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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사에 바치는 질문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
이화정 2013-03-20

<이헌의 오디세이>

냉정히 짚고 가자. <부러진 화살>이 공개되기 전까지 정지영 감독은 과거에 머물렀다. <남부군>의 명성과 거장 감독이라는 타이틀은 유효했지만, 현재진행형 감독의 수식을 붙이긴 어려웠다. <부러진 화살>이 거둔 평단과 흥행의 성공 이후, 연이은 <남영동1985>의 문제제기로 정지영 감독은 궤도를 되찾았다. 정지영 감독의 부활은 그 개인의 성공에 그치지 않았고, 한국 영화사에 뜨겁고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한국 영화산업 최고의 전성기에 중견감독의 활동이 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지영 감독을 비롯해 같은 연배의 이두용, 이장호, 고(故) 박철수 감독이 뭉쳐 만든 네편의 옴니버스 단편영화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은 그 질문에 대한 우회적인 답변의 영화다. 정지영 감독의 시장에서의 입지가 고무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 영화를 네 감독은 대규모 자본의 도움 없이 감독으로서의 노련한 연출력과 현재의 고민을 접목해 완성했다.

이두용 감독은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젊은 아내와 제자의 불륜을 조장하는 안무가 율의 에로틱한 드라마 <처용무>를, 고 박철수 감독은 성형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현재를 성형외과를 찾은 천태만상의 환자들을 통해 반영한 <미몽>을, 정지영 감독은 지금은 고인이 된 중앙일보 이헌익 기자를 추억하는 <이헌의 오디세이>를, 이장호 감독은 영화 <낮은 데로 임하소서>의 실제 인물이자, 자신의 동생인 영화배우 이영호의 현재를 그린 드라마 <실명>을 완성했다. 군데군데 제작 여건상의 고군분투가 보이지만 감독들 각자의 연출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난 흥미로운 단편들이다. 제목의 ‘산책’이란 표현에 걸맞게, 본격적인 에너지가 엿보인다기보다는 오히려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할 워밍업이나 기지개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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