.

올해의 해외영화 4

<아물도 머물지 않았다>

“아이러니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라.”(이현경) 이란 출신의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가 말하는 아이러니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가. “사랑은 모든 갈등을 유발시키는 원인이지만 결국 모든 인간이 기댈 수밖에 없는 위안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김지미)는 데 있다. 영화는 별거 후 이혼을 앞둔 남녀와 현재 그들 옆에 있는 새로운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물고 늘어진다. 이 작품에 쏟아지는 대부분의 찬사는 이처럼 복잡한 이야기의 실타래를 향해 있는데 이때의 복잡성은 단순히 미스터리적 긴장감을 불어넣으려는 장치가 아니다. 진실에 다가가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사려 깊은 영화적 태도다. 게다가 영화는 현재의 결과를 초래한 과거의 사건들을 묻고 있지만 과거 장면은 단 하나도 보여주지 않는다. 오직 현재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야기를 확장시켜나간다. “연출의 장점이 이야기의 강력한 장점들에 가려져 있다”(이지현)고 말할 만큼 형식적 고민도 깊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올해의 해외영화 5

<액트 오브 킬링>

“극영화보다 더욱 극적이며 놀라운, 현존하는 세계의 단면과 진실”(장영엽)을 담고 있는 영화. 지난해 영미권 평단의 뜨거운 찬사를 받았던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액트 오브 킬링>은 다큐멘터리의 힘을 보여주는 강렬한 수작이다. 1960년대 인도네시아에선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한다는 명분으로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해됐고, 학살의 주범이었던 당사자들은 지금까지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다. <액트 오브 킬링>은 집단학살을 조명하는 뭇 다큐멘터리들의 방식과 다르게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들의 심리와 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대한 평론가 듀나의 말에 주목할 만하다. “영화라는 매체, 다큐멘터리라는 매체를 고문기구처럼 흔드는 영화. 하지만 그것은 관객이 아니라 주인공을 향하고 있으며 놀랍게도 의미 있는 결과를 내고 있다.” 힘없는 자들은 처참하게 죽어가고 악한 자들이 끝끝내 살아남은 비정한 세계를 기록하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투박한 화장을 하고, 마치 극영화의 주연배우가 된 것마냥 ‘살인의 추억’을 재현하는 가해자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액트 오브 킬링>은 이처럼 다층적인 결을 지닌 질문들로 가득하다.

<인터스텔라>라는 관심작

해외영화 총평

올해 외국영화들의 경쟁은 유난히 치열했다. 전반적으로 다양한 영화들이 각자 고른 지지를 받은 가운데 근소한 차이로 순위가 나눠졌다. 다만 <보이후드>만은 압도적인 지지 아래 1위를 차지했고 박빙의 경쟁은 2위부터 펼쳐졌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탁월한 미장센과 화면으로 지지를 이끌어냈다. 3위 <인사이드 르윈>은 캐릭터와 음악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다. 4위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와 5위 <액트 오브 킬링>은 언급 횟수보다 1, 2위로 꼽은 강력한 지지자들 덕분에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전체적으로 개봉 시기와 관계없이 지지와 관심이 고르게 나뉜 것도 주목할 만하다.

6위를 차지한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언더 더 스킨>은 과소평가된 영화로 가장 많이 언급된 작품이다. 외계인의 시선으로 외로운 지구인의 삶을 관조하는 이 영화는 프랑스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2014년의 영화 3위에 꼽히기도 했다. “세계에 대한 예술의 대응. 익숙한 것들을 전혀 달리 보고 듣게 만든다”(이동진), “스칼렛 요한슨은 올해 들어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영향을 받은 세편의 SF영화에 출연했다. 그중 가장 재미있었고 괴상했던 영화”라는 평이다. 7위는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 돌아갔다. “사랑은 동성이든 이성이든 다 찬란하고 황홀하며, 유치찬란하고 치졸하다. 격정적인 운명의 순간부터 처연한 뒷모습까지, 스쳐지나가는 숨결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고집스런 카메라”(김지미)라는 평이 이 영화의 장점을 꼼꼼히 짚어준다. 8위는 마틴 스코시즈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다. 전체 순위 중 7위와 가장 근소한 차이로 8위가 됐다. “거장의 귀환, 이라는 표현도 조금 부족하다. 어쩌면 마틴 스코시즈의 영화인생 3막쯤이 시작되는 신호탄일지도”(김수), “마틴 스코시즈의 여전한 에너지가 그저 경이로웠다”(주성철)는 평에서 알 수 있듯 감독에 대한 강한 신뢰가 8위에 오른 주요한 근거다. 9위는 지아장커 감독의 <천주정>이다. “아시아영화들의 매혹을 한폭의 두루마리”(김혜리)에 담은 이 영화는 과감한 형식 가운데에도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려는 작가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10위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차지했다. “눈앞에 펼쳐진 우주. 놀란의 세계관을 우주의 이미지로 확장”(이화정), “이런저런 흠과 오류 바깥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저 자기만의 견고한 ‘월드’ 혹은 ‘세계’를 보여주는 몇 안 되는 감독”(주성철)이라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한편 올해의 과대평가된 영화로 가장 많이 꼽힌 작품 역시 <인터스텔라>다. “기초적인 물리학 지식과 허세작렬 대사 그리고 오컬트적 결말. 아무리 블랙홀 안은 아무도 모른다고 막 이래도 되나 싶다”(김지미)는 신랄한 의견부터 이야기의 극적 구성에 관한 지적까지 다방면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그 밖에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인사이드 르윈> <그녀> 등도 언급됐다. 과소평가된 영화로는 <언더 더 스킨>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고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은밀한 가족>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등 여러 작품들이 언급됐다. <인터스텔라>는 과소평가에서도 거론되어 관심작품임을 증명했다.

해외영화 10선

1 <보이후드> 2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3 <인사이드 르윈> 4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5 <액트 오브 킬링> 6 <언더 더 스킨> 7 <가장 따뜻한 색, 블루> 8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9 <천주정> 10 <인터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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