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타운>(2008), <애니멀 타운>(2009), <댄스 타운>(2010) 등 이른바 ‘<타운> 3부작’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전규환 감독은 가장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하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진정한 독립영화감독 중 하나다. 이후 <불륜의 시대>(2011)를 지나 <무게>(2012)로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베니스 데이’ 부문에 초청돼 ‘퀴어사자상’을 수상했다. <무게>는 시체안치실에서 시체를 닦아 관에 담는 일을 하는 ‘꼽추’ 정씨(조재현)와 성기를 잘라내고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그의 배다른 동생 동배(박지아) 등 태생적인 ‘무게’를 떠안은 채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또한 지속적인 장르 실험을 해오고 있는 그에게 <무게>는 ‘판타지 멜로’다. 물론 그는 이후 몇번의 실험을 더 끝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마이 보이>(2013)와 유준상 주연의 액션 스릴러 <화가>, <무게>에 우정 출연한 김성민과 윤동환이 주연을 맡은 <소리 없는 남자>까지 벌써 세편이나 되는 것. 무엇이 그를 쉬지 않게 만드는 걸까. 호기심을 가득 안고 개포동 구룡마을 입구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무게> 이후에 완성한 영화가 무려 세편이다. 작업속도가 빠른 까닭에 언제나 이전에 만든 영화에 대해 인터뷰하게 된다. 어색하진 않나. =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작업속도가 그런 걸 어떡하겠나. (웃음) 매번 새로운 영화를 만들려고 하니 어색하기도 하지만, 다루는 매체의 시선이 더 중요하다. 좋으면 좋다 아니면 아니다, 그러면 되는데 ‘좋아할 만한 사람들은 좋아하겠다’는 식으로 영화를 아예 처음부터 가둬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영화를 대하는 시선이 진정으로 열려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게>의 주인공은 직접적으로 빅토르 위고의 <노틀담의 꼽추>를 연상시킨다. =<무게>는 처음부터 문학가가 만든 영화 같은 서사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시나리오가 아닌 희곡을 쓴다는 생각이었다. 그 꼽추처럼 숨어 사는 사람들, 혹은 데이비드 린치의 <엘리펀트 맨>(1980)에서 희귀병으로 인해 기형의 얼굴로 살아가는 존(존 허트)과 같은 사람들의 사연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가령 <불륜의 시대>는 익숙하다고 하는 그런 멜로 장르를 한 꺼풀 벗겨내면 그 속이 얼마나 잔인하고 위선적인가, 들여다보고 싶었다. 죽은 자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무게>의 정씨는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당신 영화들 중 가장 이미지의 힘이 강렬하다.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 세트 촬영의 비중도 가장 크다. =이전 내 영화들은 로케이션의 영화였다. 돈이 없으니 그냥 길거리로 나갔다. (웃음) 하지만 <무게>는 동명의 연극이나 무대예술을 만들어도 될 고전적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순제작비 4억원 정도에 촬영기간은 20회차 정도로 짧은 저예산영화라 제약이 많았다. 게다가 주무대라 할 수 있는 시체안치실은 <차형사>(2012)팀이 촬영하고 버리다시피한 세트를 빌려서 거의 앵벌이하듯 만들었다. (웃음) 예산이 넉넉했다면 애초에 의도한 ‘고딕’풍의 이미지를 더 담아냈을 것이다.
-김기덕 감독을 꼭짓점에 둔 계보에 놓고 당신을 이야기하는 시선들이 많다. <무게>는 김기덕의 <악어>(1996)와 <나쁜 남자>(2001) 등에 출연한 조재현, <해안선>(2002)과 <숨>(2007) 등에 출연한 박지아가 주인공이라 직접적으로 그런 인상을 풍긴다. =개인적으로는 김기덕 감독과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을 꺼리는 편이다. (웃음) 물론 지난 베니스영화제에 조재현과 함께 가서 <피에타>로 초청받은 김기덕 감독과 여러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 그런 얘기를 먼저 꺼낸 적 없고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재현, 박지아와 연기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도 ‘그(김기덕)의 영화에는 어울릴지 모르지만 내 영화에서는 아니다’, 그런 식의 주문을 한 적도 있으니까. (웃음) 내가 최고라 여기는 연기는 다르덴 형제나 지아장커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혹은 <밀양>(2007)에서 송강호가 연기했던 카센터 사장 같은 모습?
-<무게>는 판타지로서 파격적인 묘사를 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과잉을 많이 걷어낸 담백한 느낌이다. =내 지론은 ‘과하면 망가진다’는 거다. (웃음) 뭐든지 걷어낼수록 많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자꾸 더 보여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편집 때도 과하다 싶은 생각이 들면 가차 없이 들어낸다. 그래서 매번 더 넣자고 주장하는 편집기사와 갈등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비었을 때 많이 보인다’고 설득한다. (웃음)
-매번 장르적 실험을 계속 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전작 <불륜의 시대>가 멜로였다면 <무게>는 판타지 장르다. =<타운> 3부작이 사회드라마였다면, <불륜의 시대>부터 그런 감각과 지향점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왔다. 허진호와 박진표 감독의 멜로영화와는 다른 감성과 문법으로 <불륜의 시대>를 만들고 싶었고, <무게>는 다소 무거운 판타지 장르다. <화가> 역시 무술감독은 따로 있지만 액션 디자인부터 디테일한 것까지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고 싶었다.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가 바로 리안이다. <결혼피로연>(1993)뿐만 아니라 <아이스 스톰>(1997) 같은 미국 가족영화를 만든 것도 신기한데, 무협영화 <와호장룡>(2000)도 그렇고, 같은 멜로라도 <브로크백 마운틴>(2005)과 <색, 계>(2007) 또한 다르다. 우드스탁을 소재로 한 음악영화 <테이킹 우드스탁>(2009), 3D영화인 <라이프 오브 파이>(2012)는 또 어떤가. 더불어 소재뿐만 아니라 그 스타일 또한 매번 다르다. 그런 어떤 틀에 박히지 않은 작업방식이 마음에 들고, 나 또한 궁극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 있을 것 같다. =이야기를 떠올리고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고민하는 점은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저런 상황이 닥쳤을 때, 사람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하는 것이다. <무게>의 꼽추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왔을까, 그 머리와 몸속에 들어가보려 했다.
-새로이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주변 지인들은 내게 <행오버> 스타일의 코미디를 해보라고 한다. (웃음) 나 역시 그런 코미디에 관심이 많다. 또 무협영화도 해보고 싶고 마이클 만의 <히트>(1995) 같은 도심의 총격전 영화도 종종 떠올린다. 이것들은 틈틈이 써놓은 트리트먼트가 있고 언젠가 꼭 현실화하고 싶다.
-그런 실험을 계속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상투적인 그 어떤 것도 배격하고 싶다. 내가 그저 잘할 수 있는 것, 남이 이미 해놓은 것을 굳이 다시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것이야말로 별 의미 없는 ‘소비’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논문에서 생산적인 주석이 되고, 남이 어떤 기준점으로 언급하는 모델이 되는 그런 영화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무게> 이후 작업한 세편의 영화의 진행 상태는 어떤가. =<마이 보이>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고 역시 내 스타일의 가족영화라 할 수 있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주인공인 차인표에게도 평소와는 다른 ‘비어 있는’ 그리고 ‘덜어낸’ 스타일의 연기를 주문했다. 또 지난해 여름에 촬영한 <소리 없는 남자>는 현재 편집 중이다. <화가>는 에스토니아 로케이션 촬영을 끝내고 돌아온 지 1주일 정도 됐다. 내년 상반기에 세편을 연달아 개봉할지도 모르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