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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시대의 ‘대부’
오정연 2014-06-12

5월18일 별세한 ‘어둠의 왕자’ 고든 윌리스 촬영감독 May 28, 1931~May 18, 2014

<맨하탄>

<데블스 오운>(1997) <맬리스>(1993) <대부3>(1990) <의혹>(1990) <재회의 거리>(1988) <환상의 발라드>(1987) <머니 핏>(1986)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 <젤리그>(1983) <스타더스트 메모리즈>(1980) <맨하탄>(1979) <인테리어>(1978) <55년 9월30일>(1977) <애니 홀>(1977)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명탐정 하퍼2>(1975) <대부2>(1974) <암살단>(1974) <대부>(1972) <배드 컴패니>(1972) <클루트>(1971)

지난 5월18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가 촬영감독 고든 윌리스에 대한 긴 부고기사를 실었다. 촬영감독의 이름은 관객에게 낯설 수밖에 없지만, 그의 영화목록을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부> 3부작,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등 앨런 J. 파큘라와의 작업, 그리고 <애니 홀>부터 <카이로의 붉은 장미>까지 우디 앨런과 함께한 영화들.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의 스티븐 피젤로 편집장은 “촬영감독의 러시모어 산이 있다면 고든 윌리스의 얼굴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고, 같은 잡지의 웹사이트는 “그는 영화가 어떻게 보이는지뿐만 아니라 우리가 영화를 바라보는 방식 역시 변화시켰다”라고 썼다. 그 진술이 더이상 정확할 수 없는 이유 다섯 가지를 꼽으며, 그의 눈에 담긴 필름의 시대를 더듬어본다. 영화의 얼굴이 1970년대를 지나며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말하기 위해 반드시 돌아봐야 할 ‘대부’에게 작별을 고하는 우리의 방식이다.

<대부>

1. 고든 윌리스 이전과 이후

맨해튼의 얼굴은 <맨하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맨하탄>이 시대를 초월한 뉴욕에 대한 선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야심만만한 제목 때문도, (감히 말하지만) 우디 앨런의 영화세계 때문도 아니다. 이 장면을 포함하여 고든 윌리스가 흑백으로 묘파한 뉴욕의 거리, 뉴욕의 야경, 뉴욕의 공원, 뉴욕의 아파트, 뉴욕의 미술관, 뉴욕의 레스토랑은 이후 숱한 대중문화와 이를 접한 관광객, 심지어 뉴요커들 자신이 뉴욕을 바라보는 시선을 결정지었다. <맨하탄> 없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인사이드 르윈> 등의 영화는 상상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상당수는 <맨하탄>이 없었다면 아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맨해튼 미드타운의 동쪽 끝에서 퀸스버러 다리를 배경으로 완성된 이 장면을 두고 누군가는 엉뚱한 의문을 품을지도 모른다. 어째서 유명세로나 건축양식으로나 맨해튼 다리의 대명사 격인 브루클린 다리가 아니었을까. 그의 약력에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보자. 그의 고향은 퀸스버러 다리를 사이에 두고 맨해튼의 건너편에 위치한 퀸스의 아스토리아. <맨하탄> 속 두 주인공의 시선이 다리 저편이다. 퀸스버러 다리를 바라보며 맨해튼을 그렸을 소년이, 시대를 뛰어넘는 이 도시의 초상을 제시한 셈이다. 그의 아버지는 공황기에 워너브러더스 동부 스튜디오의 메이크업 디자이너였는데, 덕분에 자연스럽게 대중문화계를 접한 윌리스는 막연하게 배우의 꿈을 키웠다. 이후 맨해튼에서 패션사진과 다큐멘터리 및 광고 촬영에도 참여했던 그는 말년에 매사추세츠로 이주하기 전까지 평생을 맨해튼 근교 한 시간 거리에서 살았다.

그러므로 마피아물과 정치 스릴러와 로맨틱 코미디를 아우르는 그의 작품 리스트의 키워드 중 하나는 뉴욕이다. <클루트>에서 스릴러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거대한 맨해튼의 조형을 표현주의 화가처럼 활용했던 그가 뉴욕의 20세기를 관통하는 <대부> 3부작에 기용된 것, 본격적으로 맨해튼을 자신의 필모그래피 전체의 주인공으로 삼기 시작하며 영화언어를 업그레이드해야 할 시점의 우디 앨런이 그를 필요로 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고든 윌리스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은 맨해튼뿐만이 아니다. <대부2>에서 비토와 마이클의 시퀀스를 구분하기 위해 과거 장면에서 활용했던 세피아톤이며 디퓨전(산광시키기 위해 조명기 앞에 설치하는 장비)을 자신이 처음 사용한 직후 수많은 영화에서 같은 기술을 기계적으로 사용한 것을 두고 윌리스는 “마치 전염병처럼 창궐했다”라며 냉소한 바 있다. 인물의 내면이 지닌 어둠과 권력을 강조하는 로레벨 조명은 또 어떤가. 로맨틱 영화 속 도시의 맨 얼굴부터 시대극의 양식이며 갱스터물의 인물 표현에 이르기까지, 당연하게 여겨지는 장르법칙의 실로 많은 부분이 그의 눈에 기대고 있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2.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고든 윌리스가 1970년대의 7년 동안 촬영한 일곱편의 영화들이 아카데미 39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19개의 오스카를 거머쥐지만 촬영상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종종 새삼스레 언급된다. 결국 그는 은퇴 이후 12년이 흐른 뒤인 2009년에야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는데, 마틴 스코시즈가 <디파티드>로 감독상을 받은 뒷북도 이에 비하면 사소할 지경이다. 정작 윌리스 자신은 그 사실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영화 비즈니스의 특성을 보면 놀랍지 않다. 한번 생각해봐라. 난 영화 찍고 집에 가는 게 좋은 사람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윌리스가 ‘영화 찍고 집에 가는 사이 각종 파티장이며 골프장에서 정치와 영업을 일삼아야 하는’ 할리우드와 평생동안 유지했던 물리적, 심리적, 태도적 거리를 떠올려보면 무슨 말인지 알 듯도 싶다. <대부>의 첫 장면에서 머리 위에 존재하는 조명 때문에 말론 브랜도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두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을 비롯해 영화의 모든 것이 못마땅했던 파라마운트 스튜디오가 얼마나 격렬하게 우려를 표시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의 눈이 보이는지 아닌지 따위 관심도 없었다. 그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생각하면 그 눈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더 적합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실제로 눈이 보이지 않는 장면은 영화의 극히 일부 컷에 불과하다는 윌리스의 항변과 비웃음은 “‘눈은 영혼의 창’이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 자신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스튜디오 관계자들의 기계적인 수사를 겨냥한다. “그날의 촬영 분량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보아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트집잡는 발언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믿는 것 같다.”

“고든, 배우들이 안 보이는데?” <맨하탄> 촬영 당시 아이작(우리 앨런)과 메리(다이앤 키튼)가 화면 안팎을 넘나들며 대화하는 장면에서 우디 앨런이 한 말에 대한 윌리스의 대답은 이랬다. “괜찮아. 목소리는 들리잖아.”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강렬하게 말을 걸어온다’는 신념은 그의 작품 전체를 규정한다. 이는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대부의 눈, 굳게 닫히는 문틈으로 엿보이는 새로운 대부의 세계, 얼마나 빠졌는지 보이지 않는 연인의 표정, 얼마나 깊숙이 연루되는지 가늠되지 않는 ‘딥스로트’의 정체 등 많은 것을 포괄한다.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디테일이 보이지 않아 긴장감이 고조되는 것은 서스펜스와 코미디와 로맨스 등 모든 드라마에 해당한다.

<대부2>

3. 깊이를 표현하는 풍부한 레이어

정치 스릴러를 만드는 촬영감독의 흔한 푸념은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폭로한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의 실화를 옮긴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촬영 당시 윌리스에게도 해당됐다. “정보들을 하나씩 쌓아서 거침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정보전달 이외의 목표를 위해 허비할 수 있는 컷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사소한 절도사건이 대통령을 끌어내린 정치 스캔들로 비화되는 과정의 디테일을 문자 그대로 따라가다보면 재연드라마와 다를 바가 없다. 활자와 대사로 전달되는 숱한 단서와 논리를 꿰는 것은 결국 영화만이 가능한 리듬과 호흡이어야 한다. 2~3분에 걸친 테이크 내내 카메라는 인물에 점점 다가가고 화면 오른쪽 근경의 주인공과 왼쪽 후경의 사무실 배경 모두에 고르게 시선이 분산되는 동안 주인공이 불쑥 사건의 핵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관객 역시 순식간에 인물과 사건과 공간 모두에 쑥 들어가 있음을 깨닫는 것은 모든 상황이 종료된 이후다. 이와 함께 영화사에 기록될 만한 윌리스의 주밍으로, 대부에게 호소하는 보나세라의 클로즈업이 대부의 뒷모습까지 줌아웃되는 <대부>의 첫 장면 첫컷 역시 종종 꼽힌다.

많은 촬영감독처럼 윌리스 역시 찍어야 할 장면을 두고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블로킹(프레임 안에서 인물의 위치와 움직임 설계)이었다. 윌리스는 장면을 설계하는 과정을 “범죄에 걸맞은 형벌을 고민”하는 것에 비유할 정도로 엄격했음을 그가 촬영한 영화의 모든 장면에서 알 수 있다.

가장 깊숙이 가닿기 위해 고안된 카메라의 여정에 힘을 싣는 것은 깊이,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풍부한 레이어다. 이는 클로즈업을 아끼고 깊은 심도를 주로 구사했던 그의 촬영 스타일은 물론, 그로 인해 화면에 부여되었던 디테일의 물리적 층위와 함께 양식적/내용적 층위까지 포괄한다. <맨하탄>에서 아이작이 나선형 계단을 내려와 트레이시(마리엘 헤밍웨이)가 앉아 있는 소파로 향하는 간단한 동선에 저승세계에 발을 들이는 오르페우스의 극적인 심란함을 더한 것은 넓은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한 깊은 어둠이다. 각각의 세계를 비추는 두개의 빛,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지만 프레임 속 한없는 어둠을 실감케 하는 먼 곳의 희미한 빛. 깊이를 만드는 것은 현란한 조명과 그림 같은 구도가 아니다.

<대부2>

4. 일관성을 돋보이게 하는 비교와 대조

<태양을 향해 쏴라> <아메리칸 뷰티> <로드 투 퍼디션>으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3회 수상한 콘래드 홀이 친구 윌리스에게 붙여준 별명인 ‘어둠의 왕자’는 종종 편하게 그의 이름을 수식하기 위해 사용된다. 정작 윌리스 자신은 이 별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절대적인 규정보다는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표현을 극대화했던 그의 스타일을 돌이켜보면 짐작할 수 있는 반응이다. “내 영화 전체에서 암흑이 차지하는 비율은 의외로 높지 않다. 내가 중요시하는 것은 시각적 상대성이다. 빛에서 어둠, 어둠에서 빛, 큰 것에서 작은 것,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변형을 주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부2>에서 확연히 다르지만 의외의 순간에 의외의 방식으로 조우하는 두 시대를 능수능란하게 펼쳐내는 윌리스의 신묘에 감탄한다. 언제나 그렇듯 이에 대한 윌리스 자신의 대답은 매우 건조하다. “모든 과거 장면은 필터를 사용하여 한 단계를 다운했고 대부분의 과거는 플랫한 조명을 사용하여 콘트라스트가 강한 현재와 대비된다. 그러나 2편의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3부작 전체를 꿰뚫는 원칙으로 늘 생각한 것은 색감이었다.” 실제로 고든 윌리스로부터 전화통화를 통한 원격 조언을 받으며 <대부> 3부작의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진행한 복원팀은 “고든은 세편의 영화가 같은 콘트라스트의 리듬을 지닌 같은 룩의 영화들이라는 말을 반복했는데, 이는 사실이었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시각적 구조를 구조적, 기계적, 광학적으로 반복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믿는 윌리스는 촬영팀 조수들에게 카메라의 조리개, 초점거리는 물론 프레임 안 모든 피사체의 노출과 이들간의 밸런스를 강박적으로 기록하게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 때문일까. 한 시대를 풍미한 15명의 촬영감독과의 꼼꼼한 인터뷰를 모은 <세계의 영화 촬영감독> 중 고든 윌리스 챕터에서 저자는 “인터뷰에 응한 촬영감독들은 가장 존경하는 촬영감독을 묻는 질문에 압도적인 비율로 고든 윌리스를 꼽는다”라고 썼다. 15명 중 고든 윌리스의 촬영팀 출신이 둘(마이클 채프먼과 존 베일리)이나 있다는 점 역시, 전체의 비례와 리듬을 앞세우는 윌리스 촬영팀이 영화사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를 깨닫게 한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5. 전체를 꿰뚫는 조감의 시선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모를 추적 중인 두 기자가 국회도서관의 지난 2년간 대출기록 전부를 조회하기 시작한다. 수천, 수만장의 대여카드를 넘기는 두 사람의 손과 정수리를 비추던 카메라는 국회도서관 돔의 꼭대기까지 물러나 메인 열람실을 가득 메운 이용자들을 바라본다. 윌리스는 “짚더미에서 바늘 찾는 심정을 표현하고 싶다는 감독이 원했던 장면”이지만 (지나치게 형식이 부각된다는 점에서) “평소 나라면 잘 하지 않았을 장면”이라고도 말한다. 두 주인공이 탄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장면을 비슷한 시점에서 조감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그중 한번은 주차장을 넘어서 워싱턴 DC의 야경까지 펼쳐냈던 것은 아마도 이 국회도서관 장면이 지나치게 두드러지는 것을 막으면서 일관된 리듬을 만들기 위해 세심하게 배치되었을 것이다.

2006년 <보스턴 글로브>의 한 기사가 지적했듯 “윌리스는 (60년대 황금기를 잇는) 70년대 황혼기 미국영화의 ‘룩’을 정의했다. 알트먼이 그러했듯 그는 롱숏을 격상했다.” 그리고 그의 롱숏은 때때로 극부감의 형태로 우리에게 전체를 바라볼 것을 권하는데 <대부>에서 비토 콜레오네의 암살시도 장면 등에서 보듯 그는 “인생은 클로즈업으로 볼 때 비극, 롱숏으로 볼 때 코미디가 된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진술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가 효과적으로 구사하던 조감의 시선은 한편의 영화, 한 감독의 영화세계, 자신이 다루는 매체의 특성을 꿰뚫는 윌리스 자신의 시선에 대한 비유로도 가능하다. <클루트> <대부> 등에서 윌리스를 보조하기도 했던 마이클 채프먼(<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등)은 그를 “미국식 독학자의 가장 멋진 예시”라고 꼽았다. “기술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라고 믿는 그는 카메라와 필름에 대해 배워야 할 모든 것을 한국전쟁 당시 공군 영화촬영부대에서 배웠다. 기본과 표준은 누구나 접근 가능하지만 이를 벼려 언제든 꺼내들 수 있는 도구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 표준을 베이스에 깔고 그 기준에서 각각의 단계별 노출 과다와 부족 수치가 어떻게 스크린으로 연결되는지를 숙지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어떤 촬영 교과서에 실어도 어색하지 않다.

고든 윌리스는 영화를 만들거나 촬영한다는 말을 할 때 동사 ‘mount’를 즐겨 쓴다. 슬라이드 사진을 고정시키는 틀, 카메라에 렌즈를 끼우는 부분 등을 일컫기도 하지만 어딘가에 올라가거나 무언가를 쌓아간다는 뜻의 동사다. 비행기 내부 장면의 리얼리티를 살리려면 실제 비행 중인 여객기 내부에서 촬영해야 한다는 초보 감독들의 맹목적인 믿음을 두고 그가 “리얼리티는 절대 그런 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재구축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 것을 상기할 때 그의 단어 선택은 의도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영화들은 필름의 물질성을 숙지하여 반복가능한 기교를 통해 전체를 쌓아올리되 그 안에서 찾아가는 움직임과 비례의 효율성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말한다.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66살에 앨런 파큘라 감독의 유작 <데블스 오운>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그는 디지털 시대가 다가옴을 감지했을 것이다. 2013년 그는 한 팟캐스트와 진행한 긴 인터뷰에서 덤덤하게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우아한 영화, 이야기를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진다. 일을 찾을 수야 있겠지만 내 시대의 정수가 그와 함께 사라졌다면… 예전에는 있었던 것이 더이상은 없다.” 그리고 덧붙인다, 어쨌거나 그것으로 좋았다고. 더이상 우리는 그와 같은 필름의 ‘대부’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아름다운 시절이었고, 그가 쌓아가는 세계와 현실을 목격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대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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