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을 개봉한 순서대로 쓰시오. 입사 시험에 이 문제를 내면 지원자 중 몇명이나 정답을 맞힐까. 많지 않을 것이다. <씨네21> 기자라면 쓱쓱 써낼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대뇌의 회백질이 비교적 덜 손상된 것으로 보이는 젊은 기자들에게 실제로 물어봤다. 아침마다 보양식을 챙겨먹는다는 김성훈 기자는 <생활의 발견> 다음 <밤과낮>으로 훌쩍 건너뛰었다. 이제껏 블랙아웃을 경험한 적 없을 정도로 주당인 송경원 기자는 <강원도의 힘>을 빠뜨렸고, <하하하> 이후 작품들은 순서를 헷갈렸다. ‘에이, 그 정도는 누구나 다 알죠’라고 자신했던 이후경 기자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아닌 <극장전>을 다섯 번째 영화라고 확신했다. 심심풀이 땅콩 퀴즈를 던지다 문득 무례한 의구심이 솟구쳤다. 홍상수 감독은 과연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까지, 14편의 장편영화 제목을 차례대로 줄줄 욀 수 있을까.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내 기억 회로는 오래전에 완전히 망가졌다. 창피한 말이지만, 영화를 본 지 반나절만 지나도 으깨진 두부처럼 기억이 뭉개진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따로 없다. 짧은 프리뷰를 쓰면서도 영화사에 전화를 걸어 재관람을 위한 스크리너를 요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스크리너를 내줄 수 없다고 하면 심의용 대본이라도 달라고 했다. 그렇게라도 기억의 불씨를 살려내면 다행이었지만, 도무지 재생 불가인 때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출구 없는 미로의 연속인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은 기억의 망실뿐만 아니라 기억의 혼선까지 일으킨다. 이를테면 이런 식의 착각이다. 누군가가 <해변의 여인>의 한 장면을 말하고 있는데, 난 그걸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한 장면이라고 여긴다. 상대가 고현정을 언급하고 있는데, 난 실상 정유미를 떠올리고 있다. 며칠 전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본 지인과 술을 마실 때도 내 기억 시스템은 심각한 오류를 일으켰다.
이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초로기 치매인가. 아닐 것이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냉장고에서 속옷이 발견된 적은 아직까지 없다. 잦은 단속(斷續)의 기억을 소생시킬 수 있는 뾰족한 치료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견과류를 많이 먹는다고, 하루에 시 한편을 암기한다고 죽어버린 뇌세포가 벌떡 살아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덩달아 요상한 상상이 뒤따랐다. <옥희의 영화>의 한 장면과 <북촌방향>의 한 장면을 접붙이기하면 어떤 느낌일까. <밤과낮>의 한 장면과 <다른나라에서>의 한 장면을 이어놓으면 어떤 느낌일까.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유준상, 예지원 커플을 보면서(정확히는 남다은 영화평론가의 글을 읽으면서) 피어오른 공상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뒤죽박죽, 엉망진창, 복잡하게 엉킨 기억의 실타래로 기억의 실놀이를 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가위바위보 게임도, 진실게임도 아닌, 이름하여 나만의 홍상수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