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고든 윌리스에게 물었다고 한다. 수많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든 윌리스의 대답은 늘 이러했다. “어떻게 찍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 그렇게 찍었는가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내가 찍은 장면을 두고 ‘리얼하다’고 하지만 그건 리얼한 게 아니다. 완벽히 계산해서 찍은 거다. 리얼하게 보일 뿐이다.” 홍경표, 김우형, 김태경, 박홍열 촬영감독이 꼽은 고든 윌리스의 명장면을 곱씹으며 그가 어떻게 그 장면을 찍었는지가 아니라 왜 그렇게 찍었는지를 되물어보자.
홍경표 촬영감독(<해무>(2014), <설국열차>(2013), <마더>(2009) 등)
<대부>(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1972) “<대부>의 오프닝 시퀀스. 카메라가 대부를 찾아온 장의사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장의사의 얼굴에서 서서히 줌아웃되면서 드러나는 대부 돈 콜레오네(말론 브랜도)의 실루엣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공간이 대부의 집무실이다. 보통 창이 있는 공간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활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든 윌리스는 로키 조명을 세팅해 공간을 전체적으로 어둡게 표현하고, 짙은 그림자와 극단적인 명암을 강조했다.”
<대부2>(감독 프랜시스 포드코폴라, 1974) “<대부>는 전 장면이 명장면이다. 그중에서도 <대부2>에서 젊은 비토(로버트 드니로)가 첫 살인을 저지르는 시퀀스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빈 아파트 복도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마을의 보스 돈 파누치를 살해한 뒤 유유히 건물 밖으로 나간 뒤 시장 거리를 걸어가는 그를 트래킹숏으로 담아낸다. 더욱 놀라운 건 그가 곧바로 시장 어딘가에 있는 가족에게 가서 어린 마이클을 안는다는 것이다. 보통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공범자를 만나지 않나. 가족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비토 콜레오네의 철학과 그의 미래를 암시하는 장면이다. <대부> 시리즈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우형 촬영감독(<카트>(2014), <돈의 맛>(2012), <만추>(2011), <고지전>(2011), <그때 그사람들>(2005), <바람난 가족>(2003) 등)
<맨하탄>(감독 우디 앨런, 1979) “아이작(우디 앨런)과 메리(다이앤 키튼)가 벤치에 앉아 퀸스버러 다리를 바라보는 밤 신. 포스터에도 쓰인 명장면이다. 새벽 5시쯤 찍었다고 들었다. 롱숏이라 조명을 설치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이조명이 다리에 촘촘하게 박혀 있었는데 촬영하던 중 소등되면 안되니까 고든 윌리스가 촬영 시작 며칠 전부터 뉴욕시와 논의를 했다. 소등 시간이 지나도 얼마 동안은 소등하지 말라고 말이다. 하루에 최대 20분밖에 주어지지 않는 환경에서 현장의 현실적인 요소를 계산해 만들어낸 완성도가 높은 장면이다. 그림으로 비유하면 벽에 걸어놓아도 지루하지 않은 그림이다.”
<클루트>(감독 앨런 J. 파큘라, 1971) “영화의 후반부, 존 클루트(도널드 서덜런드)와 브리 대니얼(제인 폰다)이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10분 정도의 길이다. 카메라의 움직임이 화려하거나 기발하진 않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빛은 한쪽 방향으로만 비추고 있어 사람의 위치에 따라 순광이었다가 역광이었다가 한다. 요즘 관객이 보기엔 지루하기 짝이 없는 화면이다. 그럼에도 이 장면을 꼽은 이유가 있다. 요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관객이 지루할 거라는 핑계를 대며 간단한 대화 신을 찍을 때도 카메라를 요란하게 흔든다. 연기나 기술적인 결함을 눈속임하기 위해 카메라를 움직이는 요즘 영화의 카메라와 달리 이 장면에서 보여준 카메라는 정공법으로 묵직하게 돌파한다.”
김태경 촬영감독(<방황하는 칼날>(2014), <소원>(2013), <은교>(2012) 등)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감독 앨런 J. 파큘라, 1976) “<워싱턴 포스트>가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치는 영화다. 영화의 주요 공간인 <워싱턴 포스트> 사무실을 보면 고든 윌리스가 기술적으로 어떻게 접근했는지 잘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사무실 내부를 딥 포커스(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에 상관없이 초점을 프레임 중앙에 맞춰 화면의 모든 부분을 선명하게 찍은 것)로 촬영했다. 특히, 기자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퍼드)가 전화 취재를 통해 사건의 단서를 알게 되는 장면에서는 심도 분리 필터를 사용해 근경에 있는 우드워드와 후경에 있는 동료 기자들 모두 선명하게 보여준다. 심도가 깊어 사무실의 분주한 분위기를 제대로 살렸고, 이것은 공권력에 결코 밀리지 않는 공간임을 강조한다.”
<맨하탄>(감독 우디 앨런, 1979) “보통 <대부> 시리즈를 두고 고든 윌리스를 ‘어둠의 왕자’라고 부르는데 <맨하탄>에서도 빛과 어둠의 대비를 잘 드러낸 장면이 있다. 아이작과 메리가 비를 피해 헤이든 천체관으로 뛰어들어가 수다를 떠는 장면이 그것이다. 고든 윌리스는 “밤하늘의 별 아래에 있는 두 연인”이라는 컨셉을 정해놓고 이 장면을 찍었다. 사실 대사가 많고 상황이 쉴 새 없이 펼쳐지는 우디 앨런의 영화 특성상 촬영감독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거나 기술적인 시도를 하는 게 쉽지 않은데 고든 윌리스는 그런 제약 속에서도 자신의 촬영을 과감하게 표현한다.”
박홍열 촬영감독(<찌라시: 위험한 소문>(2014), <우리 선희>(2013), <다른 나라에서>(2012),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 <하하하>(2009) 등)
<젤리그>(감독 우디 앨런, 1983) “레오나르드 젤리그(우디 앨런)라는 허구의 인물을 다룬 가짜 다큐멘터리다. 젤리그는 1920년대 배우로 성공한 남자다. 누구나 흉내낼 줄 알아 ‘인간 카멜레온’이라고도 불리는 그다. 고든 윌리스는 1920년대의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1920년대 사용됐던 카메라와 거친 입자의 고감도 필름을 선택했다. 일부러 필름에 스크래치를 내기도 했다. 화면 중 밝은 부분은 콘트라스트를 크게 해 아주 밝게 찍었다. 촬영감독으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영화 속 배경과 어울리는 룩을 표현하기 위해 과감한 시도를 한 영화였다.”
<암살단>(감독 앨런 J. 파큘라, 1974)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신문기자 조셉(워런 비티)이 살인자 집단인 패럴랙스 회사에 잠입하는 장면이다. 보통 무언가를 파헤치는 사람은 밝게, 음모를 감추고 있는 사람은 어둡게 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는 기자의 눈만 밝게 보여주고 나머지는 어둡게 처리했다. 또 하나는 새 대통령 행사장에서 누명을 쓰게 된 기자가 진짜 범인이 달아난 문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 진실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 문이 굉장히 밝다.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달려가는 조셉의 얼굴을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담아낸다. 결국 문을 통과한 조셉은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죽는다. 극단적인 빛 대비와 클로즈업을 통해 희망이 사라지는 풍경을 표현한 게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