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가게 되면 ‘영화 ○○○의 원작’이라고 쓰여 있는 책을 자주 집어든다. 직업적 의무감이 발동하는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책이라곤 별로 들춰보지 못하는(이라기보단 안 하는) 처지라 ‘그래도 영화로 만들 정도면 읽고 후회하기야 하겠어’ 하는 얄팍한 기대감을 갖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소설과 영화를 함께 보는 경우, 아무래도 두 가지 버전을 비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빈치 코드>처럼 소설이나 영화나 할 것 없이 그렇고 그런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 소설과 영화 모두 훌륭한 경우는 많다. 이를테면 닉 혼비의 <하이 피델리티>와 이 소설의 영화판인 스티븐 프리어스의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를 보면 소설의 시니컬함이나 변태적인(?) 유머감각을 영화가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 존 쿠색과 잭 블랙이라는 배우로 구현된 캐릭터들은 외려 영화판이 더 풍부하지 않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파이트 클럽> <렛미인> <미스틱 리버> <속죄>(영화는 <어톤먼트>), <살인자들의 섬>(영화는 <셔터 아일랜드>), 그리고 최근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또한 소설과 영화 각각에서 장점을 느낄 수 있는 부류에 속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시계태엽 오렌지> <암흑의 핵심>(영화는 <지옥의 묵시록>), 그리고 이청준의 단편 <벌레 이야기>에 기반한 이창동의 <밀양> 등은 원작을 창의적으로 영화적으로 잘 변용한 사례다. 반면 <슬럼독 밀리어네어> <나는 전설이다> <골든 슬럼버> <연을 쫓는 아이> 등은 영화가 원작 소설에 훨씬 미치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일 거다.
이번 특집기사를 통해 소개된 소설들을 보니 기대감이 확 밀려온다. <조이>를 붙잡은 스티븐 스필버그나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집은 데이비드 핀처의 프로젝트는 확신에 가까운 기대를 갖게 하고 <뉴로맨서>의 빈센조 나탈리,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토마스 알프레드슨, <영원한 전쟁>의 리들리 스콧의 영화 또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원작이 너무 방대해 영화화 자체에 의심이 가거나 영화로 굳이 옮겨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프로젝트도 존재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개성 뚜렷한 감독이기에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는 즐거움을 줄 것 같다. 기사에 언급된 11권 중 8권을 방금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한 것도 그런 기대감 때문이다(물론 이 책 중 상당수는 배달 온 상자 그대로 집 한구석에서 뒹굴 게 확실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움도 든다. 한국의 사정과 비교해보니 말이다. 장르소설의 시장이 방대하고 소설의 영화화 전통이 확고한 서구문화계를 부러워해봐야 별 소용이 없겠지만, 감독들이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우리 여건은 너무 열악해 보인다. 하긴, 한국영화계는 원작 소설의 부족을 개탄하기 전에 시나리오작가에 대한 형편없는 대우부터 바꿔야 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