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flash on
[flash on] 우리 팀은 서커스단이다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3-08-22

왕가위 사단의 오른팔, 재키 펑 프로듀서

“왕가위 사단의 지칠 줄 모르는 오른팔.” 오래전, <버라이어티>는 재키 펑(Jacky Pang) 프로듀서를 두고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그는 <중경삼림>(1994)부터 최근의 <일대종사>(2013)까지 왕가위 감독이 연출한 모든 작품의 제작과 투자를 담당해왔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왕가위 감독은 프로듀서로서 재키 펑의 어떤 점을 높이 사기때문에 지금껏 그와 함께 작업해 온 것일까. 홍콩영화산업에 정통한 베를린영화제 아시아 프로그램 카운슬링 담당 노먼왕에게 메일로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런 내용의 답장을 보내왔다. “투자, 프로듀서는 물론이고 감독, 제작부, 프로덕션 슈퍼바이저, 심지어 헤어•메이크업까지 두루 거쳤던 경험 덕분인지 스탭들의 마음을 잘 안다. 그게 왕가위 감독, 스탭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다. 무엇보다 그는 너무나 열심히 일한다. 어떤 메일을 보내도 곧바로 답장한다.”

-<2046>(2004)에 이어 <일대종사> 역시 6년 동안 기획하고 3년 동안 촬영한 장기 프로젝트다. =<일대종사> 크랭크업 때 스탭들이 묻더라. “정말 끝난 거 맞아? 안 끝나면 안돼?”(웃음) 크랭크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탭 대부분이 “이건 끝나면 안된다”며 약 일주일 동안 세트장에 머무르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길어지면 불만이 많아지는 법인데 스탭들의 반응이 이색적이다. 프로듀서로서 무슨 비책이 있었던 건가. =어느 프로젝트나 촬영 과정에서 여러 문제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때 프로듀서로서 가장 중요한 건 함께 일하고 있는 스탭들을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명씩 따로 불러 왜 프로젝트가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는지 정확하게 설명해주었다. “언젠가 다시 찍을 것이다”라는 약속도한다. 어쨌거나 다른 영화 프로듀서들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스탭들을 쓰게 했다. 그사이 나와 감독은 프로덕션을 재정비한 뒤 스탭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게 프로듀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왕가위 감독과의 첫 작업이 <중경삼림>이다. 프로덕션 진행을 관리하는 프로덕션 슈퍼바이저를 맡았다. =<열혈남아>와 <아비정전> 같은 그의 전작을 극장에서 봤다. 당시 그가 만든 영화는 여느 홍콩영화와 이미지가 달랐고 세련됐다. 어느 날, 그로부터 “함께하자”는 전화가 왔다.

-첫 만남의 순간을 기억하나. =요구가 많은 감독! (웃음) 섭외뿐만 아니라 캐스팅, 세트 등 작품과 관련한 모든 것이 최고의 상태일 때 촬영에 들어가길 원하는 사람이다. 나 역시 그걸 따라야 했다.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등 왕가위 감독의 전성기를 함께 보냈다. 그와의 협업을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나. =당연히 있었다. (웃음) 누구나 순간적으로 그런 감정을 가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또 생각이 바뀐다. 가끔 왕가위 감독이 그런 말을 할 때가 있다. “우리 팀은 서커스단이다”라고. 어떤 지방에서 공연을 하고 난 뒤 짐싸서 또 다른 마을로 이동하는 서커스단이 그렇듯이 왕가위 사단도 그렇다고.

-학창 시절의 전공은 무엇이었나. =광고였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그러다가 영국에 건너가 패션을 공부했다. 유학을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오자 지인 중 한명이 영화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도와달라고 요청해서 우연치 않게 영화일을 하게 됐다.

-세 작품이나 연출했더라. =<신용도성>(1993)이 연출 데뷔작이고, <신용등사해>(1993)와 <도협3: 승자위왕>(1994)을 순서대로 만들었다. 세 번째 영화를 찍으면서 느낀 건 감독은 정말 많은 일을 해야 하고, 신경써야 할 게 많은데 그의 옆에 든든한 조력자가 없다면 불가능하겠다는 거였다. 훌륭한 감독이 되지 못한다면 그 조력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신은 왕가위 감독과 함께 대만의 여성감독 쳉시오체의 <먀오 먀오>(2008)나 장영치 감독의 <터치 오브 라이트>(2012) 같은 신인감독의 작품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신인들이 찍고 싶어 하는 시나리오가 있다. 그런데 제작할 만한 자본을 못 찾는 거다. 나나 왕가위 감독이 도와주면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 있다면 함께하는 것이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