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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 볼 것 없는 007
강병진 사진 오계옥 2011-06-16

이명세 감독의 <미스터 K>

이명세 감독의 알파벳 애호는 여전하다. M에 이어 이번에는 K다. 김(Kim)씨 혹은 Korea의 K. <미스터 K>는 그처럼 흔한 성씨를 지닌 평범한 한국 남자를 첩보원으로 내세운 액션영화다. 이명세 감독이 준비단계에서 밝힌 이야기의 얼개는 무척 단순하다. “미스터 K가 어떤 사건을 해결하는 거지 뭐.” 현재로서는 흥미가 당기는 부분은 이야기보다 캐릭터다. 극중 미스터 K는 첩보원으로서의 협상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아내에게만큼은 일언반구도 못하는 남자다. 즉 <미스터 K>의 한줄 시놉시스는 ‘공처가 첩보원의 글로벌한 활약상’ 정도가 될 것이다.

<미스터 K>의 시작은 제작자인 윤제균 감독이었다. <해운대>와 <7광구> <> 등 할리우드 장르의 한국적 이식을 계획해온 그가 <미스터 K>에 앞서 자문한 질문은 “왜 우리나라에는 007 시리즈 같은 영화가 없을까?”였다. 단지 매력적인 첩보원을 주인공으로 한 액션영화가 아니라 이후에도 연작 시리즈가 가능한 기획이어야 했다. “기존의 할리우드 첩보영화들은 스토리가 뻔한 게 많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서 그들과 경쟁하려면 적어도 재미와 이야기가 더 뛰어나야 한다. 미스터 K의 모습은 한국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유부남이 공감할 거다. 나 또한 연출을 하거나 투자를 받으려 할 때는 협상을 잘하는 사람인데 아내에게는 항상 가로막히는 유부남이다. (웃음)” 윤제균 감독에게서 <미스터 K>의 아이디어를 들은 이명세 감독은 “아이디어를 확장시켜서 국제무대로 넓혀보자”고 제안했다. “협상이라는 건 말로 떠드는 건데, 나는 말로만 떠드는 게 별로 재미없거든. (웃음)” 그는 ‘한국판 007’이라는 말에 <미스터 K>의 여러 단면이 녹아 있다고 말했다.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007이라고 보면 된다. 첨단무기를 쓰는 방식은 제작비 때문에라도 안된다. 엉성하게 할 바에 잘할 수 있는 걸 해보려 한다.”

첩보액션이란 장르와 이명세 감독의 스타일, 여기에 윤제균 감독이 가꾸어온 유머코드가 만들어낼 시너지의 모양새는 아직 상상하기 어렵다. 직접적인 단서가 있다면 이명세 감독이 미국에서 준비했던 영화 <디비전>이다. 첩보요원들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였던 <디비전>에서 구상했던 액션의 아이디어들은 <형사: Duelist>에 반영된 바 있다. 불상과 위폐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초반의 쟁탈전이 대표적이다. <형사: Duelist>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던 이명세 감독은 <미스터 K>에서 더욱 발전된 형태의 액션으로 묘사할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스터 K>가 그의 전작처럼 영화적인 운동감에 집중하는 영화는 아니다. 이명세 감독은 크게 두 가지의 변화를 주기로 했다. 첫 번째, <미스터 K>의 시나리오는 이명세 감독이 혼자 쓰지 않는다. 윤제균 감독과 <뚝방전설> <>의 시나리오를 쓴 박수진 작가가 함께 쓴다. 두 번째, <미스터 K>는 액션뿐만 아니라 “유머와 감정적인 울림이 합쳐진 총체적인 엔터테인먼트” 영화다. 이명세 감독은 “업그레이드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라고 보면 된다”고 했지만, <미스터 K>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작의 결은 더 다양할 조짐이다. <남자는 괴로워>가 그려낸 직장과 가정에서 소외된 남자들의 애환, 그리고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같은 부부의 알콩달콩한 에피소드들도 포함된다. 현재 예상으로 약 100억원대의 제작비가 투입될 <미스터 K>는 올 하반기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미스터 K를 연기할 배우로는 설경구가 낙점됐다.

막연한 영웅주의는 사양한다

이명세 감독 인터뷰

-007 시리즈를 보면서 가졌던 느낌은 어떤 거였나. =어렸을 땐 영웅적인 느낌이 멋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거 안 하려고 한다. 나이가 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기다 보니 막연한 영웅주의는 거북스럽다. 그보다는 한명의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첩보원을 그리려고 한다.

-그렇다면 혹시 미스터 K에게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영구나 <형사: Duelist>의 남순 같은 저돌적인 면이 있나. = 그렇지 않다. 상당히 보편적인 느낌의 남자다. 지금 설경구가 캐스팅됐는데, 그의 느낌을 최대한 살릴 거다. 사실 변신도 생각했다. 살을 좀더 빼서 매끈한 이미지로 가볼까 했는데 본인도 “제가 뭐 해봐야 얼마나 나오겠냐”고 그러더라. (웃음)

-첩보원의 활약을 그리는 만큼 또 총체적인 엔터테인먼트를 구상하고 있는 만큼 전작에 비해 촘촘한 이야기의 영화가 될 것 같다. =플롯의 문제라기보다는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관건이다. 관객이 007 같은 영화에 기대할 법한 요소들은 버리지 않을 거다.

-현재 구상하고 있는 액션의 이미지가 있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시나리오 완고를 일단 보고, 헌팅도 가봐야 윤곽이 나올 거다. 중요한 건 한국적인 버젯에 맞는 액션을 만드는 거다. 돈은 별로 안 들이면서도 어떻게 하면 폼이 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사실상 발명을 해야 하는 처지다. 윤제균 감독은 내가 <본 아이덴티티>보다 잘 찍을 수 있을 거란 이상한 착각을 하고 있는데, 그게 보통 일이 아니지 않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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